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이 경제를 바꾸고, 경제가 식탁을 바꾸는 시대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식품의 가격 상승은 한 나라의 경제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반대로 경제가 식탁을 흔들기도 한다. 식탁은 관련 산업의 판도를 바꾸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든다.

중국 소비자물가지수는 ‘돼지지수’로 불린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육류인 돼지고기가 소비자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국 소비자물가지수의 식품부문에서 돼지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한다. 전체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면 10%다. 돼지고기 가격에 따라 소비자물가가 오르내린다는 얘기다.

중국의 돼지고기 가격이 미치는 영향은 중국 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사육되는 돼지수는 4억4000만마리에 달한다. 전 세계 돼지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엄청난 식성을 자랑하는 돼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역시 엄청난 양의 사료용 옥수수와 콩이 필요하다. 중국이 곡물 수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국제 곡물가격은 급등한다. 지난해 한때 옥수수 가격이 100% 오른 것도, 콩의 가격이 1년 새 40% 가까이 상승한 것도 중국 돼지 때문이었다.

최근 미국 상품거래 시장에서 고공 행진을 하고 있는 돼지 값도 중국에서 돼지고기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6월 초 시카고상업거래소에서 돈육선물 거래량이 50년 만에 생우 거래량을 제친 것이다. 중국의 돼지가 전 세계 경제를 좌우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중국에서 부자들이 늘면서 쇠고기 소비가 증가해 전 세계 경제가 긴장하고 있다. 2010년 호주산 쇠고기 수입국 중 14위였던 중국은 지난 3월 2위에 올랐다. 중국인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쇠고기 값뿐 아니라 늘어난 소 사육으로 인해 곡물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이처럼 중국인의 소득이 늘어나면서 중국 식탁이 전 세계 식재료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이미 참치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인들의 수요 증가로 인해 최근 참치 등 국제해산물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급등했다. 전 세계적으로 거래량이 가장 많은 해산물 종류 중 하나인 참치 가격은 지난 1년 동안 12% 상승했다. 한때 일본인들이 좌우했던 참치 가격도 이젠 중국이 결정권을 쥐게 된 것이다.


중국인의 소득이 늘어나면서 중국 식탁이 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돼지고기 소비가 증가하면 전 세계 곡물가격이 들썩인다.

중국인 입맛 따라 세계 물가 출렁

우리나라도 중국의 소득증대에 따른 수혜를 입고 있다. 올 상반기 대 중국 농식품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9.5% 증가한 4억2600만달러를 기록했다. 참치·조미김·라면 외에 바나나우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바나나우유는 지난해에만 100억원 이상이 팔렸으며, 올해 수출액은 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는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들을 통해 입소문이 난 데다 중국 내 편의점 시장이 급성장한 덕이다. 특히 수입산 유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

경제가 식탁을 바꾸는 것은 금융위기 이후 부실해진 식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우리나라 식료품·비주류음료 구입비는 가구당 월 평균 31만668원으로 집계됐다. 2008년 34만1472원에 비해 9% 줄어든 금액이다. 특히 건강식품으로 분류되는 생선과 과일, 해조류 등의 소비는 30.9%나 급감했다. 반면 과자류나 빵·떡, 햄·베이컨 등 가공품의 소비는 증가했다.

임달호 보건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불황의 장기화로 인해 비싼 쌀 대신 라면을 사는 식으로 소비가 바뀐 것”이라며 “먹거리 값이 오르면 가계는 지갑을 닫고 씀씀이를 줄이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식탁물가의 불안은 그 자체로는 파급효과가 크지 않다. 그러나 가계의 인플레이션 심리와 맞물리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경기 회복이 미약한 상황에서 식탁물가가 오를 경우 이는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도 식탁에 오르는 식품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거나, 조금 생산되는 식품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식품 중 수입되지 않는 식품은 거의 없다. 한 해에 들여오는 수입식품은 1200만t이 넘는다. 세계 129개국에서 1500개가 넘는 품목이 수입되고 있다.

쌀·콩 등을 비롯해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물론 고등어와 명태 등도 모두 수입된다. 우리 식탁에 빠지지 않는 마늘, 고추 등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45.1%로, 우리의 주요 먹거리 중 절반은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수입 식품의 가격이 오르면 식탁뿐 아니라 우리 경제도 위협을 받게 된다. 또 각종 위해요소에 대한 불안과 해외 농수산물의 불확실한 생산이력 등으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는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농수산식품과 그것을 결정하는 경제를 좀더 지속가능하게 바꾸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유통단계를 축소해 값싸고 신선한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한 농산물 직거래의 새로운 방식인 ‘로컬푸드’ 등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곽창근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비자들은 일반 농수산식품보다는 유기농 농산물을 찾고 있는데, 이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직거래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직거래 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로컬푸드 운동’은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운동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중간 유통상 없이 바로 연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개념조차 생소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유통형태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미국·유럽의 파머스 마켓(농민장터), 일본의 지역농산물 직판장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파머스 마켓은 2012년 7800여개소로, 매년 1000여개씩 증가했다. 일본의 지역농산물 직판장은 1만7000여개소로 지역 곳곳에 산재돼 있다.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도 농민장터나 직판장 같은 로컬푸드 직매장 형태가 급속히 확산 중이다.

전 세계적 로컬푸드 움직임 거세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로컬푸드 직매장이 활성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존 대형유통업체 안에 로컬푸드 매장을 도입하는 샵인샵 개념의 직판코너가 생기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관광지에서도 다양한 로컬푸드 직판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로컬푸드 직매장이 생긴 곳은 대도시가 아닌 인구 8만6000명에 불과한 소도시인 전북 완주다. 소비가 많은 전주시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지만 결과는 ‘대박’이다.  완주의 용진농협이 지난해 4월 직맹장을 개장한 이후 12월까지 8개월 동안 기록한 매출은 46억원에 달한다. 하루 평균 1500명이 방문했으며, 일 매출이 평일에는 3000만원, 주말과 휴일에는 4000만원을 훌쩍 넘었다. 이런 매출규모는 도심 웬만한 중대형 할인점 매출과 맞먹는 수준이다. 저렴한 먹거리 제공과 지역 농가의 소득 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현재 완주 로컬푸드 직매장에는 이 지역 500여 농가가 참여하며 150개 품목을 다룬다. 농가에서 직접 전날 밤이나 당일 새벽에 수확한 채소를 직매장에 아침 7시까지 가져온다. 농민들은 2시간 가량 포장과 함께 가격 및 수확일자 등을 상품에 붙인다. 진열대에는 생산 농민의 얼굴과 전화번호가 부착돼 있다. 소비자는 농가의 얼굴을 보고 믿고 구입하는 말 그대로 ‘얼굴 있는 먹거리’인 것이다.

완주에서의 큰 성공으로 로컬푸드 직매장은 전국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다. 소비자와 농가가 윈윈할 수 있는 상생모델로서 많은 지자체 등이 관심을 갖고 있어 앞으로 로컬푸드 직매장은 늘어날 전망이다.

로컬푸드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꾸러미사업’이다. 제철 꾸러미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사업은 회원에게 생산자들이 수확한 농산물이나 농가공품을 한 꾸러미에 담아서 정기적으로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생산농민 입장에서는 대규모 시설이나 작업장을 갖추거나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소비자는 가까운 지역의 믿을 수 있는 제철 먹거리를 공급받을 뿐 아니라 장보는 번거로움도 없다. 꾸러미 이용대금은 보통 1박스에 2만5000원으로, 이는 4인 가족을 기준으로 1주일 먹을 농식품으로 구성돼 있다. 꾸러미사업은 지역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전국적인 시스템을 갖추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농복합도시가 많고, 국토 자체가 넓지 않아 익일 배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꾸러미 사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꾸러미 사업을 펼치는 곳은 농협이다. 현재 부산 강동농협, 충북 오창농협, 나주 남평농협, 제주지역본부의 지역 꾸러미, 농협중앙회의 꾸러미 하나로 서비스 등 총 5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충북 오창농협의 꾸러미 사업은 SK그룹의 제휴를 통해 현재 전국적으로 2만1000명의 회원을 갖출 만큼 성장했다.

이러한 트렌드는 관련 산업의 판도와 기업의 비즈니스 구조를 바꾸고 있다. 농산물 온라인 사업에 새롭게 뛰어드는 기업들도 늘고 있으며, 관련된 기업의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미국의 아마존닷컴은 온라인 식품유통사업에 본격 진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은 지난 5년 동안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했던 온라인 시장인 ‘아마존프레시(AmazonFresh)’를 샌프란시스코 지역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아마존프레시는 달걀, 딸기와 같은 신선한 농산물과 육류 등을 고객이 살펴본 후 결제를 하면 구매상품을 곧바로 배달해 주는 서비스다. 아마존의 식품유통사업 진출은 대형 유통매장인 월마트 등에 잠재적 위협이 될 전망이어서 관련 산업의 판도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로컬푸드 직매장이 확산되고 있다. 한 백화점에서 로컬푸드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는 모습.

고부가가치 식품 개발 등 새로운 기회 생겨

우리나라에서도 농산물 직거래 사이트가 성업 중이다. 지난해 1월 창업한 농산물 직거래 커머스인 헬로네이처의 분기별 평균 성장률은 68%에 달한다. 직접 농어촌을 찾아다니며 상품을 고르고 품질을 검증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통단계를 축소한 농산물에 소비자가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건강기능식품도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1년 세계 건강기능식품 시장규모는 890억달러, 향후 2016년에는 1200억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승용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 등 인구구조의 변화와 함께 식품소비가 곡물 등의 주식에서 가공식품과 편이식품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로 인해 식품 제조업이나 외식업에 소포장·간편조리식품·외식서비스의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고부가가치 식품 개발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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