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캠던에 위치한 아소스 본사. / 아소스

글로벌 패스트패션(fast fashion·최신 유행을 반영해 빠르게 제작, 유통하는 의류) 시장을 주도해왔던 ‘헤네스앤드모리츠 AB(이하 H&M)’가 슬럼프에 빠졌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26억달러(약 2조8028억원)였는데, 이는 전년 대비 14% 줄어든 수준으로 최근 6년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H&M의 주가 역시 현재 143크로나(약 1만7700원·4월 27일 기준)를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2년 전인 2015년 360크로나(약 4만5600원)에 비하면 60% 이상 급락한 수준이다.

잘나가던 패스트패션 공룡 H&M이 고꾸라진 것은 ‘디지털 경쟁’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H&M의 문제는 디지털 시대 적응이 너무 느렸다는 점”이라며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H&M은 매장 수를 10~15%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고 말했다. 유통업계가 매장 수를 줄이고 온라인에 주력하는 사이에도 H&M은 매년 세 자릿수의 매장을 신설해왔다. 지난해에만 388개 매장을 새로 열었고, 올해 역시 390개 매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H&M이 양적 성장에 매몰돼 있는 사이, 신흥 패스트패션 업체들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영국 ‘아소스(ASOS)’가 대표적이다. 아소스는 오프라인 매장을 과감히 포기하고 온라인에만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아소스 모델은 시장에 통했다. 연간 매출은 2013년 7억6940만파운드(약 1조1579억원)에서 지난해 19억2360만파운드(약 2조8945억원)로 150% 성장했다. 옥션·지마켓을 운영하는 한국 1위 온라인 쇼핑 업체 이베이 코리아(9519억원)의 3배에 달한다. 아소스의 영업이익 역시 같은 기간 5450만파운드(약 821억원)에서 7960만파운드(약 1198억원)로 46% 늘었다. 닉 베이튼 아소스 최고경영자(CEO)는 4월 “올해 매출 성장 전망치를 30%에서 35%로 상향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성장비결 1│트렌드를 읽는 힘

아소스의 시작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소스 창업자 닉 로버트슨은 당시 제품을 방송 프로그램에 노출시켜 광고하기를 원하는 광고주와 방송국을 연결해주는 중개업체 ‘엔터테인먼트 마케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로버트슨은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 나온 소품 조명을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느냐는 소비자의 문의 전화가 방송국에 빗발쳤다는 기사를 접했다. 로버트슨은 여기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분야를 패션으로 좁혀, 연예인들이 미디어에서 입었던 옷들을 판매하는 것이다. 아소스의 풀 네임이 ‘As Seen On Screen(스크린에서 본 것처럼)’인 것도 이 때문이다.

로버트슨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틈새 시장을 정확히 겨냥했다. 제품마다 연예인 이름을 붙여 누가 입었던 옷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케이트 모스의 둥근 금속 장식이 박힌 벨트’ ‘기네스 펠트로의 주름 장식이 있는 드레스’ 등이다. 또 단순히 연예인이 입었던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은 비슷하면서도 비교적 저렴한 제품들을 판매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창업 1년 뒤, 아소스는 영국 타임스의 일요일판 신문인 ‘선데이 타임스’가 선정한 ‘최고의 트렌드세터(시대의 풍조나 유행을 이끄는 사람 혹은 기업) 상’을 수상했다.

사이트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로버트슨은 단순히 연예인 패션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성장 전략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미디어에 나왔던 옷을 포함해 더 많은 종류의 옷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2003년, 당시 소비자들이 As Seen On Screen을 ‘ASOS(아소스)’로 줄여 부르고 있었던 점에 착안해 이름을 아소스로 바꾼 것도 사이트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아소스는 연예인 패션 따라하기 콘셉트를 완전히 버리고 패스트패션 업체로 거듭났다. 현재 아소스는 약 8만5000개의 제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주 3000개 이상의 새로운 옷들을 출시하고 있다.



아소스 홍보 모델들. 다양한 인종, 체형의 모델들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아소스

성장비결 2│2주 안에 끝내는 제작 시스템

자라·H&M 등이 꽉 잡고 있었던 패스트패션 업계에서 아소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디자인에서 판매까지 걸리는 시간, 즉 ‘리드타임(lead time)’을 획기적으로 줄인 점이 유효했다. 아소스의 리드타임은 평균 6주인데, 이는 아소스 자체 제작 상품이 아닌 일반 브랜드 제품을 가져오는 데 최대 8주가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소스 자체 제작 상품만 따져보면 리드타임은 2주로 확 줄어든다. 전체 제품 중 아소스 자체 제작 상품은 60%에 달한다.

반면 패스트패션 업계 기존 강자인 자라의 경우 평균 5주가 걸린다. 2주 만에 나오는 제품도 있지만, 이는 기존에 나왔던 상품이나 인기상품을 재주문할 경우에만 해당한다. H&M은 더욱 느리다. 짧게는 수주, 길게는 6개월까지도 리드타임이 소요된다. 기존 패스트패션 업체들에 비해 리드타임이 현저히 짧다는 점에서 아소스는 ‘울트라 패스트패션’이라고 불린다. 

아소스가 리드타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 기반이기 때문이다. 자라·H&M과 달리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오프라인 매장에 제품을 일일이 배달할 필요가 없다. 아소스는 전 세계에 있는 8개 물류창고로 바로 배달하면 된다. 각 매장의 재고 부족을 염려해 처음부터 많이 찍어낼 필요도 없다. 아소스는 다양한 디자인을 소량으로 먼저 출시한 뒤, 온라인 판매율, 클릭 수 등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소비자 반응에 따라 신속하게 재주문할 수 있다.

아소스는 이 방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신상품을 출시하면서도, 재고 보유 부담 없이 물량 부족 현상을 겪지 않고 있다. 최근 H&M이 350억크로나(약 4조5000억원)어치의 재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아소스 제작 시스템 역시 리드타임을 줄여주는 요인이다. 만드는 데 2주밖에 걸리지 않는 아소스 자체 제작 상품들은 모두 영국에서 만들어진다. 터키·모리셔스 등에도 아소스 공장이 있지만,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들은 최소 4주 이상 소요된다. 이 때문에 아소스는 최근 “영국 내에서 제작하는 제품 비율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소스는 다양한 분야의 협력업체를 최대한 많이 보유하려고도 한다. “다양한 측면의 소싱 및 공급 체인을 확보해 고객이 원할 때 원하는 스타일을 신속하게 생산하기 위해서”다. 아소스에 제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는 현재 771곳이다.


성장비결 3│경쟁사와 차별화된 모바일

아소스는 남들보다 먼저 온라인에 눈을 떠 성공한 만큼, 시시각각 변하는 기술 환경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소스가 “우리는 패션 회사지만 기술 회사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아소스는 앞으로 2년간 최대 2억5000만파운드(약 3773억6000만원)를 인프라와 기술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매출의 10%가 넘는 금액이다.

아소스가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모바일이다. PC보다 모바일을 통해 아소스에 접근하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소스 고객 중 70.3%가 모바일로 접속한다. 아소스는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쇼핑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제품 사진을 손가락으로 톡 치면 바로 확대되는데, 이를 두 손가락으로 계속 확대해보면 모델의 팔에 돋은 닭살까지 보일 정도로 자세하게 원단을 확인할 수 있다. 모델이 해당 제품을 착용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영상에서는 걸을 때 치맛단이 얼마나 휘날리는지, 가만히 걸어갈 때 셔츠 옷매무새가 어떤지 등 사진으로 볼 수 없었던 점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자라·H&M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능이다. 현재 아소스 앱을 다운로드받은 고객은 1000만명을 넘어섰다.

모바일 환경 개선 작업 외에도, 아소스는 다양한 유통 채널을 선점하기 위해 다각적인 기술을 쇼핑 환경에 접목하려고 한다. 가상현실(VR)이 대표적이다. 아소스는 VR 업체 ‘트릴레니엄’을 후원하고 있는데, 트릴레니엄은 매장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VR을 통해 쇼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트릴레니엄의 VR 헤드셋을 끼고 발을 쳐다보면 원하는 신발을 신어볼 수 있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보다 정교한 제품 추천 등을 위해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아소스는 “고객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새로운 옷을 구입하는 데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며 기술 개발에 나서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소스 플러스 모델. / 아소스

성장비결 4│소비자 친화 정책

아소스는 전 세계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할 경우 전 세계 무료배송’이 대표적이다. 해외 제품의 경우 비싼 배송료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는 고객들이 많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한국의 경우 20파운드(약 3만1800원) 이상 구매할 경우 무료배송이다. 그 이하로 구매할 경우 배송료 3파운드(약 4500원)를 내야 한다. 다만 무료배송인 만큼 물건을 받아보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은 각오해야 한다. 4월 26일 기준 구매 완료된 제품은 5월 17일까지 배송돼 최대 21일 걸린다. 아소스는 느린 배송을 원치 않는 고객들을 위해 ‘특급 배송’ 제도 역시 운영하고 있다. 가격은 한국 기준 20파운드이며, 배송 소요 기간은 7일 이내로 짧아진다.

모델같이 마른 사람들만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닌, 다양한 체형의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을 판다는 점도 소비자들이 아소스를 찾는 이유다. 한국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대부분 스몰(S)·미디엄(M) 두 사이즈만 판매하고 있다. 또 미디엄 사이즈의 경우 66 사이즈 이상은 입을 수 없을 만큼 작다. 그러나 아소스는 마른 사람은 물론 플러스 사이즈, 임산부 등 다양한 체형의 모델에게 옷을 입힌다. 모델 사진에 포토샵을 하지 않는 점도 아소스가 고객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소스 수영복 사진을 보면, 모델들은 하얗게 갈라진 튼 살이나 울퉁불퉁한 셀룰라이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소비자 친화 정책에 힘입어 아소스의 고객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년간 한 번 이상 아소스 제품을 구매한 ‘활동 고객’은 2013년 710만명에서 지난해 1540만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에만 15억명이 아소스를 방문했으며, 같은 기간 아소스의 배송 횟수는 4960만건에 달한다.


Plus Point

“미셸 오바마도 입었다”
10만원짜리 아소스 원피스


아소스의 빨간 체크 원피스를 입은 미셸 오바마.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는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패셔니스타다. 미셸 오바마가 입는 의상은 순식간에 완판되고, 그가 입는 옷만 모아 소개하는 어플까지 출시될 만큼 그녀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모든 의류 브랜드들은 그녀의 간택을 기다린다.

그런 미셸 오바마가 아소스의 원피스를 입었다. 대통령 재선 기간이었던 지난 2012년 11월, 미셸 오바마는 민소매의 빨간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원피스의 가격은 93.34달러(약 10만원). 영부인이 입기엔 다소 저렴하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미셸 오바마는 개의치 않았다. 허리엔 파란 벨트를 착용해 포인트를 줬다. 당시 아소스 대변인은 “사실 이 원피스 스타일은 3년 전에 나왔지만, 잘 팔리지 않았었다”며 “미셸 오바마가 입은 직후 바로 완판됐다”고 말했다.

미셸 오바마의 원피스를 따라 산 이들은 일반인뿐만이 아니다. 할리우드 배우 제시카 알바는 프리미엄 기저귀를 판매하는 업체의 홍보 행사에서 이 원피스를 입었고, 당시 뉴욕 시장 후보였던 앤서니 위너의 아내이자 힐러리 클린턴의 최측근 비서였던 후마 아베딘 역시 남편의 선거 유세에서 같은 원피스를 착용했다. 미국 패션지 ‘패셔니스타’는 미셸 오바마 등이 아소스 원피스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아소스 원피스는) 저렴하면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사람들로 하여금 ‘저들도 나와 같구나’라는 친근감을 통해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아소스를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Plus Point

‘친구 같은 친근함’ 이용해 제품 추천


크리스마스에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추천해주고 있는 아소스 인사이더들. / 유튜브

아소스의 제품 수는 약 8만5000종에 달하며, 아소스 자체 상품을 비롯해 아디다스, 나이키 등 판매 중인 브랜드만 850개다. 온라인 쇼핑몰에 제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선택 장애’가 있는 고객들에겐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제품 홍수 속 어떤 제품을 골라야 할지 오히려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아소스는 헤매는 고객들을 위해 제품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 제품을 선택하면 그와 연관된 스타일의 제품을 추천하는 것은 아소스를 비롯한 전 세계 모든 쇼핑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소스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인종, 체형, 성별, 패션 스타일 모두 제각각인 ‘아소스 인사이더’들이 소비자에게 아소스 제품을 직접 추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약 20명 규모의 아소스 인사이더들은 각자의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 계정에 아소스 제품으로 코디한 자신의 ‘데일리룩(outfit of the day)’ 사진을 올린다. 소비자들은 이들의 패션을 참고해 아소스에서 무엇을 구매할지 빠르게 결정할 수 있다. 친구 같은 친근함을 통해 자연스럽게 제품을 홍보하는 것이다. 아소스 인사이더들이 착용한 제품은 아소스 홈페이지 내에 따로 큐레이션돼 있어 소비자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아소스 인사이더 계정을 팔로우한 이들은 112만7000명에 달한다.

이외에도 2009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아소스 매거진’을 비롯해 ‘스타일 피드’ ‘스타일 디스커버리’ 등 여러 채널을 통해 고객들에게 스타일 팁을 주고 있다. 아소스 매거진을 받아보는 고객은 70만명을 넘어섰고, 아소스가 한 달에 제작하는 콘텐츠의 총개수는 6만건 이상으로 집계됐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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