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래 하래원 대표가 비닐하우스에서 자신이 재배한 채소 모종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하래원
김형래 하래원 대표가 비닐하우스에서 자신이 재배한 채소 모종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하래원

채소가 몸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꼬박꼬박 챙겨 먹는 일은 쉽지 않다. 채소는 쉽게 짓무르는 성질 때문에 먹는 것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기 십상이다. 외식이 많은 맞벌이 부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주변에서 “버리는 게 아까워 되도록이면 채소를 사지 않게 된다”는 얘기가 들리는 이유다.

그렇다고 필요한 채소를 키워 먹기도 어렵다. 씨앗에서 싹을 틔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키우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과 정성이 만만치 않다. 도시살이를 하는 이들은 채소를 키울 공간을 확보하기도 마땅치 않다.

시골 출신들은 ‘아파트에서 채소를 키우면서 뜯어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궁리만 하던 차에 다 자란 채소를 길게는 2주쯤 키우며 필요할 때마다 뜯어 먹을 수 있는 상품을 파는 농장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4월 29일 호기심에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하래원’을 찾았다. 농장은 비닐하우스 3개동을 하나로 엮은 2480㎡(750평) 남짓한 규모로 크지 않았다. 농장을 지키는 덩치 큰 말라뮤트(썰매를 끌던 대형 애완견)가 무서워 농장 근처에서 서성이며 납품하러 간 농장주가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30분쯤 기다리자 농장 근처 하나로마트에 물건을 납품하고 돌아온 김형래(35) 하래원 대표가 기자를 반겼다. 날이 풀리면서 기온이 많이 올랐지만 그를 따라 들어선 온실은 환기 덕분인지 후텁지근하지 않았다.

온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김씨는 딸기를 비롯해 샐러드 재료로 쓰이는 버터헤드, 미니버터헤드, 로메인 등 10여 종의 채소를 ‘박막식 수경재배’ 방식으로 키운다고 했다. 박막식 수경재배는 비닐하우스에서 흙을 사용하지 않고 물과 수용성 영양분으로 만든 배양액 속에서 식물을 키우는 방법을 일컫는 말로, 물재배 또는 물가꾸기라고도 한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던, 여행에 푹 빠졌던 젊은이가 갑자기 진로를 바꿔 농업 전문대학을 마치고 농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농협 하나로마트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살아있는 유로피안 샐러드&쌈채소’(위)와 ‘유로피안 샐러드 믹스’(아래). 사진 하래원
농협 하나로마트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살아있는 유로피안 샐러드&쌈채소’(위)와 ‘유로피안 샐러드 믹스’(아래). 사진 하래원

왜 농업을 선택했나.
“백석대학교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다 중퇴하고 국내외 가리지 않고 원없이 여행을 다녔다. 경비 조달을 위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뉴질랜드 농장에서 일도 했다. 그래도 농업이 전혀 생소하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농약사를 운영하시면서 농사를 지었던 덕분이다.”

뉴질랜드 농부의 삶은 한국 농부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김 대표는 “뉴질랜드 농부의 삶은 ‘여유로운 목가(牧歌)’”라고 했다. 그는 뉴질랜드 농부를 바라보면서 농업의 비전과 직업으로서의 농부에 대해 고민했다고 했다. 김 대표가 내린 결론은 ‘뉴질랜드 농부처럼 살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행복할 것 같다’였다. 돈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 대표는 27세에 농업전문학교인 연암대에 입학했다.

농촌생활에 익숙하다지만 지켜본 것과 직접하는 것은 많이 다를 텐데.
“직접 농사를 짓는 일은 옆에서 구경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직 젊어서 견딜 만했다. 오히려 월급쟁이 하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없을 텐데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느꼈다. 젊어서 지금 고생하면 나이 먹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든 만큼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작물을 재배하는 기술도, 판로개척도 꾸준히 나아지고 있어 다행이다.”

재미도 좋지만 가장으로서 벌이도 중요할 텐데. 현재 매출은 얼마나 되나.
“월 매출이 1000만원 정도 되는 것 같다. 씨앗을 발아시켜 모종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모종을 키워 쌈채소로 팔기도 한다. 어떤 농사가 사업으로서 유망한지 판단이 서지 않아 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단계다. 비전이 있는 아이템을 고르면 전력질주할 계획이다.”

700평 규모치고는 벌이가 괜찮은 것 같다.
“노지재배로는 절대 벌 수 없는 돈이다. 박막식 수경재배를 통해 시설을 놀리는 기간을 최소화한 덕분이다. 작물을 교체하는 중간중간 시설을 놀릴 때가 있다. 계산해 보니 이 공백만 없앤다면 현재 시설만으로도 연간 4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겠더라.”

생산해도 판로가 확보되지 않으면 말짱 헛일일 텐데.
“대다수 농부들은 좋은 작물을 많이 생산하는 것에 역량을 집중한다. 그게 농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절대 큰돈을 벌 수 없다. 생산 못지않게 판로 개척이 중요하다. 아무리 질이 좋은 농산물도 팔아야 돈이 되기 때문이다. 우선 농장 인근 하나로마트를 집중 공략했다. 현재 평택에서만 4개의 하나로마트에 채소를 공급한다. 헬로네이처라는 직배송업체를 통한 인터넷 판매도 한다. 물론 직거래도 한다.”

생각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판매 촉진 아이디어가 있었나.
“우리는 뿌리가 달린 채소를 화분과 함께 판다. 사실 화분은 공짜로 제공한다. 뿌리가 살아있으니 산 채소에서 잎을 솎아 먹은 뒤 다시 잎을 키워 수확할 수 있다. 소비자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직접 키우니까 채소가 필요할 때마다 안심하고 따먹을 수 있다. 가격도 필요할 때마다 사먹는 것보다 저렴하다.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체험학습용이나 관상용으로 꽤 구매하는 것 같다. 이런 장점 때문에 보험회사 직원들이 대량 구매해 보험 가입 고객에게 선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소비자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좋아 이 방식의 판매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장점이 워낙 많으니 비싼 값에 팔아도 될 것 같은데.
“3종의 채소를 한 묶음으로 판매하는데 가격은 5500원이다. 길게는 한 달쯤 후에 1200g의 채소를 수확할 수 있다. 돈으로 환산하면 2만4000원쯤 된다. 우리 농장은 샐러드용 채소 한 묶음(100g)을 2000원에 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서 먹을 때보다 1만8500원이 이득이다.”

그런 채소도 소비자가 키우기 어렵지 않나.
“예상보다 키우기 쉽다. 물론 살아 있는 채소인 만큼 영양분이 필요하다. 하지만 채소 전용 비료를 사서 조금씩 주면 문제가 해결된다. 비료 사기가 귀찮으면 쌀뜨물을 조금씩만 주면 한 달쯤은 문제없이 자란다. 괜찮다는 평가가 많아 아이디어에 대한 실용신안을 출원할 계획이다.”

향후 계획은.
“단기적으로는 온실 규모를 2640㎡(800평)쯤 추가해 채소 생산량을 늘리고 남는 분량을 외지에도 팔 계획이다. 친환경 모종도 생산해 판매할 방침이다. 도시화로 아파트가 많아져 농촌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었다는 점에 착안해 중장기적으로는 테마 형태의 농장을 만들어 체험 공간으로 제공하고 싶다.”

박지환 조선비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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