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청년 취업난과 일본의 인력난이 맞물리면서 최근 일본 IT 업계에서는 한국인 고용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의 질은 청년들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조선일보 DB
국내 청년 취업난과 일본의 인력난이 맞물리면서 최근 일본 IT 업계에서는 한국인 고용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의 질은 청년들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조선일보 DB

“케이무브(K-MOVE)는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를 달콤한 말로 꾀어내는 세금 잔치일 뿐이다.”

올해 초 정부의 청년 해외 취업 지원 사업인 K-MOVE 스쿨 프로그램으로 일본의 한 정보통신(IT) 회사에 취업했다가 그만둔 김모씨의 말이다. 김씨는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국내 연수기관에서 일본 IT 회사 취업을 위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양성 과정을 들었다. IT 이론·실습, 일본어 수업으로 구성된 과정으로 교육비 960만원 중 880만원은 국비로 지원됐고, 80만원은 김씨가 부담했다. 김씨는 6개월간의 교육을 끝내고 같은 해 12월 일본으로 출국했다.

김씨가 맞닥뜨린 현실은 우울했다. 경기가 살아나 일본 IT 회사들이 인력 모시기에 적극적이라는 말과 달리 연수기관과 연결된 회사는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다. 4개월간 무직 신세로 지내던 김씨는 마침내 한 회사에 시스템 엔지니어(SE)로 취업했지만 이마저도 3개월 파견 사원직이었다. 이 일을 계속해도 미래가 없겠다고 생각한 김씨는 3개월 근무를 마치고 호텔 업계로 전직했다. 김씨는 “기초적인 수준의 IT 교육으로 일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 게 K-MOVE 사업”이라며 “굳이 연수받고 취업할 만한 가치가 없는 회사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청년 해외 취업 지원 사업이 ‘일단 취업부터 시키고 보자’는 식으로 운영돼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 청년 취업을 돕겠다’는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많은 청년이 해외 취업에 나섰지만, 취업한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나 처우가 만족스럽지 않아 연수만 받고 취업을 포기하거나 단기간 근무하고 그만두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지난 3월에는 해외 연수를 맡은 업체가 무자격 허위 업체로 밝혀져 지원자 3명이 취업 사기를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적게는 1000만원에서 많게는 1400여만원이 지원자 1명당 연수비로 쓰이는데, 해외 취업 지원이라는 미명 아래 국민 혈세가 땅에 버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인력공단)이 시행하는 K-MOVE는 단순 취업 알선 외에도 청년의 취업 준비 교육 지원부터 해외 취·창업 멘토링, 사후관리까지 해주는 통합형 청년 해외 취업 지원 사업이다. 해외 취업에 도전하고 싶지만, 어학이나 직무 능력이 부족한 청년은 ‘K-MOVE 스쿨’이라는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 또는 연수를 받는다. 올해 K-MOVE 사업 예산은 추경을 통해 100억원가량 증액돼 525억원이다. 이 중 약 293억원이 K-MOVE 스쿨 예산이다. 인력공단은 이 돈으로 청년의 교육·연수비용을 80%에서 최대 100%까지 지원해준다.

해외 취업에 성공하면 ‘해외 취업 성공 장려금’을 주는데 동남아, 중남미, 중동 등 지원 우대 국가에 취업할 경우 총 400만원, 그 외 국가에 취업할 경우 200만원의 성공 장려금을 6개월간 두 차례에 나눠 지급한다. 이 장려금은 올해 추경을 통해 각각 800만원, 400만원으로 확대됐다.


해외 연수 업체 검증 안 돼 취업 사기도

인력공단이 홍보하는 내용만 보면 완벽한 해외 취업과 사후관리가 이뤄지는 듯하지만, 실제 이 지원 사업에 참여한 청년은 사업 자체에 문제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K-MOVE 스쿨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2016년 3월 순천대에서 호주 체육 지도자 연수과정을 들은 이모(30)씨는 연수기관이 지원자의 교육을 위해 써야 할 정부 지원금을 허투루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씨에 따르면 순천대는 인력공단에 순천대 교수진 4명이 수영 이론·실기 수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의 커리큘럼을 제출하고 사업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이씨와 다른 지원자 5명이 받은 수업은 외부 시간강사가 진행하는 영어회화와 순천대 대학생(2학년)이 가르치는 수영 실기였다. 이씨는 “부실한 강사진으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정부 지원금을 남기려는 순천대의 꼼수”라고 지적했다.

순천대와 협약을 하고 해외 연수를 진행하는 업체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씨를 포함한 호주 체육 지도자 과정 지원자 6명은 국내에서 두 달간 이뤄진 수영 이론·실기 교육을 마치고 필리핀에서 2주간 영어 교육을 받은 뒤 해외 연수를 위해 호주로 갔다. 호주 한인 수영 업체가 2주간 진행되는 수영 실기 수업이 끝나면 호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수영 지도자 자격증을 발급해주기로 돼 있었지만, 업체 대표는 차일피일 자격증 발급을 미뤘다. 6개월이 흐른 뒤 이씨가 겨우 자격증을 받았지만, 이 업체는 자격증 발급 권한이 없는 허위 업체였다. 이씨는 순천대와 인력공단에 문제를 제기했다. 인력공단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순천대와 계약을 해지했고 정부 보조금은 일부 환수될 예정”이라며 “현재 순천대와 호주 알선 기관에 대해 형사 고소를 접수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인력공단에 따르면 현재 해외 취업 지원 사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IT 회사로의 취업률은 62.8%(2016년 기준)였다. 2014년 60.6%에서 소폭 상승했다. K-MOVE 사업이 시작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총 1845명이 일본 IT 회사 취업을 위한 연수과정을 들었고, 이 중 63.3%인 1169명이 취업한 상태다. 약 37%에 해당하는 676명이 이직했는지, 전직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연수과정 지원자에 대한 사후 추적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이들 지원자가 해외 취업 경력을 발판 삼아 한국에서 재취업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2016년 말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외 취업 지원 사업에 참여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청년의 국내 취업률은 2013년 52%, 2014년 45%에 불과했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쌓은 경력이 국내 취업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의창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한국의 해외 취업 지원 사업은 혈세를 들여 교육한 청년을 외국 기업에 보내 외국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라며 “이 돈을 국내에 투자해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취업 지원 대상을 보다 정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K-MOVE 스쿨 사업은 만 34세 이하의 미취업자 중 해외 취업에 결격 사유가 없는 구직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전공 제한이 없다. 그렇다 보니 IT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기초적인 수준의 IT 교육이 제공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 갈 경우 중요한 직무를 맡지 못하고 단순한 일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강순희 경기대 직업학과 교수는 “인력의 숙련도에 따른 차별화된 해외 취업 지원 전략을 펴야 한다”며 “연수 취업 방식보다는 일정한 숙련 자격을 갖춘 인력을 대상으로 적격자를 선발해 현지 적응과 언어 교육을 지원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취업이나 퇴사 이후 지속적인 관리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권경득 선문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외국의 취업 환경이 생각만큼 우호적이지 않다”며 “취업자를 늘리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취업한 청년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추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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