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휴일 국립공원을 찾는 이들의 알록달록한 등산복이 ‘패션가 최고 블루칩’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웃도어 시장이 소비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유례없는 초고속 성장 중이다. 덕분에 약수터에서도, 마트에서도, 공원에서도 눈에 띌 만큼 등산복은 ‘국민 캐주얼’로 자리 잡았다. 불과 3~4년 사이의 급격한 변화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사회적 요인과 독특한 소비심리가 맞물린 결과라고 진단한다. 아웃도어 열풍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신 소비파워 ‘꽃 중년’들의

  

과시욕 ∙ 모방심리가 열풍 주도 

레저활동 즐기는 20 ∙ 30대도 가세…생활패션으로 ‘안착’ 

 #1

출판사의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이기쁨씨(여·26)는 얼마 전 등산복을 구입했다. 등산을 위해서는 아니다. 산책하거나 운동할 때 바람이 잘 통하면서 땀이 금세 말라 활동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취미인 사진촬영을 위해 출사할 때도 안성맞춤이다. 동생도 평소 등산복을 즐겨 입는다. 올해 초 중학교 졸업선물로 받은 노스페이스의 윈드브레이커를 지난봄 내내 걸치고 다녔다. 



이씨의 부모님은 주말이면 멀리 지리산, 설악산으로 향하는 등산마니아로 등산복만 10벌이 넘는다. 이미 여름용 등산복이 각각 2벌씩 있지만 지난 5월 여름용 신상품이 출시되자마자 구입했다. 20대 못지않은 쇼핑 욕구다. 이씨는 “노스페이스, 코오롱, K2, 컬럼비아, 블랙야크 등 국내 시장점유율 1~5위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모두 눈에 띈다”며 “그나마 등산회 멤버들과 비교하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2

전자업체 직원인 신용섭씨(37)는 얼마 전 캠핑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는 원래 등산 외엔 딱히 선호하는 레저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 가족여행에서 펜션예약에 실패한 것이 캠핑에 빠진 계기가 됐다. 야영을 한 뒤로 캠핑 특유의 단란한 분위기에 푹 빠졌다. 동호회에 가입한 것은 회원들에게 캠핑지역과 장비에 관한 정보들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들과 국립공원의 야영지에서 친목을 나눌 수 있는 점도 동호회의 매력이다.



동호회에서 단체로 캠핑을 떠날 경우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회원들끼리 새로 구입한 복장과 장비를 은근히 과시하는 것이다. 샘소나이트 가방이 가득 차도록 여러 종의 아웃도어 의류를 담아 오는 경우는 양반이다. 초보자이면서도 캠핑용 수세식 변기, 휴대용 샤워기, 야외식탁 등 비싼 장비들을 과감히 ‘지른’ 경우도 있다. 신씨는 “원래 초보들일수록 얕보이기 싫어서 무리하게 장비를 구입한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과시욕이 원래 유별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열광적인 반응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2005년 5000억원 규모였던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지난해까지 대략 4조원 안팎으로 무려 8배 가까이 커졌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20개 주요 아웃도어 브랜드의 경우 대부분 연평균 30% 이상의 고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박대영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아웃도어 바이어(MD)는 “소비재 분야에서 경쟁 브랜드들이 모두 호황인 경우는 드물다”며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성장세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만큼 가파르다”고 설명했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특징은 무엇보다 ‘초고속 압축성장’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등산복을 비롯한 아웃도어 의류는 패션업계의 변방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트레킹, 자전거, 등산, 조깅 등 대부분의 아웃도어 레저에서 소비자들이 ‘비싸게 갖춰’ 입기 시작했다. 특히 중요한 품목은 아웃도어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등산용품이다. 산책, 쇼핑 등 일상생활에서도 등산복을 걸친 사람들이 흔하다. 불과 4~5년 사이 급속도로 아웃도어 패션이 생활화된 셈이다. 이는 미국, 독일, 스위스 등 세계적인 아웃도어 시장이 20~30년에 걸쳐 형성된 것과 구별되는 양상이다.



- 지난 5월 주말을 이용해 전남 광주 무등산에 몰려든 인파. 각양각색의 등산장비들이 인상적이다.

초고속 압축성장, 독특한 소비심리의 결과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압축성장은 다양한 사회적 요인의 결과다. 우선 전문가들은 2005년  주5일 근무제의 실시를 결정적인 계기로 꼽는다. 이 제도가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다시 중소기업으로 확대·적용되면서 아웃도어 레저에 동참하는 인구가 늘어났다. 아웃도어 시장의 팽창기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그 전까지 OECD 최장인 연간 2400~2500시간을 일했던 직장인들은 피로감이 극도로 누적된 상태였다. 최석호 서울종합과학대학원 레저경영연구소장은 “외환위기 전후 ‘월화수목금금금’이 일상이었던 직장인들이 탈출구를 만났다”며 “주말마다 레저 행렬이 이어지면서 아웃도어 붐이 일었다”고 설명했다.



직장인들이 가장 먼저 탈출구로 선택한 곳은 산이다. 원래 ‘아웃도어(out-door)’는 실외 스포츠를 통칭하는 단어였지만 국내에선 등산용품과 사실상 동의어로 사용된다. 국내 등산인구는 1500만명으로 국민 3명중 1명꼴이다. 이경무 신세계백화점 아웃도어MD는 “등산복 풀세트의 경우 대부분 200만~300만원대로 비싼 편이지만, 캠핑·카약·요트·승마 등 선진국형 스포츠에 비하면 저렴하다”며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선 나라에선 등산과 마라톤 등 저비용 종목들이 아웃도어 시장을 개척한다”고 설명했다.



주말 산행에서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차려입은 등산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중엔 아크테릭스, 잭울프스킨 등 고가의 수입 브랜드 제품으로 무장한 사람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렇다면 국내 소비자들이 면티와 허름한 바지 대신 굳이 등산복을 갖춰 입고 산행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소비자들의 독특한 소비심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과시욕과 모방심리다. 특히 한국처럼 급격한 산업화를 경험한 나라일수록 두드러지는 소비심리다.



등산복은 원래 선진국에서 수요가 집중되는 품목이다. 고기능성의 첨단소재로 생산되기 때문에 일반 의류보다 고가다. 대표적인 것이 고어텍스로 탐험대나 등반대가 입는 옷의 소재다. 한편 등산을 포함한 레저는 계급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유용한 수단이다. 경제학에서 상류층을 뜻하는 ‘유한계급(leisure classes)’이 ‘레저 소비자’에서 유래했다. 



고가의 여가 장비를 구입하는 것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골프가 대중화되기 전인 1980~1990년대, 골프의류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버디·보기 같은 기본적인 골프 용어조차 모르더라도 타인에게 은연중 상류층 이미지로 비치기 위해서였다. 최석호 원장은 “등산에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법은 비싸더라도 고기능성 옷들을 입는 것이었다”며 “지금은 고어텍스, 쿨맥스 등 고기능성 의류들이 대중화된 상태라 색상과 디자인이 차별화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등산을 비롯한 국내 아웃도어 레저의 특징은 동호회 위주로 활동하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사내 등산회, 동창회가 대표적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국내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면서 레저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급증했다. 이는 등산복을 비롯한 레저용품의 수요가 늘어나는 데 매우 유리한 환경이다.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동호회 회원들끼리 가격과 성능, 선호 브랜드 등 레저용품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구매 동기가 유발된다”며 “한편 이들 사이에서 서로 과시하고 모방하려는 심리가 활발히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 (왼쪽)최근 아웃도어 업체들이 인기 연예인을 동원해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오른쪽)노스페이스 모델인 영화배우 하정우 ∙ 이연희.

동호회 회원들 사이에선 특유의 집단주의 정서도 작용한다. 월드컵 때마다 붉은악마들이 빨간 티셔츠를 맞춰 입는 것처럼, 동호회 회원들끼리 일정 수준 이상의 복장과 장비를 갖춘다는 것이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집단주의 정서는 강력한 소비욕구를 유발한다”며 “10대들 사이에서 노스페이스의 윈드브레이커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0 ∙ 50대 이상 중장년이 아웃도어 품목의 70%를 소비하는 점도 특징이다. 특히 이들 중 1955년~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경우 강력한 트렌드세터로 부상하고 있다. 막강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자신을 위해 투자하기 시작한 세대다. 이주하 코오롱패션산업연구원 교수는 “최근 패션시장에서 20대보다 청바지를 많이 구매하는 연령대가 40?0대다. 그만큼 젊어 보이려는 욕구가 강하다”며 “고기능이지만 분위기는 칙칙했던 아웃도어 의류를 컬러풀한 패션 아이템으로 뒤바꾼 세대”라고 평가했다.



최근 20 ∙ 30대 대학생·직장인들이 아웃도어의 강력한 소비층으로 부상했다. 등산뿐 아니라 여행·사진 등 다양한 야외활동을 취미로 즐기는 세대다. 한 예로 아웃도어 업계에선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이 한창이다. 아웃도어의 간판모델이 허영호, 박영석, 오은선 등 저명한 등산가들에서 2PM(네파), 이승기·이민정(코오롱), 하정우·이연희(노스페이스) 등 톱스타급 연예인들이 뒤바뀌었다. 양문영 코오롱스포츠 마케팅팀 차장은 “소비자들이 아웃도어 의류를 스포츠용품이라기보다 패션 아이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일반 패션시장을 잠식하며 생활복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웃도어 시장에선 전반적으로 자전거·캠핑·카약·요트 등 다양한 레저용품들의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의 시장에서 판매되는 선진국형 레저용품들이다. 등산복을 비롯한 다양한 아웃도어 의류들이 생활화되는 배경이다.



최석호 원장은 “선진국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아웃도어처럼 실용적인 의류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인은 고가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도 아웃도어를 일상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국사회가 선진화됐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 서울 신촌의 현대백화점에서 20대 고객이 아웃도어 용품을 고르고 있다.

 

  Tip. 등산복에 숨어있는 첨단기능

물기 빨리 마르고 항균 ∙ 방취 기능까지

등산복의 핵심기능은 체온유지다. 산악지대의 급속한 기후변화에 몸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해주는 첨단소재들이 원단이다. 한편 재킷과 상·하의 등 등산복은 기능과 사용법을 올바로  알아야 효과가 발휘된다는 지적이다. 산행 시에는 얇은 옷들을 여러 겹 껴입는 것이 체온유지에 중요하며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껴입거나 덧입어야 한다.



등산재킷은 배낭에 휴대하는 제품이다. 돌풍이 불거나 기온이 떨어질 때 꺼내 입는 옷이다. 등산용품에서도 고가에 속하지만 봄·여름 산행에서 더우면서도 과시용으로 입고 있는 것은 피해야 한다. 재킷에는 고어텍스가 널리 사용된다. 그러나 당일 산행이라면 고어텍스의 절반 가격이지만 방풍·투습성이 뛰어난 윈드스토퍼 소재도 적당하다. 여름용 재킷으로는 에어셀 소재가 널리 사용된다.



상의는 피부와 직접 맞닿는 부분이다. 가벼우면서도 물기를 빨리 흡수하고 공기 중에서 금방 마르는 것이 상의용 소재들의 특징이다. 쿨맥스, 드라이플러스, 파워스트레치, 필드센서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개발된 엑스-스태틱과 쿨맥스FX의 경우 항균·방취 기능이 탁월하다. 바지는 촉감이 부드러우면서 신축성이 뛰어난 소재들이 적용된다. 쉘러드라이스킨이 가볍고 내구성이 강한 소재로 각광받는다. 자외선 차단효과를 지닌 코코나, 대나무가 원료로 항균·항취 기능이 뛰어난 텐브로 등이 사용된다. 

 

  Tip. 아웃도어 ‘가격 거품’ 논란

“연예인 동원 과열 판촉”…고가품 위주 마케팅 ‘짜증나’

국내 소비자들의 아웃도어 의류에 대한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아웃도어 제품의 가격이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불만도 제기된다. 아웃도어 업체들의 고가품 위주 마케팅과 일부 수입 브랜드의 ‘가격 뻥튀기’가 도마에 오른 상황이다. 



국내 아웃도어 업체들은 최근 들어 인기 연예인들을 동원해 고가상품 위주로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주력 품목들은 대부분 가격대가 높은 재킷류다. 코오롱스포츠의 경우 인기가수 이승기를 앞세운 고어텍스 재킷을 82만원, K2는 인기배우 현빈을 앞세운 재킷을 72만원에 판매한다. 4~5년 전까지 대부분의 고어텍스 재킷류는 20만원대였다.



양문영 코오롱스포츠 마케팅팀 차장은 “고가상품을 앞세워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은 어느 업체나 마찬가지”라며 “같은 고어텍스 제품이라도 가격은 20만원대부터 매우 다양하게 분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베스트셀러 품목들은 대부분 20만~30만원 내외의 적당한 가격대에 분포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는 코오롱스포츠, K2를 제외하면 거의 해외 브랜드다. 그러나 제품은 대부분 해외 본사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국내에서 기획·생산된다. 최근 아크테릭스, 잭울프스킨, 잠발란 등 수입 고급 브랜드의 제품들이 본국에서 판매될 때보다 지나치게 비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아크테릭스의 경우 고어텍스 재킷의 미국 판매가는 499달러(65만원)이지만 우리나라에선  114만원에 팔린다. 350달러(38만원)인 바지는 62만9000원, 499달러(54만원)인 배낭은 110만원에 팔린다. 국내에서 두 배 가까이 비싸게 팔리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이나 프리미엄 진처럼 해외 직수입 품목이 본토보다 국내에서 2배 이상 비싸게 팔리는 경우는 흔하다”며 “아웃도어 수입업체만 비난할 일이 아니다”고 반론했다.

조석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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