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나미아시가라에 있는 아사히맥주 가나가와 공장의 바에서 직원이 아사히 수퍼 드라이를 따르고 있다. / 블룸버그

‘수퍼 드라이(Super Dry)’는 아사히맥주의 오늘을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1980년대 부도위기까지 몰렸던 아사히맥주는 1987년 수퍼 드라이를 출시하면서 반전에 성공했다. 1998년에는 일본 맥주 시장 1위에 올랐다. 전성기 시절 수퍼 드라이의 일본 내 판매량은 2억박스에 달했다.

하지만 수퍼 드라이의 전성기는 오래전 끝났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일본 맥주 시장은 포화 상태에 도달한 지 오래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2년 554만㎘였던 일본의 맥주 소비량은 2016년 525만㎘로 줄었다. 수퍼 드라이라고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아사히맥주는 지난해 일본 내 수퍼 드라이 판매량이 9794만박스라고 발표했다. 전년 대비 2% 감소해 1989년 이후 처음으로 1억박스 판매에 실패했다.

주력 제품 판매가 줄었으니 실적도 부진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아사히맥주(아사히그룹홀딩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2조848억엔(약 20조8040억원)으로 2016년(1조7069억엔)보다 오히려 크게 늘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963억7000만엔, 1410억300만엔으로 역시 전년 대비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올해도 아사히맥주가 좋은 실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초 3690엔이던 주가도 5600엔대로 올랐다. 아사히맥주는 주력 제품의 부진을 어떻게 만회한 걸까.


성장비결 1│M&A로 유럽 공략

‘일본 주류업체인 아사히맥주가 인수·합병에 수십억달러를 쓸 준비를 마쳤다.’

아사히그룹홀딩스(아사히맥주의 지주회사)의 고지 아키요시(小路明善) 사장을 인터뷰한 지난해 9월 로이터통신 기사 제목이다. 일본 맥주 시장이 포화 상태인데도 아사히맥주가 고공 성장을 거듭하는 이유를 이 기사 제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지 사장은 “일본 맥주 시장의 성장이 정체돼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지역과 세대를 공략할 필요가 있다”며 “투자 기회만 있다면 얼마든지 큰 규모의 투자도 집행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맥주업체인 벨기에의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 인베브)’는 2016년 9월 세계 2위 업체인 영국의 사브밀러를 인수했다. 2015년 11월 AB 인베브는 1040억달러(약 114조2000억원)에 사브밀러를 인수하겠다고 밝혔는데, 10개월 만에 거래가 성사된 것이다. 사브밀러 인수로 AB 인베브의 세계 맥주 시장 점유율은 30%까지 올랐다.

인수·합병(M&A)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각국 반독점 당국은 AB 인베브의 시장 점유율이 지나치게 커지는 걸 문제 삼았고, AB 인베브와 사브밀러는 보유하고 있던 여러 맥주 브랜드를 팔아치울 수밖에 없었다. 이때 가장 큰 수혜를 입은 회사가 아사히맥주였다.


네덜란드 엔스헤데에 있는 그롤쉬 공장. 아사히맥주는 2016년 그롤쉬를 인수했다. / 블룸버그

아사히맥주는 2016년 말 AB 인베브로부터 동유럽 5개 국가의 맥주 브랜드를 73억유로(약 9조6720억원)에 사들였다. 이때 아사히맥주가 사들인 맥주 브랜드는 체코의 ‘필스너 우르켈’과 ‘코젤’, 폴란드의 ‘티스키에’와 ‘레흐’, 헝가리의 ‘드레허’ 등이다. 같은 해에 아사히맥주는 AB 인베브로부터 페로니와 그롤쉬 등을 3000억엔(약 3조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한 해 인수·합병(M&A)에 쓴 돈만 12조원이 넘었다.

유럽 맥주 브랜드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는 단순히 아사히맥주의 브랜드 라인업을 넓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아사히맥주를 비롯한 일본 맥주는 유럽 시장에서 거의 인지도가 없다. 일본 맥주 수출의 대부분이 한국과 대만·미국·호주로 향할 뿐 유럽에서는 일본 맥주를 찾지 않는다. 아사히맥주는 수출이 아닌 현지 생산으로 유럽 시장을 개척한다는 계획이다. 인지도가 높은 유럽 현지 브랜드를 인수한 뒤, 현지 공장을 통해 아사히맥주를 생산·공급하면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아사히맥주는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하는 대신 중국 시장에서는 발을 빼고 있다. 아사히맥주는 2009년 칭다오맥주 지분 19.99%를 6억6650만달러에 인수하며 중국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세계 최대 맥주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에서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마련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중국 내 반일 정서와 현지 업체와의 경쟁 등 여러 이유로 쉽지 않았다. 결국 아사히맥주는 지난해 12월 중국 푸싱그룹 등에 칭다오맥주 지분 전량을 73억3500만홍콩달러에 매각했다. 처음 인수가보다 3000억원 정도 비싼 가격에 되팔았다.

한유정 BNK증권 연구원은 “아사히맥주는 최근 중국 시장 비중을 줄이는 대신 맥주의 본고장인 유럽 진출에 주력하고 있다”며 “유럽 브랜드를 인수해 주력 제품인 수퍼 드라이를 유럽에서 현지 생산한다는 게 아사히맥주의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가시와시에 있는 니카 위스키 공장에서 직원이 제품을 확인하고 있다. / 블룸버그

성장비결 2│종합 식품 회사로 변신

일본에서는 2000년대 들어 장기 불황의 여파로 맥주를 대신할 새로운 종류의 술이 등장했다. 맥주보다 맥아 함량이 적고 탄산이 함유된 저알코올 술인 ‘발포주’와 맥아를 사용하지 않은 유사맥주인 ‘제3맥주’가 그 주인공이다. 발포주와 제3맥주는 기존 맥주보다 가격이 저렴한데다 맥주 특유의 쓴맛이 적어 일본의 청년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발포주와 제3맥주의 판매량이 전통적인 맥주의 판매량을 위협할 정도로 증가했다. 2016년 기준으로 맥주 판매량이 2억1100만박스였는데, 제3맥주와 발포주는 각각 1억4700만박스, 5700만박스가 팔렸다. 1996년에만 해도 맥주 판매량이 5억4600만박스였고, 발포주 판매량은 2100만박스에 불과했다. 제3맥주는 통계조차 없었다.

아사히맥주는 시장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발빠르게 대응했다. 아사히맥주가 내놓은 제3맥주인 ‘클리어 아사히’는 매년 2000만박스 이상이 팔리며 실적 증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아사히맥주는 알코올도수가 높은 ‘프라임 리치’를 비롯해 계절별로 한정판 클리어 아사히를 출시하며 제3맥주의 선두주자 자리를 지켜나가고 있다.

이외에도 아사히맥주는 소주를 베이스로 탄산과 과즙을 섞은 술인 츄하이 제품 ‘가라구치소주하이볼’이나 와인, 니카 위스키 등 다양한 주류로 판매를 넓히며 수퍼 드라이의 판매 부진을 상쇄하고 있다.

술을 제외한 음료 사업과 식품 사업도 아사히맥주의 성장을 돕고 있다. 미츠야 사이다, 완다 커피 등이 아사히맥주의 주력 음료 브랜드다. 여기에 아사히맥주는 2012년 일본 식료품회사인 아지노모토가 보유하고 있던 음료 브랜드 칼피스를 인수하는 등 음료 사업을 점진적으로 키우고 있다. 덕분에 2013년 1억6000만박스 정도였던 아사히맥주의 음료 판매량은 지난해 2억박스에 가깝게 증가했다.

식품 사업에서는 민트 캔디인 ‘민티아’와 이유식용 식품을 뜻하는 베이비푸드를 중심으로 사업을 키우고 있다. 아사히맥주의 식품 사업 매출액은 2013년 400억엔대에서 지난해 600억엔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다.


Plus Point

“맥아 비율 좀 낮으면 어때”
맥주 정의까지 바꿔준 日 정부

일본 정부가 침체된 맥주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맥주에 대한 정의까지 바꾸고 있다. 원래 일본에서는 맥아 비율이 67%가 넘어야 맥주로 인정했는데, 올해 4월부터는 50%만 넘어도 맥주로 인정하기로 했다. 주류업체들이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개발할 수 있도록 맥주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맥주 종주국인 독일의 경우 100% 맥아를 써야 맥주로 인정하고 있고, 한국은 10% 이상이면 된다.

맥주의 부원료 범위도 확대됐다. 일본 정부는 맥주를 만들 때 쓸 수 있는 부원료를 보리·쌀·옥수수·수수·사탕수수·전분으로 한정했는데, 4월부터는 과일과 향료도 부원료에 포함됐다. 각종 과일에 고수·허브 뿐만 아니라 굴과 다시마·미역·가쓰오부시까지도 맥주 양조에 쓸 수 있게 됐다.

맥주업체들도 정책 변화에 발맞춰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아사히맥주는 이번에 새로 맥주 원료로 인정받은 레몬그라스(레몬 향이 나는 허브)를 사용한 ‘그랑 마일드(GRAN MILD)’를 출시했다. 부드럽고 향긋한 맛이 두드러지는 제품이다. 다른 주류업체인 기린도 감귤 향이 나는 맥주를 선보였고, 산토리도 과일 향이 나는 맥주를 한정판으로 내놨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실시한 주세법 개정도 장기적으로 맥주에 호재다. 일본에서 350ml 캔에 붙는 주세는 현재 맥주가 77엔, 발포주가 47엔으로 맥주에 불리하다. 이에 일본 정부는 맥주 판매를 늘리기 위해 2026년부터 모든 맥주류 음료의 주세를 54.25엔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2026년부터는 맥주에 붙는 주세가 낮아져 가격 인하 효과가 생기는 셈이다.


Plus Point

아사히맥주가 품은 동유럽 최고의 맥주, 필스너 우르켈
라거 맥주의 본고장서 맛보는 ‘논필터’ 맥주

플젠(체코)=이윤정 기자


필스너 우르켈 플젠 공장 지하 창고 내에 있는 오크통. 논필터 맥주가 가득 들어있다. / 이윤정 기자

체코는 1인당 맥주 소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다. 도시마다 독자적으로 생산하는 맥주 브랜드가 있고, 웬만한 식당엔 소규모 맥주 양조장이 딸려 있다. 맥주가 곳곳에 넘쳐 흐르다 보니 가격도 저렴하다. 물보다 맥주를 마시는 것이 더 경제적일 정도다. 맥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체코는 천국이다.

체코 맥주 중에서도 한국인들이 특히 사랑하는 맥주가 있다. 프라하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플젠이라는 도시에서 생산되는 ‘필스너 우르켈’이다. 맥주는 발효 방식에 따라 라거·에일·람빅 세 가지로 나뉘는데, 필스너 우르켈은 라거 맥주의 효시로 꼽힌다.

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필스너 우르켈은 8만8000hl(1hl는 100ℓ)에 달한다. 이는 6년 전인 2011년 수입량 4000hl에 비해 22배 증가한 수준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필스너 우르켈을 모두 생산하는 플젠 필스너 우르켈 공장에 지난 2월 다녀왔다.


탄생부터 현 주소까지 한 번에

플젠 중앙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필스너 우르켈 로고가 그려진 낯익은 간판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이곳에는 필스너 우르켈 팬들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가 마련돼 있다. 매일 영어와 체코어로 진행되는 공장 투어다. 약 100분간 방문객들은 필스너 우르켈의 탄생, 발전 과정, 현 주소까지 모든 것을 속성으로 배울 수 있다. 가격은 1인당 250코루나(약 1만3000원)다.

투어는 방문자센터의 2층에 위치한 역사관에서부터 시작된다. 플젠은 필스너 우르켈이 탄생하기 전부터 수많은 맥주 양조장이 위치해 있었던 ‘맥주의 도시’였다. 플젠의 수질이 굉장히 뛰어났던 데다 전국 각지로 맥주를 실어나르기 편리하다는 지리적 이점도 한몫했다.

그러나 양조장 수가 늘어날수록 플젠의 맥주 품질은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1838년 생산된 맥주는 한 모금도 먹지 못한 채 전량 폐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플젠 시의회는 난립하던 양조장을 모두 정리하고 시립 양조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필스너 우르켈은 그렇게 탄생했다.

필스너 우르켈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밖으로 나가 투어 버스에 올라 공장 안으로 이동한다. 여기서부터는 방문자센터에서 맡을 수 없었던 ‘맥주 냄새’가 가득해 진정 맥주 공장에 왔다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포장라인에 도착하면 세척을 마친 필스너 우르켈의 초록색 병 수천 개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를 본 방문객들이 모두 감탄사를 내뱉을 만큼 장관이었다. 포장라인 구경을 끝내면 생산라인에서 맥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인 보리·홉·물 등을 만져보고 먹어볼 수 있다.

마지막 코스는 필스너 우르켈 공장 투어의 하이라이트, 지하 창고다.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 길을 계속 내려가다 보면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한여름에도 10도 안팎에 불과한 곳이다. 이곳은 1990년대까지도 맥주 저장고로 이용됐지만, 지금은 전통 발효 방식을 보존하기 위해 일부분만 저장돼 있고 실제 출하용은 현대식 저장고에 보관한다. 오크통 안엔 관광객들이 직접 맛볼 수 있는 필스너 우르켈 황금빛 맥주가 가득 들어있다.

여기서 마시는 필스너 우르켈은 세계 어디서도 마실 수 없는,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은 ‘논필터(non-filter)’ 맥주다.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미생물이 모두 살아있어 빛에 비춰보면 시판 맥주와 달리 불투명하고, 톡 쏘면서도 향긋한 맥주 향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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