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산되는 농산물이나 국제 곡물 값이 급등하면 식탁은 당장 영향을 받는다.
농산물 등이 식탁에 오르는 데는 수급의 경제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식탁 밑을 들여다봤다.

상추는 밥상에 오르기까지 4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며 소비자가의 65%가 비용으로 붙는다.

우리나라 농축산물은 보통 4단계 이상의 유통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른다. 이렇다보니 실제 소비자들은 직판 가격보다 적게는 40%, 많게는 2배 이상 비싸게 구매하고 있다.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750~850원에 팔리는 상추의 일반 소매가격은 1353원이다. 참외의 경우 직매장에선 10개에 7000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지만 일반 소매점포에선 1만6000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2011년 조사된 주요 농산물 유통실태에 따르면 상추는 4단계의 유통경로를 거쳐야 식탁에 올랐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비중은 5%에 불과했다. 농가에서 1521원(1kg)에 사들인 상추는 몇 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며 소비자에게 4300원에 팔렸다. 소비자 가격의 65%가 유통비용인 셈이다. 다른 농축산물도 마찬가지다. 과일은 50%, 축산물은 46% 가량이 유통마진이다.

소비자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지만 농가가 받는 가격은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손해를 보는 가운데 유통업체 배만 불리는 꼴이다.

농산물 유통개선은 오랫동안 추진해온 농정의 고정 메뉴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채 농업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 해결은 간단하다. 유통단계를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최근 일고 있는 꾸러미사업,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판매가 확산되는 것도 유통단계의 단순화 방안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는 “농산물 유통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대대적인 개선이 쉽지 않다”며 “앞으로 직거래 루트를 다양화해 저렴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 다각적인 정책을 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곡물시장은 이른바 곡물 메이저(농산물 중개회사)인 ‘ABCD’와 일본의 종합상사가 부르는 가격대로 형성되는 구조다.

ABCD는 전 세계 곡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벙기(Bunge), 카길(Cargil), 루이드레퓌스(LDC)에서 딴 것이다. 이들은 곡물시장뿐 아니라 몬샌토, 노바티스 증 농업생명공학기업과 제휴관계를 맺고 종자산업과 유전자 변형 농산물에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인천항 수입곡물창고에서 수입곡물이 운반차량에 실리고 있다.

한국 곡물시장 4대 메이저가 좌우

4대 메이저의 점유율은 전체 곡물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 메이저 곡물회사에서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하고 있다.

한국은 연간 5조원어치의 곡물을 수입한다. 수입물량은 옥수수 900만t, 밀 300만t, 콩 100만t 등 매년 1억5000만t에 달한다. 이 중 60% 가량이 이들 메이저 곡물회사를 거쳐 들어온다. 16%는 마루베니 등 일본 종합상사의 손을 거친다.

5대 곡물 수입국이지만 이들 곡물 메이저가 횡포를 부려도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할 수밖에 없다. 실제 밀 가격은 시기와 관계없이 4대 곡물 메이저의 가격이 t당 50달러 정도 높다. 곡물 수입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가격이 급등하더라도 불리한 조건으로 곡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고, 그 여파는 서민물가에 직접적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반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식량자급률을 보이는 일본은 자국 곡물 유통 회사를 통해 외국 곡물을 수입해오고 있다. 한국의 농협중앙회 격인 일본의 젠노는 1978년 자회사인 ‘젠노 그레인’이란 곡물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현재 일본 곡물 수입량의 30%를 취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의 종합상사인 마루베니가 미국 곡물 회사인 가비론을 인수해 세계 3위의 곡물기업으로 도약했다. 가비론은 콩, 옥수수 등을 주로 거래하는 곡물업체로 미국에만 집하거점을 140개 이상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국형 곡물 메이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난 2011년부터 안정적인 곡물 유통망 확보에 나섰다. 식량주권을 확립하고, 곡물 메이저의 독과점 구조를 깨자는 의도에서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지난 2011년 4월 삼성물산, 한진, STX 등 3개 민간 기업과 공동으로 미국 시카고에 곡물유통회사 현지 법인(aT Grain Company)을 설립했다.

aT는 그동안 곡물 업체들과 지속적인 협상을 벌여 지난 6월 유럽계 주요 곡물상인 니데라 등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aT 관계자는 “유럽계 곡물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해 자급률이 낮은 밀, 옥수수 등의 곡물 100만t을 매년 국제곡물시장 가격으로 도입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aT는 이외에 세계적인 곡창지대인 브라질과 연해주에서도 국내 기업이 현지에서 생산한 곡물을 들여온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15년까지 연간 400만t의 콩, 옥수수, 밀을 자체적으로 확보한다는 목표다.

박환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6.7%로 낮아 식품산업 구조는 국제 곡물가격의 변동성에 취약하다”며 “국제 곡물가격의 변동성이 확대되면 그 영향이 그대로 국내 식품물가에 반영된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연구원은 “곡물 거래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곡물 무역 전문가와 전문기관 양성이 시급하다”며 “비효율적인 식량 유통 산업에 대한 개선을 통해 선진화된 유통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세계 5대 곡물 수입국이지만 곡물 메이저에 꼼짝을 못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식량주권을 확립하고, 곡물 메이저의 독과점 구조를 깨기 위해 지난 2011년 4월 3개 민간 기업과 공동으로 미국 시카고에 곡물유통회사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왼쪽).

투기자본이 곡물가 급등시켜

최근 1~2년간의 곡물가격 급등은 가뭄 등 이상기후로 인한 공급 감소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투기자금이 주요 곡물의 선물시장으로 유입돼 가격을 추가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제식량기구(FAO)에 따르면 곡물 관련 선물거래에서 실제 농산물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나머지 98%는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자본이라는 얘기다. 또 국제결제은행(BIS)은 농산물 거래에서 헤지펀드가 투자하는 자금이 2005년 350억달러에서 최근 2000억달러까지 급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자사 고객에게 ‘2013년 유망 투자상품’으로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 선물거래 펀드를 추천했다. 지난해 미국이 1930년대 이후 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으며, 곡물 비축분이 197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 농산물 시장은 곡물 메이저뿐 아니라 다국적 금융자본의 놀이터가 된지 오래다.

농산물에 대한 투자는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시작된 농산물 선물거래가 그 출발점이다. 당시엔 파종 단계에서 작황·수확과 관계없이 농민들에게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선물거래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부터 대규모 금융자본이 선물거래 시장을 장악하면서 수급의 경제원칙은 무용지물이 됐고, 자본의 흐름에 따라 농산물값이 춤을 췄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거대 금융사들이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며 농산물 시장에서 투기에 열을 올렸다. 농산물 시장에 투기성 자본이 유입되면 농산물 가격은 50% 이상 높아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골드만삭스가 밀·콩·옥수수 등 곡물시장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은 지난해에만 4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만삭스 외에도 바클레이·모건스탠리 등 거대 다국적 금융기업들은 모두 예외 없이 곡물시장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정부가 국제곡물 선물시장에 참여해 곡물을 확보하고, 곡물가격이 상승할 때 오르기 전 확보된 곡물을 국내에 공급하는 등 선물시장을 활용해 수입곡물 가격 변동성을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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