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알디 수퍼마켓을 찾은 소비자들이 계산대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유통업 역사상 요즘같은 극심한 가격 할인 전쟁은 처음 본다.” (미국 컨설팅업체 울프 리서치의 스콘 머스킨 애널리스트)

영미권 유통업계는 대변혁을 겪고 있다. 2014년 이후 미국 유통업체 18곳이 파산했고, 영국 테스코(Tesco)는 2013년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봤다. 프랑스 최대 유통업체인 카르푸는 지난 20년 동안 19개 해외 시장에서 철수했고, 월마트(Walmart)는 2015년 실적 부진 우려에 독일과 한국 진출 계획을 철회했다.


알디 미국법인 매출 5년간 2배 증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경기가 둔화되고, 실업률도 상승하고 있지만 독일계 수퍼마켓 체인인 알디(Aldi)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유럽·미국·호주에서 월마트와 테스코는 위축된 반면, 알디의 시장 점유율은 점점 커지고 있다. 알디 미국 법인 매출은 최근 5년 동안 두 배로 늘었다. 1990년 영국에 처음 진출한 알디는 2015년 영국 6대 수퍼마켓으로 올라섰다. 2001년 호주에 첫 매장을 연 알디는 올해 호주 동부 해안지역 식품유통업 시장의 9%를 장악하며 호주 유통업계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알디의 행보를 예의주시해 오던 글로벌 대형 유통업체들은 대응에 나서고 있다. 월마트는 미국 11개주에서 가격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가격 할인을 위해서만 약 60억달러(약 6조7000억원)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대형 유통사를 긴장시키고 있는 알디의 성공 비결은 뭘까.


성공비결 1 | 선택과 집중

1962년 독일에서 할인 체인점으로 문을 연 알디는 식료품과 세제, 샴푸, 휴지 등 생필품을 취급하는 중형 규모의 수퍼마켓이다. 1970년 오일쇼크,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수많은 세계 경제위기를 지나면서도 끊임없이 성장한 기업이다. 알디는 현재 18개국에서 1만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알디는 자체 제작 브랜드(PB)상품을 주로 판매하는데, 품질은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값은 다른 매장에 비해 절반 가까이 싸다는 게 특징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독일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2000년대 유럽 전역으로 영업을 확대했다. 가격 파괴는 유럽을 넘어 영미권에서도 계속됐다. 알디 미국 법인이 판매하는 생필품 평균가격은 월마트에 비해 21%가량 저렴하다.

알디 가격 경쟁력의 비밀은 ‘선택과 집중’이다. 전통적으로 월마트(미국), 테스코(영국) 같은 영미권 식품 유통업체들은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는 것에 주력한다. 예산이 적은 소비자는 일반 매장에서 물건을 사고, 예산이 넉넉한 소비자는 돈을 좀 더 내더라도 입맛에 맞는 프리미엄 상품을 고를 수 있게 선택의 폭을 넓히는 식이다.

영국 테스코와 세인스베리(Sainsbury’s), 모리슨(Morrisons), 아스다(Asda) 등 4대 유통업체는 매장당 약 5만개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월마트는 매장 한 곳에 약 3만개의 제품을 구비하고 있다. 이 가운데 30%만 PB상품이다. 알디는 정반대다. 알디는 매장당 1500개의 상품만 진열한다. 이 가운데 94%를 PB상품으로 구성했다.

알디는 또 매주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춘 핫딜상품을 낸다. 초여름에는 선풍기, 휴가철에는 바캉스 용품, 개학 시기에는 학용품과 책가방을 낸다. 가끔 노트북·에어컨 같은 전자제품과 오토바이 등 특별상품을 터무니없이 싼값에 팔기도 하는데, 이런 제품을 파는 날에는 개장 전부터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영미권 유통업계는 알디의 전략을 처음엔 비웃었다. 품목을 줄이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들기 때문에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비자의 제품 선택의 재미를 빼앗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미국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알렉산더 체르네브 교수는 “소비재 소매업에서 소비자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구매욕와 고객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알디가 1995년 독일에서 첫 ‘알디PC’ 를 판매한 날, 이를 구매하기 위한 소비자로 매장은 장사진을 이뤘다. <사진 : 리벤스미테자이퉁>

성공비결 2 | 비용 절감

알디는 원래부터 극단적인 비용 관리로 유명했다. 유통 상품 개수를 줄여 유통망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일회용 쇼핑백은 아예 지급하지 않는다. 2000년 중반까지는 신용카드도 받지 않았다. 알디의 창업주인 테오도르 알브레히트 전 회장이 전푯값을 아끼려고 2000년대 중반까지 전자 단말기를 쓰지 않고 계산원이 바코드를 직접 입력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4시간 영업도 하지 않는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저렴한 백색 형광등 조명에 벙커를 연상시키는 철제 나무선반, 한 병에 39센트(약 500원)짜리 PB콜라와 1달러(약 1100원)짜리 소시지 통조림. 유럽 사람들이 ‘알디’라고 하면 떠올리는 풍경이다.

더욱이 알디의 PB상품은 늘 ‘짝퉁’ 논란에 시달렸다. 알디는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 시장에서 제일 인기 있는 제품의 포장 디자인을 그대로 모방한다. 예컨대 독일에서 누텔라(Nutella)를 모방한 초코잼을 만들어 누토카(Nutoka)라는 이름으로 팔고, 필름은 코닥(Kodak)을 따라한 코다(Coda)라는 라벨을 단 PB상품을 판매했다. 영국에서는 금색 테두리에 청록색 문양으로 유명한 하베스트 몬(Harvest Mont) 뮤즐리와 익스퀴진 민스 파이를 따라해 논란이 됐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는 알디에서 쇼핑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알디에서 쇼핑을 하면서도 매장을 나서자마자 알디 로고가 찍힌 쇼핑백을 버리는 사람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요즘 독일에서는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의 동의어로 ‘알디(Aldi)한다’라는 단어를 쓴다.


성공비결 3 | 독일식 품질 관리

치열한 유통 현장에서 ‘가격’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 알디의 극단적 비용 절감 전략이 철저한 독일식 품질 관리 시스템과 결합하면서 시너지를 냈다.

알디가 해외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적극적인 중산층 공략에 있다. 알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급 식자재 쪽으로 시장을 확대했다. 고품질 프랑스 와인, 드라이에이징(건조숙성) 스테이크, 러시아산 로브스터 등이 그 주인공이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핫딜 제품에 다이슨 무선청소기와 GPS(인공위성) 내비게이션 같은 고가의 제품을 추가했다. 백열등 전구는 할로겐 램프로 교체했고, 신용카드도 받기 시작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눈을 뜬 중산층 고객을 잡기 위해서였다.

‘품질 대비 낮은 가격’이라는 원칙은 변함이 없었다. 알디는 독일 중소기업에 독점 생산 위탁하는 방식으로 PB상품 품질을 관리한다. 납품 계약은 매년 갱신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부분 10년 이상 장기 계약으로 이어진다. 납품 업체와 신뢰를 쌓고, 동반 성장한다. 알디에서 판매하는 컴퓨터는 독일 중소기업 메디온(Medion)이 제작하는데, 양 사는 1996년부터 현재까지 계약을 맺고 있다. 그 사이에 메디온도 급격히 성장했다.

엄격한 품질 관리로 알디는 지난해 영국 신선식품컨소시엄(FPC)어워즈에서 올해의 소매업체로 선정됐다. FPC는 매년 1100명의 고객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수상업체를 선정한다. 나이젤 지니 FPC 회장은 “알디는 품질이나 고객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면서도 시장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제이슨 하트 알디 미국 법인장은 “처음 매장을 방문해 와인을 시음한 후 매주 매장을 찾게 됐다는 고객군이 많았다”며 “매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성공비결 4 | 불황 틈새 시장 공략

2000년대 중반까지 독일에서 알디 매출은 고공 행진을 계속했다. 그 당시 독일 경제는 좋지 않았고, 실업률은 10%까지 증가했다. 돈주머니가 얄팍해진 사람들이 기댈 곳은 알디 같은 초저가 할인점밖에 없었다. 경쟁 유통업체들은 너도나도 할인 경쟁에 들어갔고 독일에서는 ‘가격을 낮춘다’는 뜻의 ‘알디화(Aldisierung)’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독일 경기가 개선되면서 독일 내 저가 수퍼마켓 시장 성장 속도가 둔화됐다. 2005년 11.2%까지 치솟았던 독일 실업률은 2008년 7%대로 떨어졌고, 2017년 현재 3.9%까지 하락했다. 유통업 시장조사업체인 플래닛리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에서 알디의 소매유통업 점유율은 14.8% 정도로 떨어졌다.

알디는 독일 매출 성장 속도가 줄어 들자 적극적인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알디는 서구 선진국의 경제 상황에 따른 소비자 지형 변화를 영리하게 포착했다. 1980년대 미국·영국 시장에 진출해 터를 닦은 알디는 2000년대 중반부터 공격적 마케팅을 시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미권 선진국의 실업률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영국의 실업률은 2007년 5%에서 2012년 8.4%까지 상승했다. 가계 소득이 줄어들면서 유통업에 ‘가성비’가 트렌드로 떠오른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알디는 국가 경제적 상황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의 유통 시장 지형도도 파악했다. 알디의 영국 법인장을 지냈던 폴 폴리는 “식료품 가격이 세계 평균에 비해 높고, 일부 대기업이 유통 시장을 장악해 가격을 결정하는 국가가 타깃”이라고 설명했다. 식품 가격이 통상 현지 대기업 몇 곳에 의해 결정되는 곳을 파고드는 것이다.

영국과 호주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호주는 울워스(Woolworths)와 콜스(Coles) 두 회사가 식품유통산업을 양분하고 있었고, 영국은 테스코 등 빅4라 불리는 4대 할인점이 전체 시장의 80%를 과점하고 있었다. 알디는 틈새 시장을 공략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인 칸타르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의 빅4 수퍼마켓 체인의 점유율은 72.8%를 기록, 최근 10년 중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반대로 2008년 이후 10년 동안 알디와 같은 초저가 수퍼마켓 체인은 급격히 성장했다. 알디의 영국 매출은 지난해에만 22.6% 급증했다. 저가 할인점인 알디와 리들의 시장점유율은 올해 15%까지 성장했다.


성공비결 5 | 철저한 현지화 전략

알디는 해외 진출을 할 때 철저한 현지화로 승부한다. 폴 폴리 전 영국 법인장은 “영국에서 독일 브랜드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 철저히 영국식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알디 매장의 상품 개수는 독일 알디의 두 배에 이른다. 폴리 전 법인장은 “진출 3년 동안 제품 라인을 과거의 두 배로 늘렸고, 그 결과 판매량은 두배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영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 2012년 매장 통로 조명을 백열등에서 할로겐으로 바꾸고, 코카콜라와 같은 비PB 인기 상품을 제품군에 추가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영국 연평균 매출이 19% 성장했다.

미국 시장에서 알디는 유기농 할인식품점인 ‘트레이더 조’와 할인매장인 ‘알디’ 두 브랜드로 활동한다. 트레이더 조는 프리미엄 제품군인 유기농 제품을 PB를 통해 싸게 공급하는 방법으로 미국 시장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 트레이더 조의 매출 규모는 130억달러(약 13조원)로 LA에 본사를 둔 비상장사 가운데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알디는 적극적인 해외 영업 전략을 갖고 있지만, 진출 국가 결정과 관련한 내부 규정은 상당히 까다롭다. 우선 검증되지 않은 신흥국은 진출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으나, 아직도 검토 중인 상태다. 알디가 현재 주목하는 시장은 동구권과 북구다. 2000년 중반 이후 알디가 진출한 국가로는 헝가리와 폴란드(2008년), 포르투갈(2006년), 슬로베니아(2005년), 스위스(2005년)가 꼽힌다. 한편 알디의 온라인 전략은 경쟁 업체에 비해 뒤처진 편이다. 알디는 아직까지 온라인 판매채널이 없다.



1971년 찍힌 테오도르 알브레히트 알디 창업주. <사진 : AP연합뉴스>

plus point

알디 창업주 알브레히트 가문, 인색함으로 유명

알디는 알브레히트 디스콘트(Albrecht Diskont)의 줄임말이다. 디스콘트는 독일어로 ‘할인’이라는 뜻이다. 1948년 테오 알브레히트와 칼 알브레히트 형제가 부모의 식료품 매장을 물려받은 것이 시초가 됐다. 두 형제는 1950년대 루르 지방에 여러 점포를 열었고, 점포들은 저렴한 가격과 높은 품질로 인기를 모았다. 이후 1961년 기업을 설립하고, 1962년 ‘알디’ 브랜드로 점포를 개설해 나갔다. 1961년 두 형제는 독일 중심부를 기준으로 지역을 나눠 형인 칼은 남부 점포들을, 동생은 북부 점포를 관리하도록 분할했다. 알디 북부와 남부는 브랜드명은 공유하지만 별도 회사로 운영된다. 칼 알브레히트 자손이 운영하는 알디 남부는 신선식품을 위주로 판매하며, 알디 북부는 저렴한 생필품을 주로 판매한다.

‘절약’ 의 아이콘인 알디와 마찬가지로 알브레이트 가족의 인색함도 가히 전설적이다. 알디 북부가 2000년대 초반까지 바코드 스캐너 비용을 아끼려고 일일이 손으로 제품 코드를 입력한 것도 유명하다. 1970년대 초반 납치를 당한 테오 알브레히트가 몸값 700만마르크를 알디 사업비로 공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창업주 알브레히트 가문은 ‘비밀주의’ 로도 정평이 나 있다. 현재 알디 북부를 이끌고 있는 창업주 테오의 장남 테오 주니어 알브레히트의 사진은 수십년 전 파파라치가 찍은 스냅 사진이 유일하다.

하지만 2012년 창업주 사망 이후 자손들이 유산을 놓고 싸움을 벌이면서 사생활이 조금씩 노출되고 있다. 테오 주니어가 고가의 외제차를 구입한 누나 바벳의 ‘낭비벽’ 을 공개적으로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바벳의 생활은 억만장자 기준에서 보자면 소박하다. 그는 현재 독일 외곽 2층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하지만 바벳이 지난해 명품옷과 보석으로 멋을 낸 모습으로 뒤셀도르프 패션쇼 앞줄에서 사진기자에게 찍힌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됐다. 이에 테오 주니어는 바벳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그룹의 사업에 당신은 부담이 된다” 며 “회사 차원에서 사생활을 보호해 줄 수 없다” 고 선언했다.

한편 2015년 테오 주니어의 재산은 190억달러(약 22조원)로 세계 37위를 차지했다. 지난 2014년 작고한 칼 알브레히트(알디 남부)의 재산은 생전 260억달러(약 29조원)로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으로 독일 내 2위, 전 세계 35위를 차지했다.

김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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