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프리드 베버(Winfried Weber) 독일 비텐-헤어데케대 경제학 박사, 톰 피터스 그룹 컨설턴트, 독일 만하임대 실용경영조사연구소장
빈프리드 베버(Winfried Weber)
독일 비텐-헤어데케대 경제학 박사, 톰 피터스 그룹 컨설턴트, 독일 만하임대 실용경영조사연구소장

독일 스타트업의 탄생과 성장은 미국 스타트업과 다르다. 창의력 있는 개인이 창고에 모여 시작하는 일은 많지 않다. 각 지역에 축적된 기술력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업은 가업(家業)이 되어 대대손손 이어진다. 이후 시장에서 세계 1·2위를 다투게 되면 ‘히든 챔피언’이라 불리게 된다.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으로 경쟁력을 갖춘 그들이 독일 국가 경제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것이다.

‘히든 챔피언’ 전문가인 빈프리드 베버 만하임응용과학대 교수는 독일 경제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보다는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에 강하다고 말한다. 그도 예전에는 국가 경제가 대기업에 의존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세계적 경영 컨설턴트인 톰 피터스와 협업을 계기로 기업의 혁신과 중소기업에 집중하게 됐다. 이제 그는 스타트업의 성장과 혁신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믿는다. 인터뷰 내내 베버 교수 목소리에 담긴 열정이 이를 확인시켜줬다. 독일 스타트업의 작동방식부터 변화하는 산업에서 요구하는 조직구조까지, 혁신을 관통하는 주제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독일 스타트업 상황은 어떠한가.
“독일 스타트업은 지난 몇 년간 큰 성장세를 보였다. 독일인은 눈에 보이는 제품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주로 제조업 분야, 특히 B2B에서 강하다. 반면 IT 분야에서는 실리콘밸리나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역동성을 쫓아가지 못한다. 그 원인은 사업 실패가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지는 사회 분위기와 관련 있다. 물론 사업이 실패하면 해당 산업에 악영향을 끼치는 면도 있다. 하지만 사업 실패자를 패배자로 규정해 버리면 청년들이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실패를 통해 더 큰 성공을 이뤄내는 실리콘밸리의 '실패 문화'는 독일에 정착이 잘 안 됐다.”

독일 기업의 특징은 무엇인가.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석좌 교수가 말한 ‘클러스터(cluster)’를 꼽고 싶다. 클러스터의 형성은 혁신의 필수 요소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독일 남서쪽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검은 숲이란 독일어) 부근에는 정밀공학기술에 기반한 기계식(태엽 힘으로 작동하는 방식) 시계 클러스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20세기 초 위기가 시작됐고 1970년대 일본의 쿼츠(수정발진자) 시계가 유럽을 강타하자 완전히 무너졌다(1969년 일본 세이코가 세계 최초의 쿼츠 손목시계를 내놓자 기계식 중심의 스위스·독일 시계 산업은 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시계 클러스터가 소멸된 자리에 의료기기 클러스터가 태어났다. 의료기기에는 정밀공학기술이 필수인데, 시계를 만들면서 축적된 정밀공학기술이 기반이 됐다. 이렇듯 기존 산업이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나타나 신산업을 형성하는 것이 독일 기업의 특징이다. 클러스터의 네트워크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독일 스타트업은 전통적으로 이런 지역 네트워크에 기반해 탄생한다. 대도시에 밀집해 있지 않고 각 지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세계 최고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들이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대체로 B2B 영역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느리지만 지속적인 독일 경제의 특징이 나타난다. B2B 영역에서는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가 중요하다. 이를테면 인쇄기계 분야 세계 1위인 ‘하이델베르거 드룩마쉬넨(Heidelberger Druckmaschinen)’은 나온 지 80년 된 부품도 주문이 들어오면 새로 제작한다. 일손이 모자라면 추가 인력을 고용해서라도 부품을 제공한다. 할아버지가 산 인쇄기를 손자가 고쳐 쓸 수 있기 때문에, 고객과 관계는 세대를 거쳐도 끊기지 않는다.”

빠른 혁신은 독일 경제와 상충하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느리기 때문에 빠른 변화가 자극을 줄 수 있다. 독일 경제에 빠르고 파괴적인 혁신이 지금보다 10배는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일 기업은 느리고 안정적으로 지역경제를 책임진다는 강점이 있지만, IT 분야에서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빠른 국가들을 이기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해고나 이직도 흔치 않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보쉬에 들어갔으면 조용히 일하자(schaffe bei Bosch, hält schweig Rosch)’라는 말이 있다. 보쉬를 떠날 일은 어차피 없을 테니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다. 독일 기업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이렇듯 느린 독일 경제에 빠르고 파괴적인 도전은 보완적인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인이 급격한 변화를 좀 비판적으로 본다는 것을 내 얘기를 통해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모터쇼의 분위기를 본 이후 한국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테슬라라는 도전이 나타났을 때 한국과 독일 기업들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하지만 신기술에 적응하지 않으면 양국의 자동차 산업은 쇠퇴할 것이다. 기존 산업은 항상 정치권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고, 실제로 정치권은 세금을 투입해 그들을 보호한다. 이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정부는 모든 혁신 현장에서 실패하기 때문에, 방향성을 결정할 때는 뒤로 물러서는 게 좋다.”

베버 교수는 4월 2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9 서울모터쇼 국제 콘퍼런스’에서 ‘자동차 산업의 가치 창출 변화와 4차산업혁명 시대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기조 강연했다.

혁신을 가로막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신생 기업과 기존 기업으로 나눠서 대답해 보겠다. 우선 신생 기업에는 관료주의가 큰 방해물이다. 독일의 금융과 노동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서 외국인 투자자가 질색할 정도니까. 실제로 독일은 OECD 중 법조인 비율이 제일 높은 국가다. 그만큼 규범이 복잡하고 많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법조인 3명은 대동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신생 기업이 어느 정도 커서 중소기업이 되면 상속세 문제가 커진다. 독일은 현재 가업승계 시 과세특례제도가 잘돼 있기 때문에 승계자가 경영을 잘하고 고용을 유지한면 상속세 0%도 가능하다. 앞으로도 이런 혜택이 유지돼야 한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사민당(SPD)과 같은 진보 진영에서 부자 증세 논의가 활발했다. 물론 공감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자 개인에 대한 증세여야 한다. 독일 중소기업의 노하우와 자산은 창업자 가족을 통해 유지·발전되는 경우가 많다. 높은 상속세가 부과되면 가족은 회사 일부를 매각할 것이고, 이게 반복되면 회사의 유무형 자산이 외부 투자자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혁신을 원한다면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우선 우리 사회에서 전문화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란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전문 인력은 국가 경쟁력에 직결되는 요소다. 그리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교육과 직업훈련이 필요하다. 결국 사람에 대한 투자, 즉 교육에 대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또 앞으로 나타날 전문 인력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기존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작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네덜란드 히든 챔피언 ‘뷔르트조르흐(Buurtzorg)’가 좋은 예다. 설립 12년 만에 네덜란드 간호 서비스 시장의 50%를 차지했다. 기존의 위계 질서를 타파하고 간호 인력에 자율재량권을 부여했더니 간호사들이 지식 인트라넷을 구성해 스스로 움직였다. 이 사례는 한국과 독일에 큰 과제를 안겨준다. 낡은 조직·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구적 혁신(permanent innovation)’은 조직과 개인의 뜻이 같아야 가능하다. 밀레니얼 세대 지식 노동자들은 자율성, 그리고 조직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100%의 확신’을 원한다. 지식 산업에서는 이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모델이 언제나 더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지휘 통제 모델(command and control model)’은 죽었다고 생각한다.”

정예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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