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에 있는 화웨이 캠퍼스. <사진 : 화웨이>

3년 전 중국 선전(深圳)에서 열린 ‘글로벌애널리스트서밋(GAS)’에서 사오양(邵洋) 화웨이(華爲) 소비자사업부문 전략마케팅 담당 사장을 만났다. 당시 그는 “스마트폰 분야에서 우리는 세계 최고인 삼성전자를 존경하는 3위 사업자”라며 몸을 낮췄다. GAS는 화웨이가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미디어 관계자를 초청해 실적과 비전을 밝히는 연례행사다.

하지만 화웨이의 태도가 바뀌는 데는 채 2년도 걸리지 않았다. 불과 16개월 후인 지난해 2월, 리처드 위 화웨이 소비자사업부문 최고경영자(CEO)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6’에 참여해 “3년 안에 글로벌 시장 점유율 2위를 확보한 후, 5년 안에 1위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다시 1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화웨이가 이룩한 성과는 눈부시다.

화웨이의 지난해 매출은 5220억위안(약 89조원)으로 1년 사이 32% 증가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3위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가 집계한 화웨이의 올해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0.7%로 전년 동기(9.4%)를 웃돌며 2위 애플을 불과 0.7%포인트 차로 추격했다.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2.1%로 전년 동기 대비 0.6%포인트 줄었다. 중국 시장 점유율은 화웨이가 20.2%로 1위다.

지역별로는 중국 판매가 올 상반기 전년 대비 22.6% 늘었고,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에서 45%, 유럽에서 18% 증가했다. 특히 독일·핀란드·폴란드에서는 같은 기간 두 배가 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글로벌 소비재 시장에서의 실적 개선은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는 통신장비 시장의 최강자 중 하나인 화웨이가 2011년 처음으로 자체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염두에 뒀던 것이기도 하다.

화웨이는 얼마 전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2017 포천 글로벌 500’ 브랜드 순위에서 83위에 오르며 처음으로 100위 안에 진입했다. 지난해 순위는 129위였다. 이에 앞서 또 다른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올 상반기에 발표한 ‘2017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 순위(2017 Most Valuable Brands)’에서는 중국 기업 중 유일하게 선정됐다.

화웨이는 중국의 주요 ICT 기업 중 유일하게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보다 많다. 2015년 기준으로 전체 매출의 60%를 해외에서 거둬들였다. 화웨이가 중국 기업 중 유일한 ‘글로벌 기업’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도 아직 내수 비중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저품질’이라는 편견에 더해 중국의 급성장에 불안감을 느낀 미국의 견제로 세계 최대 소비시장 미국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거둔 성과여서 더 놀랍다. 화웨이가 실적은 물론 브랜드 파워에서도 명실상부한 세계 기업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성공비결 1 |
변두리에서 힘을 키워 중심지로

화웨이는 1993년 중국인민해방군의 네트워크 장비 공급권을 따내면서 성장의 기틀을 다졌다. 인민해방군의 첫 통신망에 라우터를 공급하는 역사적인 계약이었지만 부작용도 컸다. 이 계약으로 인해 화웨이는 지금껏 중국 정부를 등에 업고 성장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보안 문제를 이유로 화웨이의 미국 시장 정식 진출을 견제해온 것도 이 같은 성장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화웨이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에릭슨과 루슨트 테크놀로지, 알카텔(후에 알카텔-루슨트로 합병됐다가 노키아에 인수) 등 서구 통신장비 강자와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화웨이는 중국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농촌에서 혁명을 일으켜 도시로 포위해 들어간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전략을 접목한 것이 주효했다. 서구 대기업이 장악한 대도시 대신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먼저 판매와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해 내실을 다졌다. 일례로 92년 헤이룽장(黑龍江)성에 있는 에릭슨의 직원은 3~4명에 불과했지만, 화웨이 직원은 200명이 넘었다. 1996년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시장 진출 과정도 비슷했다. 선진국 시장 대신 통신 인프라가 낙후된 러시아·태국·브라질·남아공 등 신흥시장을 먼저 공략해 힘을 기른 뒤 선진국 시장에 진출해 재미를 봤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화웨이 고유의 ‘늑대문화’다. 런정페이는 해외 시장 진출 초기 화웨이를 산양에 비유했다. “사자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더 빨리 뛰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산양은 늑대로 변신했다. 치열해지는 글로벌 시장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늑대가 지닌 끈질기고 굴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끈끈한 팀워크, 탁월한 감각 등을 본받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비결 2 |
젊고 유능한 현지 전문가 양성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린 화웨이는 1996년 홍콩, 1997년 러시아, 1998년 인도, 2000년 중동과 아프리카, 2001년 동남아시아와 유럽 등지로 시장을 넓혀갔다. 국내와 해외로 영업 조직을 분리해 운영하던 화웨이는 2003년 다국적기업 형태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글로벌 영업조직 밑에 9개 지역 부서를 두면서 중국도 그중 한 개 지역이 됐다.

인프라가 부족하고 근무 환경이 열악한 신흥시장을 개척하려면 현지 사정에 밝은 전문가가 필요했다. 여기에 화웨이의 ‘젊은 늑대’들이 큰 힘이 됐다.

국내 대기업에서 해외 지사에 나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야 한다. 하지만 자녀가 있는 관리자급 직원이 신흥국 시장 발령을 반길 리 없다.

화웨이에서는 입사 연차가 짧은 중국인 직원들이 아프리카와 남미 등에서 현지 근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금이라도 어린 나이에 해외로 나가는 것이 현지 언어와 문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올해 2월 취임한 숀 멍 한국화웨이 대표는 우한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차이나텔레콤에서 근무하다 2007년 화웨이 이직과 동시에 인도네시아로 파견돼 7년을 근무하며 화웨이 인도네시아 유한회사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냈다.

켈빈 딩(丁能) 한국화웨이 전 대표도 화웨이 선전 본사 입사 후 1년 3개월 만에 나이지리아 솔루션 담당자로 파견됐다. 이후 2013년까지 현지에 머물며 나이지리아 사무소 대표와 서아프리카 지역본부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을 역임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는 물론 그만한 보상을 해준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겸 회장은 지난해 신화통신 인터뷰에서 “아프리카에서 일할 경우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직원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물론 능력만 있다면 승진도 빨라서 아프리카 직원들이 (본사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바로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를 광고모델로 기용했다. <사진 : 화웨이>

성공비결 3 |
‘중체서용(中體西用)’과 현지 기업화 전략

화웨이는 중국형 다국적 기업의 모델이란 평가를 받는다. 중국식 전략에 서구식 경영 노하우를 결합한 중체서용식 경영이 화웨이의 성공을 가능케 했다. 런정페이는 화웨이가 조직이나 기업문화에 강점이 있지만, 경영 관리 방식이나 해외시장 진출 등에 있어 많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미국식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하고 1998년부터 IBM과 함께 경영관리 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 런정페이는 이와 관련해 직원들에게 “여러분에게 이제 ‘미국 신발’을 신길 것이며 이와 관련해 미국(IBM) 담당자들에게 정확히 어떤 미국 신발을 신길 것인지 설명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현지화를 넘어 현지 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2014년 4월 한국화웨이가 중국 기업 최초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가입한 것이나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지난해까지 3년째 국내 전자·공학 분야의 우수 인재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온 것 등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세계 각지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한 것도 현지 기업화에 큰 도움이 됐다. 화웨이는 미국, 독일, 스웨덴, 러시아, 인도 등 전 세계 여러 나라에 16개가 넘는 R&D센터를 건립해 운영해 왔다.


성공비결 4 |
‘업의 본질’과 기업 이미지에 충실한 마케팅

화웨이의 현지화 전략에는 스포츠 마케팅도 큰 힘이 됐다. 유럽에서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프로축구를, 인도와 호주에서는 각각 ‘국민스포츠’인 크리켓과 럭비팀 후원을 통해 이미지를 제고하고 친근감을 조성했다. 특히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프로축구 리그의 AC밀란, 독일의 도르트문트, 영국의 아스널,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망, 네덜란드의 아약스 등과 다양한 형태의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은 모두 각 리그를 대표하는 전통 강호들이다.

사오양 사장은 “축구는 ICT 산업처럼 경쟁이 심하고,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이 열심히 뛰어야만 하는 스포츠”라며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치고, 도전자 이미지가 뚜렷한 팀, 젊고 긍정적인 팬들을 보유한 구단들과 화웨이 브랜드를 연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가라인업인 P시리즈와 ‘아너’ 브랜드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면서 스타 마케팅에도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에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바르셀로나의 ‘축구황제’ 리오넬 메시와 글로벌브랜드 홍보대사 계약을 했다. 계약금액은 600만달러로 알려졌다. 할리우드 영화배우 스칼렛 요한슨과 헨리 카빌을 ‘P9’ 스마트폰의 광고모델로 기용하는 등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ICT 업체로서 ‘업의 본질’에 충실한 스포츠 마케팅도 두드러진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네트워크 장비부문 공식 공급업체로 참여하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화웨이는 이전에도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2년 런던올림픽,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등 굵직한 글로벌 스포츠 행사의 네트워크 인프라 사업을 맡았다.


성공비결 5 |
매출의 10%가 넘는 R&D 투자

화웨이 선전 본사는 서울월드컵경기장 10개 크기 규모로, 직원 4만 명이 근무하고 있다. 그중 45%가량이 R&D 부문에 종사하는 연구직이다. 화웨이 선전 본사가 ‘캠퍼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사용하면서 축적된 기술력은 화웨이의 핵심 경쟁력이 된 지 오래다. 올해 1월 기준으로 R&D 전문 인력만 약 8만명에 달한다.

화웨이는 지난 1998년 ‘화웨이 기본법’을 마련하고 매년 매출 10% 이상을 R&D에 쓴다는 원칙을 정했다. 지난 10년간 R&D에 총 370억달러(약 41조6000억원)를 투자했고, 지난해는 매출의 13%에 해당하는 93억달러를 썼다. 올해는 1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 같은 노력은 엄청난 수의 특허 출원 건수로 이어졌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집계한 2015년 기준 화웨이의 스마트폰과 통신 관련 특허권은 5만 건이 훌쩍 넘었다. 삼성이 보유한 특허는 11만여 건으로 수적으로는 아직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화웨이는 ‘4차 산업혁명의 동맥’으로 불리는 5세대(5G) 이동통신 등 첨단 기술 관련 특허에서 앞서가고 있다. WIPO의 지난 3월 발표 내용을 보면, 지난해 기업별 특허 출원 순위 1위는 4123건의 중국 ZTE였고 화웨이가 3692건으로 2위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LG전자가 1888건으로 5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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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대(5G) 이동통신 현재 무선통신에 광범위하게 사용 중인 4세대(4G) 롱텀에볼루션(LTE)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LTE의 최대 1000배에 달하는 엄청난 전송 속도와 반경 1㎞ 내의 사물인터넷(IoT) 기기 100만개를 동시에 연결하는 광범위한 연결성, LTE의 50분의 1 수준인 짧은 반응 속도를 바탕으로 자율주행차와 가상현실(VR), 드론 등 첨단 기술 상용화의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plus point

순환 CEO제도와 종업원 지주제


지난 4월부터 화웨이의 CEO를 맡고 있는 궈핑. <사진 : 화웨이>

화웨이의 급성장에는 화웨이만의 독특한 제도들이 한몫했다. 대표적인 것이 순환 최고경영자(CEO)제도와 종업원 지주제다.

순환 CEO제도는 “CEO 한 사람에게 의존할 때보다 그룹을 이룬 CEO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유리하다”는 런정페이 회장의 믿음의 산물이다. 처음에 8명의 임원관리팀 일원이 의장을 번갈아 맡는 형식으로 운영해 오다 2011년 10월부터 지금의 CEO 순환제로 바뀌었다.

궈핑(郭平), 후허우쿤(胡厚崑), 쉬즈진(徐直軍) 등 세 명이 6개월씩 돌아가며 CEO를 맡고, 나머지 둘은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일에 집중한다. 현재 순환 CEO는 궈핑이 지난 4월부터 맡고 있다. 10월 1일부터는 쉬즈진이 넘겨받는다.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게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관건은 이들로 하여금 어떻게 자발적으로 열정 있게 일하게 하느냐다. 화웨이는 종업원 지주제에서 그 길을 찾았다. 8만4000명 직원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최대주주인 런 회장의 지분은 1.4%에 불과하다. “책임과 이익을 공유하도록 해 모든 직원이 리더처럼 행동하기를 원한다”는 런 회장의 바람에 따른 것이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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