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현지시각)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야외 공연장 ‘럼지 플레이 필드’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 AP 연합
5월 15일(현지시각)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야외 공연장 ‘럼지 플레이 필드’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 AP 연합

30대 식음료 스타트업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 A씨는 다음 달 연예기획사 B엔터테인먼트 출근을 앞두고 있다. 음반 프로듀서 출신 대표의 경영 판단을 도울 예정이다. A씨의 경력은 춤과 노래, 아이돌로 대표되는 엔터테인먼트(이하 엔터) 산업과는 관련이 없다. 2014년 글로벌 컨설팅 업체 컨설턴트로 시작한 그는 젊은 나이에 스타트업 COO를 맡았다. 제조 현장에서 20명이 넘는 팀원을 지휘했다. 주변에서 유능하다는 평을 들었다. 스타트업에서 경영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도 꽤 만족스러웠지만, 연예기획사의 이직 제안이 솔깃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엔터 산업의 시장 규모였다. 국내 엔터 시장은 1990년대 중반 ‘H.O.T’와 ‘젝스키스’ 같은 1세대 아이돌이 등장하면서 본격화했다. 그러나 시장은 국내에 한정됐다. 2000년대 중반 2세대 아이돌 ‘동방신기’ ‘원더걸스’ ‘빅뱅’이 나오면서 일본과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전역으로 시장이 확대됐다.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3세대 아이돌 이후 전 세계가 아이돌 시장으로 바뀌었다. BTS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세계 20개 도시 순회 콘서트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를 성황리에 끝마쳤고, ‘블랙핑크’는 유니버설뮤직 그룹 산하 대표 레이블인 인터스코프와 계약해 미국 음반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A씨는 “먼 훗날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있는데, 엔터 산업이 그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직을 결심했다”고 했다.

과거 연예기획사는 음반 프로듀서, 작사·작곡가와 같은 음악 산업 관계자나 그 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주축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한세민·남소영 공동대표는 SM에서만 19년간 일했다. 황세준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프로듀서 겸 작곡가다. 최근 사퇴한 양민석 전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 대표는 양현석 당시 총괄 프로듀서의 동생이다.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의 정욱 대표는 정보기술(IT) 회사 출신이지만, 음악 평론가로 활동하고 음악 잡지사에 다녔다.

하지만 최근 엔터 업계의 주요 경영직에는 산업군을 가리지 않고 인재가 모인다. 연예기획사는 트레이닝, 음반·안무 작업 등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 이외에도 ‘판매 전략’을 세워야 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아이돌 지식재산권(IP)을 공연, 굿즈, 앨범 등 다양한 상품으로 수익화하는 사업 모델이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시장 분석이나 전문 경영에 능숙한 외부 인사 수혈이 많아지고 있다.

YG는 지난 5월 가종현(51) 효성 전략담당 전무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2000년 포털 업체 라이코스코리아 대표를 맡았고, 라이코스코리아가 2002년 SK그룹에 인수되면서 SK커뮤니케이션즈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SK텔레콤 미주사업그룹 사업개발 그룹장과 SK플래닛 해외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한 글로벌 사업 전문가다.

가 부사장은 2015년 효성그룹으로 이직한 뒤 미래전략실 전무로 재직하면서 스포츠 콘텐츠 마케팅을 담당했다. SM과 제휴해 개편한 스포츠 에이전트 자회사 갤럭시아SM의 중국 시장 진출에 힘썼다. 체조 선수 손연재, 골프 선수 박인비, 야구 선수 추신수, 쇼트트랙 선수 심석희 등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이들의 방송 출연을 도왔다.


경기 어렵지만 엔터는 성장 산업

가수 싸이(박재상·42)도 동업자로 대기업 경영진을 선택했다. 싸이는 올해 초 ‘피 네이션(P NATION)’이라는 연예기획사를 설립하면서, 가수 현아, 이던, 제시를 영입했다. 설립 당시 그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바로 이 전문 경영인이 재계 출신 인물인 김봉수씨로 알려졌다.

김봉수씨는 한때 국내 재계 순위 5위까지 올랐던 그룹에서 전략기획본부 상무를 지내면서 인수합병(M&A) 업무를 맡았다. 이전에는 UBS증권에서 투자은행(IB) 업무를 맡은 금융계 '브레인'으로 알려졌다. 싸이와 친분 있는 김씨는 엔터 산업의 성장성을 보고 엔터 산업에 발을 디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요즘 같은 경기 침체기에는 더욱 엔터 산업이 유망 업종으로 꼽힌다. BTS가 소속된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2016년 각각 352억원, 104억원이던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해 2142억원, 641억원으로 6배 넘게 뛰었다. SM, JYP, YG 등 3대 기획사의 작년 영업이익 합계는 860억원(SM 477억원·JYP 287억원·YG 95억원)으로 전년보다 54.6% 늘었다.

엔터 기획사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영입은 엔터 회사와 당사자 모두에게 윈-윈”이라면서 “기획사는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전문성에 기반한 객관적인 경영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외부 인재들은 중소 기획사에서 성장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엔터 산업의 성장을 예측하고 업계에 일찍 뛰어든 전문인도 있다. 법무법인 강호·신우 출신 변호사 표종록씨는 2012년 JYP에 부사장으로 합류했다. 금융맨이었던 최성준 YG 사업기획본부장도 10년 전 YG에 합류했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나은행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후 애널리스트를 거쳐 벤처캐피털에서 일했다.

최 본부장은 과거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애널리스트 시절에는 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벤처캐피털 시절에는 산업 전체를 조망했다. 어떤 분야가 성장하는지 예측하고 투자해서 이익을 보는 일인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콘텐츠 비즈니스였다”고 했다.


신산업 가능성 타진하려 인재 영입

외부 인재의 수혈은 엔터 업계가 사업 다각화를 하면서 급증했다. YG는 특히 대기업 출신을 많이 영입했다. 코스닥 상장 후 2014~2015년 화장품, 외식업, 모델 매니지먼트 등 신사업을 시작하면서 대기업 출신을 본부장급으로 영입했다.

컨설턴트에 대한 수요도 많다. 한 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연예기획사가 컨설팅 업체에 신사업 발굴 조사를 의뢰하는 일이 늘고 있다”면서 “특히 한 가수의 최대 전속 계약 기간인 7년이 끝날 때쯤 수익원이 줄어들 것에 대비해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는다”고 했다. 값비싼 컨설팅을 의뢰하기보다 직접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기존 인력과 신규 인력의 융합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예술성을 추구하는 음악적 접근과 수익성을 추구하는 경영적 접근이 마찰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력직으로 C엔터테인먼트에 입사했다가 6년 만에 퇴사한 D씨는 “엔터 업계는 ‘언니’ ‘오빠’ 문화가 정착된 곳으로 경력직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또 연예기획사 대표격 프로듀서들의 지시가 절대시되는 분위기가 싫어 퇴사했다”고 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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