“박근혜 정부의 관치(官治)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은 철저히 실패했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관료, 막대한 세금 투입에 거리낌이 없는 국책은행, 경영권 확보에만 혈안이 된 부실기업이 한 몸이 돼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막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 체계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지난 10일 ‘이코노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새 정부의 구조조정은 ‘정부·국책은행·부실기업의 운명공동체’를 깨뜨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조조정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기업을 거래하는 인수·합병(M&A) 시장을 대대적으로 키워, 기업 구조조정이 자생적으로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과감한 구조조정 후 기업들이 미래 산업에 투자할 수 있게 인프라 투자 등에 새 정부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새로운 미래 산업의 경쟁력은 분명히 기업에 달려 있지만, 그 방향 설정과 초기 인프라 구축은 정부가 해줘야 한다”며 “특히 정부가 미래 산업 발굴과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연구·개발(R&D)을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기술(IT) 산업을 육성해 주력 산업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성공한 경험이 좋은 참고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경영학원론, 금융경제학, 증권시장론 등 다양한 경영·경제학 저자로 유명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에서 활동한 ‘시민운동 1세대’로 금융실명제, 한국은행 독립 등을 요구해 실현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새 정부의 시급한 경제 현안은.
“대우조선해양으로 대표되는 부실기업들의 구조조정이다. 지난 정부는 공급 과잉 업종으로 꼽히는 조선·해운·철강·석유화학 등 4개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철저히 실패했다. 기업도, 산업도 살리지 못했다.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한국 경제가 끝 모를 늪에 빠지고 있는 남미 경제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서둘러야 한다.”

지난 정부는 구조조정에 왜 실패했나.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관치 주도형 구조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관료들은 의사 결정을 계속 미루며 타이밍을 놓쳤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국책은행은 어땠나. 원칙을 지키지 않고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부실기업의 경영진은 뼈를 깎는 자구책 마련보다는 경영권 확보에 급급해 국민 여론에 불을 질렀다. 결국 정부와 국책은행, 부실기업은 운명공동체 같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

새 정부는 어떤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하나.
“정부·국책은행·부실기업의 운명공동체를 깨뜨리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관치 중심의 구조조정을 시장이 주도하는 체제로 전환시켜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구조조정에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외풍(外風)에 흔들리지 않고 의사 결정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아야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원인이 무엇인지, 향후 어떤 구조조정이 필요한지,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선거 과정에서 “대우조선을 비롯해 국내 조선·해운 산업을 살리겠다. 한국 조선업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이 있다”고 강조해왔다. 다만 “새 정부가 출범하면 거듭된 자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이 부실한 원인에 대해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어떤 식으로든 대우조선 부실의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중장기적인 과제는 무엇인가.
“결국에 구조조정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기업을 거래하는 M&A 시장을 대대적으로 키워야 한다. 경제 논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M&A 시장이 있으면 부실기업은 계속 몸값이 내려가게 돼 있다. 부실기업이 회생 가능성이 없으면 누구도 사지 않을 테니 자연스럽게 청산될 것이다. 이런 구조가 정착되면 기업 구조조정은 자생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M&A 시장을 키우는 구체적인 방법은.
“M&A 시장이 커지고 제대로 작동하려면 구조조정 펀드가 많이 나와야 한다. 지금 시장에는 투자할 곳이 없어 떠도는 유동 자금이 엄청나다. 구조조정 펀드가 많이 나올 수 있게 정부가 제도적으로 도와줄 것은 도와줘야 한다. 추가적으로 증권시장도 좀 더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주식·채권시장의 숫자는 기업의 성적표인데, 해외에 비해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관련해서 기업의 엉터리 공시나 회계 부정은 정말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산업 구조조정의 추진 방향은.
“기업들이 미래 산업에 적극 투자할 수 있게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미래 산업의 경쟁력은 분명 기업에 달려 있지만, 그 방향 설정과 초기 인프라 구축은 정부가 해주는 게 맞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는 미래 산업 발굴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미래 산업 발굴에는 R&D가 필수적이다. 단기적 이익을 좇는 기업들이 혁신에 불가피한 리스크(위험)를 감수하지 않을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조세·금융 지원을 해줘야 한다. 초기 인프라 투자에도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을까.
“김대중 정부는 IT 산업을 육성해 주력 산업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무너졌다. 당시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외부 힘에 의해 강도 높게 진행됐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IT 벤처 기업들이 채웠다. 이 결정이 한국을 IT 강국으로 이끌었다.”


▒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 박사, 한국재무학회 회장,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소장, 고려대 총장


plus point

“시혜적 中企 지원 중단해야”

“중소기업을 무조건 보호해주는 정부의 시혜적 지원 정책은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정부는 중소기업들이 강소기업이 될 수 있게 불공정한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이필상 교수는 기업·산업 구조조정 못지않게 새 정부가 중요하게 추진해야 할 과제로 중소기업 구조조정을 꼽았다. 이 교수는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채 정부의 시혜적 지원에 기대고, 정부는 정치 논리에 휘둘려 과잉 지원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4개 정부 부처가 중소기업에 지원한 예산은 R&D 분야에서만 12조7310억원이다. 1998년부터 20년간 지원한 R&D 규모는 약 30조원에 달한다. 막대한 혈세가 투입됐지만 이런 투자가 실제 효과를 냈는지는 미지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이러한 R&D 지원이 중소기업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새 정부가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하려는 계획에 대해서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예산만 커져 과거처럼 ‘묻지마 지원’을 한다면 오히려 중소기업들의 의존도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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