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숲길을 달리고 있는 러닝 크루. 본인이 달리고 싶은 날에만 참여할 수 있다. 사진 독자 제공
경의선 숲길을 달리고 있는 러닝 크루. 본인이 달리고 싶은 날에만 참여할 수 있다. 사진 독자 제공

8월 20일 오후 8시 서울 반포 한강공원 세빛섬 앞 달빛광장. 운동복을 입은 20·30대 직장인 40여 명이 동그랗게 둘러서서 신발 끈을 조여 매거나, 팔다리를 쭉쭉 늘리며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1~2시간씩 한강변을 달리는 동호회인 러닝 크루 ‘러쉬’의 회원들이었다. 밤에도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도 개의치 않고 한강변을 달리기 위해 모인 것이다.

동호회 운영 원칙은 ‘진짜 달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자유로운 참여’다. 회원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러쉬 운영진이 인스타그램에 ‘8월 20일에 공개 모임을 합니다’와 같은 식의 게시글을 올리면 참여하겠다고 댓글을 남기면 된다. 운동이 끝나고 이어지는 공식적인 뒤풀이도 없다. 회원들이 다음 날 출근에 지장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20·30 직장인을 중심으로 달리기 동호회 ‘러닝 크루’ 열풍이 불고 있다. 주로 인스타그램이나 네이버 카페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러닝 크루 운영진들이 달리기 모임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알리면, 여기에 댓글을 다는 것으로 참여 신청이 완료된다. 인스타그램에서 ‘#러닝 크루’를 검색하면 약 7만7000건의 게시글이 나온다. 인기 러닝 크루 계정들은 ‘팔로어’를 7000~8000명 정도 보유하고 있다. 수도권 곳곳에서 모임을 여는 러닝 크루 ‘휴먼 레이스’의 경우 네이버 카페 회원이 2만 명에 달한다. 직장인 러닝 크루의 인기 요인을 세가지로 분석했다.


인기 요인 1│
극도의 실용성…“하고 싶은 활동만 한다”

전문가들은 20·30 직장인이 러닝 크루에 열광하는 이유로 ‘모임의 실용성’을 꼽았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는 높은 책임감이나 의무감을 요구하는 동호회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취미 생활에서만큼은 정신적인 피로함을 겪지 않도록, 자신이 원하는 때에 하고 싶은 것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모임을 찾는다고 분석한다.

가령 새로운 동호회에 가입했을 때, 기존 회원들과 친목을 다지기 위해 겪어야 하는 술자리나 뒤풀이는 젊은 직장인에게 상상만 해도 피곤한 일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동호회 장부를 관리하거나 모임 장소를 섭외하고 각종 잡일을 떠맡는 것도 괴롭다. 직장 생활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동호회에서 요구하는 각종 규율까지 지키다 보면, 취미 생활을 목적으로 참여한 동호회에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러닝 크루는 모이면 불필요한 친목보다는 오직 달리기에 집중하기 때문에 목적이 뚜렷하고 실용적이라서 젊은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것”이라면서 “많은 러닝 크루가 정기 모임에 나오라고 강요하기보다는 누구나 원할 때 참여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는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는다”고 설명했다.


인기 요인 2│
운동화와 두 발만 있으면 된다

달리기가 다른 운동에 비해 경제적·심리적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도 러닝 크루의 인기 비결로 꼽힌다. 값비싼 운동 장비를 갖추지 않고도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사전에 배워야 할 지식도 많지 않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닝 크루에 2년째 참여하고 있는 최재혁(24)씨는 “달리기는 다른 취미 생활에 비해 돈이 덜 들고, 효과적으로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는 운동”이라면서 “시간과 장소의 제약도 적어 아무 때나 혼자서든, 여럿이서든 할 수 있고 운동 강도 또한 적당하다”고 말했다. 1년째 달리기를 취미로 하고 있다는 직장인 황혜민(25)씨도 “처음에는 돈이 별로 안 들 것 같아서 시작했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굳이 돈을 지불하고 운동을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서 “유튜브나 스마트폰 앱 등 인터넷에 운동 방법에 대한 정보가 이미 많아서 값싸게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기 요인 3│
서로가 서로의 ‘페이스 메이커’

러닝 크루 회원들은 서로가 서로의 완주를 돕는 ‘페이스 메이커(pacemaker)’가 된다. 페이스 메이커란 결승선까지 선두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는 선수로, 마라톤이나 빙상 종목 등 경주 스포츠에서 쓰는 말이다. 러닝 크루 회원들이 서로의 페이스 메이커라는 것은 목적지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다는 의미다. 러닝 크루 ‘히포틱런’에서 활동하고 있는 직장인 김신우(27)씨는 “달리기는 자칫 지루한 싸움이 될 수도 있는 운동인데, 함께 달리면 시간도 금방 간다”면서 “혼자였다면 쉽게 지치거나 포기할 수 있는 거리도 완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여러 사람이 함께 뛰면서 경쟁의식을 가지고, 의지 박약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라면서 “강제성을 부여해 스스로를 다잡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Keyword

러닝 크루 여러 사람이 같은 장소와 시간에 모여 함께 달리기하는 동호회로, 최근 20·30 직장인을 위주로 확산하고 있다. 영어로 달리기를 의미하는 ‘러닝(running)’에 조, 모임 등을 의미하는 ‘크루(crew)’가 붙었다. 주로 한강 변이나 공원에서 모이며, 일반적인 동호회와 달리 뒤풀이 대신 운동이 끝나고 바로 해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plus point

달리기 문화 바꾸는 러닝 크루

나이키 코리아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러닝 크루 다섯 곳과 협업해 운동화를 제작했다. 사진 나이키 코리아
나이키 코리아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러닝 크루 다섯 곳과 협업해 운동화를 제작했다. 사진 나이키 코리아

지난 5월 나이키 코리아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러닝 크루 다섯 곳과 협업해 운동화를 제작했다. ‘리액트 바이 5: 서울을 달리는 러너들에게 영감받은 리액트’라는 이름의 협업 프로젝트다.

이렇게 제작한 운동화를 추첨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제공했다. 러닝 크루가 한국의 달리기 문화를 바꿔나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나이키 코리아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러닝 크루는 한정판 운동화에 자신들의 색을 입혔다. 주로 도심에서 달리기하는 러닝 크루는 아스팔트 도로로부터 영감을 받은 운동화를 제작하는 식이었다. 나이키 코리아 관계자는 이번 협업을 한 이유로 “한국의 달리기 문화에서 러닝 크루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발란스는 아예 자체적으로 달리기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뉴발란스 홍대점은 매주 화요일 전문 코치들이 직접 보강운동을 가르쳐주는 NBRC(뉴발란스 러닝 클럽)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운동을 가르쳐준 후 함께 달리기를 하기도 한다. 또한 마라톤을 대비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 프로그램을 무료로 열어 소비자들에게 공개하기도 한다.

이민아 기자, 박채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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