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공동합의문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공동합의문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미·북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미·북 관계 개선 의지를 공식화하면서 남북관계 역시 탄력받을 전망이다. 남북관계 개선이 미·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다시 남북관계 진전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고리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남북은 미·북 회담 이후 분야별 회담 일정을 잡아둔 상태다. 14일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선 남북 군 통신선 복구 등에 합의하고 서해 해상 충돌 방지 등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이 교환됐다. 이를 시작으로 18일 체육회담, 24일 적십자 회담 등이 예정돼 있다.

다만 미·북, 남북 관계가 개선됐지만 이번 회담이 세계 경제와 남북 경제협력에 미칠 영향은 아직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 이후 대북 경제 제재가 해제될 것이라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가 당장 해제되지 않으면 남북 경협 사업 재개도 어렵다. 

우리 정부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간 경협이 본격화되기 위해선 비핵화 부분에서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이번 미·북 정상회담에서 대북 제재 해제와 관련해 진전된 합의가 없었던 만큼 교착 상태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북 제재는 비핵화가 진행돼 더 이상 위협이 없을 때 풀게 될 것”이라며 대북 제재 해제를 비핵화 조치 이후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남북 경협 속도가 빨라지기까지는 좀 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에선 미·북 정상회담이 ‘4·27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했기 때문에 ‘남·북·중·러’ 간 협력 행보가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가진 후 발표한 4·27 판문점 선언문은 남북관계 개선, 군사적 긴장관계 완화,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을 담고 있다. 여기엔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 도로의 연결과 현대화 문제에 대한 경협 방안이 포함돼 있다. 이번 미·북 회담에서 대북 제재에 대한 진전은 없었지만 미·북 관계 개선으로 인해 해제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경협 속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에서다. 이미 중국 정부는 미·북 회담의 성공을 근거로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도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남북 경협 등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하다. 도로·철도·통신시설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는 작업이 느리게라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이에 따라 중국·러시아 철도와 연계 협력, 경제특구 개발 논의 등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 북한 내 경제특구 5곳과 경제개발구 22곳을 교통 인프라 지원과 연계해 새롭게 개발하는 방안도 계속 논의될 것으로 점쳐진다.

실제 중국의 경우 지난달 9일 서울~신의주~중국 대륙철도 연결 사업에 참여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러시아도 경제협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빠르면 6월 중 개최될 것으로 알려진 문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남북 경협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는 변곡점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러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철도 관련 협력이 가장 우선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올 초 신북방정책의 일환으로 강원선 철도를 러시아 대륙철도와 연결하고 그 아래로는 러시아의 천연가스관을 함께 들여오는 방안 등이 거론된 바 있다.

남북 간 반목이 해소되고, 남북 회담 후속 조치가 현실화되면 한국 경제는 재도약의 기회를 맞게 된다. 세계적 투자 대가인 짐 로저스는 지난 8일 싱가포르에서 구성훈 삼성증권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회담의 사후 조치로 북한 경제개발이 본격화할 경우 한국 기업과 경제가 새롭게 도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기업, 인프라 투자 관심 크지 않아

다만 미·북 정상회담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다. 미·북 간 관계 개선에서 변수가 많고, 단 한 차례의 회담을 통해 조율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단순한 합의보다는 향후 이행이 중요하고, 추가 협상을 통해 입장 차이를 어느 정도 줄이느냐에 따라 동북아 및 중·러 경제 등이 영향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은 글로벌 기업의 관심도 크지 않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기업들이 북한의 저임금에 의존하는 산업과 북한 내 인프라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겪었듯이 북한의 저임금은 몇 년 내에 사라질 것이고,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게 글로벌 기업의 초기 투자를 가로막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미·중·러 등 주변국이 남북 경제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회담 당사자인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이 치열하게 수 싸움을 벌이고 있다. 6월 8~9일 캐나다 퀘벡에서 열렸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동맹국과 북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조율했다. 중국은 지난 10일 중국 칭다오에서 열렸던 상하이 협력기구(SOC)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기득권을 재확인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회담 이후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상기 한국협상학회 부회장은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가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미·북 수교 등으로 급격하게 전개되면, 주변국이 자기 몫을 요구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미·중·러 등이 북한 경제 개발을 선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부회장은 “미국, 중국, 러시아가 노리는 것은 북한의 경제 개발과 수천조원으로 추정되는 지하자원”이라며 “우리 정부는 이를 뺏기지 않도록 중재 협상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lus point

싱가포르 ‘최대 수혜’

6·12 미·북 정상회담의 가장 큰 수혜자는 회담이 열린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역사적 만남’ ‘세기의 담판’이란 기대를 모은 회담을 위해 2000만싱가포르달러(약 161억원)를 투자했다. 하루 회담을 위해 적지 않은 규모지만 이로 인해 싱가포르가 누릴 국가 브랜드 위상 제고와 경제적 효과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취재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2500명 이상의 취재진이 모인 만큼 이미 호텔·관광 업계 등이 회담 특수를 누린 데다 홍보 효과도 엄청났다. 미·북 정상의 ‘만남의 장소’였던 센토사섬도 향후 세계적 관광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마이스(MICE) 산업을 국가 성장 산업으로 삼고 있는 싱가포르로서는 세계적 이벤트인 미·북 정상회담 개최만으로 투자액의 수십 배에 달하는 효과를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MICE는 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s), 컨벤션(Convention), 이벤트와 전시(Events & Exhibition)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국제기구나 기업 등이 개최하는 각종 회의, 전시, 이벤트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싱가포르는 전 세계 마이스 산업의 최강자로 꼽힌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미·북 정상회담 개최는 싱가포르를 전 세계에 홍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매우 유익하다”며 “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의 7번째 무역 파트너인 싱가포르는 북한에 대한 제재가 해제되면 북한과의 무역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싱가포르의 정치적 위상도 높아졌다. 다자 협의체 중심지로 위상을 굳힌 스위스 제네바에 빗대 ‘아시아의 제네바’라는 평가도 얻었다. 리셴룽 총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미국 대통령을 연달아 만나면서 ‘국제 중재자’로 떠올랐다. 싱가포르는 2015년에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당시 대만 총통의 첫 양안 회담을 개최했다. 이번에 미·북 정상회담까지 개최한 싱가포르는 ‘중립 외교의 허브’로서 위상을 굳히게 됐다.

 

장시형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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