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중국의 백주. 사진 조선일보 DB
다양한 중국의 백주. 사진 조선일보 DB

“중국 바이주(白酒·백주) 중 ‘연태구냥(烟台古酿·이하 연태)’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이는 알코올 도수가 34%에 불과하고, 백주 특유의 꽃 같은 향취도 가격 대비 훌륭한 편이기 때문이다. 역시 한국에서 인기 있는 백주인 ‘공부가주(孔府家酒)’의 도수도 다른 백주에 비해 낮은 39%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손님들이 적당한 도수의 백주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4월 23일 방문한 서울 동작구 대방동 H 중식당 주인의 말이다. 이 식당은 과거 남산 인근에서 수십 년간 영업하다가 이곳에 터를 잡은 지 20년 훌쩍 넘은 노포(老鋪)다. 여기에서는 가장 작은 사이즈(125㎖)의 연태를 1만5000원에 팔고 있다. 화교 3대째를 이어 영업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역 인근의 B 중식당에서도 연태가 단연 인기다. 샤오룽바오(중국식 만두)로 유명한 이 식당은 연태 125㎖를 1만원에 판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중국 백주 중 연태의 인기는 가히 절대적이다. 중국 술은 홍주(紅酒)·황주(黃酒)·백주로 구분된다. 구분 기준은 바로 술의 색깔이다. 홍주는 와인 등 과실주고, 황주는 노란빛이 도는 곡물을 원재료로 하는 발효주다. 백주는 오곡을 발효시킨 후 휘발시켜 만든 증류주다. 백주는 알코올 도수가 가장 높다. 고량주는 원래 수수(고량·高粱)를 원료로 하기 때문에 고량주(高粱酒)라고 하지만, 연태는 ‘고법진양(古法陣酿)’이라는 독창적인 제조 방식을 고수해 이름이 다르다. 식당에서 흔히 연태구냥을 연태고량주라고 부르지만 사실 틀린 표현이다.

최근 중국 식문화가 다양해지면서 백주의 유통망이 중식당을 넘어 대형마트와 편의점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오타이(茅台酒)·수이징팡(水井坊·수정방)·우량예(五粮液) 등 고급술부터 상대적으로 저렴한 연태와 이과두주(二鍋頭酒) 등 중국 백주가 지난해 국내 주류 시장에서 매출액 기준 7%를 점유하고 있다. 백주 중 연태의 시장 점유율은 50%로 압도적인 1위다. 최근에는 양하대곡(洋河大曲) 등의 백주도 중식당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대형마트로 진출했다. 그러나 연태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연태의 성공 비결을 짚어봤다.


비결 1│짝퉁 없는 높은 가성비

복수의 주류 업계 및 요식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우선 연태는 ‘짝퉁(이미테이션)’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인기 비결로 꼽힌다. 이는 마오타이, 수이징팡, 우량예 등 고가의 중국 백주와는 다른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1984년부터 짝퉁 백주를 몰아내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해결은 요원하다. 고급 백주에 대한 수요가 넘쳐 진짜·가짜를 가리지 않고 잘 팔리기 때문이다.

특히 마오타이는 인기가 많아 춘절(중국의 설날) 등 명절이 되면 가격이 폭등한다. 지난해 춘절에는 마오타이 한 병이 2000위안(약 34만원)까지 뛰었다. 이는 평소(1200위안)보다 70%나 폭등한 것이다. 이렇게 비싼 마오타이 가운데 진품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생산량으로 어림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진품 마오타이의 연간 생산량은 대략 20만t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중국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는 마오타이는 연간 200만t 이상이다. 약 90%가 짝퉁이라는 추산이 가능한 셈이다.

이에 비해 연태는 중국 현지에서도 서민과 중산층이 즐길 수 있는 ‘보급형’ 백주다. 이에 따라 짝퉁을 만들어도 단가가 맞지 않기 때문에 애초 가짜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한 중식당 사장은 “한국에서 믿고 마실 수 있는 술이 바로 연태”라고 단언했다. 한 주류 업계 관계자는 “연태는 비싼 술이 아니어서 가짜 술을 만들어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연태는 현재 500ml 한 병 기준, 국내 마트에서 1만5000~1만7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같은 크기를 중국식당에서는 3만~6만원 정도에 판다. 소매가 기준, 중국 현지 가격은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중국에 체류하는 한 기업인은 “중국 술은 오히려 너무 싼 것도 짝퉁이 있을 수 있어 위험하다”면서 “한 병에 70~300위안(약 1만1000~5만1000원) 정도의 제품을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구입하는 것이 안전하다”라고 말했다. 한 주류 업계 임원은 “연태는 백주 중에서는 저가이기 때문에 가성비가 높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비결 2│국내 화교 출신지의 술

연태는 서해 건너 산둥반도 북쪽에 있는 옌타이(烟台·연태) 지역이 원산지다. 그리고 이곳은 한국 화교의 주요 출신지다. 다른 국가의 화교와는 다르게 한국 화교는 한반도와 가까운 산둥성 출신이 대다수다. 과거 한국전쟁이 끝나자 화교들은 생업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상업을 포기하고 요식업에 주력했다. 서울 연희동과 연남동에는 화교가 많이 살고 있고, 지금도 화교 2세 또는 3세가 운영하는 중식당이 많다. 화교는 과거 한국에 중식 문화를 들여온 장본인이다. 이들이 고향에서 즐겨먹던 연태가 국내 중국집을 통해 널리 보급됐다.

그런데 가장 유명한 연태구냥은 2003년 처음으로 국내에 수입됐다. 제조사는 와인으로 유명한 중국 옌타이장유공사의 자회사인 산둥옌타이양주유한공사다. 국내 독점 수입사는 대전에 있는 인창무역이라는 회사다. 이 회사에 따르면 연태는 매년 평균 30% 수준의 매출액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168억원, 영업이익은 14억8261만원이었다.


비결 3│한국인이 선호하는 낮은 도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맛과 향이다. 연태의 알코올 도수는 34%로 다른 백주에 비해 낮다. 일반적인 백주의 도수는 40~50%다. 국내에서는 최고 70%의 백주도 판매되고 있다. 한 중식당 관계자는 “연태는 중국 술 특유의 향이 적당하고 뒷맛이 깔끔해 한국인 취향에 잘 맞는다”고 했다. 연태는 더 낮은 도수의 소주보다도 숙취가 심하지 않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같은 양을 마셔도 그다음 날 아침이 소주보다는 개운하다는 것이다. 두통이 적다는 평가도 나온다. 물론 너무 많이 마시면 연태건 소주건 똑같다. 술은 주량껏 마셔야 한다.


비결 4│다양해지는 중식 문화

날로 다양해지는 중식 문화의 영향도 있다. 짜장면과 탕수육 등 한국식 중식 문화에 이어 최근에는 대중화한 양꼬치를 지나 훠궈, 마라탕, 메로머리탕 등 새로운 중식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음식과 술은 바늘과 실의 관계인 만큼 이런 상황은 시장 점유율 1위 제품 입장에서 보면 유리한 셈이다. 한 요식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 양꼬치, 마라탕, 훠궈 등 중식 문화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중국 술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라며 “먼저 진출했던 중국산 맥주 칭따오와 하얼빈 등이 시장 안착에 성공하자 현지 백주 업체들이 잇따라 한국에 진출하고 있다”고 했다.


도전 직면한 연태

한편 연태는 ‘1위의 숙명’인 경쟁자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중국 동포가 밀집한 서울 대림동에서는 연태보다 가격이 저렴한 ‘문등학(文登學·250㎖ 기준 대림동 수퍼 소매가 약 5000원, 연태는 약 8000원)’을 추천하는 상인들이 적지 않다. 이 술은 원산지와 도수가 연태와 비슷한데 향이 조금 더 강하고 여운이 오래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백주 애호가는 “연태는 국내 보급이 오래된 덕에 국내 거주하는 중국인과 한국인이 두루 즐기는 편”이라며 “문등학은 후발 주자지만 중국 동포, 주재원, 특히 유학생들이 향취가 비슷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장점 덕분에 선호한다”고 했다.

대형마트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공부가주·이과두주·우량예·양하대곡 등의 백주가 중식당에서의 수요에 힘입어 최근 대형마트 등 가정용 채널에서도 판매량을 늘려가고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백주의 세계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상황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8월 700억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백주 제조법을 연구하는 전문대학을 세웠다.

김문관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