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에 구광모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6월 29일 지주사인 ㈜LG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회장으로 정식 취임한 구광모 회장은 별도의 취임 행사 없이 바로 업무 파악과 계열사 현안 점검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집무실은 고(故) 구본무 전 회장의 집무실 바로 옆에 마련됐다. LG 측은 당분간 대외 행사 참석을 자제하고 경영 구상에 몰두할 것이라고 전했다. LG 관계자는 “구 회장은 미래 준비와 인재 투자, 정도경영에 집중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LG 사업에 대해 전문경영인들과 함께 고민하며 최고경영자(CEO)와 사업본부장 등 주요 경영진을 발굴·육성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광모(41세) 회장의 취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4세대 40대 총수가 LG그룹을 이끌게 됐다는 점이다. 국내 10대 그룹 중 4세대 총수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계 4위 그룹을 젊은 총수가 이끄는 만큼 그에 대한 기대와 우려도 크다. 재계에서는 구본무 전 회장의 실리주의 경영철학을 잇는 동시에 40대 초반의 젊은 리더십을 기반으로 미래 신사업 육성에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다만 구광모 회장이 아직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고, 경영 능력을 검증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가 실제로 어떤 능력을 보여줄지가 관건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87년 당시 나이 45세에 2대 회장에 오르면서,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그룹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9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37세에 총수에 올라 그룹 성장을 주도했다. 구광모 회장이 젊은 나이에 총수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자신의 역량을 얼마나 보여주느냐에 따라 그뿐만 아니라 LG그룹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경영 안정화 위해 부회장 6명 보좌

구광모 회장은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입사했다. 이후 미국 뉴저지 법인, HE(홈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 선행상품 기획팀, HA(홈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 창원사업장을 거치며 제조와 판매 현장, 국내외 현장 등에서 12년간 경영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총수로서 그룹 경영을 전면에서 이끌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지주사 공동 대표인 하현회 부회장을 비롯해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등 6인 부회장의 보좌를 받아 경영 안정화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구 회장은 구본무 회장으로부터 평소 겸손·배려·원칙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 권위보다는 소통에 더 중점을 둔 경영철학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직원들과 격의 없이 토론하고 결정된 사항은 빠르게 실행할 것을 강조하며, 외부와의 협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실용주의 사고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구상이 어느 정도 끝나면 예상보다 빠르게 조직을 변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LG의 주요 계열사 사장급 이상 경영진 대부분은 1950년대 생으로 거의 구 회장의 작은 아버지뻘이다. 삼성·SK 등은 경영진을 50대 초·중반으로 구성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이 그룹을 이어받으면서 해결해야 하는 첫 번째 문제는 상속세다. 구 회장은 ㈜LG의 3대 주주로 6.24%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2대 주주인 구본준 부회장의 지분이 7.72%인 것을 감안하면 구본무 전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LG 지분 11.28% 중 일부만 상속받아도 최대주주 등극에는 문제없다. 하지만 구 전 회장 지분을 모두 상속받는다면 상속세만 1조원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된다. LG 측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분 상속과 장자승계라는 원칙에 따라 총수에 올랐지만 실질적인 경영권 장악력 확보도 과제다. 이를 위해선 기존 주력 사업에 대한 체질 개선과 미래 전략,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 발굴 등을 통해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고전하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 등 주력사업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시킬지도 구광모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사진 LG전자
고전하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 등 주력사업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시킬지도 구광모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사진 LG전자

우선 위기에 빠진 기존 주력 사업의 체질 개선과 안정화가 중요하다. 스마트폰 사업은 1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누적 영업 손실 2조원을 넘어섰고, LG디스플레이는 중국 업체들이 공급을 늘리는 바람에 패널 가격이 하락하며 올 1분기 6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이렇게 고전하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과 디스플레이 부문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분야를 안정화 시키는 데 적지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그 이후에야 자신만의 색깔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IoT·전장 위주로 사업 재편할 수도

LG의 미래를 어떤 신성장 영역에서 찾을지도 관건이다. 미래 먹거리 발굴은 구 회장이 자신의 경영 능력을 보여줄 시험대이기도 하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분야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현재 LG그룹은 전자와 화학·통신 등 3대 축을 바탕으로 자동차 전장부품·인공지능(AI)·로봇·사물인터넷(IoT)·신에너지·바이오 등을 키우고 있다. 특히 이들 분야는 LG전자, LG화학, LG이노텍 등 관련 회사들이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LG는 이미 이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올해에만 교육용 로봇 분야 전문업체 ‘로보티즈’ 지분(10.12%) 취득, AI 스타트업 ‘아크릴’ 유상증자 참여, 국내 산업용 로봇제조 업체인 ‘로보스타’ 지분 투자, 미국 로봇개발 업체 ‘보사노바 로보틱스’ 투자, 오스트리아 자동차용 헤드라이트 및 조명 업체 ‘ZKW’ 인수를 잇달아 발표했다.

구 회장은 ㈜LG에서 2014년 시너지팀 부장과 상무를 맡아 계열사 간 시너지와 미래 먹거리 발굴 역할을 맡은 경험도 있다. 또 IT기술 동향에 관심이 많아 콘퍼런스나 포럼 등에 참석하고 파트너사와의 협력을 직접 챙겨왔다.

구 회장은 미국에서 MBA 과정에 다닐 때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일하기도 했다. 또 ㈜LG의 시너지팀에서 상무로 일하면서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획했다는 점도 앞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이 IoT나 자동차 전장부품 등을 위주로 사업을 본격적으로 재편해 기존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안정을 중시하는 LG에서 구 회장이 급격한 변화를 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지만 그가 40대인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변화를 모색하지 않겠나”라고 예상했다. 박 교수는 “4차산업혁명으로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LG가 젊은 리더십이라는 강력한 엔진을 달았다”고 평가하며 “구 회장이 더 빨리 움직이는 LG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