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건설이 2013년 보존 수리를 한 사쿠라다몬(가운데 건축물). 사쿠라다몬은 일왕의 거처인 황거로 들어가는 문이다. <사진 : 위키피디아>

일본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회사는 마쓰이(松井)건설이다. 1586년 창업돼 올해로 431년째를 맞았다. 조선 선조 19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에 회사가 세워진 것이다. 주식회사의 형태로는 1939년 세워졌다. 당시 이름은 마쓰이구미(松井組)였고, 1948년 ‘마쓰이건설’로 사명을 변경했다.

마쓰이건설은 유가증권보고서에서 “마쓰이 가쿠헤이(松井角平) 현 회장의 16대조(祖) 마쓰이 가쿠에몬(松井角右衛門)이 1586년 가가번(加賀藩·현재 일본 혼슈의 동해 연안 이시카와현과 도야마현 일대) 번주 마에다 도시나가(前田利長)의 명을 받아 축성 공사를 맡았고, 계속해서 가가번에서 각종 건설 사업을 담당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역사가 길지만 회사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2016년도(2016년 4월~2017년 3월) 매출액은 893억4134만엔(약 9014억원), 당기순이익은 43억9029만엔(약 443억원)인 중견 건설업체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직원은 750명이다. 1966년 도쿄증권거래소 제1부에 상장했다.


역사 길지만 매출액은 9000억원 수준

일본 경기가 살아나고 건설 업황이 호전되면서 최근 실적이 급격히 개선됐다. 2016년 실적은 2012년과 비교해 매출액은 14.9%, 당기순이익은 606.5% 증가했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최대주주는 미즈호은행과 호쿠리쿠은행(각각 지분율 4.91%)이다. 마쓰이 가문은 마쓰이흥산(3.06%), ‘공익재단법인 마쓰이 가쿠헤이 기념 재단(2.78%)’ 등을 통해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마쓰이건설이 431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사찰과 고건축이라는 본업에 충실했고, 현대식 빌딩 건축에 진출해 변화를 꾀했으며, 새로운 시대 흐름을 받아들여 신수종 사업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 주간지 ‘도요게이자이’는 “시대 변화에 계속 유연하게 대응하며 성장해 왔다”라고 했다.


성공비결 1 |
사찰·고건축 분야 경쟁력 높아

마쓰이건설은 4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만큼 고건축 분야에서 경쟁력이 높다.

창업 7년 뒤인 1593년 도야마현 이나미마치(井波町)에서 불타 없어진 즈이센지(瑞泉寺)를 재건했다. 이 사찰은 1809년 입구에 있는 문(山門)을 준공했고 1885년엔 본당을 재건했다. 지금까지 대대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처음 시작한 곳은 일본 중심부가 아니었지만, 1593년 후시미(伏見)성을 쌓기 위해 당시 수도였던 교토로 올라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거처로 쓰기 위해 교토 후시미성 축성을 명했고, 마쓰이건설이 건축을 맡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인연은 또 있다. 1590년 도요토미는 사실상 일본 통일을 완성하는 전투를 오다와라(小田原)성에서 벌였다. 마쓰이건설은 370년 후인 1960년 이 성의 복원 공사를 맡았다.

마쓰이건설은 일왕의 거처인 황거(皇居) 건축물 보수 공사도 여러 차례 수주했다.

사쿠라다몬(櫻田門)은 외부에서 황거로 들어가는 문이다.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1932년 이봉창 의사가 일왕을 폭탄으로 저격하려다 실패한 곳이기도 하다. 문 앞에는 일본 경시청이 있다. 국토교통성과 외무성 등 중앙부처가 밀집한 가스미가세키(霞ヶ関)가 이곳이다.

사쿠라다몬은 관동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었고, 1926년 해체 후 수리했다. 마쓰이건설은 2013년 이 사쿠라다몬 보수 공사를 수주했다. 1926년 보수 공사 후 시간이 오래 흘러 파손이 확인됐고,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으로 기와가 떨어지는 등 위험 요인이 있어 기둥과 대들보 등을 일부 해체해 부재를 보수했다. 이외에 같은 해 황거의 사카시타몬(坂下門), 2015년엔 오오테몬(大手門) 보수 공사를 맡았다.

여러 고건축 재건 프로젝트도 수주했다. 1976년엔 센다이번 초대 번주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의 묘 ‘즈이호덴(瑞鳳殿)’을 재건했다. 처음 회사가 세워진 지역인 이시카와현에 위치한 가나자와성 이시카와몬(일본 중요문화재)을 같은 해에 보수했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마쓰이건설은 2000여건의 사찰·문화재 건축 또는 보수 공사를 실시했다.



도쿄 주오구에 위치한 쓰키치혼간지. <사진 : 위키피디아>

성공비결 2 |
도쿄 진출해 현대식 빌딩 시공

마쓰이건설은 창업 이후 사찰을 전문적으로 건축했었다. 변화의 시작은 1923년 관동대지진이었다. 지진이 발생한 후 회사 본거지를 지방인 도야마현에서 도쿄로 옮겼다.

도쿄로 본거지를 옮겨 회사 발전의 전기를 마련한 사람은 창업주의 15대손 마쓰이 가쿠헤이(松井角平)다. 그는 지진으로 도쿄에 잔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건설업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수도 부흥이 사명이라고 느꼈다. 마쓰이 일가를 설득해 도쿄에 출장소를 열었다. 이후 마쓰이건설은 사찰이 아닌 일반적인 건축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때 마쓰이건설이 시공한 대표적 작품이 불교 사찰인 도쿄 쓰키치혼간지(築地本願寺)다. 원래 1617년 지어진 사찰이지만, 지진 피해로 소실됐다가 1934년 건축물을 새로 지어 준공했다. 도쿄대 교수였던 이토 주타(伊東忠太)가 불교 발상지인 고대 인도 양식을 채용한 예술적인 디자인으로 설계했다. 기존의 사찰 본당은 목조 건축물로 관동대지진엔 살아남았지만, 곧 이어 닥친 화재로 피해가 컸다. 그래서 새로 지은 본당은 지진에 강한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화재에 강한 석재(石材)를 사용했다.

쓰키치혼간지는 2014년 국가 중요문화재로 등록돼 현재 도쿄의 관광 명소 중 하나다. 마쓰이건설은 “회사의 심볼과도 같은 존재”라고 설명한다. 마쓰이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된 것은 설계자인 이토 교수가 직접 뽑은 덕분이다. 마쓰이 다카히로(松井隆弘) 마쓰이건설 사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법인 형태도 아니었던 마쓰이건설이 재건 공사를 수주했다. 이를 통해 ‘사찰의 마쓰이’로 사찰 건축계에서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준공된 지 83년이 지난 현재 마쓰이건설은 쓰키치혼간지에 관광객을 위한 안내센터 건물과 합장묘 정비 사업 공사를 진행 중이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한 것은 회사가 성장하는 두 번째 계기가 됐다. 1947년 도쿄에 진주한 연합군 가족이 거주할 사택(그랜드 하이츠) 공사를 수주하면서 규모를 확대했다. 회사 이름도 마쓰이구미에서 현재의 마쓰이건설로 변경했다. 1949년 미국 건설사에서 콘크리트 블록 제조 기술을 도입해 시공하는 건축물에 적용했다.

마쓰이건설은 시세이도(資生堂) 교토 빌딩, 도쿄 쓰키치의 나가오카부동산 빌딩, 도쿄 스미다강 인근의 이누이빌딩 등 현대적인 건물을 시공했다. 일본 최대 국제 컨벤션센터 도쿄국제전시장(도쿄빅사이트) 건축에도 참여했다. 역(逆)피라미드 형태의 회의동을 중심으로 동쪽 전시동과 서쪽 전시동으로 나뉜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일부 경기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도쿄 고토구 아리아케에 위치한 도쿄국제전시장 (도쿄빅사이트). 마쓰이건설이 시공에 참여했다. <사진 : 위키피디아>

성공비결 3 |
전통 건축기술 승계 위해 최대한 배려

마쓰이건설은 전통적인 고건축과 현대적인 일반 건축물을 모두 짓고 있다. 전통을 후대가 이어받을 수 있게 보존하면서 회사가 유지될 수 있는 일반 건축물을 계속 짓는 것이 과제다.

마쓰이 사장은 도쿄상공회의소와의 인터뷰에서 사찰 건축과 일반 건축 수주를 1 대 9의 비율로 배분해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창업 이후 종사해온 사찰·신사·성곽·문화재 등 고건축 기술의 전승을 마쓰이건설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기술을 보존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저출산·고령화로 노동력이 부족한 사회가 됐고, 특히 3D 업종인 건설업은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마쓰이 사장은 “일반적인 건축 기술자는 부족한 상황이지만 사찰과 같은 고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기술자(목수)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라며 “전통 기술을 지키기 위해 마쓰이건설은 사찰 건축 기술자나 목수의 일이 끊어지지 않도록 항상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채산성이 다소 나쁘지만 사찰 건축 일감을 수주해 전통 기술이 이어지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plus point

창업주 17대손이 회사 경영


마쓰이 다카히로 마쓰이건설 사장. 창업주의 17대손이다. <사진 : 마쓰이건설>

마쓰이 다카히로 마쓰이건설 사장은 창업주의 17대손이다. 마쓰이건설의 마쓰이 가쿠헤이 회장은 16대손이다. 15대와 16대손의 이름이 같다. 16대손의 원래 이름은 마쓰이 타이지(松井泰爾)였으나 1989년 습명(襲名·선대의 이름을 계승함)했다.

사시(社是)는 ‘신용 일본 최고’ 이고, 기업 이념은 ‘사람, 일, 회사를 계속 갈고 닦아 건설 사업을 통해 사회에 공헌한다’이다. 마쓰이 사장은 “사시를 달성하기 위해 규모를 추구하지 않고 신용 면에서 일본 최고가 되려 한다” 라며 “고객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겠다는 의미를 담아서 기업 이념을 정했다”고 했다.

마쓰이건설은 지난해 경영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서도 매출액이나 수주액 목표를 수치로 제시하지 않았다. 수치를 달성하기 위해 직원이 업무 면에서 압박을 받거나, 품질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의미다.

일본엔 마쓰이건설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된 건설사 곤고구미(金剛組·578년 창업)가 있다. 마쓰이건설은 상장회사, 곤고구미는 비상장회사라는 차이점이 있다. 일본의 상장사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회사라는 점에 대해 마쓰이 사장은 “상장 기업의 대표는 최종적으로 주주가 결정한다는 점에서 비상장기업과 다르다”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쓰이건설이라고 하는 기업의 존속이고, 비상장기업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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