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라코리아 서울 이태원 매장. 이곳에선 휠라코리아의 모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사진 : 휠라코리아>

# 6월 20일 오후 8시 휠라코리아 서울 이태원 매장.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이 손을 잡고 매장에 들어왔다. 이들은 휠라(FILA) 로고가 크게 박힌 ‘빅 로고 티셔츠’부터 테니스화의 디자인적 요소를 강조해 만든 운동화 ‘코트 디럭스’까지, 1층에 전시된 ‘휠라 헤리티지 라인’을 둘러봤다. 이후 또 다른 커플과 중국 관광객들이 매장을 찾았고 쇼핑 동선은 같았다. 휠라의 정체성(FILA 로고)과 헤리티지 (100년 전통의 브랜드 자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휠라 헤리티지 라인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 지난해 10월 27일 아쿠시네트(Acushnet)의 뉴욕주식거래소(NYSE) 상장 당시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은 포부를 밝혔다. “아쿠시네트 컴퍼니의 지속적인 성장을 추진하는 동시에 2017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한 사업 다각화로 휠라가 글로벌 스포츠 그룹으로 도약할 것이다.”

헤리티지 라인을 중심으로 한 브랜드 리뉴얼, 글로벌 스포츠 그룹으로의 도약 등 최근 변신을 꾀하고 있는 휠라코리아의 특징과 방향을 잘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다.

주춤했던 휠라코리아가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휠라코리아의 2016년 영업이익(118억원)은 2015년에 비해 85% 감소했다. 그러나 휠라코리아는 올 1분기에 매출 6537억원, 영업이익 488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63억원) 대비 675% 증가했다.


휠라코리아의 ‘헤리티지 라인’. 휠라(FILA) 로고가 크게 박힌 ‘빅 로고 티셔츠’, 테니스화의 디자인적 요소를 강조해 만든 운동화 ‘코트 디럭스’가 주요 제품이다. <사진 : 휠라코리아>


성장 비결 1
골프용품 업체 ‘아쿠시네트’ 인수해 재무 안정

휠라코리아 실적 개선의 가장 큰 이유는 2011년 인수한 세계적인 골프용품 회사 아쿠시네트에 있다. 아쿠시네트는 지난해 말 뉴욕주식거래소에 상장됐다. 휠라코리아는 20% 지분을 추가 인수해 총 53.1% 지분을 보유한 지배주주가 됐다. 동시에 아쿠시네트를 자회사로 편입, 연 매출을 2조7000억원 규모로 확대했다. 영업이익 역시 1700억원으로 증가했다. 아쿠시네트는 2016년 매출 15억7227만5000달러(약 1조8000억원), 영업이익 1억4083만6000달러(약 1600억원)를 기록했다.

아쿠시네트는 타이틀리스트(Titleist) 골프볼, 풋조이(FootJoy) 골프화, 스카티 카메론(Scotty Cameron) 퍼터 등을 생산·판매하는 세계 1위 골프용품 회사다. 특히 타이틀리스트 골프볼과 풋조이 골프화는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휠라코리아 관계자는 “아쿠시네트의 자회사 편입으로 국내 유일 스포츠 패션·용품 그룹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며 “재무 통합으로 보다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갖추고 글로벌 스포츠 그룹으로 새로운 도약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휠라는 1911년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스포츠 브랜드다. 예술을 사랑하는 이탈리아인들의 독특한 컬러 감각이 제품 디자인에 반영된 게 특징이다. 1970년대 초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비욘 보그를 후원하며 세계 시장에 이름을 떨쳤다. 이후 1991년 한국 시장에 진출했고, 윤윤수 회장이 휠라코리아의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던 중 윤 회장은 2007년 휠라 본사를 전격적으로 인수했다. 당시 업계에선 “꼬리(자회사)가 몸통(본사)을 샀다”며 윤 회장의 휠라 본사 인수 비결을 궁금해했다.

윤 회장은 그 비결로 ‘생각의 전환’을 꼽았다. 휠라코리아는 당시 휠라 라이선스 사업자였다. 휠라의 경우 5년 단위로 라이선스 계약을 했는데 만료 후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했다. 물론 그동안 유지해 온 신뢰 관계가 작용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때문에 불안했고 사업이 잘돼도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휠라 본사가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윤 회장이 인수에 나섰다. 그는 전 세계 휠라 라이선스 사업자에게 “내가 오너가 되면 평생 재계약 걱정하지 않고 휠라 사업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동시에 “평생 낼 로열티의 절반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들은 동의했고, 윤 회장은 자금을 마련해 휠라 본사를 인수했다. 라이선스 사업자라는 틀에 갇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이런 기업 인수 방식은 한국 금융사에서 최초였다.

현재 휠라코리아는 한국과 미국 등 주요 국가는 직접 경영하고, 나머지 70여개 국가에선 라이선스 사업자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브랜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성장 비결 2
브랜드 정체성 유지, 생산·판매는 현지화

휠라코리아는 세계 시장에서 현지화 전략을 펼치며 성장했다. ‘Think globally, but do locally(사고는 세계적으로, 실행은 그 지역에 맞게)’라는 모토가 전략의 핵심이다. 국가, 지역, 계층마다 소비자 선호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재빨리 생산해 판매하는 것이다. 나이키·아디다스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동일하게 판매하는 전략을 펼쳤다면, 휠라코리아는 휠라 로고 사용,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테니스 티셔츠 등 기본 제품 판매 등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원칙을 지키면서 각 국가의 휠라 브랜드 운영 법인이 자유롭게 제품을 생산·판매할 수 있는 현지화 전략을 사용했다.

이와 함께 휠라코리아는 매년 각 국가의 법인과 사전 조율을 위해 글로벌 협력회의 ‘GCM(Global Collaboration Meeting)’을 개최한다. 시장별로 나타날 수 있는 혼선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물론 제품 판매 등 국가별 운영 상황을 공유하고, 앞으로 다가올 시즌의 디자인 아이디어도 논의한다.

휠라코리아는 제품을 100% 아웃소싱(외주 제작)하고 있다. 제조·생산 부문에는 많은 종업원과 관리자가 필요하고, 관리상 문제도 많다. 휠라코리아는 아웃소싱을 통해 생산 시설 교체, 노사 분규 등의 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조직을 경량화해 의사 결정 속도도 높였다. 윤윤수 회장이 항상 강조하는 ‘스피드 경영’이다. 조직 유연성에 의한 신속한 의사 결정은 유행에 민감한 패션 산업에서 중요한 경영 전략 중 하나다. 세계 패션 시장에 부는 트렌드를 읽는 것은 물론 그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휠라코리아는 중국·한국·베트남 등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윤윤수 회장은 “사고의 세계화, 실행의 지역화 그리고 변신을 위한 유연성이 휠라코리아를 지탱하는 철학이자 성장 전략이다”고 말했다.


성장 비결 3
중장년층에 향수, 젊은층에 세련미로 어필

현재 휠라코리아는 브랜드 리뉴얼 작업이 한창이다. 특히 고객층을 젊은층으로 전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휠라는 과거에는 20~30대가 즐겨 입는 스포츠 브랜드로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에는 테니스, 1990년대에는 농구 관련 의류와 신발 등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그랜트 힐, 케빈 존슨 등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선수의 농구화를 제작하며 그 시대 패션을 이끄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젊은층보다는 나이든 사람들이 입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아저씨, 아줌마조차 꺼리는 브랜드’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패션 시장에 스포티한 의류, 복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휠라코리아는 테니스·농구 등으로 대표되던 휠라의 고유 브랜드 헤리티지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제품을 선보였다. 빅 로고 티셔츠, 테니스 웨어, 하이톱 슈즈 등 휠라 헤리티지 라인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2016년 하반기에 출시한 휠라 또는 F박스 로고를 전면에 크게 프린트한 ‘빅 로고 티셔츠’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휠라코리아는 지난해 일부 매장에서 구매 가능했던 휠라 빅 로고 티셔츠를 올해부터 헤리티지 라인 강화 방침에 따라 주력 아이템으로 정하고 전 매장에서 판매 중이다.

테니스화의 디자인적 요소를 강조해 만든 ‘코트 디럭스’는 지난해 9월 선보인 후 5개월 만에 약 15만개를 판매하며 단일 제품으로 전국적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현재 코트 디럭스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다. 휠라코리아는 ‘원 월드 원 휠라(One World One FILA)’라는 모토 아래에 헤리티지 라인을 전 세계에 출시, 공통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성장 비결 4
도심 대형 매장 통해 젊은층 유인

휠라코리아는 유통망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우선 10~20대 젊은 소비자와의 접점을 강화하기 위해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 주요 도시 핵심 상권에 ‘메가 스토어’ 10여개를 열었다.

메가 스토어는 기존 매장의 3배 크기로, 백화점은 99㎡(30평), 가두점은 264㎡(80평) 이상 규모의 대형 매장을 말한다. 이 매장에선 휠라 스포츠, 휠라 골프, 휠라 오리지날레(스트리트웨어, 헤리티지 라인), 휠라 키즈(아동복) 등 휠라코리아의 모든 브랜드를 구매할 수 있다.

동시에 휠라코리아는 수익성이 낮은 영세 규모 매장을 정리하고 있다. 수수료와 재고 부담을 낮추기 위해 리테일(소매) 방식의 백화점 매장을 줄이고, 홀세일(도매) 채널 판매 강화에도 나섰다.

휠라 브랜드 슈즈는 ABC마트·폴더 등 신발 편집매장에서 판매되고 있고, 휠라 골프의 경우에는 2018년부터 골프용품 편집매장, 골프장 클럽하우스 등 홀세일 방식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휠라코리아는 지난해 11월 신규 사업과 유통 채널을 총괄 관리하는 홀세일 본부를 신설했다. 휠라코리아는 신발의 경우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등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plus point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
“성공하려면 빠르고 강력하고 투명하라”

박용선 기자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은 언제, 어디서나, 경영 현황을 환히 꿰뚫어 보면서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 : 휠라코리아>
‘샐러리맨의 성공신화’, 휠라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윤윤수 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윤 회장은 1991년 휠라코리아 사장을 맡았고, 2007년에는 휠라 본사를 인수했다. 2011년에는 세계적인 골프용품 회사 아쿠시네트를 사들이며 휠라코리아를 스포츠 패션·용품 그룹으로 탈바꿈시켰다. 윤 회장이 말하는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신속성이다. 윤 회장은 언제, 어디서나, 경영 현황을 환히 꿰뚫어 보면서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보의 즉시성, 즉 실시간으로 현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보통 기업 규모가 커지면 작았을 때와 같이 기업 전체를 내 손바닥처럼 볼 수 없게 마련이다. 그래서 흐릿하고 조금은 답답한 ‘감’과 ‘의지’로 경영을 한다. 이는 풍부한 경험과 도전정신으로 좋게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경영 스타일이 과거에는 통했지만 현재는 아니다. 공장에서 무슨 옷이 얼마나 생산되고 있고, 각 매장마다 얼마나 판매되고, 재고는 얼마나 있는지 항상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때그때 최적의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윤 회장은 거의 모든 상황을 현장에서 담당자와 대화하며 결재한다. 직원에게 권한과 책임도 부여한다. 사장과 담당자 간 의견이 다를 때 담당자의 의견이 존중되는 경우도 많다. 윤 회장은 늘 “나는 힘 없는(powerless) 사장”이라고 말한다. 힘이 있고 없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원활한 의사 소통을 위해선 리더와 사장이 한발 물러나야 하고, 이를 통해 조직을 수평적이고 신속한 구조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윤 회장이 말하는 민주 경영이기도 하다.

둘째, 정직하고 투명해야 한다. 오너나 경영자는 정직, 투명성 측면에서 솔선수범해야 한다. 경영진은 온갖 더러움에 얼룩져 있으면서 아래 직원에게는 깨끗함을 요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실효도 없고 조직에 냉소와 불신만 더할 뿐이다.

휠라코리아의 사원 정신은 ‘청렴, 유연한 사고, 자기 계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중 청렴성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깨끗한 사원이 만드는 깨끗한 회사’는 휠라 제품 자체를 정직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오너 독단과 CEO의 강력함 혼동하면 안 돼

셋째, 리더와 최고경영자(CEO)는 강인해야 한다. 일부 오너의 독단이나 2세의 전횡을 CEO의 강력한 추진력과 혼동해선 안 된다. 주주로부터 강력한 권한을 위임받아 핵심 사업을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조직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CEO는 유연하고 부드러워야 하지만 반대로 강인함도 지녀야 한다는 것이 윤 회장의 지론이다. 그는 휠라 본사, 아쿠시네트를 인수할 때나 최근 ‘헤리티지 라인’을 중심으로 한 브랜드 리뉴얼 프로젝트를 이끌 때 모두 이 지론에 충실했고, 성공이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박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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