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DNP 고탄다(五反田) 빌딩에 설치된 OLED로 제작한 곡면 디스플레이. LG전자가 생산했다. <사진 : DNP>

다이닛폰인쇄(大日本印刷·Dai Nippon Printing·이하 DNP)는 1876년 창업해 올해로 141년째를 맞은 종합 인쇄 회사다. 회사명에 ‘인쇄’가 들어가지만 일찍부터 사업을 다각화해 주택용 내장재, 전자 소재 등으로 진출했다. 출판 수요가 줄어들더라도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구조다.

DNP의 전신은 사쿠마 데이이치(佐久間貞一)가 창업한 슈에이샤(秀英舍)다. 1876년은 일본에서 메이지유신이 일어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지 8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다. 이때 슈에이샤 발기인들은 ‘활판인쇄를 통해 사람들의 지식과 문화 향상에 공헌하고 싶다’라고 생각해 인쇄 회사를 만들었다.

슈에이샤가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된 것은 1894년이다. 1935년에 닛신(日清)인쇄와 합병해 ‘다이닛폰인쇄’로 새출발했으며 출판인쇄, 상업인쇄에 집중했다.


디스플레이·전자기기로 사업 확대

DNP는 1950년대부터 사업을 다각화했다. 포장재나 건자재, 디스플레이 제품, 전자 기기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DNP는 사업 부문을 인쇄와 관련된 정보 커뮤니케이션, 생활·산업, 일렉트로닉스 그리고 인쇄와 관련 없는 청량음료 등으로 나누고 있다. 이 중 정보 커뮤니케이션 부문은 전통적인 출판인쇄 사업과 신용카드에 쓰이는 IC칩 제조, 전자서적 서비스 등으로 구성됐다. 생활·산업 부문은 종이 포장지, 식품 포장용 레토르트 파우치, 건자재 등이다. 일렉트로닉스 부문은 반도체 패키지 기판, 액정 디스플레이용 컬러 필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청량음료 사업은 전체 매출액의 4%를 차지한다. DNP가 지분 53.5%를 보유한 ‘홋카이도 코카콜라 보틀링’을 통해 코카콜라를 제조·판매하고, 독자적인 음료 제품도 개발한다.

DNP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4101억엔(약 14조1010억원), 영업이익은 314억엔(약 3140억원), 당기 순이익은 252억엔(약 2520억원)을 기록했다. 사업 부문별 매출액은 정보 커뮤니케이션 8012억엔, 생활·산업 3881억엔, 일렉트로닉스 1694억엔, 청량음료 566억엔이다. 전체 직원 수는 올해 3월 말 현재 3만8808명이다.



DNP가 펴낸 ‘개정 서국입지편’ 첫 페이지 <사진 : 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

성공비결 1 |
본업인 인쇄, 오랜 역사만큼 튼튼한 기술력

슈에이샤는 창업 1년 만인 1877년, ‘개정 서국입지편(改正西国立志編)’이란 책의 인쇄를 맡았다. 창업 이후 최초로 맡은 대규모 일감이었다. 이 책은 영국의 저술가이자 사회개량가인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가 1859년 발간한 ‘자조론(自助論·Self-Help)’을 번역한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문장으로 유명한 바로 그 책이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려면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슈에이샤가 출판한 ‘개정 서국입지편’은 일본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양장본(하드커버) 서적이다. 표지에 사용된 판지(板紙)도 슈에이샤가 개발했다.

이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기 전까지 인쇄 능력을 확충하고 기술을 발달시켜 나갔다. 1878년엔 회사 규칙을 정했다. 인쇄업을 ‘문명의 영업’이라고 규정하고 창업 정신을 표현했다. 1881년엔 활자를 스스로 제조하기 시작했다. 활자를 제조해 판매하는 회사인 ‘세이분도(製文堂)’를 세웠고, 1912년에 이르러선 크기별 활자를 갖췄다. 완성한 ‘슈에이체(秀英体)’는 현재의 폰트 디자인에도 영향을 줬다.

1924년엔 대일본웅변회고단샤(현재 일본 대형 출판사 ‘고단샤·講談社’)가 출간한 잡지 ‘킹(KING)’의 인쇄를 수주했다. 이 잡지는 74만 부씩 인쇄됐다. 이를 계기로 대량생산 체제를 확립했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46년엔 당시 정부의 관리 공장으로 지정돼, 지폐도 인쇄했다. 이와나미(岩波)서점이 1955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일본의 국어사전 ‘고지엔(廣辭苑)’도 DNP가 인쇄를 맡았다. 1980년대 CD롬이 보급되자 DNP는 고지엔을 CD에 넣어 전자사전의 형태로 출간했다.

DNP의 인쇄 능력은 일본 출판 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주간지는 취재력과 인쇄 능력을 갖춘 신문사에서만 발행했었다. 그런데 DNP가 출판사의 수요에 맞춰 인쇄 능력을 확충했고, 1956년 ‘주간 신초(週刊新潮)’를 시작으로 출판사가 제작하는 주간지 창간이 붐을 이뤘다. 1961년엔 일본 최초로 동판(鋼板) 컬러 인쇄에 성공했다.


성공비결 2 |
인쇄 기술 활용해 다양한 제품 개발

일본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고, 1960년대에 들어서자 소비가 활성화됐다. 컬러TV나 자동차 등의 소비재가 일반 가정에 보급됐다. DNP는 인쇄 기술을 응용해 건자재, 포장재 등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개발했다.

DNP는 1950년대부터 출판용이 아닌 상품용 인쇄로도 확장했다. 1952년엔 담뱃갑 인쇄를 수주했다. 1957년엔 상품 패키지 인쇄에 특화된 공장을 개설했고, 닛신식품의 ‘치킨라멘’ 봉지 인쇄를 시작했다. 1961년엔 플라스틱 포장 용기를 만드는 블로우 성형 방법으로 포장재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치약은 20세기 들어 ‘튜브’로 포장돼 판매됐다. 원래는 알루미늄 튜브가 포장재로 쓰였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플라스틱을 이용한 ‘라미네이트 튜브’가 개발됐다. 라미네이트 튜브는 소재가 플라스틱이어서 깨끗하게 인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DNP는 1969년부터 라미네이트 튜브 생산을 시작했다. 이 제품은 치약과 각종 조미료, 벌꿀, 핸드크림, 의약품 등 다양한 용도에 사용된다.

1975년엔 간편식품을 보관하기 위한 레토르트 파우치 생산을 시작했고, 1년 뒤엔 종이를 코팅해 액체를 담는 용기를 개발했다. 흔히 수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우유팩에 쓰는 소재다. 1984년엔 음료용 페트(PET)병 생산을 시작했다.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2007년엔 일본 식품을 우주에서 먹을 수 있도록 특화한 포장 용기를 개발했다.


성공비결 3 |
일찍부터 전자 소재로 다각화

DNP는 회사 이름에 ‘인쇄’가 들어가지만, 최근 성장을 이끄는 제품은 전자 부문이다. 종이에 글자를 찍어내는 ‘인쇄’를 떠올리면 쉽게 연상되지 않는 분야다. DNP는 1944년 기술부연구실(현 기술개발센터)을 출범시켰고, 인쇄 기술을 관련 분야로 발전시켜 지금의 사업 영역으로 확장했다.

DNP는 1950년대부터 전자 소재를 개발하며 일찍부터 사업을 다각화했다. 1958년 브라운관 컬러TV에 쓰이는 그림자 마스크(Shadow mask) 시험 제작에 성공했다. 일본 최초였다. 그림자 마스크는 전자총을 빨강, 초록, 파랑의 각 빛깔에 할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다공판(多孔板)이다.

1년 뒤인 1959년엔 반도체를 제작하는 데 쓰이는 포토 마스크(photomask)의 시험 제작에 성공했다. 포토 마스크는 유리 기판에 반도체의 미세 회로를 형상화한 것이다. 웨이퍼 위에 놓고 빛을 쬐어 반도체를 만든다.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수적이다.

DNP는 금융 부문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혁신을 일찍부터 내놓았다. 1973년엔 마그네틱선을 붙인 카드와 통장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IC칩을 내장해 단말기에 접촉하지 않고도 결제할 수 있도록 한 비접촉식 IC카드는 1993년에 개발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널리 이용되고 있는 결제 방식이다.

1978년에 대형 3차원 홀로그램을 개발했고, 1985년엔 액정 디스플레이용 컬러필터 생산 기술을, 2007년에 인쇄 방식에 의한 유기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또 1997년 온라인 출판 사업을 시작했고, 2010년엔 전자 서적 서비스 ‘혼토(honto)’를 공개했다.

종이에 글자를 인쇄하는 회사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종이가 필요 없게 만드는 기술도 개발한다. 지난달 DNP는 고객이 금융 상품 가입 상담을 할 때 태블릿 화면상의 신청서에 적은 글자를 데이터로 보존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기입한 글자를 PDF 파일 형태로 보존한다는 아이디어다. 이 서비스를 도입하면 ‘페이퍼리스(paperless·종이 없는)’ 사무실을 만들어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내년에 서비스를 출시해 2021년엔 20억엔(약 2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다.



DNP가 현재 인쇄하고 있는 잡지와 서적. <사진 : DNP>

성공비결 4 |
OLED 부품 생산해 실적 개선

DNP의 주가는 지난 5년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DNP의 최근 주요 수익원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부품인데, 디스플레이에 OLED를 채택하는 스마트폰이 늘어나 실적 개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DNP는 OLED 패널에 발광 재료를 부착할 때 사용하는 메탈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다. 메탈 마스크는 OLED에 이미지를 표시하는 적색과 녹색, 청색의 발광 재료를 미세하게 붙이기 위해 필요한 부품이다. 종이보다 얇은 메탈 소재 판에 수많은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도쿄 신주쿠 이치가야카가초에 있는 다이닛폰인쇄 본사. <사진 : DNP>

OLED 수요 증가로 수익성 향성

지난해 DNP는 2020년까지 60억엔(약 600억원)을 투자해 메탈 마스크 생산 능력을 세 배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분야 매출액도 100억엔에서 2020년에 300억엔(약 3000억원) 규모로 확대할 생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생산된 메탈 마스크는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에 공급되며, 이 분야에서 DNP가 세계 시장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수요가 확대되는 시점에 생산 능력을 확대해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투자다.

OLED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어 DNP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시장조사 회사 IHS마킷은 올해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중소형 OELD 패널의 전 세계 매출액은 183억달러(약 20조4960억원)로, 액정 패널(182억달러)을 처음으로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OLED 전체 매출액은 전년보다 63% 늘어난 252억달러(약 28조224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애플이 디스플레이에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아이폰X(텐)를 출시하는 등 호재도 있다.

다만 아직 OLED용 메탈 마스크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또 OLED 생산이 늘어나는 대신 액정 패널 생산이 감소하면, DNP가 공급하는 LCD 패널용 컬러 필터 판매량이 악영향을 받는다. 이 분야 경쟁사는 1900년 창업한 일본의 돗판(凸版)인쇄다.


plus point

헬스케어 등 생활 밀착형 서비스도 개발


DNP, 도쿄메트로, 라인이 공동으로 실험에 착수하는 ‘앤드 핸드(&HAND)’ 서비스 이미지. <사진 : DNP>

DNP는 ‘사람과 사회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는 기업 이념을 갖고 있다. 여기서 ‘새로운 가치’는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이라는 사업적인 측면을 넘어, 환경과 사회를 시야에 넣고 생각하는 개념이다. 이런 기업 이념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앤드 핸드(&HAND)’ 서비스다.

DNP는 종이나 IC칩처럼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는 제품을 넘어 무형의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다. DNP, 도쿄메트로(도쿄 지하철), 일본의 국민 메신저 ‘라인(LINE)’은 오는 12월부터 긴자선 지하철 차량 안에서 서 있기 힘들어 자리에 앉고 싶은 임산부와 자리를 양보하고 싶은 사람을 연결하는 서비스가 가능한지 검증하는 실험에 함께 착수한다.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과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을 이어주고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HAND’ 구상의 하나다.

요즘은 지하철에 탑승하면 스마트폰을 보느라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채기 힘들다. 앞에 서 있는 여성이 임산부 표식을 달고 있더라도 시선은 스마트폰을 향할 뿐 고개를 들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다. 임산부가 말을 걸어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경우 모바일 메신저로 주변에 자리 양보를 원하는 임산부가 있다고 알려주면 된다는 아이디어다.

취지에 공감한 승객은 라인에서 ‘&HAND’ 계정을 추가하면 실험에 참가할 수 있다. 실험 차량에 승차한 임산부가 ‘좌석에 앉고 싶다’는 메시지를 &HAND 계정으로 발송하면, 주위에 있는 지원자가 메시지를 받는 구조다. 또 자리를 양보하고 싶은 지원자는 &HAND 계정으로 임산부에게 좌석 위치 등을 보낸다. 라인은 이번 실험을 통해 승객의 행동 변화와 향후 서비스 개선을 위한 과제를 조사할 계획이다.

가상현실(VR)을 이용해 고령층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신규 서비스도 지난달 개발했다. 일본에서 고령층의 80%는 자신의 건강 상태에 불안감을 갖고 있지만, 운동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아픈 고령층을 간병하기 전에, 건강해지도록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DNP가 개발한 서비스를 이용하면 VR 기술을 이용해 실내 자전거에 앉아 페달을 밟으며 가상 공간을 여행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DNP는 내년부터 피트니스클럽이나 각종 운동 시설에 이 서비스를 판매해 2020년까지 5억엔(약 50억원)의 매출액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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