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일본 요코하마 ‘카메라&포토 이미징 쇼’에서 참가자들이 소니의 카메라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새로운 가치에 도전하는 자신감과 활기에 가득 찬 소니가 돌아왔음을 실감하고 있다.”

지난 5월 도쿄 시나가와에 있는 소니 본사에서 열린 ‘2017년 경영 설명회’에서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57)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말했다. 소니가 오랜 부진의 늪에서 탈출해 부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히라이 CEO가 부활을 말하는 배경엔 급격히 개선되는 실적이 있다. 소니는 2017 회계연도 1분기(2017년 4~6월) 808억7100만엔(약 835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1년간(2016년 4월~2017년 3월) 전체 순이익(732억8900만엔)보다 많다. 분기 순이익은 2015년 10~12월 이후 가장 많다. 소니는 올해 5000억엔의 영업이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플레이스테이션(게임기)이 처음 출시된 1998년의 5260억엔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소니의 부활은 2012년 취임한 히라이 CEO가 5년간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덕분에 가능했다. 그는 지난 3월 사내 회의에서 “점차 신규 사업을 추진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밝은 표정으로 임원들을 독려했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CEO가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열린 ‘It’s a Sony’ 전시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부활 요인 1 | 요시다 겐이치로 CFO 본사 복귀

히라이 CEO는 CBS(현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현 소니인터액티브엔터테인먼트)를 거쳐 소니 CEO에 올랐다. 하워드 스트링거 전 CEO로부터 소니를 물려받은 히라이 CEO는 빌딩이나 보유주식 매각부터 손을 댔다. 적자가 계속되고 있던 주력 사업 일렉트로닉스(AV, 카메라, 스마트폰, 게임, PC)에서도 그룹 전체적으로 총 1만명을 구조조정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히라이는 새로운 CEO로서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 일본 경제 주간지 ‘도요게이자이’에 따르면 소니 관계자는 당시 히라이 CEO가 1만명 인력 감축을 발표하면서 검지를 ‘1’자로 세우는 포즈를 취해 사내·외에서 경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회사 안팎에선 히라이 CEO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스트링거 전 CEO는 아직 이사회에 머물고 있었고, 히라이 CEO가 뜻을 마음대로 펴기 어려워 보인다는 관측도 나왔다. 스트링거가 2013년 6월 이사회 의장에서 퇴임하자 히라이 CEO는 드디어 인사권을 주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는 회사의 2인자인 CSO(최고전략책임자)에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郎)를 발탁했다. 그는 2013년 12월 CFO에 취임했다.

요시다 CFO는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전 CEO가 소니를 이끌 때 사장실 실장을 역임했고, 그 뒤 소넷(현 소니네트워크커뮤니케이션스)에서 사장을 지냈다. 소니는 2012년 8월 소넷을 100% 자회사화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요시다 CFO를 본사에 불러들이기 위해서다. 상장된 회사의 사장을 모회사로 이동시키기엔 어려운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부활 요인 2 | 요시다 CFO의 대대적 구조조정

히라이·요시다 체제가 들어선 후 소니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특히 적자가 쌓이고 있던 PC와 TV, 스마트폰의 3개 사업은 반드시 개혁해야 할 대상이었다.

먼저 착수한 구조조정이 PC 사업 ‘바이오(VAIO)’의 매각이다. 바이오 PC가 많이 팔릴 때는 전 세계에서 연간 870만대 판매되기도 했다. 하지만 저렴한 중국산 노트북이 쏟아져 나오고 가격 경쟁이 심해지자 경영이 악화됐다. 또 스마트폰이 보급돼 PC 수요 자체가 줄었다. 히라이 CEO는 당초 세부적인 조치를 취해 경영을 개선시켜 PC 사업은 유지하길 원했다. 하지만 요시다 CFO는 PC 사업 철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끝까지 밀어붙여 바이오 매각이 결정됐다고 한다.

TV 부문도 2004년부터 누적 적자가 8000억엔(약 8조2677억원)에 달해 부담이 큰 사업이었다. 히라이 CEO는 전자 사업 경험이 없다는 약점이 있었다. 소니는 2014년, 1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디지털 카메라 사업에서 역량을 입증한 이마무라 마사시(今村昌志) 부사장의 공이 컸다. 그는 삼성전자와 맺고 있던 LCD 패널 합작 사업에서 철수하고, TV 판매량을 중시하지 않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대신 그는 4K TV 등 가격대가 높은 제품에 주력해 이익률을 높였다.

문제가 심각했던 스마트폰은 책임자를 교체했다. 히라이 CEO 취임과 동시에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소니모바일커뮤니케이션스에 스즈키 구니마사(鈴木國正)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히라이 CEO와 입사 동기로, 서로 이름만 부를 정도로 격의 없는 사이다.

스즈키 전 사장은 “애플,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3위가 목표”라면서 판매량 증대를 추진했지만 시장은 더욱 어려워졌다. 2013년쯤부터 저렴한 가격에 품질은 우수한 중화권 스마트폰이 세계 시장에서 떠올랐다. 당시 요시다 CFO는 회의에서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했지만, 스즈키 전 사장은 위기를 크게 느끼지 않았다. 실적 전망이 계속 낮아지면서 스즈키 전 사장은 결국 회사를 떠났다.

후임으로는 요시다 CFO와 함께 소넷에서 본사로 복귀한 도도키 히로키(十時裕樹)가 임명됐다. 인터넷 은행인 ‘소니뱅크’를 세운 경험도 있다. 소넷에 있을 땐 친정인 소니에 대해 “이미 끝난 회사”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도도키 사장은 매출이 줄더라도 수익성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삼성·애플에 이어 스마트폰 3위 브랜드가 되겠다는 목표는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중국에서 사실상 철수했고, 해외를 중심으로 인력을 감축했다. 2016년 소니 스마트폰 판매대수는 1460만대로 전성기보다 60% 줄었지만, 흑자를 달성했다.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CFO가 지난 4월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부활 요인 3 | 실적 호전 위해 무배당 결정

히라이 CEO는 본사 인력도 구조조정했다. 인사나 홍보 등 본사에 근무하는 인력의 30%를 축소하고, 연공서열 방식의 인사 시스템을 없앴다. 소니의 대기발령실엔 구조조정 대상으로 분류된 직원이 보내졌다.

회사 분위기가 침체된 가운데 2014년 9월 소니는 ‘무배당’을 발표했다. 무배당 결정은 지금이 비상사태라고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쓰가 가즈히로(津賀一宏) 파나소닉 사장의 조언이 영향을 줬다. 그는 예전부터 요시다 CFO와 친분이 있었다.

소니가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70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주와 전 경영진들이 비판했지만, 회사 내부에서 위기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됐고, 그 뒤 급여 체계 개혁 등 고통이 따르는 개혁을 추진하기 쉬워졌다.

이런 구조조정을 거쳐 일렉트로닉스 부문의 직원은 2007년 16만명에서 2016년 9만명으로 크게 줄었다. 소니 전체 매출액 중 일렉트로닉스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80%에서 60%로 낮아졌다.


부활 요인 4 | 미래 먹거리 발굴 나서

AV(오디오·비디오) 부문을 담당하는 다카키 이치로(高木一郎) 부사장은 작년 4월 조직을 개편했다. 나뉘어 있던 개발과 기획을 하나로 합쳤고, 개발비를 늘렸다. 오디오 부문에서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다.

일렉트로닉스의 적자는 멈췄지만, 매출액은 줄고 있다. 과거와 크게 변하지 않은 소니의 사업 모델 중에서 AV에 투자해 성장의 결실을 맺겠다는 의도다.

히라이 CEO가 취임하기 전인 2011년과 올해 계획상의 사업부문별 영업이익을 비교하면, 증가한 이익의 절반은 AV 부문 구조조정 효과가 차지한다. 나머지 절반은 플레이스테이션4의 흥행 성공에 힘입은 게임 사업과 스마트폰용 이미지 센서 판매 증가라는 호재가 잇따르는 반도체 사업에서 나왔다. 게임과 반도체는 소니의 사업구조에서 금융과 함께 주요 이익원이다. 그러나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 발매 시기에 따라 이익이 크게 변동한다. 플레이스테이션4는 2013년 출시돼 최근 들어 판매가 부진하고, 플레이스테이션5 출시가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미지 센서도 스마트폰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어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히라이 CEO는 신규 사업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사내 신사업 육성 프로그램인 ‘SAP(Seed Acceleration Program)’라는 오디션을 2014년 시작했다. 지금까지 총 9회 실시됐고, 총 600건의 아이디어 중 8건이 실제로 사업화됐다.

2014년엔 일반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부동산 판매 중개 업체 소니부동산도 설립했다. 소니부동산은 2015년 10월 부동산 가치를 계산해주는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출시했다. 부동산 거래 투명성을 높이고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 야후는 소니부동산과 손잡고 부동산 매도자와 매수자를 직접 연결하는 ‘오우치다이렉트’라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아파트 위치나 구조 등의 정보를 홈페이지에 입력하면 AI가 정확하게 아파트 가격을 추정할 수 있어서 부동산 중개인 없이 직접 연결이 가능하다.

히라이 CEO는 지난 4월 소니부동산 전 직원 앞에서 “과거에, 소니가 어째서 생명보험 사업을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가 시작했다. 게임도 마찬가지 소리를 들었다. 오가 노리오(大賀典雄) 전 사장이 게임 시장 진입을 결정했다. 부동산에 대해서도 같은 비판이 있지만, 내가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만 신규 사업은 글로벌 대기업 소니의 위상에 비하면 규모가 미미하다. 소니의 미래를 책임질 자동차나 로봇과 같은 분야에서 성과가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plus point

소니에서 분리된 브랜드
직원 240명의 VAIO, 법인 맞춤형 제품으로 살아나
아이와, 소형 전자회사가 사들여 올해 중 신제품


왼쪽부터 바이오가 제작한 스마트폰 ‘VAIO Phone A’와 노트북 ‘VAIO S13’. 도와다 오디오가 아이와 브랜드로 출시할 예정인 CD라디오카세트. <사진 : 바이오·아이와>

2000년대 지금의 맥북 자리는 소니의 바이오(VAIO) 노트북이 차지하고 있었다. 디자인이 고급스럽고 예뻤지만 가격이 비쌌다. 품질이 좋으면서도 저렴한 중국산 노트북이 인기를 끌자 바이오 노트북은 판매가 위축되면서 적자를 면치 못했다. 결국 소니는 2014년 7월 PC사업을 ‘일본산업파트너스주식회사(JIP)’에 매각했다.

분사 후 바이오 본사는 소니의 바이오 제품을 생산한 나가노(長野)현에 설립됐고, 직원은 240명밖에 되지 않았다. 바이오는 여전히 PC를 제조·판매하고, 지분 5%를 갖고 있는 소니는 바이오가 생산한 제품을 소니스토어에서 판매하는 등 지원하고 있다.

3년이 지난 현재 바이오는 이익을 내고 있다. 소니에서 독립한 바이오는 예전과 달리 일반 소비자가 아닌 법인 고객을 중심으로 B2B(기업 간 거래) 시장에 주력했다. 과거엔 얇고 가벼운 노트북을 만들기 위해 프로젝터용 출력 단자를 없애는 등 사무실에서 쓰기에 기능이 부족한 제품을 만들었다. 지금은 법인 고객이 요구하는 사양을 세세하게 신경 쓴 노트북을 만들고 있다. 또 법인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스마트폰도 만들었다.

소니에 소속돼 있을 때인 2013년(2013년 4월~2014년 3월) 바이오의 매출액은 4182억엔이었다. 지난해(2015년 7월~2016년 6월)는 198억엔(약 2076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917억엔의 적자에서 1억8000만엔 흑자로 돌아섰다. 현재도 이익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소니는 1999년 ‘아이보’라는 가정용 로봇 강아지를 출시했다. 아이보 생산을 맡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바이오는 2016년부터 ‘EMS(전자제조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도요타자동차의 커뮤니케이션 로봇 ‘키로보 미니’나 후지소프트의 커뮤니케이션 로봇 ‘팔미’를 위탁받아 생산 중이다. 바이오 측은 “로봇을 수십만대 규모로 생산한 경험이 있는 공장은 바이오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만큼 노하우가 쌓여 있다는 것이다.

아이와(aiwa)의 AV 기기는 사라진 지 9년이 지났다. 올가을 아이와가 부활한다. 아키타(秋田)현의 소형 라디오 위탁 제조업체 도와다(十和田)오디오가 소니로부터 아이와의 상표권을 취득해, ‘아이와주식회사’를 설립했다. CD라디오카세트나 TV를 시작으로 AV 기기를 개발할 예정이다.

1980년대 아이와는 다른 회사보다 앞서 해외에 생산 거점을 이전했다. 가격 대비 성능, 이른바 ‘가성비’가 뛰어나 일본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했다. 고가의 소니 제품을 살 수 없는 소비자가 아이와 제품을 구매하곤 했다. 하지만 중국 제품이 유입되고 AV기기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1997년 이후 실적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2002년엔 모회사 소니에 흡수합병됐고, 2008년부터 아이와 상표를 단 제품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다.

도와다오디오는 소니로부터 전자제품을 오랫동안 위탁받아 생산해 왔다. 최근엔 중국의 거대 위탁 생산 업체와 가격 경쟁이 심화되자 독자적 브랜드를 제조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다 현재 나오지 않고 있는 아이와에 눈을 돌렸다. 목표는 최고급 품질은 아니지만 믿고 살 수 있는 브랜드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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