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에게 창업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베이비부머가 창업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무작정 시작할 수도 없고, 자본금이 많은 것도 아니다. 기술을 배워 창업에 성공한 베이비부머를 만나봤다.

송치업 백세마을 대표가 양식 중인 달팽이 사육통을 들어 보이고 있다.

달팽이 키워 3년 만에
억대 매출 올려


송치업 백세마을 대표

대전 장동에서 만난 송치업씨(53)에게서는 아직 도시의 샐러리맨 이미지가 풍겼다. 다만 검게 탄 얼굴이 그가 농사꾼임을 보여준다. 그는 달팽이를 키워 지난해 억대 부농 자리에 올랐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달팽이농장인 백세마을의 지난해 매출은 1억5000만원. 달팽이를 키운 지 불과 2년 만에 거둔 성과다.

그는 3년 전만 해도 잘 나가는 샐러리맨이었다. 1988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해 삼성중공업, 삼성상용차, 삼성카드에서 22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그가 회사에 사표를 던진 것은 2010년 11월.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50대 중반에 퇴직해서 퇴직연금을 받아 나머지 50년을 보내기 어렵다고 봤지요. 인생 2막을 일찍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돈을 버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사실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직업이 바로 40~50대의 사무직입니다. 50대에 퇴직하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기술이 없기 때문이죠. 보통 퇴직금 털어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하기 일쑤잖아요.”

그는 직장 다닐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슬로푸드에서 미래를 찾기로 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슬로푸드에서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늦게 시작하는 만큼 남이 안 하는 틈새시장이 대상이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달팽이였다.

“당시 달팽이 시장은 황폐화된 상태였어요. 건강기능식품으로 한창 인기를 끌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죠. 달팽이를 키우는 농가도 전국적으로 10여 농가에 불과했죠.”

하지만 그가 보기엔 그것이 오히려 기회였다. 달팽이가 건강기능식품보다는 선진국에서처럼 고급 식재료로 쓰이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예상에서다. 달팽이는 고단백, 저지방 식품인데다 비슷한 종류의 고둥이나 소라, 우렁이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는 고향에서 달팽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사를 한지 이틀 후 부친이 농사를 짓던 땅에 달팽이를 키우기 위한 비닐하우스를 짓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저축한 돈 1억원이 밑천이 됐다. 퇴직금은 한 푼도 손대지 않았다.

그는 “시장분석은 신중해야 하지만 방향을 정했으면 좌충우돌하더라도 부딪혀야 한다”며 “실패가 두려워 우물쭈물하다간 결국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양식기술은 다른 달팽이농장을 찾아다니며 배웠다. 2011년 3월 드디어 비닐하우스를 완공하고 분양받은 달팽이 종자를 입식했다. 그런데 입식한 달팽이가 낳은 알에서 부화한 달팽이들이 4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쌓여 있는 죽은 달팽이를 보고 있자니 이렇게 끝나는 게 아닌가 하고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그렇게 무너질 수 없었다.

“다시 책을 들여다보고, 달팽이를 잘 키운다는 농장주가 귀찮아 할 정도로 찾아가 양식 기술을 배웠죠. 달팽이는 스트레스에 예민하고, 환경에 따라 사육방법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농장 환경에 맞게 온도와 습도를 조정하고, 사육통의 바닥재 등을 새롭게 바꿨어요. 그때의 시행착오가 성공의 밑거름이 된 거죠.”

그해 8월부터는 달팽이를 팔 수 있었으며, 11월에는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2012년 4월부터는 없어서 못 팔정도가 됐다. 올해는 매출 3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가 한 달에 생산하는 달팽이는 3t에 달한다. 대부분 식재료로 공급되는데, 식품회사에 맡겨 깨끗이 손질한 달팽이를 공급하는 것이 인기 요인이다.

그만의 달팽이 양식기술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그가 달팽이를 양식하는 기간은 다른 농장에 비해 30% 정도 짧다. 제조업의 생산관리 방식을 접목했기 때문이다. 달팽이 사육통에는 부화일자와 특이사항이 꼼꼼히 적혀 있었다. 달팽이의 월령별로 철저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다. 

그는 올해부터 와송과 개똥쑥을 재배해 판매하고 있다. 와송은 기와지붕이나 바위에서 자라는 기와솔, 바위솔로 불리는 다년생 식물로 항암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연구된 바 있다. 와송은 kg당 3만원에 팔리는 고소득 작물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똥쑥 역시 암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달팽이 진액에 와송과 개똥쑥을 추가해 건강기능식품으로 만들 계획이다.


사육통에서 자라고 있는 달팽이. 어린 아이 주먹만한 크기다.




김승규 대표가 점포를 임대한 건물(왼쪽). 시내에서 떨어져 있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김 대표가 커피를 내리며 웃고 있다.

철저한 준비 통해
창업 성공


김승규
커피전문점 아르떼 대표

경북 포항 우현동의 ‘커피 볶는 집 아르떼’는 기업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판을 치는 요즘 맛있는 커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아르떼를 운영하는 김승규씨(58)는 지난해 3월 퇴직하기까지 포스코 포항제철소 설비 정비 분야에서 32년 동안 근무했던 엔지니어였다.

그가 커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퇴직하기 5년 전이었다. “원래 꿈은 화가였어요. 그림을 배우고 있었는데, 전업 작가로 성공하는 것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죠. 지인이 커피를 한 번 배워보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취미삼아 배워볼 요량이었는데 갈수록 커피에 빠지게 됐다. 그가 가장 매력을 느꼈던 부분은 로스팅이었다. 가깝게는 경남 김해의 커피 장인뿐 아니라 일본 교토까지 가서 로스팅을 배웠다. 장인마다 하는 말이 달랐다. 국내에 나온 커피 관련 책자를 섭렵했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해외에서 발간된 학술지와 논문도 20여편을 구해 읽었다.

창업을 하기까진 망설임도 많았다. 특히 그의 아내는 재취업하는 게 어떠냐며 극구 만류했다. 커피전문점이 워낙 많아 성공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땐 참 많이 싸웠어요. 재취업을 하더라도 60대 중반이면 은퇴를 해야 하는데, 그땐 어떻게 할 거냐고 하면서 아내를 끈질기게 설득했죠. 제가 뽑은 커피를 좋아했던 아내가 결국 손을 들었어요.”

사내의 퇴직 후 창업지원 프로그램의 도움도 컸다. 그는 퇴직 1년 전부터 창업의 종류와 형태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해당 업종의 매장을 방문해 경험도 들었다.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했다.

실제 창업을 할 때는 비용 최소화를 우선시했다. 실패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직접 발로 뛸 수밖에 없었다.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포항 시내 안 가본 곳이 없었다. 임대료는 싸지만 목이 좋은 위치를 정하는 데만 6개월가량이 걸렸다. 인테리어 콘셉트도 직접 구상하고, 좋은 자재를 싸게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소품 하나하나에도 발품을 팔았다. 커피를 볶을 수 있는 로스팅 장비는 수소문해 중고를 구입했다. 매장을 오픈하기까지 들어간 비용은 5000만원에 불과했다.

지금은 맛있는 커피로 유명하지만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 1~2개월 정도는 버리는 커피가 더 많았다. 핸드드립 커피(손으로 직접 갈아 내린 커피) 메뉴만 21종류를 구성했는데, 손님이 없어 유효기간이 지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손님들이 없을까봐 걱정도 많이 했죠. 서서히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서너달 지나면서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게 됐죠.”

카페의 규모는 25평 정도로 15평은 카페매장이며, 10평 정도는 로스팅룸과 아카데미 교실로 사용하고 있다. 오전에는 주로 로스팅을 하며, 주중 하루는 아카데미 교실을 운영한다. 그의 아카데미 교실에는 현재 8명이 참가하고 있다. 경주대학교 사회교육원에 개설된 커피 강좌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퇴직 후 창업을 계획한다면 적어도 5년 전부터 경험을 해보거나 실제 몸으로 체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선택한 분야는 전문가 수준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관련된 3개 분야도 알고 있어야 해요. 창업 후 직원을 고용해 운영하려는 것은 좀 위험한 발상이죠. 창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합니다.”




서석두 대표가 벽지를 바르기 전 방습포 작업을 하고 있다.

도배 기술 배워
안정적 소득 확보

서석두
드림토탈인테리어 대표

경기 성남 한 인테리어 공사 현장. 서석두 드림토탈인테리어 대표(58)가 폭이 넓은 도배용 붓으로 몇 번 슥슥 문지르자 도배지가 벽면에 깔끔하게 붙었다. 자신감 있는 손놀림에서 그가 ‘기술자’라는 것이 느껴졌다.

서 대표가 도배기술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1991년 특전사 소령으로 예편한 그는 여러 가지 사업과 직장생활을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가 했던 유통 사업은 외환위기라는 직격탄에 부도가 났고, 모아뒀던 돈은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모두 날렸다. 이후 골프장과 같은 시설에 필요한 대형 보일러를 영업하는 일도 오래 가지 못했다.

“50대 중반에 할 수 있는 일이 아파트 경비뿐이더라고요. 그 일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대학에 다니는 딸에다 대학 입학을 앞둔 아들도 있었는데, 월 80만~100만원 받고는 노후 준비는커녕 생활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죠.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죠.”

그는 기술을 배워야 노후에 그나마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배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처음에는 전문 학원을 찾았지만 수백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부담이었다.

우연히 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에 베이비부머를 위한 직업훈련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9년 3개월 과정을 수료한 그는 자격증을 취득한 뒤 본격적인 도배 기술사의 길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하는 일에 비해 돈벌이가 좋지 않았다. 하루 일당은 7만원 정도였다. 한 동 전체를 도배하는 공사를 맡기 위해선 어느 정도 현금이 확보돼 있어야 했고, 공사를 맡더라도 인건비 건지기도 쉽지 않았다.

그는 결국 창업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일단 영업이 쉽지 않았다. 이사를 하면 으레 사람들은 집수리나 도배를 하는데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이사 수요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이는 협업으로 해결했다. 전기, 보일러, 타일 기술자와 네트워크를 구성해 영업력을 강화한 것. 집수리를 통째로 수주해 각자 전문 분야를 맡는 식이다.

“현장 경험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여러 상황과 맞닥뜨리기 때문이죠. 천장에서 물이 줄줄 새거나 벽면이 곰팡이로 뒤덮인 경우엔 도배만 해선 안 됩니다. 벽에 작은 금이 있어도 이를 메우고 방수포를 먼저 발라야 해요. 모서리를 마무리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요. 처음에는 노하우가 없어서 실수를 많이 해 온갖 불평도 다 들었죠.”

그는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다 끊고 일에만 전념했다. 수많은 고객들의 불만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젠 안정적인 도배기술사로서 자리 잡았다. 한 달 평균 20일 정도를 일하는 그의 연소득은 6000만원 정도다.

그는 나이가 들어 기술을 배워 창업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기술과 이를 통한 직업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배는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같이 교육을 받던 15명 중 창업자는 2명에 불과해요. 모두 힘들어서 포기했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체력이나 정신력이 없으면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체력이나 정신력뿐 아니라 벽지의 색상 같은 최신 트렌드와 소비자의 성향도 잘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요.”

서 대표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한 것이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할 수 있었던 요인이라며 고소득을 올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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