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JX는 올해 250개 매장을 새롭게 오픈하는 등 전 세계에 5600개까지 매장을 늘릴 계획이다. <사진 : 블룸버그>

전자상거래 시장의 부상으로 미국 유통업체는 존폐 기로에 놓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올해 4000여 개의 유통 매장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JC페니·메이시스·시어스·케이마트 등이 미국 전역에서 매장을 줄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형 쇼핑몰 내에 수천 개의 체인점을 냈던 크록스·BCBG·아베크롬비·게스 등도 속속 점포를 없애고 있다.

전통적인 유통업체가 오프라인 매장 수를 줄이고 온라인 판매로 방향을 전환하는 이 시점에 오히려 점포를 늘리는 유통 브랜드가 있다. 할인점 ‘TJ맥스(T.J.Maxx)’를 보유한 TJX다.


“매장서 구매하는 소비자 여전히 많아”

TJX는 현재 미국과 캐나다·영국·호주 등에 3800여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며, 올해 250개 매장을 새롭게 오픈하는 등 전 세계에 5600개까지 매장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 33분기 연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기업 가치는 미국 최대 백화점인 메이시스(Macy’s)의 7배에 달한다. TJ맥스의 제곱피트(1ft = 0.093㎡)당 평균 매출이 332달러인데 메이시스는 평균 188달러다.

TJX는 온라인 쇼핑 산업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소비자는 매장에서 직접 물건을 보고, 사고 싶어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빠르게 공급한다는 전통적인 판매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TJX의 최우선 과제는 재고를 빠르게 소진하고 트렌드에 맞는 새 제품을 신속하게 전시하는 것이다. <사진 : 블룸버그>

성공비결 1 |
빠른 재고 회전

TJX는 한정된 수량의 제품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면서 재고 회전율을 최대한 높이는 데 중점을 둔다. 예를 들어 처음 진열한 제품에 10~20% 할인을 적용해 팔리지 않으면 반값 할인율이 적용된 빨간색 가격표를 붙여 팔고 그래도 안 팔리면 할인율을 더 높인 노란색 가격표를 붙여 모든 재고를 가급적 신속히 털어버린다. 흔히 한 달 내로 팔리지 않는 재고 상품은 ‘대방출 코너’로 밀려난다. 안 팔리는 물건을 그대로 쌓아 두지 않고, 팔릴 때까지 수차례 가격을 낮춰 물건을 소진시키는 게 이 회사 판매 전략이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꽤 괜찮은 물건을 아주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뉴욕 맨해튼 TJ맥스 매장을 방문한 스테파니 밀스(31세)는 “몇 달 전 영국 식기 브랜드 포트메리온 그릇 세트를 반값에 사게 돼 매우 기뻤다”며 “평소 사고 싶었던 물건이 50~60% 할인돼 있는 것을 발견하면 횡재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매장 물건이 다양하고, 1주일 만에 재방문해도 못 보던 제품이 가득하기 때문에 최소 2주에 한 번은 들르게 된다”고 말했다.

TJX는 제품당 사이즈별로 1~2개의 재고만 매장에 준비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마음에 드는 제품이 몸에 맞으면, 곧바로 사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TJX는 평균 25일 만에 재고를 털어낸다. 메이시스와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TJX 측은 이렇게 재고를 빠르게 소진하고, 계절과 트렌드에 맞는 새 제품을 신속하게 매대에 들여놓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폴 스위트넘 전 TJX 유럽 담당 고위 임원은 “항상 새로운 물건이 매장에 진열돼 있다는 인식을 주는 게 핵심”이라며 “재고를 빨리 소진하고 새 제품을 들여오는 건 아주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 같지만 실제로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TJX와 거래하는 도매상들은 최대한 물건을 빨리 공급하는 데 각별히 신경을 쓴다. 매장에 도착한 신규 제품들을 매대에 진열하는 것도 무척 신속하다. 보통 아침에 물건이 도착하면 그날 오후까지 매대에 올려놔야 한다. 또한 중저가 싸구려 제품만 진열돼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매장에는 코치, 캘빈클라인, 랠프로런, 마이클 코어스 등 고가의 유명 브랜드도 많다.

특히 TJX는 최근 경기 불황의 덕을 봤다. 유명 브랜드의 재고가 늘어나면서 TJX와 같은 할인 유통업체로 이동하는 상품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TJX는 가격 협상력이 높아져 과거보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2008년 경제 위기로 유통업체들이 영업실적 악화를 겪은 후 2009~2010년 TJX의 매출 원가 증가율은 4%로 지난 10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어니 허먼 TJX 최고경영자(CEO) <사진 : 블룸버그>

성공비결 2 |
오프라인 장점 극대화

아마존 등 전자상거래 업체가 고속 성장을 거듭하면서 대부분 유통업체가 온라인 판매 채널을 강화하고 있지만, TJX는 온라인 비즈니스에 주력하지 않는다. 메이시스 매출의 18%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나오는 것과 달리 TJX의 온라인 매출은 1% 수준이다. 심지어 TJX는 최근 미국 유통업계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소비자 분석 빅데이터 활용도 거부했다. 어니 허먼 TJX 최고경영자(CEO)는 “디지털 등 새로운 기술이 유통업계를 침범하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며 “여전히 소비자는 외출과 오프라인 매장 쇼핑을 즐기며, 다양한 상품을 비교해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TJX는 소비자의 쇼핑 경험을 ‘보물찾기’에 비유한다. 매장을 둘러보며 원하는 상품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여정이고, 이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저에 위치한 TJ맥스에서 매주 쇼핑하는 베일리 미즈웰(18세)은 “여러 상품을 뒤적거리다가 마음에 쏙 드는 옷을 발견했을 때 전율이 느껴진다”며 “최근 250달러짜리 캘빈클라인 코트를 80달러에 구매한 뒤로, 굳이 필요한 물건이 없더라도 혹시 괜찮은 물건이 들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 오게 된다”고 말했다.

과거 고급 백화점인 삭스피프스애비뉴(Saks Fifth Avenue)와 버그도르프굿맨(Bergdorf Goodman)에서 쇼핑하던 캐롤 쿠사(65세)는 부동산 중개업 은퇴 이후 TJ맥스를 즐겨 찾는다고 한다. 그는 “내 나이쯤 되면 예전처럼 옷에 많은 돈을 소비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쇼핑을 즐기고 싶은 욕구는 있다”며 “이곳은 랜프로런 바지 한 벌에 30달러 수준으로,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TJX의 또 다른 장점은 종합 쇼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구두·옷·그릇·스포츠용품·장난감·화장품·가방 등 다양한 품목을 한곳에서 쇼핑할 수 있어 소비자 동선을 줄여준다. 아울러 대부분의 백화점처럼 브랜드별로 제품이 나뉜 것이 아니라, 품목별로 진열되기 때문에 편리하다. 하나의 행거에 중저가 브랜드인 갭부터 마이클 코어스까지 다양한 브랜드가 뒤섞여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보물을 찾기 위해 매장 구석구석을 살피게 된다.



TJX는 팔릴 때까지 수차례 가격을 낮춰 재고를 소진시킨다. <사진 : TJX>

성공비결 3 |
바이어의 구매 권한 확대

소비자의 오프라인 쇼핑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TJX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바로 상품 구성이다. 이를 위해 각 브랜드의 담당자를 만나 상품을 직접 보고 구매하는 바이어(상품을 기획하고 도소매업체로부터 상품을 구매하는 업무 담당자)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TJX에는 1000명 이상의 바이어가 근무하는데, 전 세계 1만8000개의 거래처와 상품 공급을 논의한다. 각각의 바이어는 수십억달러 규모의 상품을 그 자리에서 구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는 대부분 미국 백화점과는 현저히 차별화되는 전략이다. 메이시스의 경우 바이어가 구매 계획을 서류로 정리해서 관리자에게 보고하면 최소 몇 주 뒤에 승인이 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TJX 바이어는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바이어에게 구매 예산을 양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에서 근무하는 TJX 바이어가 캘리포니아에서 유행 중인 여름 원피스를 구입할 경우, 직접 거래처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고르지 않고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근무하는 바이어에게 예산을 주고 대신 사도록 권한을 줄 수 있다. 테드 잉글리시 전 TJX CEO는 “과거 상품 관리자로 일하는 동안 우리 팀의 바이어가 내렸던 최고의 결정은 원피스에 대해 잘 아는 다른 바이어에게 권한을 넘긴 일”이라며 “덕분에 적절한 상품을 신속하게 뉴욕 매장에 구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원(바이어)의 보너스는 개별 예산 집행이 아닌 전체 회사 매출로 결정되기 때문에 양쪽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TJX는 바이어 교육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사내에는 ‘TJX대학’이라고 불리는 직원 교육 과정이 있다. 신입 직원은 브랜드·패션·품질·가격 등 여러 기준으로 1부터 4까지 점수를 매기며 물건의 상업 가치를 발견하는 방법을 배운다. 총 16점을 받은 물건만이 ‘완벽한 구매’로 여겨진다. 아울러 신입 바이어는 업무 초기 3년 동안 고참 바이어와 함께 출장을 다니며 상품을 고르는 법을 현장에서 배운다.


plus point

미국 유통 대란
美 올해 유통 매장 8640개 폐점 전망


미국 최대 백화점 메이시스는 올해 100개 이상의 매장 문을 닫는다고 밝혔다.<사진 :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등 외신은 최근 미국 내 ‘유통 대란(retail meltdown)’이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지난 5월 미국 실업률은 4.3%로 1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6월도 4.4%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지만, 유통업계의 불황은 지속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의 대표적인 캐주얼 브랜드 폴로는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닫았다. 매출 하락으로 실적이 악화되자 비용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메이시스·시어스·JC페니 등 미국의 대표 백화점들은 올해 안에 각각 100개 이상 점포의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메이시스는 백화점 매출이 9분기 연속 감소하자 이미 매장 68곳을 폐점한 상태다. 신발 유통업체 페이리스는 400개 매장을 폐점하고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한때 10대들에게 인기있던 캐주얼 브랜드 아베크롬비는 매장 60개를 접었다. 아베크롬비는 영업이익이 2015년 7280만달러에서 지난해 1520만달러로 79% 급락하자, 최근 매각 계획을 발표했다가 인수자를 찾지 못해 매각 방침을 철회했다. 

명품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럭셔리 브랜드 마이클 코어스는 앞으로 2년간 125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폐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뉴욕 출신 명품 브랜드 케이트 스페이드는 최근 코치에 인수됐다. 온라인 경제 전문 매체 쿼츠는 “2008년 금융 위기 때보다 올해 더 많은 수의 유통업체들이 문을 닫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쇼핑몰·백화점 같은 오프라인 영업에 치중한 브랜드들은 큰 충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미국 내 유통 매장 8640개가 문을 닫을 것으로 추산돼 2008년(6200개) 수준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배정원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