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진 하이트진로 특판영업지점 주임. 사진 하이트진로
김형진 하이트진로 특판영업지점 주임. 사진 하이트진로

“저 왔어요.”

하교(下校)한 학생이 부모에게 한 말이 아니다. 하이트진로 영업사원이 음식점 사장에게 건넨 인사다. 영업사원은 자신의 집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업소에 들어갔고, 음식점 사장은 그런 영업사원을 반갑게 맞았다. 10월 16일 하이트진로 김형진 주임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 로데오 일대의 음식점을 방문할 때마다 업소 사장의 환대(歡待)를 받았다.

김 주임은 하이트진로 특판영업지점 소속 영업사원이다. 특판영업지점은 음식점, 술집, 포장마차 등 업소에 들어가는 주류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하이트진로의 서울 특판영업지점에서 일하는 여성은 김 주임이 유일하다. 그는 2016년 1월 입사한 이후 3년 10개월 넘게 특판영업지점에서 일하고 있다. 강남역 일대를 2년 동안 담당했고 현재는 압구정 로데오 지역을 맡고 있다.

하이트진로에서 여성 영업사원이 등장한 것은 10년 전이다. 이 회사는 2009년부터 통합직군으로 대졸 여성 직원을 뽑았다. 인사·재무·마케팅 등 관리직에 한정돼 있던 대졸 여성의 업무를 영업직, 생산직으로 확대하기 위한 시도였다. 현재 하이트진로 신입 직원은 대부분 성별과 관계없이 영업직으로 배치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관리직 등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현장 경험을 쌓으라는 의도다.

주류 회사의 영업사원은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취급하는 자사 맥주, 소주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일한다. 이를 위해 자사 제품을 취급하는 업소를 관리하고, 새로 나온 제품을 주문해 달라고 요청하는 역할을 한다. 자칫 업소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존재가 영업사원이다.

그러나 김 주임은 달랐다. 이날 만난 업소 사장들은 김 주임을 반갑게 맞았고,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20년 동안 식당을 운영 중인 오완진 사장은 “지금까지 100명 이상의 주류 회사 영업사원을 만났는데 여성은 김 주임이 처음”이라며 “다른 영업사원들은 얼굴 보기도 힘든 반면 김 주임은 매달 찾아와 필요한 게 없는지 살펴봐 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 주임은 이날 오 사장의 식당에 앞치마가 부족한지, 유리컵이 더 필요한지 물었다.


김형진(오른쪽) 하이트진로 특판영업지점 주임과 그의 고객인 오완진 원조초가집 사장. 사진 정미하 기자
김형진(오른쪽) 하이트진로 특판영업지점 주임과 그의 고객인 오완진 원조초가집 사장. 사진 정미하 기자

주류 회사에 입사한 계기는.
“대학 때 생물공학을 전공하면서 주류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세부전공으로 식품공학을 배우면서 발효공학과 양조공학을 공부한 것이 계기였다. 주류 업계에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 3학년 때인 2014년 6월부터 1년 동안 하이트진로 대학생 서포터스로도 활동했다.”

담당하는 곳은 어딘가.
“서울 강남 압구정 로데오를 담당한다. 내가 속한 특판영업지점은 상권의 음식점, 술집 등을 관리한다. 업소에 직접 찾아가거나 업소 사장님과 연락하는 등 하루에 30~40개 업소를 상대한다.”

일과가 어떻게 되나.
“오전에는 사무실에 출근해 하루 전에 있었던 일을 정리한다. 점심시간 이후 음식점이 한가해질 무렵에 상권을 도는 외근을 한다. 오후 7시 이후에는 음식점을 돌며 테이블에 놓인 주류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52시간 근로제에 맞춰 주 5일 중 사흘은 오후 8시까지 근무하고 하루는 단축해서 일한다. 내근이 30%, 외근이 70%를 차지한다.”

주된 업무는 무엇인가.
“하이트진로 제품을 취급하는 업소를 관리하고, 개업한 업소에 하이트진로 제품이 들어가게 한다. 그중에서도 업소 관리가 주된 업무다. 업소에 필요한 앞치마, 유리컵 등 판촉물을 주면서 관리한다. 특히 특판영업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모님(음식점 등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여성)과 친분을 쌓는 것이다. 이모님이 손님상에 나갈 소주, 맥주의 종류를 정하기 때문이다. 주류 회사 영업사원의 공략 대상은 이모님이다.”

이모님을 공략하는 나름의 비법이 있다면.
“이모님의 연령대에 따라 다른 방식을 취한다. 나이 많은 이모님께는 빵 같은 간식거리를 챙겨드린다. 젊은 경우에는 수다를 떨면서 친해지는 편이다. 드라마 이야기도 하고, 자녀가 있는 분들에게는 대학 입시 설명도 해준다. 무엇보다 감성적으로 다가가는 게 제일이다.”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나.
“강남역을 담당할 때 알고 지내던 이모님들이 압구정까지 와서 밥을 사주고 가기도 한다. 압구정으로 찾아와서 힘내라며 초콜릿이나 빵을 주고 가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홍대에서 닮은 사람을 봤다며 전화로 안부를 묻는 이모님도 있었다. 정말 마음이 잘 맞았던 분들과는 꾸준히 연락한다. 아무래도 남성 직원보다 편하게 생각해주신다.”

영업할 때 여성이라 도움이 되는 부분은.
“남성 직원에 비해 디테일에 강한 것이 강점이다. 나는 병원에 입원했던 업소 사장님이 퇴원하는 날을 기억했다가 축하 케이크를 사드리고, 친한 이모님들 자제분이 결혼하면 부조금을 내는 편이다.”

여성이라 힘든 점은 없나.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다. 오전에는 업소에 가져다줄 컵, 오프너, 앞치마 등 판촉물을 옮겨서 차에 실어야 한다. 회사에서 배려해주는 덕분에 보통 육체적으로 힘든 일에서 제외되지만, 같은 직원이니 참여할 때도 있다. 유리컵을 옮긴 다음 날은 근육통 때문에 힘들다.”

주류 회사에서 일하면서 생긴 습관은.
“업소에 들어가면 냉장고부터 본다. 냉장고 안에 우리 제품이 있는지, 좋은 위치에 있는지 확인한다. 냉장고 손잡이를 열자마자 손이 닿을 수 있는 자리가 베스트다. 이모님들이 많이 일하는 업소에선 이모님들 눈높이에 맞는 위에서 세 번째 칸이 좋은 자리다. 반면 젊은 분들이 많이 일하는 곳에선 그보다 높은, 위에서 두 번째 칸이 최고다.”

영업사원들끼리 냉장고 두·세 번째 칸에 자사 제품을 넣으려는 경쟁이 치열하겠다.
“전쟁이다. 우리 제품을 좋은 자리에 배치하기 위해 냉장고 청소를 하는 경우도 있다. 냉장고에 있는 제품을 다 꺼내고 우리 제품 위주로 배치하기 위해서다. 강남역 상권을 담당하던 시절에는 하루에 냉장고 10개를 청소한 적도 있다. 손님이 맥주를 셀프로 꺼내서 먹는 업소라 냉장고에 제품이 진열된 위치가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주류 영업사원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업소의 판매 파트너다. 고객이 우리 제품을 찾지 않는데 억지로 주문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업소의 장사가 잘되면 자연스럽게 우리 제품도 잘나가기 마련이다. 신메뉴를 고민하는 사장님에게는 이 동네에서 잘나가는 메뉴를 소개해주고, 최근에 이용률이 높은 배달 앱에 대한 정보를 주면서 사업이 잘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영업사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김형진 주임은 누구?

하이트진로에 입사한 지 4년째인 회사원. 음식점, 술집 등 업소 영업을 담당하는 특판영업지점 소속이다. 건국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면서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관련 있는 발효공학을 공부했다. 대학 때는 하이트진로 서포터스 활동을 했다. 2019년 10월 현재 서울 강남 압구정 로데오 일대의 업소를 관리한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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