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록시땅은 매장 인테리어에 프로방스의 깨끗한 자연 분위기를 담았다.

1976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서 설립된 ‘록시땅(L’occitane)’은 시어버터·라벤더 등 자연 유래 성분으로 화장품을 만들어 한 해 13억유로(약 1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에스티로더·로레알 등 거대한 글로벌 브랜드가 장악한 세계 화장품 시장에서 독립 브랜드로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 기업으로 꼽힌다.

작은 마을 장터에서 로즈마리 에센셜 오일을 판매하며 사업을 시작한 록시땅은 41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90여개 국가에 1500여개 매장을 가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7년 서울 신사동에 1호점 오픈

2012년 10억4340만유로였던 록시땅 매출액은 지난해 13억2320만유로로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억6830만유로(약 2200억원)를 기록했다.

록시땅 창업자인 올리비에 보송은 프로방스 지역에서 난 깨끗한 식물성 재료로 화장품을 만들어 판매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기업 이름 록시땅은 프랑스 남부 지방의 옛 명칭인 옥시타니아(Occitania)에서 유래한 것으로, ‘옥시타니아에서 온 여자’라는 의미다. 보송은 낡은 증류기를 구입해 허브 로즈마리에서 에센셜 오일을 추출해 마을 장터에 내다 팔았다. 천연 원료를 쓴 제품으로 입소문을 타며 판매가 늘어났고, 보송은 오래된 비누공장을 인수해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이후 보송은 자연주의 화장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천연 원료와 제조 기술을 찾아 나섰고, 1980년 아프리카 서부 부르키나파소에서 현지 여인들이 보습제로 사용하는 ‘시어버터’를 발견했다. 시어나무 열매에서 나는 식물성 기름인 시어버터는 피부 보습에 효과적인 성분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록시땅이 생산하는 많은 제품의 주요 원료로 사용된다.

1980~90년대 록시땅은 생산을 늘리고 매장을 추가하며 사업 확대에 나섰지만 곧 위기에 빠졌다.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사업을 확장하려 했지만 이익을 내지 못하고 정체기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1992년 보송이 친구의 소개로 사업가 레이놀드 가이거를 만난 이후 록시땅은 전환기를 맞는다. 가이거는 자연주의 화장품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록시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가이거는 1994년부터 경영에 직접 참여했고 1996년에는 록시땅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는 해외 진출을 통해 지난 21년간 록시땅의 성장을 주도했다. 록시땅은 1995년 홍콩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 일본에 진출했고, 유럽 전역과 아시아 지역에도 잇따라 매장을 열었다. 우리나라에는 2007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1호점을 오픈하며 진출했다.



제품의 주요 원료인 라벤더를 재배하는 록시땅 지역 파트너의 농장. <사진 : 위키피디아>

성공비결 1 |
철저한 자연주의 원칙 고수

록시땅은 제품을 만드는 재료뿐 아니라 포장지, 매장 인테리어 등 모든 분야에서 철저한 자연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자연주의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은 경쟁사가 사용하지 않는 자신만의 재료를 발굴하는 것이다. 록시땅은 일찌감치 라벤더·로즈마리·버베나 등 다양한 식물성 재료를 활용해 제품을 생산했고, 시어버터를 발견해 차별화된 제품을 구성할 수 있었다. 2001년에는 지중해 연안 코르시카섬에서 자라는 꽃 이모르텔을 발견해 제품 원료로 활용했다. 이모르텔은 ‘시들지 않는 영원함’이라는 뜻을 가진 노란색 야생식물로, 꺾어도 쉽게 시들지 않을 뿐 아니라 시든 뒤에도 색과 모양이 크게 변하지 않는 꽃이다. 록시땅은 이모르텔 품종 일부에 주름 개선에 도움이 되는 성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제품 개발에 나섰다. 이모르텔을 원료로 만든 록시땅 오일·로션·마스크팩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 됐다.

록시땅이 다른 기업보다 먼저 새로운 원료를 발견해 제품화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개발에 과감히 투자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마노스크 오트 프로방스 지역에는 100여명의 전문 연구원이 근무하는 연구소가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생물학자와 화학자들은 식물 성분을 분석하고 기능성 원료를 추출해 로션·비누·향수 등으로 제품화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제품 포장지에도 엄격한 자연주의가 반영됐다. 전 세계 록시땅 매장에서 사용되는 포장지는 사과 껍질과 씨로 만든 친환경 용지다. 록시땅은 과도한 포장지 사용에 따른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프로방스에서 직접 포장지를 만들어 전 세계 매장에 공급하고 있다. 록시땅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은 원목으로 만든 가구 인테리어와 곳곳에 진열된 허브를 통해서도 기업의 자연주의 원칙을 느낄 수 있다.

록시땅은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진행한 인수·합병(M&A)에서도 자연주의 철학을 가진 기업을 선택했다. 2008년에는 천연 화장품 브랜드 ‘멜비타’를 보유한 기업 상떼보떼를 인수했고, 2012년에는 우리나라 한방화장품 업체 심비오즈코스메틱으로부터 ‘에보리앙’을 인수했다. 생물학자 베르나르 세빌리아가 만든 천연 화장품 브랜드 멜비타는 벌집에서 나오는 원료로 유기농 비누를 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친환경 화장품을 생산하고 있다. 에보리앙은 우리나라 전통 약초로 한방 화장품을 만드는 브랜드다.


성공비결 2 |
제품 개발과 경영 분업해 시너지 창출

록시땅은 제품 전문가와 경영 전문가의 철저한 분업(分業) 경영이 이뤄지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록시땅 창업자 보송은 천연 재료를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각 제품에 독특한 스토리를 입히는 데에는 탁월했지만 회사를 경영하는 데는 소질이 없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위기를 맞은 록시땅은 가이거에게 기업 경영을 일임하게 됐고, 이후 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다. 오스트리아 출신 사업가 가이거는 더 많은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해 기업을 성장시키는 방법에 골몰했다. 그는 1995년 홍콩을 시작으로 세계 전역에 매장을 열어 기업 규모를 빠르게 키웠다. 자연주의 화장품 개발은 보송이, 해외 시장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경영은 가이거로 역할을 나눠 시너지를 낸 것이다.

현재 록시땅 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가이거는 21년 동안 기업 경영을 주도했고, 보송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제품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이들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분업 경영 체제의 효율성을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엑상프로방스대에서 문학을 전공한 보송은 자연을 관찰하며 사색하는 시간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스위스취리히연방공과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인시아드 경영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가이거는 일찌감치 사업에 뛰어들어 외향적일 뿐 아니라 스키 챔피언이었을 정도로 활동적인 인물이다.

성향은 다르지만 보송과 가이거는 오랫동안 함께 일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았다. 보송은 록시땅 지분 5%를 가지고 있지만, 주주총회에 참여하지 않고 의결권을 모두 가이거에게 위임하고 있다. 보송은 프로방스의 작은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가이거의 경영 능력에 전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고, 가이거는 보송의 창의력과 개발 능력을 존중하고 있다.

물론 가이거 회장의 결정이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6년 록시땅은 최고급 올리브 오일을 판매하는 전문 브랜드 ‘올리비에앤드코(Oliviers & Co.)’를 론칭했다. 가이거 회장은 뉴욕 소호 거리에 올리비에앤드코 매장을 내고 고급 올리브 오일을 판매했지만, 적지 않은 적자를 보고 매장을 철수해야 했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사례도 있었지만, 록시땅은 이를 경험 삼아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들지 않는 꽃으로 유명한 이모르텔을 원료로 한 록시땅 화장품. <사진 : 록시땅>

성공비결 3 |
핵심 시장은 아시아 신흥국

해외로 시장을 넓혀 기업을 키운 가이거의 성장 전략이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미국·유럽 등 선진국보다 아시아 시장을 더 주목했기 때문이다. 가이거 회장은 일본과 중국 소비자들에게 깨끗한 프로방스 이미지를 알리며 아시아 시장에 록시땅을 정착시켰다. 지난해 록시땅의 지역별 매출을 살펴보면, 매출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일본으로 전체 매출의 18%를 차지했다. 미국(13%), 프랑스(8%), 영국(5%)보다 일본과 중국(11%), 홍콩(9%)에서 발생한 매출이 훨씬 많았다.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다. 가이거 회장에 따르면 뉴욕이나 파리·런던과 같은 미국·유럽 도시에서는 일단 좋은 위치에 가게를 열기만 하면 많은 소비자가 찾아오지만, 아시아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시아 지역의 소비자 대부분은 익숙한 브랜드를 찾기 때문이다. 록시땅이 아시아 시장에서 ‘아베다’ ‘오리진’ ‘키엘’ 등 이미 알려진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와 경쟁해 이기기란 어려워 보였다. 게다가 아시아 지역 소비자들에게 록시땅은 발음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록시땅이 1990년대 중반부터 아시아 지역에 공격적으로 진출했지만, 초기 성과는 좋지 않았다. 일부 투자자들이 가이거 회장을 찾아와 아시아 시장에서 사업 철수를 조언했을 정도다. 하지만 가이거 회장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이곳 시장에서 사업을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가이거 회장의 전략은 옳았다. 록시땅이 매장을 내고 2~3년이 지나면서 소비자들이 찾기 시작했고 이익이 늘어났다. 록시땅은 아시아 시장을 넘어 브라질·러시아 등 신흥국에서도 판매량을 늘리고 있다.

아시아 시장을 중시하는 록시땅의 전략은 2010년 이뤄진 기업공개에서도 확인됐다. 록시땅은 2010년 5월 홍콩 주식시장에 주식을 상장했다. 이례적으로 중국투자공사(CIC)가 투자하며 록시땅 주식의 청약 경쟁률은 160 대 1이라는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록시땅이 유럽 주식시장이 아니라 홍콩에 상장한 것은 이 기업이 아시아를 얼마나 중요한 시장으로 인식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록시땅은 자연주의 화장품 소비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곳이 아시아를 포함한 신흥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분석했다.



100여명의 전문 인력이 근무하는 프랑스 록시땅 연구소. <사진 : 록시땅>

성공비결 4 |
생산 과정 통합 관리로 스피드 경영

천연 원료를 발굴하고 이를 제품화하는 자연주의 화장품의 생산 방식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록시땅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환경에 처해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해 록시땅은 연구·개발과 생산, 유통, 마케팅, 판매에 이르는 전체 생산 과정을 본사가 통합 관리하고 있다. 생산 과정 중 한 단계라도 아웃소싱하면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짧아진 화장품 업계의 신상품 출시 주기를 따라가기 위해 소규모 프로젝트팀도 운영하고 있다. 끊임없이 신상품을 개발해 출시하기 위해서다. 록시땅이 각 지역 파트너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도 스피드 경영을 위한 전략이다. 양질의 화장품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지역 파트너와 오랫동안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plus point

레이놀드 가이거 록시땅 회장

레이놀드 가이거 록시땅 회장. <사진 : 록시땅>
오스트리아 출신 레이놀드 가이거 록시땅 그룹 회장은 1996년부터 21년 동안 록시땅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현재 그의 자산은 14억4000만달러(약 1조6000억원)에 이른다.

프랑스 인사이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그는 1989년 프랑스 화장품 용기 회사 AMS 지분을 인수하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오랫동안 화장품 용기 업계에서 일하던 그는 친구의 소개로 올리비에 보송 록시땅 창업자를 만나면서 글로벌 자연주의 화장품 시장에서 유명한 경영자로 탈바꿈한다. 그는 적극적인 해외 진출 전략을 활용해 록시땅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록시땅이 진출한 90여개국을 다니며 직접 시장을 분석하고 진출 전략을 세운다. 그는 록시땅의 자연주의 이미지를 강화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록시땅의 정식 브랜드 명칭을 ‘프로방스의 록시땅(L’occitane en Province)’으로 바꾼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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