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9월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9월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 연합뉴스

“결혼 초, 제 주민등록증을 친정어머니가 관리하셨어요. 어머니 하시는 일(위장전입)이라 저는 잘 몰랐습니다. 제가 밖에 나오면 판사지만 집에서는 그저 여린 딸이었습니다. 하여튼 어머니 하시는 일을 세세히 살피지 못한 것도 저의 불찰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9월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위장전입 의혹을 따져 묻자 이은애 후보자는 고개를 숙인 채 이렇게 답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시작한 청문회는 오후 6시 40분에 끝났다. 8시간에 걸친 청문회는 1991년부터 2010년까지 20년 동안 총 8차례 반복한 이은애 후보자의 ‘위장전입’ 문제만 다뤘다.

문재인 2기 내각 출범을 앞두고 지명된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한 위장전입 논란이 이번에도 불거졌다. 인사청문회가 예정된 11명 가운데 5명이 의혹을 받고 있다. 그 내용과 수법은 물론 해명도 동일하다. ‘가족이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니 넘어가 달라’는 식이다.

특히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는 1996년 딸의 초등학교 입학 과정에서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건물로 주소지를 옮겨 위장전입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유 후보자는 “같은 유치원(서울 덕수초 병설유치원)에 다니던 친구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딸을 진학시키기 위해서 거주지를 옮겼다”라고 별일 아닌 듯 해명했다. 유 후보자가 2007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 대해 “위장전입이 자녀들의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니 기가 막힌다. 부동산 투기가 아니니 괜찮다는 것은 해괴한 논리”라고 강하게 비판했던 것이 알려지며 공분을 샀다.

주민등록법 위반(위장전입)은 분명한 범법 행위다. 현행법상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위장전입은 2년 이하 징역형을 받는 폭행이나 과실치사보다 더 중한 범죄다. 자녀를 더 나은 환경의 학교에 보내고 싶은 것은 모든 학부모가 가진 욕망이다. 하지만 모든 학부모가 위장전입을 하진 않는다.

유 후보자의 사례가 용인된다면 법에서 정한 대로 자녀를 진학시킨 선량한 학부모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법을 지키면 손해를 본다’는 인식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고위 공직자의 위장전입은 절대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민호 교수는 “고위 공직에 오를 사람은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되고, 적용받아야 한다”며 “특히 유은혜 사회부총리 후보자는 단순 위장전입이 문제라기보다는 본인의 말과 행동 사이에 도덕적 잣대가 이중적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대중 정부 때만 하더라도 위장전입은 장관 인선에 치명적인 결격 사유였다. 2002년 7월 장상 총리 후보자가 아파트 매입을 위한 위장전입으로, 8월에는 장대환 총리 후보자가 자녀 진학을 위한 위장전입으로 낙마했다. 2005년에는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부인의 부동산 투기성 위장전입이 밝혀져, 이 부총리가 취임 1년 만에 사퇴했다. 같은 시기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도 위장전입으로 사퇴했다.


범법자 양산하는 낡은 제도 개선도 필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정부 들어서 위장전입과 관련한 고위 공직자의 기준이 낮아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녀 학교 진학을 위해 본인이 다섯 차례 위장전입한 경력이 있다. 2009년 9월 이명박 정부의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후보자(103명) 가운데 16명이 위장전입 했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밝혀졌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가 주택청약 자격 유지를 위해 위장전입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문제없이 총리직에 올랐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은 운전면허를 빨리 따려고,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아들의 강남 8학군 진학을 위해 위장전입한 사실이 밝혀졌다.

문재인 정부는 고위 공직자 결격 사유에서 아예 위장전입 기준을 낮췄다. 청와대는 장관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2005년 7월’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위장전입 2회 이상, 그것도 부동산 투기 목적일 때만 문제 삼고, 그 이후 위장전입자는 후보자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고 있으면 한국에서 위장전입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절세나 재테크, 자녀 양육 처세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위장전입이 현실에서는 사문화됐다고 봐도 될 정도다. 부동산 시장 교란범 적발 과정에서 아파트 청약에 부정하게 당첨된 사례가 드러나 처벌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적발 사례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때문에 주민등록법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가 사회 변화를 제대로 뒷받침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김민호 교수는 “주민등록지와 연계된 제도를 시대에 따라 사회상에 맞도록 설계하고 운용했어야 했는데, 제도가 만들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나도록 변화 없이 운용되다 보니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민등록법상 기재된 거주지와 가까운 학교로 학생을 우선 배정하는 완전학군제다. 서울시에 거주지 중심 완전학군제가 도입된 것은 명문고들이 대거 강남으로 이전해 ‘강남 8학군’이 사회적 문제가 됐던 1980년 2월이다. 박대권 명지대 사회과학대 교수는 “좋은 학교와 양질의 선생님이 부족했던 1980년대와 현재는 위장전입의 원인이 다르다”며 “같은 지역 내에서 선호 학교와 비선호 학교 간 수요·공급 불균형과 교육청의 학교 배정 과정에 대한 학부모 불신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교육청은 학부모가 학교 배정 결과에 수긍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비선호 학교는 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다만 “법이 공정하지 않은 것과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원하는 학군을 선택하기 위한 목적으로 위장전입을 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인 만큼 처벌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lus point

뉴욕시, 위장전입 발각되면 당일 ‘퇴학’ 조치

서울과 인구 수(1000만 명)와 학교 수가 비슷한 뉴욕시에서도 학군을 목적으로 한 위장전입(boundary jumping)이 횡행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뉴욕 로체스터에서 자신의 어머니 거주지 주소에 네 자녀를 등록해 명문 학교에 진학시킨 학부모가 1급 문서 위조죄로 재판받았다.

뉴욕시는 위장전입이 확인되면 당일 퇴학 조치한다. 교육청에서는 위장전입하는 사례를 근절하기 위해 사설탐정을 고용, 불시에 거주지를 찾아가 학생의 방을 보여달라고 하거나 버스 정류장에 대기했다가 뒤를 추적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뉴욕시는 위장전입 색출과 함께 학교 배정 제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중학교를 배정할 때 거주지와 해당 지역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학생이 원하는 곳에 선지망하고, 후추첨하는 방식을 취한다. 선지원할 수 있는 학교 수는 최소 15개에서 120개이며, 학생은 1지망과 2지망 두 곳의 학교를 쓰게 된다. 우선권은 개별 학교에 있지만 학생의 1지망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권고한다.

뉴욕시는 또 1차 배정에 만족하지 않을 경우 재배정(appeal) 기회를 준다. 1지망과 똑같은 학교를 써냈다고 해서 재배정에서 받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재배정으로 다시 기회를 얻는 만큼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는 학부모의 불만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뉴욕시는 입학 대기자 명단 제도를 둔다.

뉴욕시 입학 배정의 가장 큰 특징은 ‘정보의 투명성’이다. 학교별로 배정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뉴욕시의 학교 배정 공지와 학교 설명회 신청 방법·절차를 모두 통일했다. 또 지난해 중학교 배정에서 선호 학교에 어느 순위의 학생까지 배정됐는지 등의 정보를 담은 중학교 배정 관련 책자를 뉴욕시 교육청이 배포한다. 학교 배정 관련 민원만 접수하는 콜센터도 마련해 놓고 있다.

김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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