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코흐 보스턴비어컴퍼니 창업자가 잔에 따른 새뮤얼 애덤스 맥주를 들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청와대에서 ‘호프 미팅’을 가졌다. 건배주로 선택된 맥주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카스, 하이트, 클라우드 등이 아니라 국내 크래프트 비어(수제맥주) 업체인 ‘세븐브로이’에서 만든 크래프트 비어 ‘강서맥주’와 ‘달서맥주’였다.

몇 해 전부터 독특한 개성을 지닌 크래프트 비어를 찾는 한국 애주가들이 늘고 있다. 크래프트 비어는 1970년대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고, 이후 다른 나라로 확산됐다. 미국에선 소규모 맥주 생산을 제한하던 규제가 1978년부터 풀리면서 크래프트 비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보스턴비어컴퍼니는 미국 마이크로브루어리(소규모 맥주 양조장) 업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업체다. 이 회사는 크래프트 비어 초창기인 1984년 설립됐으며, 1985년 대표 맥주인 ‘새뮤얼 애덤스 보스턴 라거맥주’를 출시했다. 미국 맥주 시장은 AB인베브와 몰슨쿠어스와 같은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고, 크래프트 비어의 점유율은 10%쯤 된다. 이 10%의 시장에서 보스턴비어컴퍼니는 최대 규모의 회사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크래프트 비어 5병 중 1병은 보스턴비어컴퍼니가 만드는 새뮤얼 애덤스다.

보스턴비어컴퍼니는 2016년 매출 9억645만달러(약 9654억원), 영업이익 1억3766만달러(약 1466억원), 당기순이익 8735만달러(약 930억원)를 기록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증가하던 실적은 2016년 주춤한 뒤 지난해 호전됐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순이익은 6852만달러(약 730억원)를 기록해, 전년 같은 기간보다 5.1% 늘었다. 주가도 2015년 이후 하락 추세를 보이다가 2017년 중반 이후 반등했다.


성공비결 1 |
창업자가 좋아하는 걸 팔아라

보스턴비어컴퍼니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창업자의 맥주 사랑이다. 맥주를 좋아하는 만큼 애정을 갖고 개발해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 내 시장에서 인정받았다.

창업자 짐 코흐(Jim Koch) 보스턴비어컴퍼니 회장은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한 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는 고소득의 좋은 직장을 관두고 35세에 맥주 회사를 차렸다.

사실 코흐 회장은 맥주 양조장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5대째 양조장을 운영해 왔다. 물론 그 자신도 맥주를 좋아한다. 비즈니스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회사 일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작업이 창업이다.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회사를 차려야 한다”고 했다.

1985년 출시된 새뮤얼 애덤스는 라거맥주이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라거맥주인 버드와이저와는 맛이 매우 다르다. 에일맥주와 같은 진한 맥주 향과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엠버 라거 스타일의 맥주다.

코흐 회장은 맛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아버지 집 다락방을 뒤지다 고조할아버지 루이스 코흐가 남긴 맥주 제조법을 발견했다. 이후 풍미가 깊고 몰트와 다른 재료가 균형을 맞춰 다양한 향을 내는 맥주를 만들어 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맥주를 술집에 들고 다니며 직접 홍보했다. 새뮤얼 애덤스는 출시 6주 만에 ‘그레이트 아메리칸 비어 페스티벌’에서 실시한 소비자 선호 조사에서 미국 최고의 맥주로 선정되면서 유명해졌다.

코흐 회장이 맥주로 한 우물만 판 결과, 창업 30년 만인 2015년 보스턴비어컴퍼니는 매출액이 10억달러에 육박하는 큰 회사로 성장했다.



햄버거, 감자튀김과 함께한 새뮤얼 애덤스 맥주. <사진 : 새뮤얼 애덤스 페이스북>

성공비결 2 |
최고의 맥주 만들기 위한 투자와 실험 정신

다락방을 뒤져 고조할아버지의 양조법을 찾아냈을 정도로 코흐 회장은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전 세계에서 최고급 품질의 홉과 맥아를 찾아내 맥주 제조에 사용한다. 2007년엔 맥주의 풍미를 높이고 마시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는 새뮤얼 애덤스 전용 파인트 글라스를 출시했다. 100만달러를 투자해 2년 동안 연구한 끝에 2013년 새로운 캔 디자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크래프트 비어는 불특정 대중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맥주 제작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새뮤얼 애덤스는 마니아를 대상으로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내놓고 있다. 새뮤얼 애덤스의 이름으로 판매되는 맥주만 60종 가까이 있다.

보스턴비어컴퍼니가 2012년 내놓은 ‘앵그리 오차드(Angry Orchard)’도 각광받고 있다. 앵그리 오차드는 ‘사이더(Cider)’라고 불리는 사과 발효주다. 유럽에선 유명했었지만, 보스턴비어컴퍼니를 시작으로 맥주 업체들이 사이더 생산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제2의 크래프트 비어’라고 불릴 정도다. 맥주에 거부감이 있거나, 에일·IPA와 같이 묵직한 맛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술이다.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맥주 캔은 보스턴비어컴퍼니가 중시하는 부분 중 하나다. 맥주는 병맥주가 더 고전적이고 캔맥주에 비해 더 맛있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는 가벼운 캔맥주를 더 선호한다.

미국 경제 방송 CNBC는 지난해 10월 보스턴비어컴퍼니가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병이 아닌 캔맥주 생산량을 늘린다고 보도했다. 코흐 회장은 “캔맥주 사업이 병맥주와 비교해 빨리 크는 경향이 있다”며 “캔맥주는 간편하게 마실 수 있어 점점 더 많은 크래프트 비어 애호가들이 캔에 담긴 맥주를 찾는다”라고 했다.

맥주는 판매 가격에서 용기인 병과 캔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병에서 캔으로 포장 용기가 바뀌면 같은 양의 맥주를 판매하더라도 원가가 더 낮아져 수익성 향상 효과가 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로랑 그란뎃 애널리스트는 “캔은 유리병과 비교하면 제조 비용이 저렴하다. 캔맥주 생산 증가는 매출액 및 순이익 상승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새뮤얼 애덤스 맥주를 생산하는 보스턴비어컴퍼니 공장 입구. <사진 : 블룸버그>

성공비결 3 |
지역 정체성 간직하고 주민과 함께 성장

마이크로브루어리는 인근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입소문을 타면 전국 규모의 회사로 성장할 수 있다. 한국에도 ‘갈매기IPA’로 유명한 부산의 ‘갈매기브루잉’, 상큼한 감귤향이 특징인 ‘제주지앵’ 등이 있다.

반대로 성장 과정에서 지역색을 잃는 경우도 있다. 구스 아일랜드는 시카고에서 성장한 크래프트 비어다. 시카고가 정치적 고향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0년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구스 아일랜드 맥주를 들고 가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에게 선물했을 정도로 이 맥주를 좋아했다. 그러나 구스 아일랜드는 2011년 AB인베브가 인수했다. 지역지 ‘시카고트리뷴’은 시카고에서 수백마일 떨어진 지역의 대규모 설비에서 구스 아일랜드 맥주가 생산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달리 새뮤얼 애덤스의 보스턴 정체성은 지난해 12월 더욱 강화됐다. 미국 프로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가 2018시즌부터 2025시즌까지 8년간 새뮤얼 애덤스를 공식 맥주로 지정했다. 지금까지 공식 맥주였던 AB인베브의 버드와이저를 야구장에서 밀어낸 것이다. 새뮤얼 애덤스는 지난 몇 년간 보스턴 마라톤의 공식 맥주였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와 같은 인기 구단의 공식 맥주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흐 회장은 지역지 ‘보스턴비즈니스저널’ 인터뷰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파트너가 된 것에 대해 “지금까지 펜웨이파크(보스턴 레드삭스 홈구장)에서 새뮤얼 애덤스를 판매해 왔지만, 레드삭스의 이름이나 로고를 사용할 수 없었다. 거대 맥주 회사가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레드 삭스와의 파트너십은 새뮤얼 애덤스뿐만 아니라 모든 크래프트 비어 업체에 혁명적인 사건이다. 새뮤얼 애덤스와 같은 맥주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맥주 업계가 바뀔 것이라는 신호”라고 했다.



야구공 위에 놓인 새뮤얼 애덤스 병맥주. 새뮤얼 애덤스는 올해부터 보스턴 레드삭스의 공식 지정 맥주가 됐다. <사진 : 새뮤얼 애덤스 페이스북>

성공비결 4 |
파티에 가져갈 수 있는 가벼운 맥주도 개발

보스턴비어컴퍼니는 놀라운 성장을 보여줬지만, 2016년엔 실적이 악화됐다. 크래프트 비어 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장 점유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미국 투자정보 회사 모틀리풀은 보스턴비어컴퍼니가 맥주 업계에서 놓인 상황을 ‘미들 차일드 신드롬(Middle child syndrome)’이라고 표현했다. 장남도, 막내도 아닌 중간에 낀 둘째 아이처럼, 경쟁사에 치여 맥주 업계에서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맥주 시장은 대형 맥주 회사가 9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나머지 10%의 시장을 5300개의 마이크로브루어리가 나눠 갖고 있다. 보스턴비어컴퍼니는 10%의 시장에서 최대 규모이지만, 초기보다 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사실이다. 모틀리풀은 “미국 맥주 업계엔 지나치게 많은 제품이 쏟아진다”라고 했다.

또 대형 맥주 회사도 마이크로브루어리가 생산하는 것과 비슷한 개성 있는 맥주 생산에 뛰어들었다. 유명 마이크로브루어리를 인수해 자금력으로 적극적인 판촉 활동을 펼치는 것도 보스턴비어컴퍼니에는 부담이다.

보스턴비어컴퍼니는 대형 주류 업체와 맞서 싸워 맥주 애호가를 뺏어오는 전략을 택했다. 미국에선 AB인베브가 수입하는 벨기에 맥주 ‘스텔라 아르투아’, 세계적 주류 회사 콘스털레이션 브랜즈가 수입하는 멕시코 맥주 ‘코로나’의 수요가 많다. 버드와이저, 쿠어스, 밀러와 같은 미국인들이 많이 마시는 라거와 비교해 독특한 풍미가 있지만, 크래프트 비어와 비교하면 한층 가벼운 느낌의 맛이다. AB인베브와 콘스털레이션 브랜즈에 맞서 싸우는 보스턴비어컴퍼니의 무기는 지난해 출시한 새로운 맥주 ‘SAM ’76’이다. 또 이 맥주는 병이 아닌 캔에 담겨 판매된다.

코흐 회장은 사람들이 파티나 행사에 쉽게 가져갈 수 있는 맥주 만들기를 원했고, 그래서 탄생한 게 SAM ’76이다. 사람들은 크래프트 비어를 생각하면 묵직한 풍미와 강한 쓴맛, 높은 알코올 함량이 특징인 ‘인디아페일에일(IPA)’를 떠올린다. 이런 맥주는 많이 마실 수 없기 때문에 파티에 쓰는 맥주로 선택받지 못한다. 대신 코로나를 마신다. CNBC 인터뷰에서 코흐 회장은 “지금까지 크래프트 비어가 어울리지 않았던 장소와 상황에서 앞으로는 크래프트 비어를 마시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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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브루어리 소규모 맥주 양조장을 뜻한다. 대량 생산 설비를 갖춘 주류 회사와 비교해 설비가 소규모고, 소량으로 맥주를 만든다. 거대 주류 회사는 대중이 보편적으로 좋아할 만한 맥주를 만들고, 가격 경쟁력을 위해 생산 원가를 낮춘다. 마이크로브루어리는 일부 마니아층이 선호하는 독특한 취향의 맥주를 다양하게 생산하고, 실험적인 맥주를 만들기도 한다. 양조장마다 서로 다른 제조법을 사용해 개성이 있는 맥주를 만든다. 마이크로브루어리에서 만든 맥주를 크래프트 비어, 하우스 맥주 등으로 부른다.
라거맥주 발효가 끝나면서 가라 앉는 효모를 사용해 만든 하면발효 맥주의 한 종류. 탄산의 청량감과 깔끔한 맛, 부드러운 목 넘김이 특징이다. 카스(한국), 칭다오(중국), 아사히(일본), 하이네켄(네덜란드), 벡스(독일), 버드와이저(미국) 등이 라거맥주다.
에일맥주 발효 도중 생기는 거품과 함께 맥주통 윗부분에서 만든 상면발효방식의 맥주. 향이 풍부하고 쓴맛이 강한 특징이 있다. 스타우트(Stout), 애비(Abbey), 밀 맥주 등이 같은 방식으로 만든 맥주다.

plus point

‘보스턴 차 사건’의 주역, 새뮤얼 애덤스

미국 독립혁명 지도자 새뮤얼 애덤스. <사진 : 위키피디아>
보스턴비어컴퍼니의 맥주 브랜드 ‘새뮤얼 애덤스’는 미국 독립혁명 지도자의 이름에서 따왔다.

새뮤얼 애덤스(Samuel Adams)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1740년 하버드대를 졸업한 후, 1764년부터 10년간 매사추세츠 식민지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영국 정부의 식민지 과세에 대한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1765년 영국이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각종 증서·증권, 신문·광고·달력 등의 인쇄물에 인지를 붙이라고 강제한 인지조례에 반대하는 항의문을 작성했다. 인지조례는 북아메리카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의 유지비를 충당하려는 목적이었지만, 본국 정부가 식민지의회를 무시한 것이어서 거센 반발을 샀다.

그는 인간의 자연권과 반영(反英) 운동에 관한 많은 팸플릿을 제작했다. ‘혁명의 자식’이라는 혁명 기관을 조직하고 통신위원회를 통해 혁명운동도 추진했다.

또 그는 1773년 12월 16일 일어난 보스턴 차(茶) 사건의 주동자다. 영국 정부는 미국 식민지 상인의 차 밀무역을 금지시키고 동인도회사에 독점권을 부여했다. 본국이 식민지 자치에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분노한 보스턴 시민과 반영 급진파 150명은 인디언으로 분장하고 항구에 정박 중인 동인도회사의 선박 2척을 습격해 342개의 차 상자를 부수고 그 안의 차를 바다로 던졌다. 인디언으로 분장한 150명 중에 새뮤얼 애덤스도 있었다. 미국 독립 후엔 1794년부터 1797년가지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냈다.

새뮤얼 애덤스는 독립운동 지도자이기도 하지만 맥주 양조업자이기도 했다. 그는 보스턴 스테이트스트리트(당시엔 킹스트리트)에 있던 아버지의 양조장을 이어받았다. 맥아(보리를 발아시킨 후 말린 것, 맥주의 주 원료) 제조업자였다는 설도 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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