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월 2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행사장의 화웨이 전시관 전경. 이번 행사 참석자는 10만명, 참여 기업 수는 2400개였다. 사진 블룸버그
사진은 2월 2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행사장의 화웨이 전시관 전경. 이번 행사 참석자는 10만명, 참여 기업 수는 2400개였다. 사진 블룸버그

“화웨이는 속임수를 쓰는 기업이다.”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19’가 열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행사장에서 2월 26일(현지시각)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 국무부 사이버 담당 부차관보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맹비난했다. 행사에 참석한 글로벌 주요 통신업체들에 ‘반(反)화웨이 전선’에 참여해줄 것을 독려하는 취지였다.

같은 날 MWC 기조연설에 오른 궈핑(郭平) 화웨이 순환 회장은 1000명이 넘는 참석자들 앞에서 “안보에 대한 미국 측의 비난은 증거가 없고 보안이 화웨이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궈 회장은 또 “화웨이는 어떤 형태의 백도어(보안 구멍)를 심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우리 장비에 그런 식의 접근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이동통신 신기술이 총집합하는 ‘MWC 2019’에서 미국 대 화웨이의 ‘미니 대전’이 벌어졌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통신장비에 도청과 정보 유출이 가능한 이른바 백도어가 있으며, 이를 통해 중요하고 민감한 정보가 중국 정부에 제공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정보동맹국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민감한 정보를 공유하는 미국 및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5국)를 중심으로 화웨이를 올해 본격적으로 상용화를 앞둔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 입찰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 그동안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최근 반화웨이 전선이 균열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독일·이탈리아 등이다. 파이브아이즈의 일원이기도 한 영국 국가사이버보안센터(NSCS)가 화웨이 통신 장비의 보안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데 이어, 이탈리아와 독일 정부도 화웨이 배제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만 해도 미국편에 섰던 뉴질랜드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뉴질랜드 총리가 “영국과 비슷한 입장”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인 것이다. 최근 중동의 전통적 친미 동맹국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사우디아라비아도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궈 회장은 “장비를 도입하기로 한 30개사 중 18건은 유럽, 9건은 중동, 3건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었다”고 말했다.


명분보다 실리…경제적 이유가 큰 배경

화웨이가 다시 힘을 얻은 데엔 각국 정부의 실리 계산이 작용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 시장 조사기관인 IHS 마킷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세계 통신 장비 시장 점유율은 화웨이가 28%로 가장 높았다. 화웨이는 세계 170여개국에서 독일 도이치텔레콤, 영국 보다폰, 스페인 텔레포니카 등 120여 통신 업체와 손잡고 20억명 이상에게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화웨이는 이 영향력을 바탕으로 5G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데, 통신 업계에서는 화웨이의 기술이 경쟁사 에릭슨, 노키아, 삼성전자 등보다 최소 3개월 이상 앞서있다고 본다.

여기에 곳곳에서 화웨이 이슈를 정치 논리보다 산업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현재 세계 5G 장비 주요 공급사는 화웨이를 비롯해 핀란드의 노키아, 스웨덴의 에릭슨 정도다. 삼성전자도 있지만 비교적 비중이 작다. 화웨이를 배제하면 통신사들의 장비 선택권이 좁아진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화웨이의 장비는 경쟁사 대비 10% 정도 저렴하다.

실제로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는 성명에서 “화웨이 배제는 정비 지연과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고, 영국 보다폰 CEO도 “네트워크 산업 특성상 장비 공급사가 3개에서 2개로 줄면 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에 따라 경제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일본 미즈호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이하 홍콩 제외)에서 영국으로 흘러들어간 직접 투자 규모는 2017년 기준 23억4900만파운드(약 3조5100억원)를 기록했다. 9년 전보다 11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또 2017년 기준 영국의 대중국 무역 규모는 675억파운드(약 101조원)로 2010년보다 2.6배 증가했다. 영국의 전체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5.4%로 높아졌다.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회장은 지난달 18일 “미국이 우리를 믿지 않으면 더 큰 규모 투자처를 미국에서 영국으로 옮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제지 동양경제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앞두고 장래가 불투명한 영국 입장에서 ‘차이나머니’ 이탈을 촉발할 수 있는 움직임을 보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반화웨이 전선이 흐트러진다고 해서 미국과 중국이 5G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기싸움이 당장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문가들은 3월 한 달 양측의 신경전이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미·중 무역 회담에서 화웨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룰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2월 22일 협상 대가 중 하나로 화웨이 기소를 포기하겠느냐는 질문에 “법무장관을 포함해 모두와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무역 회담 주요 이슈로 떠오를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번 MWC에서 화웨이가 외부 보안 기관에 검증을 받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홍보했지만, 보안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중국법에 따르면 정부의 요구가 있으면 기업도 정보 기관에 협력해야 한다. 화웨이가 세계 최대 통신 사업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정부가 100% 출자한 국가개발은행의 자금 지원 덕분이었음을 따지면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한 장비 회사 관계자는 “단순히 보안 문제가 아니라 신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화웨이 고집한 LG유플러스 가입자 증가에 표정관리

통신 3사 중 유일하게 화웨이 5G 통신 장비를 도입 중인 LG유플러스가 여론의 뭇매에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2월 28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의 자료를 보면 LG유플러스는 올해 1월 번호이동을 통한 무선 가입자 수가 전월보다 9.2% 증가하며 통신 3사 중 가입자 수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SKT는 7.4%, KT는 5.7% 증가했다.

LG유플러스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타깃이 되는 5G 장비가 회사가 도입한 장비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 측에서 화웨이 대신 선택해달라고 한 시스코는 LG유플러스가 도입한 기지국 장비가 아닌 코어 장비를 만드는 회사”라며 “국내 통신사들은 코어망에 삼성전자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보안 관련 이슈와 무관하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세계 최초로 화웨이의 5G 통신 장비를 채택했다. 3월 말까지 1만5000개 기지국 장비를 설치할 계획인데, 이 중 화웨이 장비 비중은 95% 수준이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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