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세일 페스타가 시작된 11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쇼핑가가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으로 붐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코리아 세일 페스타가 시작된 11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쇼핑가가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으로 붐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1월 11일 밤 12시가 되자 중국 항저우 저장성 알리바바 본사에 마련된 ‘솽스이’ 축하 무대 화면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100억위안(약 1조7000억원)어치 주문이 쏟아지는 데 걸린 시간 1분 36초, 1000억위안까지 걸린 시간 1시간 3분 59초. 지난해보다 각각 29초, 43분 27초씩 빨랐다. 이날 오후 4시 31분이 되자 이미 지난해 거래액 2135억위안을 돌파했다. 2009년 5200만위안이던 거래액은 11년 차를 맞은 올해 2684억위안으로 4000배 이상 커졌다.

솽스이(雙十一·11월 11일)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가 2009년 만든 온라인 쇼핑 축제다. 한국에서는 ‘광군제’로 알려져 있다. 알리바바는 ‘독신’을 뜻하는 숫자 1이 네 번 겹친 11월 11일, 연애 대신 온라인 쇼핑으로 싱글들을 위로하자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여기에 인구 14억을 등에 업은 중국 내수 시장 성장과 이를 기회로 본 글로벌 브랜드까지 적극 가세하며 세계 최대 쇼핑 축제로 성장했다. 올해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 세계 5억 명 구매자가 참여했다.

중국의 쇼핑 축제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사이 솽스이,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한국의 ‘코리아 세일 페스타’는 여전히 국내에서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이하 코세페)는 2015년 한국식 쇼핑 축제를 만들자며 정부가 주도해 시작한 행사다. 연말 해외 쇼핑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점에 맞춰 기업이 참여해 할인, 경품 이벤트 등을 진행해왔다. 직매입 비중이 낮은 한국 유통 구조상 할인율을 높이기 어려운 탓에 유명무실한 행사라는 비판도 많았지만 소비 심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올해는 행사 기획 면에서 변화가 많았다. 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주도권이 이양됐고, 참가 업체의 의견을 반영해 10월 초 열리던 행사 시기가 해외 쇼핑 시즌과 맞물리는 11월로 한 달 미뤄졌다. 참가 업체도 지난해(451개)보다 55% 증가한 700개를 기록했다. 하지만 여전히 코세페를 모르는 소비자가 많다. 5년 차를 맞이한 코세페가 한국의 쇼핑 축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유통사 실무진, 학계 연구자 등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신세계 면세점 강남에 부착된 코세페 홍보 전광판. 사진 송현 기자
신세계 면세점 강남에 부착된 코세페 홍보 전광판. 사진 송현 기자

“코세페가 뭐죠?”…존재감 ‘제로’

싱글족 김진효(35)씨는 11월 1일 온라인 쇼핑몰 SSG닷컴에서 벼르던 에어프라이어를 구입했다. 정가 7만9500원짜리 제품을 5만9000원에 할인 판매하고 여기에 1만원 추가 할인 이벤트까지 있다. 4만9000원을 지불한 김씨는 “꼭 필요한 제품은 아니지만 너도나도 할인 행사를 벌이는 요즘 유통 업계 분위기에 휩쓸려 구매했다”면서도 “코세페는 잘 모른다”고 했다.

주부 김소영(61)씨는 11월 3일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서 LG 코드제로 무선청소기 신형을 60만원대에 샀다. 평소 100만원이 넘는 가격에 망설이던 제품이었는데 G마켓의 ‘빅스마일데이’ 쿠폰으로 40만원 가까운 금액을 할인받았다. “온라인에서 호시탐탐 정보를 확인하던 딸이 급히 제보해와 필요한 청소기를 살 수 있었다”는 김씨는 코세페에 대해서는 “뉴스에서는 본 기억이 있지만 이 행사가 코세페와 관련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브랜드파워다. 10월 말부터 유통 업계 할인 열풍이 불고 있지만, 코세페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이베이코리아는 G마켓·옥션·G9에서 ‘빅스마일데이’ 행사를 진행했고, 11번가는 ‘11절’을 열어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롯데쇼핑도 ‘롯데 블랙 페스타’ 행사를 벌였다. 모두 앞다퉈 할인 행사를 열었지만, 홍보 문구나 행사장에서 ‘코리아 세일 페스타’ 단어를 찾기 어려웠다.

주최 측은 “코세페 기간 각 유통 업체가 각자 방식대로, 명칭을 써서 개별적으로 할인 행사를 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업계 관계자들은 “기존에 진행하던 11월 할인 행사일 뿐 코세페 효과로 보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올해 신세계그룹의 ‘대한민국 쓱데이’ 성적이 좋았는데, 코세페 행사로 보기보다는 회사가 실적 악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돌파구를 내놓은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행사를 담당했던 전·현직 관계자들은 업체별로 다른 목소리를 담으면서도 코세페 브랜드를 함께 내세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프라인 유통업체 마케팅 담당자 A씨는 “기존에 진행하던 행사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유통 업체 사이에 코세페 분위기에 맞춰 소비 심리를 끌어올리려는 수요가 있다”면서 “각 브랜드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코세페로도 묶을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유인책으로 꼽히는 것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업과 소비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A씨는 “특별소비세를 감면하거나 연말정산 혜택을 주는 등의 확실한 방식이 효과적일 것”이라며 “파격적인 할인 혜택이나 판매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유통업체 관계자 B씨는 “행사 진행에 지금까지 150억원이 들었다고 하지만 각 업체가 쓰는 돈도 많다”면서 “참여 업체에 직접적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C씨는 실무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기회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코세페 진행 전부터 관계자들이 함께 모이는 회의가 몇 차례 열리기는 했지만,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라면서 “서로 ‘할 수 있느냐’ ‘이 가격대도 가능하냐’ ‘광고 많이 해달라’ ‘우리 업체도 열심히 해보겠다’ 정도로 형식적인 대화만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코세페 브랜드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격 할인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문화, 이야기 등을 엮어내 블랙프라이데이, 핼러윈 같은 축제로 만들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면서 “외국인 관광객 위주로 공략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plus point

96초 만에 100억위안 주문 쏟아진 광군제 위력

광군제 당일인 11월 11일 중국 항저우 저장성 알리바바 본사에 마련된 축하 무대 화면에 그날 거래액인 2684억위안 숫자가 떠있다. 사진 AFP·연합
광군제 당일인 11월 11일 중국 항저우 저장성 알리바바 본사에 마련된 축하 무대 화면에 그날 거래액인 2684억위안 숫자가 떠있다. 사진 AFP·연합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던 광군제는 이미 거래액 규모 면에서 원조(原祖) 격인 각종 미국 쇼핑 행사를 앞선 지 오래다. ‘포브스’에 따르면 올해 총거래액(GMV) 2684억위안(약 384억달러·약 45조원)은 지난해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사이버먼데이, 아마존 프라임데이 거래액을 합한 것의 두 배가 넘는다. 지난 3분기 아마존 매출액(700억달러)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의 총거래액을 24시간 만에 달성했다.

특히 이번 광군제는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지만 중국인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폭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가처분 소득 둔화, 독점에 대한 부정적 시선 등에 위기감을 느낀 알리바바는 올해 상품 할인 재원으로 500억위안(약 8조원)을 마련했다”면서 “무이자 할부, 부동산 등 초고액 상품까지 내세우며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 결과”라고 분석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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