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의 무인양품 매장 앞이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 블룸버그

롯데쇼핑이 베이징 지역의 마트·수퍼마켓 점포 21곳을 중국 유통기업 우마트(物美)에 매각했다. 다른 지역의 점포도 현지 유통기업에 매각을 추진 중이다.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에 반발한 중국인들이 한국산 제품과 유통 채널을 외면한 데다, 당국도 소방 규정 위반 등의 표면적 이유를 내세우며 중국 내 롯데마트에 영업 정지 조치를 내린 데 따른 것이다.

롯데쇼핑이 올해 안에 다른 지역의 점포 매각을 마무리하면, 2008년 중국에 진출한 후 11년 만에 철수하게 된다. 그런데 중국인들의 뿌리 깊은 반일(反日) 감정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는 일본 유통업체가 있다. ‘무지(MUJI)’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무지루시료힌(無印良品·이하 ‘무인양품’)’ 브랜드를 운영하는 ‘료힌케이카쿠(良品計画)’다.

무인양품은 1980년 일본의 거대 유통업체 세이유(西友)가 만든 PB(자체 브랜드)로 탄생했다. 1989년 ‘료힌케이카쿠’라는 독립적인 법인이 설립돼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로 본격적인 영업 활동을 시작했다.

무인양품은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상품을 기획, 개발, 제조, 유통, 판매한다. 매장엔 냄비·그릇·수저 같은 주방 도구, 노트·펜·필통 같은 문구류, 셔츠·바지·양말 같은 의류, 침대·테이블·의자 같은 가구, 선풍기·음향기기·조명 같은 가전제품 등 정말 다양한 제품이 진열돼 있다. 인스턴트 카레, 솜사탕, 젤리 같은 식품도 판매한다. 카페나 캠프장 사업도 한다. 전부 7000종이 넘는 제품을 취급한다.

료힌케이카쿠는 2017년 매출액 3795억5100만엔(약 3조7196억원), 영업이익 452억8600만엔(약 4438억원), 당기순이익 301억1300만엔(약 2951억원)을 기록했다.

중국(본토)엔 2005년 상하이 법인을 세우며 진출했다. 2010년 2월 말엔 점포 수가 13개에 불과할 정도로 확장이 느렸지만,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해 올해 2월 말엔 229개의  점포를 갖췄다. 총 419개의 점포가 있는 일본 시장의 절반 수준이다.

매출액도 빠르게 늘었다. 2009년엔 16억7800만엔(약 164억원)이었지만, 2013년에 188억6300만엔(약 1848억원)으로 훌쩍 뛰더니, 2017년엔 688억9800만엔(약 6752억원)을 기록했다. 점포 한 곳당 매출액은 2009년 1억2900만엔(약 12억원)에서 2017년엔 3억엔(약 29억원)으로 증가했다.

중국은 무인양품이 진출한 나라 가운데 매출 1위다. 2위(대만)부터 10위(호주)까지의 매출액을 모두 합쳐도 중국 매출액보다 적다. 료힌케이카쿠 전체 매출액에서 중국 법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9년 1%에서 2017년 18%로 높아졌다.

무인양품은 ‘상표가 없는 좋은 물건’이란 뜻이다. ‘지극히 합리적인 공정으로 생산된 상품은 매우 간결하다’는 생각으로 제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이 정도면 좋다’는 이성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다. 단순하면서 여백이 있는 ‘텅 빈 그릇’과 같은 콘셉트를 지향한다. 서구에선 무인양품 디자인에 대해 ‘와비 사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와비(侘)’란 ‘가난이나 결핍 속에서 마음의 충족을 끌어내는 것’이고 ‘사비(寂)’는 ‘한적함 속에서 더 깊고 풍성함을 깨닫는’ 일본인의 미의식을 말한다. 이런 독특한 면이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져 세계에서 많은 소비자를 팬으로 확보했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인양품은 샤오미(小米)의 제품철학에도 깊은 영감을 줬다. 샤오미는 원래 아이폰과 유사한 디자인의 스마트폰을 만들어 ‘애플 짝퉁’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엔지니어이자 마케팅 책임자인 리완창(黎萬强) 부사장은 그가 쓴 ‘참여감’이라는 책에서 “(샤오미의) 디자인 철학에 가장 영향을 준 것은 (애플이 아니라) 무인양품의 디자인 총감독 하라 겐야(原硏哉)였다”고 했다. 레이쥔(雷軍) 샤오미 회장은 2016년 대만에서 가진 대담에서 “(샤오미는) 과학기술계의 무인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샤오미가 만드는 선풍기 등 일부 가전제품은 무인양품이 만드는 동일한 제품과 디자인이 유사하다.

게다가 중국에선 무인양품의 콘셉트를 모방한 ‘짝퉁’ 브랜드도 나왔다. 한국까지 진출한 미니소(MINISO·名創優品)가 대표적이다. 비슷한 콘셉트와 디자인의 제품을 더 싸게 판매하는 업체가 등장했지만, 무인양품은 여전히 중국에서 빠르게 성장 중이다. 2017년도 중국 매출액은 전년보다 25.4% 증가했다.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무인양품은 대체하기 어려운, 특별한 무언가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무인양품의 중국 최대 점포 ‘상하이 화이하이 755’. 상하이 주요 쇼핑 거리인 화이하이루에 2015년 12월 문을 열었다. / 료힌케이카쿠


성장비결 1│ 반일감정 뛰어넘는 제품 경쟁력

2012년 9월 중국의 주요 도시에선 도요타와 닛산 대리점 유리창에 돌멩이가 날아들어 박살 났다. 주차된 일본 브랜드 자동차를 부수는 사람도 있었다. 일본 대형마트 자스코 수퍼마켓은 약탈을 당했다. 중국 포털 사이트 시나차이징(新浪財經)이 ‘당신은 일본 제품을 계속 구매할 예정입니까?’라고 설문조사한 결과, ‘아니오’라고 답한 사람이 89%로 절대 다수였다. 일본 자동차 업체의 9월 판매량은 전달의 반토막이 됐다.

일본 정부가 같은 해 9월 10일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국유화하자 중국인들이 대규모 반일시위를 벌였고 일본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중국에 진출한 많은 일본 기업이 이때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무인양품은 예외였다. 료힌케이카쿠의 중국 매출액은 2011년도 63억5600만엔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가 일어난 2012년도 91억5200만엔으로 44% 늘었고, 그다음 해엔 188억6300만엔으로 106% 증가했다. 료힌케이카쿠는 2012년도 결산 자료에서 “상반기는 큰 폭으로 실적이 좋아졌다. 하반기는 외교 문제나 상품 납기 지연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운영을 효율화해 영업이익률이 12.1%로 전년보다 3.5%포인트 상승했다”고 밝혔다.

산케이신문 기자 출신의 중국 전문 저널리스트 후쿠시마 가오리(福島香織)는 과격한 반일 데모가 중국을 휩쓸 때인 2012년 10월 중국 현지 분위기를 취재한 뒤 “중국인들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을 한다”고 월간지 ‘보이스’에 기고했다. 그가 광둥성 선전의 한 자스코 매장을 찾아가 보니 외벽 간판을 가린 채 영업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긴장감이 돌긴 했지만, 자스코가 세일 판매를 시작한 첫 번째 주말이어서 내부는 고객들로 붐볐다. 자스코는 다른 대형마트보다 약간 가격이 비싸지만 질이 우수한 제품을 판다. 여성 전용 인터넷 카페 ‘광저우마마’에서 ‘자스코에서 쇼핑하면 매국노’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한 중국 여성은 “물가가 말도 안 되게 올라 서민 생활이 압박을 받고 있다. 30~40위안 하는 유아복을 자스코에서는 10위안에 살 수 있다. 애국하는 본토 기업은 이렇게 할 수 있나? ‘어쩌구 섬(댜오위다오)’은 나와는 관계가 없다”라는 글을 올렸다.

무인양품의 영업이 타격을 받지 않은 이유는 중국이나 서구의 다른 브랜드로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하고 강력한 정체성 덕분이다. 그는 “자라(ZARA)와 H&M에서 쇼핑하는 고객은 스페인 또는 스웨덴적인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다. 처음부터 ‘스페인’ ‘스웨덴’ 브랜드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인양품은 일본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상품을 사면 ‘심플’이라는 일본적 라이프 스타일도 함께 얻게 된다”고 했다.

올해 1월에도 무인양품은 자칫 반일감정 때문에 중국 사업이 어려워질 뻔했다. 무인양품은 자신들이 진출해 있는 국가를 세계 지도 위에 표시한 가구 카탈로그를 배포했다. 그런데 중국의 국가측량지리정보국이 자국 영토라 주장하는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와 남중국해의 섬들이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지도관리조례’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카탈로그 폐기 처분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일본과 중국의 영토 분쟁이 있는 섬이 문제가 됐기 때문에 사건이 커졌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외교 채널을 통해 중국 측에 ‘(중국 당국이 무인양품에 요구한 내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전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중국은 외국 기업의 투자는 환영하지만, 모든 기업은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통일, 법률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일본 기업이 당했던 수난을 생각하면 자칫 큰일이 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료힌케이카쿠 관계자는 일본 언론 ‘데일리신초’에 “많은 중국 소비자들이 무인양품의 팬이다”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중국 선전에 올해 1월 문을 연 ‘무지 호텔’ 객실 내부. / 료힌케이카쿠


성장비결 2│ 중국 최신 트렌드 저격

그렇다면 왜 중국 소비자들은 스스로 무인양품의 팬이 됐을까. 무인양품의 콘셉트가 중국의 트렌드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인터넷판 환구망(環球網)은 올해 2월 ‘불계(佛系) 회사 무인양품의 신(新)소매 개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불계’라는 단어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바이두백과사전’에선 이 단어에 대해 ‘의도적으로 삶의 의미를 내려 놓는 것. 인터넷 유행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과는 의미가 다르다. 예를 들어 ‘불계 남자’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신의 관심사와 취미가 다른 것보다 항상 우선하고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에 따라 진행되기를 원하고 △여자에게 많은 시간과 돈을 쏟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많은 단어에 ‘불계’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유행어가 됐다. ‘불계 청년’은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 평화롭고 무관심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이를 말한다.

최근 트렌드가 된 조용한 삶의 방식은 무인양품의 콘셉트와 같다. 두꺼운 팬층 덕분에 올해 1월 료힌케이카쿠는 무인양품의 감성을 담은 ‘무지 호텔’을 선전에 열었고, 여름엔 베이징에도 문을 열 예정이다. 중국에선 무인양품의 콘셉트를 담아 단순한 조리법으로 재료 본래의 맛을 살린 레스토랑 ‘무지 디너’도 운영한다.


성장비결 3│ 마윈이 말한 ‘신소매’ 도입

신소매란 온라인과 오프라인, 물류를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유통 모델이다. 2016년 10월 중국 항저우에서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이 IT 개발자들에게 한 강연에서 “앞으로 전자상거래라는 말은 사라질 것이다. ’신소매‘라는 개념이 그것을 대체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등장했다. 전자상거래로 시작한 알리바바는 알리페이를 통해 결제망을 선점했고, 차량공유, 배달 등 각종 오프라인 서비스로 진출해 시장을 장악했다. 오프라인 매장을 디지털화하고, 첨단 기술과 빅데이터, 인공지능으로 물류를 개선해 모든 재화가 인터넷상에서 소비되면서 재고관리를 일원화하는 것이 신소매의 개념이다. 고객의 취향과 구매력을 실시간으로 데이터화해 제품과 물류체계를 효율화할 수 있다.

알리바바는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면 1시간 안에 각종 소비재를 받을 수 있는 편의점을 열었고, 톈마오성셴(天猫生鮮)은 뉴질랜드·노르웨이·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수입한 신선 식품을 산지에서 중국 11개 도시까지 48시간 이내에 배송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료힌케이카쿠도 알리바바의 신소매 로켓에 올라 탔다. 무인양품은 2016년 말 알리페이 회원 시스템과 제휴를 맺었고, 신소매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덕분에 알리페이 회원의 무인양품 구매가 크게 늘었다. 특히 세일 기간에는 전체 매출에서 알리페이 회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80%를 웃돌 정도가 됐다.


올해 1월 중국 선전에 문을 연 무인양품 점포 내부. / 료힌케이카쿠


성장비결 4│ 합리적 가격으로 문턱 낮춰

제품을 사고 싶어하는 팬층이 두껍다면, 성장을 방해하는 건 반일감정이 아니라 비싼 가격일 수 있다. 중국 현지 브랜드도 저렴한 가격은 유지하면서 품질과 디자인은 놀라울 정도로 개선됐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미니소’도 무인양품·유니클로·다이소를 적절하게 섞은 듯한 콘셉트로 소비자를 파고들고 있다. 중국 현지에 짝퉁 업체가 등장하면 오리지널 업체는 영업에 타격을 입기 쉽다. 중국 언론 ‘베이징상보(北京商報)’도 지난해 “최근 미니소 같은 저렴하면서 디자인이 뛰어난 경쟁 업체가 대두해 무인양품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원래 PB 브랜드로 시작한 무인양품은 일본에선 ‘합리적인 가격에 우수한 품질’이라는 이미지다. 그러나 중국에선 ‘일본산’이라는 프리미엄 이미지에 힘입어 고가격 정책을 썼다.

료힌케이카쿠 중국 법인은 지난해 8월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중국 시장에서 집중적으로 판매할 가구는 종전보다 67%, 디지털 제품은 21%, 건강미용 제품은 24%씩 가격이 인하됐다. 중국에 진출한 후 7번째 가격조정이다. 료힌케이카쿠는 가격 인하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에서 수입하는 상품을 줄이고 재료비를 낮췄다. 중국 점포가 빠르게 늘어 규모의 경제를 갖추게 된 것도 도움이 됐다. 덕분에 중국에서 다른 업체와 경쟁이 심한 제품의 가격을 큰 폭으로 낮출 수 있었다.


Keyword

무인양품

료힌케이카쿠의 브랜드 무인양품은 일본어로는 ‘무지루시료힌(無印良品·Mujirushiryohin)’이라고 읽는다. 무지루시(無印)는 ‘브랜드가 없다’, 료힌(良品)은 ‘품질이 좋은 제품’이라는 뜻이다. 즉 ‘상표가 없는 좋은 물건’이라는 의미다. 영어로는 ‘no-brand quality goods’라고 번역한다. 이름 그대로 제품 디자인에 브랜드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무인양품은 브랜드명의 첫 알파벳 네 글자를 따 와 ‘무지(MUJI)’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진출했다. 일본 이외 지역에선 이 이름이 주로 사용된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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