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8월 24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요즘 대한민국에서 사업하는 사람은 죄인이 된 것 같다.” 국내 모 중견기업 오너 A씨에게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이어 “미국 무역 장벽,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업 환경은 계속 어려워지는데 국내 규제도 계속 강화되니 기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8월 26일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1980년 법이 제정된 이후 38년 만이다. 올해 5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재벌개혁 등 중요 과제를 수행하려면 현행법으로 어렵다”며 전면 개정을 예고했던 만큼 이번 발표는 기업들도 충분히 예상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막상 개정안 내용을 맞닥뜨린 대기업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이번 개정안은 크게 4가지로 구성된다. 먼저 전속 고발권 제도가 폐지됐다. 그동안 공정거래법에 의거한 기업 수사는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수사가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검찰의 독자 수사가 가능해진다.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 기준과 순환출자 규제도 강화됐다. 공익법인과 금융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의 의결권도 제한하기로 했다. 대기업 집단 지정기준은 자산규모 10조원에서 국내총생산(GDP)에 연동되게 했다.

기업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부분이다. 개정법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의 범위를 늘렸다. 총수일가 지분율 기준은 상장·비상장 구분 없이 20%로 일원화(현행 상장사 30%)하고, 모기업이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까지 규제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또 내부거래 비율이 매출의 12%(또는 200억원 이상) 이상이면 규제 대상으로 정했다.

규제 대상 기업은 현행 231곳에서 607곳으로 늘어난다. 오너 일가 지분율이 10%포인트나 떨어지면서 삼성생명·현대글로비스 등 대기업 오너 일가들이 지분 20~29.9%를 들고 있는 27개 계열사들이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이들 대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349곳도 규제 대상에 포함되게 됐다.

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개정 과정에서 억울한 기업들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곳이 SK해운이다. SK해운은 지주사인 SK가 지분 57%를 가진 비상장사로 매출액(6971억원) 대비 내부거래 비율은 34%다. SK해운 내부거래 대부분은 SK에너지 원유와 SK종합화학의 나프타 등 원재료 운송 업무다. 국내에서 특수 원자재 운송이 가능한 국내 해운사는 SK해운이 유일하다. 위법 행위를 피하려고 일거리 일부를 해외 해운사에 넘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수익이 나지 않는 적자 기업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스포츠 비상장사들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적자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단을 운영한다. LG스포츠와 두산베어스(야구) GS스포츠와 이랜드스포츠(축구)가 대표적이다. 닭고기 식품업체인 하림그룹도 농지법상 농업인 지분 소유 규제 등으로 분사한 자회사들이 모두 규제 대상에 오른다.


전속고발권 폐지, 기업 잡는 도구 될 것

물론 모든 내부 거래 행위가 위법은 아니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에서는 효율성 증대, 보안성, 긴급성 등이 요구되는 경우 규제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이에 대기업 직능단체 관계자는 “예외 규정을 적용한다고 해도 정부 유권 해석으로 하루아침에 위법 사례로 찍힐 수 있다”며 “예외 규정을 활용하기보다 아예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속고발권 제도 폐지도 기업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공정거래법과 관련해서 공정위의 판단만 기다리면 됐다. 법이 개정되면 기업들은 공정위에 이어 검찰의 수사까지 받아야 하니, 부담이 가중될 것이 자명하다.

대기업 직능단체 관계자는 “전속고발권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알 수 없다”면서도 “검찰이 기업을 잡는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검찰과 공정위는 조사의 강도 자체가 다르다”면서 “공정위와 검찰이 함께 조사를 들어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개정안에서는 공익법인과 금융계열사는 계열사 간 합병 안건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배제했다. 예를 들어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같은 안건에서는 금융계열사나 공익재단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유정주 현대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의결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인데, 현 정부에서는 의결권을 제한하는 규제를 너무나 쉽게 이야기한다”며 “기업을 잠재적인 범법자로 보는 시각이 저변에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총수가 경영권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포이즌필’ ‘황금주’ 같은 제도는 허용하지 않으면서 재산권만 제약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제품 혁신을 위해 써야 할 시간과 비용을 관치 경영에 대응하는 데 다 쓰고 있다”며 “공정거래법 개정안 발표는 대기업 혁신 성장의 불을 꺼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자율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장을 불공정하다고 보는 현 정부의 시각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기업 규제 강화에 따른 비용 증가가 결국 근로자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중견기업 기획팀 관계자는 “기업은 절대로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며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따라) 비용이 늘어나면, 이를 핑계 삼아 인건비를 줄이고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 요즘 국내 중견기업들 사이에서 화두는 ‘공장 자동화 설비로 인건비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이다”라고 덧붙였다.


plus point

‘일감 몰아주기’ 근본 원인은 과도한 상속세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2016년 9월 별세한 함태호 명예회장으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으면서 1500억원대의 상속세를 5년에 걸쳐 분납하기로 했다. 거액의 세금을 탈루하지 않고 정직하게 납부하는 함 회장의 행보에 칭찬이 잇따랐다. 이 소식으로 오뚜기는 ‘갓뚜기’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하지만 같은 해 오뚜기가 ‘오뚜기라면’에 일감 몰아주기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오뚜기라면은 오뚜기가 판매하는 대부분의 라면을 생산하는 제조 업체로 함 회장이 최대주주(지분율 35.14%)로 있다. 오뚜기라면의 내부거래 금액은 6122억원으로 전체 매출(6143억원)의 99.7%에 달한다.

갓뚜기는 왜 일감 몰아주기를 하게 된 걸까. 업계는 오뚜기를 비롯한 대부분 기업들이 ‘상속세’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를 한다고 본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최대 50%. 전문가들은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는 오너 2세들이 일감 몰아주기로 충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상속세율이 50%가 넘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오너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며 “원인을 없애지 않고 도덕적 잣대만 들이밀며 통제하는 정책은 필패”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지주사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는 한 회사나 마찬가지인데, 이를 내부거래라고 규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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