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의 현재와 과거 CEO. 큰 사진은 최근 CEO로 선임된 로런스 컬프.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잭 웰치, 존 플래너리, 제프리 이멜트. 사진 AP 연합뉴스, 블룸버그
GE의 현재와 과거 CEO. 큰 사진은 최근 CEO로 선임된 로런스 컬프.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잭 웰치, 존 플래너리, 제프리 이멜트. 사진 AP 연합뉴스, 블룸버그

10월 1일(현지시각) 미국 대표 기업 GE (제너럴 일렉트릭) 이사회가 존 플래너리 최고경영자(CEO)를 단 15개월 만에 경질하고, 로런스 컬프(55) 전 다나허 CEO를 새 CEO 겸 회장으로 전격 선임했을 때, 수백만 투자자들과 30만 명의 GE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126년 전통의 GE가 외부 출신 CEO를 발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5년 이상 면밀히 검증하는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CEO를 선임하는 GE가 외부 출신을 발탁한 것은 그만큼 회사가 절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간 고수했던 ‘GE 방식’으로는 회사가 부활하기 어렵고, 새로운 경영 철학과 방식이 절실하다는 의미였다. 컬프가 GE에 합류한 것은 올해 4월 이사회 멤버가 되면서부터였다.

2001년 37세에 미국 산업 의료기기 회사인 다나허 CEO에 오른 컬프는 14년간 재임하면서 연간 40억달러 매출을 올리던 회사를 200억달러 수준으로 다섯 배나 키운 인물이다. 물론 다나허는 GE보다 훨씬 작은 회사다. 지난해 GE 매출은 1210억달러였다. 다나허의 직원 수는 GE의 5분의 1 정도다. 그러나 기업 가치로만 봤을 때 다나허는 GE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성적을 냈다. 20년 전 투자자가 다나허 주식에 1만달러를 투자했다면, 원금이 20만달러로 스무 배나 뛰어 있을 것이다. 같은 시기 이 투자자가 GE에 1만달러를 넣었다면, 수익은커녕 원금도 까먹고 달랑 8700달러 정도를 쥐고 있을 것이다. GE의 이런 주가 하락은 올해 6월 ‘다우존스 지수 퇴출’이라는 불명예로 이어졌다. 발명왕 에디슨이 세우고, 전구·기관차 사업으로 산업화 시대를 주도했던 세계 최대 제조업 공룡의 몰락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다나허의 고속 성장에는 일본 도요타의 ‘가이젠(改善·개선)’ 시스템을 200% 활용한 컬프가 있었다. 가이젠은 제조 과정 혁신과 비용 절감, 효율적인 재고 관리 등을 통해 회사 성과를 조금씩 끌어올리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 각 사업부는 한 달에 한 번씩 핵심 매출 증가율이나 고객 만족도, 정확한 상품 인도, 직원 만족도 등을 보고하고, 사업이 개선되고 있는지를 컬프와 심층 논의했다. 2011년 초까지 다나허 유럽 대표를 지낸 하비 본드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가이젠 이벤트를 맞아 유럽 공장을 방문한 컬프와 피자를 먹어가며 밤샘 토론을 했다”면서 “그는 휴대전화조차 끈 채 토론에 완전히 몰입했다”고 회상했다.

컬프는 미국 워싱턴 근교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용접 기기 판매점 주인이었다. 워싱턴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0년대 다나허에 취업했다. 그는 대학원 시절, 학생 신문에 외국 제조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회사에서 운영을 담당하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실제로 2001년 CEO를 맡기 전까지 다나허에서 소규모 사업부를 운영했다. CEO에 오른 뒤에는 인수·합병(M&A)을 적극 활용해 사업을 확장했다. 2011년 의료 장비 업체 ‘벡크만쿨터’를 68억달러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재밌는 것은 컬프식 다나허의 성장이 그다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컬프의 성향 때문이라는 것이 미국 유력지의 분석이다. 그는 GE CEO로 선임된 이후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회사 공식 성명을 통해 “우리는 뛰어난 실행을 추진하기 위해 앞으로 몇 주 동안 매우 열심히 일할 것이고, 긴급하게 나아갈 것”이라고 취임 소감을 밝힌 정도다.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 계정조차 갖고 있지 않다. 그는 대신 다나허 재임 시절 매일 회사 인트라넷에 글을 올렸다. 주로 실적을 개선한 직원이나 팀을 격려하는 내용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컬프는 회사에 체류하기보다 현장으로 나갔다. 다나허 재직 시절에도 임원들을 본사로 불러 보고받는 대신, 직접 해당 사업부가 있는 곳으로 갔다. 지난 4월 GE 이사회 멤버로 합류한 이후 해외를 포함해 GE 사업장을 두루 살폈다. CEO로 선임된 이후에도 컬프는 150여 명에 달하는 고위급 임원 미팅에 시간을 할애하는 대신, GE 전력 사업부가 있는 미 애틀랜타 공장을 첫 번째 행선지로 택했다. 최근 GE가 올해 전력 부문의 구조적 문제로 실적과 현금흐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 만큼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고 WSJ는 풀이했다.

‘컬프식 가이젠 시스템’을 잘 아는 다나허 고위급 임원들은 GE를 컬프가 맡은 이상, 그간 사업부끼리 통합 운영하던 리서치 조직이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2001년부터 GE를 이끌었던 제프리 이멜트 CEO는 전력·항공·헬스케어 등 여러 사업부가 기술과 각종 연구 내역을 공유하고 소통하도록 한 플랫폼인 ‘GE 스토어’를 만들었는데, 너무 많은 인력이 이곳에 투입돼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게 컬프의 문제의식이라는 것이다. 컬프는 줄줄 새는 인건비를 아끼는 대신 각 사업부의 성장 동력에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고 외신들은 전망했다. 다나허의 성공을 분석한 ‘통하는 전략’의 공동 저자 폴 레인원드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연구원은 “작은 일을 결정하기 위해 몇 시간씩 진행되는 회의를 없앤 곳이 다나허”라며 “GE에서도 낭비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앞으로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다나허 본사도 가이젠을 매우 잘 보여주는 상징 중 하나다. 미 보스턴 앞바다에 으리으리한 신사옥을 건설 중인 GE와 대조적으로 워싱턴 다나허 본사는 눈에 띄지 않는 한 유리 건물 8층에 입주해 있다. 건물 내부는 물론, 로비에 간판조차 달지 않았다.


컬프가 감당하느냐, GE가 덮치느냐

그러나 내부 출신인 플래너리가 1년 남짓 해도 털어내지 못한 GE의 부실을 컬프가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월 3일 자 칼럼에서 “지난 40여 년간 전임자인 잭 웰치와 제프리 이멜트가 떠안은 위험 사업들 때문에 GE는 완전히 망가져 있다”며 “이는 마치 인간과 기계의 경쟁처럼 신임 CEO인 컬프가 GE를 감당하느냐, GE가 컬프를 덮치느냐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M&A로 ‘GE 시대’를 열었던 두 전임 CEO는 투자은행, 소비자금융, 방송, 헬스케어 같은 다양한 신사업에 돈을 쏟아부었다. 2000년 이후 M&A와 관련된 자문료로 쓴 돈만 무려 18억달러(약 2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성과를 과시하고 싶었던 전임자들의 과도한 열망은 역설적으로 GE의 발목을 잡았다. 2015년 프랑스의 알스톰 에너지 사업 부문을 무려 101억달러(약 11조5000억원)나 주고 인수했다가, 향후 230억달러 규모의 영업권을 상각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 단적인 사례다.


▒ 로런스 컬프 (Lawrence Culp)
워싱턴대 경제학과,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경영학석사(MBA), 다나허 CEO, 2018년 4월 GE 이사회 멤버 합류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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