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바라 GM CEO가 1월 13일 ‘2019 북미 오토쇼’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이후에도 바라 CEO는 “올해 사업이 더 잘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사진 블룸버그
메리 바라 GM CEO가 1월 13일 ‘2019 북미 오토쇼’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이후에도 바라 CEO는 “올해 사업이 더 잘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사진 블룸버그

GM 1만4000명, 포드자동차 2만5000명, 폴크스바겐 7000명, 재규어랜드로버 4500명, 닛산자동차 1000명.

지난해 11월 GM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인력 감축 계획을 밝힌 자동차 업체와 이들이 공개한 구조조정 인원수다. 연초부터 자동차 기업들이 감원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자 외신들은 일제히 ‘자동차 업종의 경기 침체가 벌써 시작됐다(블룸버그)’ ‘자동차 업계에 카마겟돈(자동차와 아마겟돈을 결합한 단어) 공포가 커지고 있다(FT)’ 등의 분석을 내놨다.

자동차 기업들이 감원 계획을 내놓은 것은 산업계가 맞닥뜨린 악재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시장의 연간 차 판매 대수가 처음으로 4.2% 감소세로 돌아선 상황에서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 둔화로 올해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이후 중국 차 판매 대수는 4개월 연속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12~17%씩 감소했다.

지난해 10월 유럽의회에서 자동차 환경 규제가 강화된 데다, 기술 발전으로 자동차 생산 라인에 필요한 인력이 감소한 것도 자동차 업계에 부정적인 요인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둘러싼 혼란도 악재다. 실제로 미국의 인력 분석 전문 업체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업계 구조조정 규모는 3만587명으로 전년보다 75% 증가했다.

그런데 이런 ‘카마겟돈’ 공포는 18세기 말 방직 공장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러다이트(기계 파괴) 운동’과 다를 바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감원 자체만을 우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공포의 본질을 세 가지 포인트로 정리했다.


포인트 1│‘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제일 먼저 감원·구조조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업체는 GM이다. 지난해 11월 ‘7개 공장 폐쇄, 1만4700명 감원’이라는 선제적 구조조정 카드를 빼 들었다. 그 뒤를 포드, 재규어랜드로버 등 주요 기업들이 이었다.

그러나 감원 바람은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단순한 공포감에 휩싸인 공장 노동자들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잠재력을 가진 방직 기계를 파괴했던 것처럼, ‘좋았던 시절’의 향수에 빠져 있는 일부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의 편향된 시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기업들의 잇따른 감원·구조조정 결정을 ‘기술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판단한다. 앞으로는 전기차·자율주행차·커넥티드카 그리고 이런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차량 공유, 부가 서비스가 산업 핵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자동차 기업인 GM의 메리 바라 CEO는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지금 자동차 시장은 석탄 연료, 기계적 제어 자동차에서 다양한 에너지원, 전자적 제어 자동차로 전환하는 시기”라며 “앞으로 5~10년 동안에는 지난 50년간 일어났던 변화보다 훨씬 역동적인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후 GM은 기존의 ‘공장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모듈형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제품 설계 혁신과 소프트웨어 쪽으로 대대적인 방향 전환을 감행했다. 그리고 국내외에 방만하게 흩어져 있는 생산 시설과 인력을 구조조정하기 시작했다. 마크 무로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GM의 결정은 자동차 업계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내연기관에서 전기동력으로, 인력 등의 핵심 자원을 공격적으로 이동시키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포인트 2│단순 조립, 내연기관에선 감원, 미래차에선 더 많이 충원

GM이 폐쇄하기로 한 공장은 미국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 지대)에 집중돼 있다. 미시간주와 오하이오주에 있는 쉐보레 생산 공장들이다. 또 미시간주 워런과 볼티모어에 있는 변속기 생산 공장 두 곳도 포함됐다. 모두 내연기관 차량 생산 라인이다. 미래차 기술 투자에 집중하면서, 내연기관 차량 중심의 대량 생산 체제에서 탈피하는 GM의 사업 전략이 여실히 드러나는 결정이었다.

이는 자동화·혁신으로 대표되는 산업 흐름과 연관이 깊다. 세계 자동차 공장에서는 노동력에 덜 의존하면서 생산성과 효율을 올리는 기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전기차 ‘ID.’ 모델 생산을 위해 독일 현지 생산 라인에 인공지능(AI) 로봇을 설치할 예정이다. 포드는 이미 3년 전부터 산업용 로봇 회사 ‘쿠카(kuka)’와 협력해 조립라인을 로봇과 노동자가 협업하는 방식으로 바꿨으며, 도요타도 2017년 수조원을 투입해 모든 공장을 하나의 공장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기업들은 단순 조립과 내연기관 쪽 인력을 내보내는 대신 전기차·자율주행차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인력을 대폭 충원 중이다. 2016년 자율주행차 스타트업인 ‘크루즈 오토메이션’을 인수하며 앞서 나갔던 GM은 향후 2년간 관련 투자 규모를 두 배 이상 증액하겠다는 계획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기계 공학 엔지니어 자리가 줄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에너지 관리 전문가, 데이터 전문가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새로 필요한 인력은 고연봉을 자랑하지만 ‘사람이 없어 못 구하는’ 상황이다. 페이사에 따르면 201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 자율주행차 엔지니어의 평균 연봉은 29만5000달러(약 3억3000만원)였다. 이 지역 일반 노동자 연봉 평균(6만4500달러)의 5배에 달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최근 보고서에서 향후 10년간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인력 수요가 6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관련 학위 등 자격을 가진 인력은 수요에 훨씬 못 미치는 10만 명 수준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GM은 작년에 순이익만 10조원 이상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돈으로 새로운 기술을 가진 사람을 뽑아 수년 안에 완전한 미래차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라며 “이를 위해 기존 내연기관 차량 엔지니어를 기계 공학자와 전자 공학자들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인트 3│흐름에 뒤처지는 쪽이 ‘카마겟돈’의 가장 큰 패배자

가장 큰 패배자는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이 아니라 이를 실행하지 못한 기업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률이 1%대로 급락하는 등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지만, 노조는 여전히 불법 파업을 벌이고 있다. 선제적 구조조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미래차 기술로의 전환, 관련 인재 확보도 글로벌 경쟁 기업에 비해 더딘 편이다. 한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노조 반대로 현대차의 인력 조정 관련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고 있어,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바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인력 감축안을 내놓은 회사들의 상황은 다르다. 메리 바라 CEO는 1월 12일 CNBC에 출연해 “중국 매출 덕분에 지난해 실적이 예상을 뛰어넘었고, 올해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덕분에 GM 주가는 장중 8% 넘게 상승하기도 했다. 감원 바람을 일으킨 GM과 폴크스바겐, 포드 모두 올 들어 주가가 상승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히려 산업 전환기의 변화에 올라타지 못하는 기업들에 ‘카마겟돈’ 피해가 닥칠 것”이라며 “피해자가 한국 기업들이 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Keyword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18세기 말 영국 공장지대에서 노동자들이 주도한 ‘기계 파괴 운동’이다. 산업혁명 초창기 영국의 방직 업계에 사람의 일을 대신해줄 새로운 기계가 도입됐고, 노동 환경 변화에 위기감을 느낀 노동자들 사이에서 망치를 들고 기계를 부수는 운동이 일어났다.

카마겟돈(Carmageddon) 자동차와 최후의 결전을 의미하는 아마겟돈의 합성어다. 보통 자동차 업계에서는 시장에 파괴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상황이 닥쳤을 때 사용한다. 2009년 GM이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던 위기 상황에도 이 용어가 쓰였다. 최근에 수입차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하는 미·중 무역전쟁이나 자동차 업계 감원 바람 때문에 다시 외신에 등장했다. 한편으로는 성경에서 말하는 ‘선과 악의 최후의 결전’이라는 뜻을 살려 기존 자동차 기업들과 IT 기업들이 미래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동차 기업 입장에서는 IT 기업을 ‘악’, IT 기업 입장에서는 자동차 기업을 ‘악’으로 대상화한 전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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