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주요 일간지 1면 하단에 농협중앙회 노조의 ‘정부 주도 일방적 농협 신용·경제 사업 분리 절대 반대’란 광고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농협 노조는 광고를 통해 ‘현재 농협은 은행 업무에서 수익을 내어 그 자금으로 우리 농민과 소비자인 국민을 위해 경제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며 ‘만약 농협의 신용·경제 사업이 분리되면 2개의 회사가 별도로 설립되어 은행에서 벌어들인 돈은 더 이상 농민과 소비자를 위해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협은행에서 번 돈이 출자자인 주주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신토불이 우리 농산물 대신 값싼 수입 농산물이 넘쳐나게 될 것이란 내용이다. 농협 노조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만에 갑자기 2007년 법률에 의해 확정된 기존 내용들이 전부 무효화됐다”며 “신·경 분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등 외압에 의한 불도저식 방식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농협 2차 개혁의 핵심인 신·경분리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뜨거운 공방전’을 들여다 봤다.

농협 신·경 분리 ‘뜨거운 공방전’

농민 이익 ‘같은 명분’

시기·자금 ‘딴 목소리’

금융 부문과 유통 부문을 분리하는 '신·경(信經) 분리'를 핵심으로 하는 '2단계 농협 개혁'이 시험대에 올랐다. 농협은 10월 내에 자체 신·경 분리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입장을 버리고, 올해 안에 농업협동조합법 등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신·경 분리를 서두르겠다는 정부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당초 농협은 10월 말까지 분리안을 제출하라는 정부 입장과 달리, 11월 말쯤 자체 분리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농식품부) 관계자는 "농협중앙회는 물론 농민단체와 학계 등의 의견을 충분히 모아 법안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2단계 농협 개혁은 정부의 바람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농협 노조는 10월17일 과천 집회를 시작으로 '막무가내식 신·경 분리'에 반대하면서 강한 투쟁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각계각층 인사들이 십 수 년간 논의한 끝에 도출한 2017년 신·경 분리안이 국회에서 확정됐는데, 이를 1년 만에 뒤엎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농협의 신·경 분리 문제는 농협의 자율적인 판단과 책임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농협은 지난해 전임 회장들의 비리가 연이어 불거지면서 안팎으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았다. 공정위·국세청·금감위·농식품부 등으로부터의 전 방위 감사도 이뤄졌다. 말 그대로 농협 탄생 이래 최대 위기였다. 외부 압박으로부터 시작된 농협 개혁의 화살은 먼저 최원병 중앙회장부터 겨누었다. 중앙회장의 힘을 빼는 것으로부터 개혁작업이 출발한 것이다.

최 회장은 올 초 인사권·연임 등 거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했다. 선출직 회장으로서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고 농협 안팎에선 평가한다. 지난 2007년 12월 출범한 최원병 호(號)는 취임 초기부터 강도 높은 농협 개혁을 주장해 왔다. 그는 특히 농협의 뿌리 깊은 인사 청탁 관행에 쐐기를 박았다. 인사 청탁을 한 직원 107명에게 우편으로 경고장을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엔 또 전무와 신용 부문 대표, 조합감사위원장 등 핵심 3인방을 동반 퇴진시키는 깜짝 인사도 단행했다. 농협 안팎에선 이와 관련해 "옛 인물로는 환골탈태의 개혁을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뇌부부터 대폭 물갈이한 것"이란 분석이 흘러 나왔다.

각종 농협 관련 비리와 잡음들이 중앙회장에게 집중된 막강한 권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최 회장은 인사권을 포함한 중앙회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1단계 농협개혁안을 선뜻 수용했다. 이에 따라 지난 6월 초 통과된 농협개혁법안에서 회장 간선제와 이사회 기능 강화 등 1단계 개혁 내용이 확정됐다(시행 개시일은 2009년 12월10일). 올 초 단행된 임직원들의 급여 삭감도 농협 개혁의 연장선에서 실시된 것이라고 농협 관계자들은 말한다. 임직원들은 전년 대비 평균 15~20%씩 급여가 줄었다. 농협 측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올 상반기 직원 인건비가 1000억원 정도 절감됐다"며 "절감된 인건비로 농업인 지원과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일자리 나누기에 활용했다"고 밝혔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서도 하반기 정규직 신규 채용 인력을 200명까지 늘리는 것도, 농협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농협은 올 초 4개 자회사 대표를 처음으로 공채를 통해 외부 전문가로 임명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농협은 현재 25개인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청산·매각·통폐합해 16개로 줄이기로 했다

조기 시행은 조직 수술 '면피 용?'

1단계 농협 개혁에 뒤이은 올 하반기 2단계 농협 개혁은 '신·경 분리'에 집중돼 있다. 농협중앙회에 합쳐져 있는 신용 사업과 경제 사업을 쪼개는 신·경 분리는 농협의 지배구조 개편에 이은 2단계 농협 개혁의 핵심으로 꼽힌다. 신·경 분리 문제는 농협이 신용 사업을 확장하면서 본래 기능인 경제 사업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김영삼 정부 때부터 본격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농협은 신·경 분리 문제에 대해 늘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 지난 2006년 7월 농협은 '신·경 분리 추진계획서'를 농림부에 제출,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는 신·경 분리에 15년 이상 걸리고 7조여원의 추가 자본금이 필요하다"며 신·경 분리에 소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계획서에서 농협은 "신·경 분리가 신용 사업의 수익력 감소, 교육·지원·경제 사업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농림부는 이 같은 농협의 입장을 반영해, 2007년 3월 농협 신·경 분리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정부의 최종안은 '2017년 경제, 신용, 교육·지원 부문 등 3개 법인으로 분리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정부는 농협이 신용 부문이 충분한 자본금을 축적하고 경제 사업 부문의 자립 기반을 구축하는 데 앞으로 10년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다.

노조가 주장하는 '2017년 신·경 분리안'도 여기에 근거를 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지금까지 농협은 노사(勞使)가 똘똘 뭉쳐 신·경 분리에 반대해 왔다"며 "하지만 지금은 농협 내부에서 노조 외엔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노조가 일간지 신문 광고 등을 통해 신·경 분리 반대론을 대대적으로 펼치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농협 구조개혁추진단 관계자는 "당초 2017년 신·경 분리안은 10년간 매년 8250억원씩 적립한 다음 그걸 자본금으로 만들어서 자체적인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방안이었다"면서 "그러나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 적립에 차질이 생겼고, 이에 따라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농협 신·경 분리 문제를 둘러싼 노사 모습이 180도 달라진 진짜 이유는, 역대 중앙회 회장들이 줄줄이 비리 사건에 연루됨으로써 조직 수술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농협은 신용 사업에서 돈을 벌어 비료 구입비의 무이자 대출 등 농민을 돕는 재원으로 쓰고 있다. 일각에서 신·경 분리가 이뤄지면 신용 부문에서 생긴 이익이 농민에게 환원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하지만 최 회장은 "신용 부문이 분리되더라도 농민 지원은 줄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사업 분리를 통한 이익이 최종적으로는 농민에게 귀결되게 하겠다는 얘기다. 더불어 농협의 존재 목적이 농업·농민·농촌의 회생과 경쟁력 강화에 맞춰져야 하는 만큼, 농협 개혁은 외부의 강압이 아닌, 농협 내부에서 스스로 앞장서는 자율적인 개혁을 하겠다는 게 농협 측 주장이다. '농협의, 농협에 의한, 농협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질병 진단은 대형 병원에서 받더라도 수술 집도는 환자를 가장 잘 아는 병원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지난 6월 청와대에서 열린 농업협동조합법 개정법률 공포안 서명식에서도, 최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지금 농협은 어느 때보다 강한 개혁의지를 갖고 있다"며 "신·경 사업 분리 등 2단계 개혁 작업도 농협과 농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국회와 정부를 설득 하겠다"고 자율적 개혁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하면, 농협은 1183개 조합장들이 모여서 만든 자율 조직이기 때문에 이들을 설득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개혁이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는 게 농협 측 입장인 것이다. "신·경 분리를 조급하게 몰아붙이는 것은 조합원과 조합장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인적단체인 농협의 특성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는 주장이다.

정부,'선입법 후조율'농협 압박

농식품부는 당초 연내에 농협의 신·경 분리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시간표를 짰다. 반면 당사자인 농협은 11월 말쯤에 최종적인 신·경 분리안을 낼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농협이 만든 자체 신·경 분리안을 반영해 정부가 연내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건 물리적으로 어렵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신·경 분리안을 마련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데도 일 진행을 일부러 지지부진하게 해서 결국 옛날처럼 하겠다고 흉내만 내고 끝내려는 심산인 것 같다"며 의심스러워했다.

농협이 개혁에 미지근하고 느린 속도로 움직인다는 비난이 불거지기 시작하자, 농협은 당초 입장을 바꿔 정부 일정을 수용하기로 했다. 농협의 이 같은 전향적인 태도 변화는 "10월까지 농협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정부 단독으로 신·경 분리를 추진하겠다"며 강하게 밀어붙인 농식품부의 '강공 드라이브'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농식품부는 그러나 농협과 이견차가 클 경우 합의안이 아닌 정부안으로 우선 입법예고 한 뒤 추가적으로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어서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

농식품부 내부에서는 정황상 입법예고 이전에 농협과 조율을 마치기에는 물리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입법예고 후 농협과 추가로 조율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신·경 분리와 관련한 개혁 일체는 현재 농협 내 특별 조직인 농협구조개혁단이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농식품부와 농협은 신·경 분리의 핵심인 중앙회 폐지 여부와 분리 방식에 대해 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농협은 중앙회는 브랜드 가치를 감안해 현재대로 유지하고 상호금융중앙금고(조합금고)는 독립시키는 대신 예산권과 인사권만 독립하는 '상호금융 대표이사제'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농협은 금융지주와 경제지주 분리의 경우는 일괄 분리가 아닌 순차적으로 분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타당하다는 쪽으로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농식품부는 중앙회를 해체하면서 농협경제지주회사, 농협금융지주회사, 상호금융중앙금고(조합금고) 형식으로 일괄 전환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농협은 지난 9월에 1박2일 일정으로 '사업구조개편 중앙위원회' 회의를 열고 신·경 분리 이후 농협중앙회의 명칭, 상호금융의 독립 등 5개 쟁점 사항을 논의한 바 있다.

당시 농협은 중앙회 명칭은 브랜드 가치 등을 감안해 현재대로 유지하고 상호금융 부문을 떼어내 연합회를 설립하는 방안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중앙회 안에 존치키로 했다. 대신 상호금융 대표이사를 신설해 독립된 인사·예산권을 주기로 했다. 사업구조 개편의 형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금융지주회사와 경제지주회사를 순차적으로 분리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특히 경제 사업 부문 자회사 등의 수익 사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비수익 사업은 효율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경제 사업의 자립 기반이 갖춰진 뒤에 경제지주로 전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는 사실상 신용 사업을 먼저 분리한 다음에 경제 사업을 떼어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6조원 지원 규모 '뜨거운 감자'

2단계 농협 개혁의 성공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일단 농협이 적극적으로 정부 방침에 부응해 신·경 분리 일정을 앞당기기로 함에 따라 신·경 분리는 탄력을 받게 됐다. 그러나 앞으로 갈 길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신·경 분리의 당위성이나 필요에 대해서는 농협 내부적으로도 상당한 공감대를 확보한 분위기다. 무엇보다 금융 위기로 신용 부문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신·경 분리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최 회장도 10월5일 국정감사에서 "당초 2017년으로 돼 있던 신·경 분리 시기를 왜 바꿨느냐"는 국회의원 질의에 "우리들의 뜻으로 앞당겼다"며 신·경 분리의 자발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큰 틀에선 정부와 농협이 공감을 하고 있지만, 농협중앙회 명칭이나 사업 분리 순서 등 각론에서 엇갈리는 지점이 많다는 점이다. 예컨대 농협개혁위원회는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로 동시에 분할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농협은 금융지주를 먼저 떼어내고 경제지주는 천천히 분리하자는 입장이다.

자본금 지원과 관련한 문제도 걸림돌로 예상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신·경 분리를 하는데 부족한 6조원을 지원하지 않으면 사업 분리가 곤란하다"고 말했다. 신·경 분리의 전제조건으로 정부 지원금 6조원 확보를 요구한 셈이다. 향후 신·경 분리에 필요한 자본금을 산정해본 결과, 총 부족자금이 10조원으로 계산됐는데, 4조원은 내부에서 조달하고 나머지 6조원은 정부에서 조달해 줘야 한다는 근거를 댔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정부의 재정여력상 농협에 대한 정확한 자산실사가 이루어져야 지원 금액을 산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논의 과정에서 정부의 농협 지원 규모는 뜨거운 감자가 될 공산이 크다.

이경은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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