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필름몬스터 대표, CJ엔터테인먼트 전략기획팀장, CJ엔터테인먼트 투자사업부장, 성균관대 산업공학과 졸업 / 사진 박준형 인턴기자
박철수
필름몬스터 대표, CJ엔터테인먼트 전략기획팀장, CJ엔터테인먼트 투자사업부장, 성균관대 산업공학과 졸업 / 사진 박준형 인턴기자

영화 ‘완벽한 타인’의 관객수가 개봉 보름 만에 370만명을 넘어섰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 상반기 흥행 1위였던 ‘독전’(약 520만명)의 관객수를 이달 중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의 리메이크작으로 40대 중반의 부부들이 동창 집들이 모임에서 만나 스마트폰 정보를 공개하는 게임을 하며 생기는 해프닝을 그렸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의 흥행 성공 비결을 리메이크를 바탕으로 한 내실 있는 스토리와 편집의 힘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완벽한 타인’이 유명세를 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영화의 제작비(38억원)가 올해 개봉한 한국 상업 영화 가운데 가장 적기 때문이다. 감독이 영화를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영화의 수익성을 책임지는 사람은 제작자다. 이 영화의 ‘제작자’ 박철수 필름몬스터 대표를 15일 서울 방배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성균관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2015년 제작사 설립 전까지 CJENM에서 전략기획과 투자유치 업무를 담당했다. ‘댄싱퀸’ ‘완득이’ ‘써니’ ‘늑대소년’ ‘명량’ 등 박 대표의 손을 거쳐 제작된 한국 영화가 60편이 넘는다. 인터뷰 장소인 3층 회의실 화이트보드에는 검은색 보드펜으로 영화 시사회와 홍보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검은색 가죽 재킷 차림의 박 대표는 느릿느릿한 말투로 “영화 제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망하지 않는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하나.
“내가 영화를 기획하기 전에 생각하는 것은 딱 두 가지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 그리고 상업적인 가능성이 있는 영화인가이다. 이 영화를 왜 해야 하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진 후, 계산을 해 본다. 대본을 받으면 배우는 자신의 배역을 보고, 촬영 감독은 콘티를 짜고, 제작자는 견적을 뽑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대본을 받으면 배우 캐스팅에 얼마를 쓰고 어떤 감독을 섭외하고, 어떤 업체를 쓸지를 고민한다.”

견적만 생각하면 영화 제작이 힘들지 않나.
“비용을 줄여 수익성을 높이려고 견적을 비용을 줄여 수익성을 높이려고 견적을 뽑는다기 보다는 해당 영화에 대한 최적화된 적정 예산을 책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책정되고 합의된 예산과 기간 안에 영화를 제작해 내는 것은 제작자와 투자자 사이 신뢰 문제다. 흥행에 대한 50%의 확신만 있으면 제작을 하려고 한다. 오히려 이재규 감독(‘완벽한 타인’ 영화감독, 필름몬스터 공동대표)이 이 부분에서는 보수적이다.”

영화의 상업성을 어떻게 아나.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과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조금 다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용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도 제작비가 많이 들어 손익분기점을 못넘기면 상업적으로 실패한 영화다. 그다음은 철저한 시장분석이다. 내 영화와 다른 영화의 각각의 경쟁우위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요즘 사람들은 여가를 즐기러 영화관을 가지,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 영화가 아무리 잘 만들어졌더라도 개봉 시기에 그보다 더 잘 만든 영화가 출시되면 성공하지 못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한국 영화 시장에서는 개봉 시기를 놓고 치열한 눈치작전이 펼쳐진다. 추석․크리스마스 등 굵직한 대목에 개봉이 몰려 과열 경쟁이 벌어진다. ‘완벽한 타인’은 기획 단계에서 30~40대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했고, 개봉 시기도 영화업계 비수기인 11월을 노렸다. 연말에 쟁쟁한 경쟁자들이 나오기 전 타깃 관객을 대상으로 반짝 관객몰이를 하려고 했고, 그 전략이 주효했다. CJENM에 있을 때 1년 52주를 개봉영화와 관객수에 따라 회귀분석(상관관계가 있는 두 변수 간의 함수 관계를 조사하는 통계적 해석)한 노하우다. 이번 주 들어 ‘보헤미안랩소디’가 인기몰이를 하며 뒤따라 붙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예상대로 관객수가 나오고 있다.”

감독·배우·스태프를 이끌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했나.
“리더십이라고 할 게 있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감독의 요구를 최대한 맞춰주는 수준에서 제작비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제작비 때문에 감독과 촬영 기간 내내 많이 다퉜다. 촬영 막바지인데 눈이 많이 온다고 촬영을 접고, 화면의 색감을 살리겠다고 폭설이 내리는 밤에 전봇대에 할로겐 등을 일일이 달았다. 촬영을 하루 미루면 3500만원이 허공에 날아간다. 서울에서 광주 촬영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서로 말 한마디 안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영화가 잘되지 않았나. 이재규 감독을 인정한다.(웃음)”

촬영 기간은 어떻게 단축했나.
“촬영만 짧았지 준비 과정은 길었다. 촬영에 앞서 5개월 동안 프리 프로덕션 작업을 했다. 크랭크인(영화촬영 개시) 전에 출연배우를 모두 모아 사흘 동안 리딩(리허설)했다. 영화 업계에서 리허설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촬영을 마친 후에는 편집 등 후반 작업만 9개월을 했다. 영화는 갈고 닦아야 빛이 난다. 영화 준비작업에 ‘과유불급’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흥행을 예상했나.
“기획 단계부터 망하지 않게 만들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올해 8월 편집판을 보고 흥행에 확신이 들었다. 기술시사회 평가도 좋았다. 영화 개봉에 앞서 마케팅 작업을 시작하려고 사전설문조사를 했는데, 영화에 대한 인지도가 현저히 낮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시사회를 진행했다. 전국시사회 무료좌석 1만7000석을 풀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준비하는지 궁금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융합에서 기회가 있다고 본다. 드라마 연출자에게 영화를 맡기고, 영화 감독에게 드라마 연출을 맡겨 융합형 콘텐츠를 만들려고 시도 중이다. 영화처럼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어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공급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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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 영화 제작을 뜻하는 프로덕션 이전에 해야 하는 일. 영화 촬영을 위한 준비작업을 뜻한다. 다만 그 준비작업에서도 시나리오 선정, 제작비 펀딩은 개발 단계에 속한다. 개발 단계가 끝나고 제작을 위해 준비하는 일을 프리 프로덕션이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 시나리오 분석, 시각화 작업, 배우 캐스팅, 리허설이 감독 몫, 스케줄을 짜고, 예산을 잡고, 감독과 제작팀을 구성하는 일 등이 제작자 몫이다. 제작자는 그 밖에도 시나리오 검토와 영화 감독 선정, 상영극장 섭외 등 업무 전반을 총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