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전 LG유플러스 부회장이 2011년 6월 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4G 이동통신 LTE 상용 서비스’ 기념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LG유플러스
이상철 전 LG유플러스 부회장이 2011년 6월 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4G 이동통신 LTE 상용 서비스’ 기념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LG유플러스

“만년 3등으로부터의 단절입니다. 이제 ‘설움의 과거’를 말끔히 씻을 때가 온 것입니다.”

2011년 7월 4일 아침, LG유플러스 직원들의 책상 위에 있던 편지 내용 중 일부다. 작성자는 이상철 당시 LG유플러스 부회장. 4세대 이동통신(4G) 서비스인 LTE(롱텀에볼루션) 상용화를 맞아 이동통신 시장에서 1등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편지를 임직원에게 보낸 것이다. LG유플러스는 2011년 7월 1일, 서울·부산·광주 일부 지역에서 LTE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날도 이 전 부회장은 IPTV 생중계로 전 임직원에게 LTE 상용 서비스의 의미와 LG유플러스의 전략에 대한 특강을 했다. 임직원들은 ‘일등! LTE’라는 문구가 있는 티셔츠를 입고 출근했다. LG유플러스는 가입자 수 기준, 이동통신 시장에서 SK텔레콤, KT에 이어 3등이었다.

이 전 부회장은 LG유플러스에서 일하는 동안, ‘미스터 LTE(Mr. LTE)’라고 불렸다. LTE 시대에서만큼은 LG유플러스가 3위 사업자라는 꼬리표를 떼길 바라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전 부회장은 2010년 1월 LG유플러스 수장을 맡아 2015년 말까지 6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임기 2년째에 LTE를 상용화하면서 9개월 만에 9만 개의 LTE 기지국을 설치했던 사례는 기네스북에 올랐다. 실적도 개선했다. 매출 1조2071억원, 영업이익 1111억원, 순이익 926억원(2009년 3분기 기준)이었던 경영실적은 이 부회장이 떠나기 직전인 2015년 3분기 기준 매출 2조7130억원, 영업이익 1756억원, 순이익 117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2배 이상 뛰었고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58%, 26% 증가했다.

하지만 이 전 부회장이 떠난 지금 LG유플러스는 곤혹스러운 처지다. 이 전 부회장이 2013년에 한 결정 때문이다. 당시 LG유플러스는 LTE망 구축에 중국 최대 통신 장비 제조업체 화웨이 장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의 이동통신 3사 중 화웨이의 무선 통신장비를 사용한 것은 LG유플러스가 최초다. 이때 제기됐던 도감청, 해킹 등 보안 문제가 6년 뒤인 지금 되살아났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웨이 통신 장비를 수출금지 품목 리스트에 올렸다. 미국은 화웨이에 대한 거래제한 조치에 한국 정부가 동참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부회장이 재임 시절 도입한 화웨이 무선 통신 장비는, 5세대 이동통신(5G) 시대를 준비하는 LG유플러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 기업의 수장이 내린 결정이, 그가 회사를 떠난 뒤에도 해당 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Mr. LTE’의 결정, 5G 시대에도 영향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 KT와 달리 화웨이 무선 통신 장비를 사용한 것은 주파수 때문이라고 말한다. LG유플러스는 2013년 LTE용 주파수로 2.6GHz 대역에서 40MHz를 배분받았다. 이와 달리 SK텔레콤과 KT가 1.8GHz 대역에서 각각 15MHz, 35MHz를 받았다. 따라서 통신 장비 업체 입장에선 LG유플러스만을 위해 새로 기지국 등을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2013년도에 전 세계에서 2.6GHz를 활용하는 통신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원하는 기간 내에 괜찮은 성능을 가진 장비를 만들어줄 회사는 화웨이뿐이었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가 가격 때문에 화웨이 장비를 선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통신업계에선 화웨이 통신 장비가 에릭슨, 노키아 등 경쟁사보다 20~30%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다. 익명을 요구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화웨이가 한국 무선 통신 장비 시장에 진입하기를 원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LG유플러스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화웨이 통신 장비에 대한 보안 우려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LG유플러스가 LTE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보안 논란이 제기됐다. 논란이 일자 이 전 부회장은 2013년 12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화웨이 제품은 이미 영국의 국제상호인정협정(CCRA) 인증을 받은 안전한 제품”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이 전 부회장은 화웨이 통신 장비가 가격 대비 우수한 성능을 갖췄다며 도입을 밀어붙였다.

문제는 이 전 고문이 LG유플러스를 떠난 지(2017년 3월까지 LG유플러스 상임고문) 2개월 만인 2017년 5월 화웨이 본사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제기된 보안 우려에도 불구하고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 그의 결정에 대한 보상이 아니냐는 의혹은 아직도 꼬리를 문다. 더군다나 이 전 부회장이 재직하던 2014년부터 LG유플러스는 화웨이 스마트폰을 국내 이동통신사 중 유일하게 들여오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KT 사장, 정보통신부 장관, LG유플러스 부회장 등 정부와 통신업체를 두루 거친 국내 대표 통신 전문가가 무리하게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거둬지지 않는 이유다.


중국산 CCTV에서 백도어 발견, 보안 우려 현실화

2015년 국내에 수입됐던 200여 대의 중국산 CCTV에서 제조사가 심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백도어(backdoor)가 발견된 적이 있다. CCTV 제조사가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에 판매한 중국산 CCTV 화면을 들여다보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화웨이 장비에 대한 보안 우려도 이와 같다. 현재까지 화웨이 장비에서 백도어가 발견된 적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화웨이가 통신 장비에 백도어를 심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김용대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시스코 장비에서도 최근 백도어가 발견된 적이 있다”며 “의도된 것이냐 의도되지 않은 것이냐의 차이일 뿐, 네트워크 장비회사는 습관적으로 백도어를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5G 상용화가 이뤄지고, 전국망을 깔아야 하는 상황에서 LG유플러스는 곤혹스러운 처지다. LTE 때 이미 화웨이 무선 장비를 도입한 LG유플러스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5G망을 구축할 때도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나 비용 절감 차원으로나 유리하다. LG유플러스의 LTE 무선 장비 중 화웨이 비중은 30%다. 서울과 경기·강원 일부 지역에 화웨이의 LTE 무선 장비가 깔려있다.


Keyword

백도어(backdoor) ‘뒷문’이라는 뜻으로 정보통신(IT) 업계에서는 컴퓨터 시스템 설계자나 관리자가 사용자 몰래 심어둔 보안 허점을 일컫는다. 백도어를 이용하면 사용자 인증 등 보안절차를 피해 마음대로 비밀번호를 바꾸거나 정보를 빼오고, 원격으로 기기를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런 보안 허점을 남겨두는 이유가 항상 악의적인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원격으로 시스템을 유지·보수하기 위한 통로로 이용되기도 한다.

plus point

유선에서 재난망, 무선까지 보안 우려 이어져

화웨이의 유선 통신 장비가 국내에 도입될 때에도 보안 우려가 계속 제기됐다. 화웨이의 유선 통신 장비는 LG유플러스뿐만 아니라 KT와 SK텔레콤, 한국전력, 네이버 등이 사용한다. 화웨이가 국내 재난망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달청이 LG CNS, 문엔지니어링, 리노스 컨소시엄을 재난망 구축사업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서 화웨이는 고배를 마셨다.

네트워크 장비 회사는 유·무선 장비를 불문하고 기술적으로 백도어를 심을 수 있다. 다만, 무선 장비에는 유선보다 많은 장비가 접속할 수 있기에 보안 문제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뿐이다. LG유플러스는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화웨이의 무선 통신 장비를 사용한다. LG유플러스는 2018년 스페인의 국제 인증기관에 화웨이의 기지국 장비 소스 코드와 각종 기술 관련 자료를 의뢰했다. 하지만 보안 등급이 생각보다 낮다는 평가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전자여권 안에 들어가는 보안칩 등급이 5~6등급인데, LG유플러스는 이보다 낮은 등급을 받았다”며 의혹 해소에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반복되는 통신 장비 보안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국가적으로 장비 검수 능력을 키워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통신 장비의 백도어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기준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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