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 있는 IHI 본사. <사진 : 블룸버그>

IHI는 자원·에너지·조선·항공·우주·방위산업·토목·건설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일본 굴지의 중공업 회사다. 미쓰비시(三菱)중공업, 가와사키(川崎)중공업과 함께 3대 대형 중공업 회사 중 하나다. 이 중 1853년 창업해 올해로 164년의 역사를 가진 IHI가 가장 오래됐다. 미쓰비시중공업의 창업은 1884년, 가와사키중공업은 1878년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은 미쓰비시 재벌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弥太郎)가 시작했고, 가와사키중공업은 가와사키 쇼조(川崎正藏)가 창업했다.


해외 매출 비중 52%까지 확대

반면 IHI는 창업주가 없다. 메이지유신 전 일본을 지배하던 에도(江戶)막부가 미국과 유럽의 군함에 맞서 해상 방위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조선소를 짓고 일본 최초로 서양식 군함을 건조했다. 이 조선소가 IHI의 출발점이다.

IHI의 매출액은 2000년대 전반 1조엔 초반에 머물렀으나, 2010년 이후 성장하며 2015 회계연도(2015년 4월~2016년 3월)에는 1조5393억엔(약 15조4236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도 매출액은 1조4863억엔으로 소폭 줄었다. 2016년도 영업이익은 473억엔으로 전년도(220억엔)보다 115% 늘었다.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전체 매출 중 해외에서 발생하는 비율은 2000년 20%였으나 2010년엔 43%로 늘었고, 2015년엔 52%까지 상승했다.


성공비결 1 |
숱한 ‘일본 최초’… 기술로 경쟁력 확보

IHI의 경영 이념은 ‘기술로 사회를 더욱 발전하도록 공헌한다’이다. 1853년 회사가 탄생했을 때부터 일본에서 ‘최초’를 기록하며 기술력을 쌓아 현재의 경쟁력을 구축했다.

일본 최초로 서양식 군함을 건조한 IHI는 163년의 오랜 역사에서 여러 차례 ‘일본 최초’를 기록했다. 1877년엔 민간 조선소 최초로 증기선 쓰운마루(通運丸)를 건조했다. 1887년 이시카와지마조선소는 도쿄 스미다강에 아즈마(吾妻)다리를 놓았다. 설계부터 건설까지 모두 일본인 기술자들이 맡은, 당시 일본 최대 규모의 트러스 구조(강재를 삼각형으로 구성해 조립한 뼈대)의 철교였다. 1945년엔 일본 최초로 국산 제트엔진 ‘네20’을 완성했다. 1969년에는 일본 최초로 영하 162도의 LNG(액화천연가스)를 저장할 수 있는 탱크를 완성했다.

서양의 기술을 따라잡는 ‘일본 최초’를 여러 차례 달성하며 기술력을 쌓았다. 그리고 ‘세계 최초’ 타이틀도 획득했다. 1978년 브라질 환경에 적합한 펄프 제조 선상 플랜트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길이 230m의 펄프 제조 플랜트를 공장에서 제작해, 배 위에 실은 것이다. 이 배는 조선소에서 출항해 그대로 브라질로 향했다. 1998년에 완공한 아카시(明石)해협대교는 주탑 간 거리가 1991m, 전체 길이 3911m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다. IHI는 현수교 주탑 등의 제작과 가설 공사에 참가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기술력을 자랑하는 제품을 여럿 만들어냈다. IHI가 독자 개발한 내열 소재는 2003년 발사된 일본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에 쓰였다. 하야부사는 소행성 이토카와에 착륙해 시료를 채취해 2010년 지구로 귀환했다. 귀환 캡슐이 소행성 시료를 싣고 무사히 호주의 사막에 착륙한 데엔 섭씨 2만도에 달하는 고온을 견디는 내열 소재가 도움이 됐다.

2012년 개발한 최신 제트엔진 ‘GEnx’는 연료 소비량을 대폭 절감했다. IHI는 국제 공동 개발 프로젝트에 약 15%의 비율로 참가해 엔진을 개발했다. 이 엔진은 보잉 787 드림라이너와 747-8에 탑재되고 있다. 같은 해 완공된 전파 송출용 탑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쿄 스카이트리(높이 634m)’의 건설에도 IHI가 만든 초고층 타워 크레인이 사용됐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자체 제작한 두 번째 위성 탑재 고체연료 로켓 ‘입실론 2호기’ 발사에 성공했다. 발사체는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개발하고 IHI가 제작했다. 발사 비용은 기존 일본의 액체연료 로켓 H2A의 절반 정도인 50억엔이고, 발사 성능은 입실론 1호기보다 30% 향상됐다. 이 로켓으로 일본은 소형 위성 발사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HI가 시공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 아카시해협 대교. <사진 : 위키피디아>

성공비결 2 |
조선에서 시작해 연관 분야로 확장

현재 IHI가 자랑하는 터빈, 엔진, 용접, 기계 가공, 배관 등의 생산 기술은 IHI가 출발한 조선 기술에서 획득한 것이다. IHI의 건조량은 1962년부터 3년간 세계 1위였다.

먼저 선박 건조에서 얻은 회전 기계 기술은 전력을 생산하는 증기 터빈, 항공기 엔진으로 발전했다. 용접 기술은 교량과 화력발전소 보일러, 원자력 발전기기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기계 가공 기술은 선박용 크레인 등 각종 크레인과 운반용 기계 제작에, 배관 기술은 플랜트 현장에 접목됐다. 여기에 항공·우주·방위산업 사업은 닛산자동차의 관련 부문을 인수해 뛰어난 기술력을 갖게 됐다. 이 부문은 ‘IHI에어로스페이스’가 된다.

IHI의 기술은 조선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항공기와 자동차에서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 항공기 제트엔진 분야에서 IHI는 탄소복합섬유를 사용해 경량화하는 기술을 이끌고 있다. 소형에서 초대형까지 다양한 크기의 엔진을 개발해 양산하고 있고, 여러 민간항공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공급한다. 민간항공엔진용 롱샤프트는 세계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출력을 높여주는 터보차저(엔진 보조장치) 분야에서 IHI는 세계 시장 점유율 20%로 주요 공급업체 4개사에 속한다. IHI의 터보차저는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가 사용하고 있다. 터보차저는 출력을 높이는 것 이외에 연비를 높여 친환경 차량을 만드는 데에도 기여한다.


성공비결 3 |
친환경 발전 기술 개발

IHI의 사업 분야 중 자원·에너지·환경 부문은 전체 매출액의 29%를 차지하고 있다. IHI가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발전 효율을 높이는 친환경 기술이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내뿜어 지구온난화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생산 원가가 저렴하고 단기간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배출하는 대기오염 물질 문제를 해결한 것이 ‘초초임계압(USC·Ultra Super Critical) 석탄화력발전소’다. 증기의 압력과 온도를 높여 같은 양의 화석 연료로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하면서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등 유해물질 배출량을 줄이는 발전 방식을 적용한 발전소다. 고온에서 사용 가능한 보일러와 터빈을 개발하려면 핵심 부품에 적용할 수 있는 신소재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IHI는 초초임계압 석탄화력발전소 보일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다. IHI는 700℃ 수준의 선진적 초초임계압(A-USC) 보일러 기술에 배기가스 중의 이산화탄소를 분리해 회수하는 독자적인 기술을 결합했다. 이 분야 일본 내 점유율은 35%이다.



IHI가 제작한 소형 고체연료 로켓 ‘입실론 2호기’ 발사 장면(왼쪽). 소행성에서 채취한 시료를 싣고 지구로 돌아와 2010년 호주의 사막에 착륙한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 귀환 캡슐. IHI의 내열 소재가 사용됐다(가운데). IHI가 공개한 해류 발전기(오른쪽). <사진 : JAXA, IHI>

성공비결 4 |
새로운 개념의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

IHI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지난 7일 IHI는 규슈 남단 구치노시마(口之島)에서 세계 최초로 해양에서 100㎾ 규모의 해류 발전 시험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IHI의 해류 발전은 바닷속에 가라앉지 않고 떠 있는 프로펠러를 해류를 이용해 회전시켜, 그 힘으로 터빈을 가동해 전기를 얻는 구조다.

해류 발전은 한쪽 방향으로 빠르게 흐르는 해류를 이용한 발전 방법이어서 성공할 경우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IHI가 추진하는 해류 발전은 동중국해를 북상해 일본 열도 남쪽을 타고 흐르는 난류 구로시오(黑潮) 해류가 전력원이다. 해류는 태양광, 풍력과 달리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아 발전 효율이 높다. 다만 아직은 1㎾를 생산하는 데 20~40엔 정도인 태양광이나 풍력보다 생산 비용이 크게 높다는 단점이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해류 발전은 송전망을 포함한 초기 투자 비용이 높지만, 안정적인 발전능력을 발휘하는 재생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류는 변화가 적어 해류 발전의 설비 이용률은 40~70%로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멈추는 풍력 발전은 지상의 경우 20%, 해상의 경우 30~40% 정도의 가동률을 보이고, 햇빛이 비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는 태양광은 가동률이 10~15% 수준으로 낮다.


해류 이용한 발전사업 도전

IHI는 2011년부터 국립연구개발법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와 공동으로 해류 발전 기술을 개발해 왔고, 이번에 실제로 바다에서 발전이 가능한지 시험할 수 있는 발전기 ‘가이류’를 개발했다. 실제로 해류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시험은 8월 중순으로 예정돼 있다. 가이류는 직경 11m의 프로펠러 2대로 구성된 길이 20m, 무게 330t의 발전기 2대와 변전기 1대로 구성돼 있다. 바다 밑바닥과 발전기를 와이어로 연결해 수중에 띄운 뒤 해류로 터빈의 날개를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발전한 전기는 해저 케이블을 통해 육상으로 송전한다. IHI는 2020년까지 이 장비를 실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발전 장비 1대가 생산하는 전력을 일반 가정 3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인 2000㎾까지 높일 계획이다. 나가야 시게키(長屋茂樹) IHI 해양기술그룹부장은 마이니치신문과 인터뷰에서 “발전 기기 판매가 아닌, 발전을 축으로 한 여러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plus point

IHI 출발은 열강에 맞서 막부가 만든 조선소


IHI의 모태인 이시카와지마조선소와 이 곳에서 건조된 범선 아사히마루, 군함 지요다가타, 증기선 쓰운마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진 : IHI·위키피디아>

IHI의 기원은 미국 페리 제독이 일본을 개항시킨 ‘구로후네(黑船)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53년 7월 페리 제독은 함대를 이끌고 도쿄 만에 나타나 개국과 통상을 요구했다. 당시 일본을 지배하던 에도막부는 일단 함대를 돌려보냈으나, 다음 해 2월 페리 제독은 다시 나타났고, 결국 일본은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개항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 사이 에도막부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막부는 유럽 열강과 미국에 맞서 해상 방위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1853년 9월 미토번(水戶藩· ‘번’은 영주 밑에서 일정 수준 독립적으로 운영된 지역)에 서양식 군함을 건조하라는 명을 내렸다. 미토번은 서양식 군비(軍備)를 선진적으로 받아들인 지역이었다.

당시 일본은 쇄국정책을 펴고 있었지만 나가사키(長崎)를 거쳐 네덜란드 학문이 유입되고 있었다. 미토번은 네덜란드의 조선(造船) 서적을 번역하고 축소 모형을 만들어 기술을 얻었다. 1854년 1월 에도막부 직할지인 스미다(隅田)강 하구에 미토번이 정비한 이시카와지마(石川島)조선소 기공식이 열렸다. 이 이시카와지마조선소가 IHI의 출발점이다.

선박 건조가 시작된 지 2년 반 만인 1856년 6월 범선 ‘아사히마루(旭日丸)’가 준공돼 취역했다. 일본에서 건조된 최초의 서양식 군함이다. 일본이 건조한 최초의 증기선 군함 지요다가타(千代田形)도 1866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이시카와지마조선소는 관영(官營)으로 운영되다 1876년 인쇄업으로 성공을 거둔 사업가 히라노 도미지(平野富二)에게 대여하는 형식으로 매각됐다. 일본에서 민간 자본 최초의 조선소였다. 그는 조선에서 기계 제조, 해운, 광산, 건설업으로 확장해 IHI의 기틀을 만들었다.

1877년엔 민간 조선소 최초로 증기선 쓰운마루를 건조했다. 1887년 이시카와지마조선소는 도쿄 스미다강에 아즈마(吾妻)다리를 놓았다. 설계부터 건설까지 모두 일본인 기술자들이 맡은, 당시 일본 최대 규모의 트러스 구조 철교였다. 1911년엔 도쿄역의 철골 공사를 실시했다.

이시카와지마조선소는 1945년 이시카와지마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1960년 하리마(播磨)조선소와 합병해 ‘이시카와지마하리마중공업’이 되었고, 이후 2007년 IHI라는 현재의 명칭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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