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_40.jpg
지난 3월 미국을 방문한 무함마드 빈살만(왼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사우디의 미국산 무기 구매 실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5월 8일 이란 핵협정 탈퇴 선언 기자 회견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느닷없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러 북한 방문길에 올랐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핵개발 시도에 따른 국제 사회의 제재라는 비슷한 과정을 겪어온 북한과 이란에 대한 미국 정부의 상반된 대응책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북한과 이란은 이라크와 함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나라들이다. 두 나라가 공모해 무기 개발과 거래를 진행해 왔다는 해묵은 의혹도 가시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란 핵협정을 파기한 미국이 북한과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는 등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핵개발 역량에서 북한이 이란에 한참 앞서 있다는 것과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불사할 듯한 태도를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 두 나라의 주변국 관계와 이를 둘러싼 미국의 경제 이해관계를 따져보면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기를 들고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이한’ 세력이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은 지난해 국방비 증가율(5.6%) 1위를 차지한 군사대국이기도 하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국방비를 8.1% 높여 잡았다. 러시아는 현재 미군의 방공 시스템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의 초음속 비행물체를 개발해 2020년 실전에 배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두 나라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군사적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중국 2위 통신장비 업체 중싱그룹(ZTE)에 대한 제재 등을 둘러싸고 미·중 무역마찰이 격화된 상황이어서 중국과 전면적인 대립은 미국에도 이로울 것이 없다.

ZTE는 이달 초 영업 활동을 중단했다. 미국 상무부가 북한·이란과 거래한 ZTE와 자국 기업의 거래를 향후 7년간 금지한다고 발표한 지 한 달 만이었다. ZTE 스마트폰과 통신장비에 들어가는 부품의 25∼30%는 미국에서 조달하기 때문에 사태가 길어질 경우 ZTE에 부품을 공급하는 미국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중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경우 미국의 경제에도 이로울 것이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트위터를 통해 “ZTE가 빨리 비즈니스를 다시 정상화할 수 있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상황 인식과 관련이 있다.

이란 핵협정 폐기 역시 이란을 둘러싼 주변국과 미국의 관계를 이해하면 설명이 가능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외교 전략은 미국의 오랜 우방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매개로 하는 전통적인 ‘투트랙’ 전략 복원이 핵심이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에서 미국의 오랜 우방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오랜 밀월관계가 미국 내 막강한 유대인 파워와 중동 안보를 매개로 다져진 반면, 미국·사우디 관계는 석유 자원의 원활한 수급이라는 목적을 기반으로 유지된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중동팀장은 ‘이코노미조선’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이란의 핵무기 보유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의 공동 이해관계가 성립된다.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적대관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미국을 구심점으로 한 동맹관계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오바마 정권 후반 미국의 셰일 에너지 혁명으로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미국과 사우디 관계에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이 셰일 원유 생산을 늘리면서 사우디가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오바마 정권이 이란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한 것도 사우디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무슬림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를 각각 대표하는 사우디와 이란은 중동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분쟁에서 대립하고 있는 앙숙이다.

트럼프가 이란 핵협정을 폐기하면서까지 사우디 쪽으로 급속히 돌아선 것은 경제력과 원유 매장량 등 거의 모든 경제지표에서 앞선 사우디 손을 들어주는 것이 득실 계산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란과 달리 사우디는 미국의 중동 외교의 또 다른 축인 이스라엘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난 3월 무려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사우디의 차기 권력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역할도 컸다. 당시 그는 미국으로부터 대전차 미사일 6700기 등 10억달러 규모의 무기 수출 계약을 체결해 트럼프 대통령을 흡족하게 했다. 그러면서 미국 주요 언론과 인터뷰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 우려를 부각시켰다. 사우디는 세계 1위 무기 수입국이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사우디와 맺은 무기 수출 계약 규모는 무려 1100억달러에 달한다. 이에 따라 록히드마틴과 보잉, 레이시온,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 미국의 대형 방산 업체들은 ‘사우디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사우디가 2016년 4월 국가 혁신 계획인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탈(脫)석유’를 위한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매력 요인이다. 약 2조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를 조성해 도시 개발, 관광, 군수업 등 새로운 성장 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어서 미국도 투자 기회가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의 반발은 극복 과제

251_40_1.gif

유럽의 반발은 미국에 남겨진 중요한 극복 과제다. 2015년 제재 해제 이후 이란에 대거 진출한 유럽 기업들이 협정 파기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보다 강력한 제재 방안을 유럽이 수용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2015년 미국과 함께 이란 핵협정에 합의한 독일과 프랑스, 영국은 기존 이란 핵협정을 수정·보완하는 방식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핵협정 파기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기업 대부분은 전략적인 이유로 미국에 진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란과 거래를 이유로 미국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란 핵협정 파기로 미국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한 것은 물론 북한에 대해서도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걱정한다. 반대로 이란에 대해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북한을 압박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이 아닌 트럼프 개인으로 좁혀 생각하면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이란 핵협정 탈퇴의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는 미국과 국제 사회 그리고 북한에 트럼프가 ‘어설픈 협상안’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용성 차장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