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이 지역 아파트 매매 및 전·월세 정보가 붙어있다. 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전셋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이 지역 아파트 매매 및 전·월세 정보가 붙어있다. 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전셋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가 과열된 집값을 잡겠다며 지난해 12월 16일 발표한 고강도 부동산 대책의 후폭풍이 거세다.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의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 규제로 매매가 어려워진 사람들이 전세 시장으로 내몰리면서 전셋값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시가 9억원 이하의 아파트와 비규제 지역 청약 시장으로 쏠림이 심화하는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9억원 이하 주택 가격이 오르면서 서민의 내 집 마련 부담이 더 가중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15억원 초과 주택담보 대출이 원천봉쇄되면서 현금 부자만 강남 주택을 매입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양극화 시장이 더욱 굳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1│서울 전셋값 폭주

이번 대책에 가장 먼저 반응한 곳은 전세 시장이다. 정부가 매매를 위한 대출을 막으면서 집을 살 길이 막힌 수요가 전세로 발길을 돌리고 있고 이는 전셋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12·16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서울 서초, 강남 등지에서 전세 최고가를 경신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98㎡는 15억8500만원에 전세로 거래됐다. 한 달 전보다 8000만원 넘게 오른 가격이다. 잠실 아파트 3인방으로 불리는 ‘엘리트(잠실엘스·리센츠·트리지움)’ 아파트의 전셋값은 폭주에 가깝다. 2019년 11월만 해도 8억원 중반~9억원 선에 거래되던 전용면적 84㎡형 전세 매물 호가가 10억5000만~11억원대까지 뛰었다.

전셋값은 앞서 발표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로또 청약’을 노린 실수요자들이 전세로 눌러앉으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여기에 인기 학군 지역은 입시제도 개편으로 전세 매물이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전셋값이 급등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12월 16일 기준 일주일 전보다 0.18% 올랐다. 2015년 11월 23일 이후 4년 1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KB월간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50.7로 지난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수급지수가 150을 넘어선 것은 2017년 6월 이후 처음이다.

12·16 대책은 상승세를 탄 전셋값에 기름을 부은 효과를 내고 있다. 1가구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 요건에 실거주 기간 요건이 추가되면서 집주인이 양도세 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직접 거주할 가능성이 커졌다. 본인 집은 세를 주고 전세 대출을 받아 다른 집에 거주하려던 사람이 그대로 눌러앉게 되면 전세 매물은 더욱 부족해진다. 더 큰 문제는 올해부터 새 아파트 공급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2019년 4만2892가구에서 2021년 2만1466가구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2│9억 이하 주택·비규제 청약 시장으로 ‘풍선효과’

시가 9억원 이하의 아파트와 비규제 지역 청약 시장으로 쏠림이 커지는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9억원 초과 아파트 대출 규제가 까다로워지면서 대출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높은 청약 가점 없이도 당첨이 가능한 비규제 지역의 신축 아파트로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9억원이 넘는 아파트의 규제를 강화한 것을 반대로 9억원 이하 아파트를 구매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입지가 좋거나 신축인 경우 9억원까지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안양시·의왕시·인천 등 규제의 칼날을 비껴간 수도권뿐 아니라 대전, 부산 등 일부 지방까지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진행된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수원’ 1순위 청약 경쟁률은 78 대 1을 기록했다. 일반 분양 951가구에 약 7만5000명이 몰렸다. 4월 7만2570명이 몰렸던 경기도 하남 ‘힐스테이트 북위례’를 뛰어넘는, 지난해 최고 기록이다.

신규 분양뿐 아니라 구축 아파트도 시세가 크게 오르고 있다. 서울 내에서 집값의 40%까지 담보 대출이 가능한 9억원 이하 아파트로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원구 ‘중계5단지’ 전용면적 58㎡는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일주일이 채 안 된 시점에 호가가 4000만원가량 올랐다. 서울 성북구 보문파크뷰자이 전용면적 59㎡는 지난해 11월 8억5000만원에 거래됐는데 12월 24일 기준 호가 9억원이다.


3│현금 보유자 유리한 시장 고착 우려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을 원천봉쇄해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게 이번 정책의 핵심 목표인데,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5억원 초과 주택 매매가 대부분 대출 없이 현금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15억원 초과 주택을 담보 잡아 대출을 실행한 액수는 주택담보대출 취급액의 3~5%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1~11월 주요 시중은행 5곳에서 실행된 주택담보대출 금액이 30조955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15억원 초과 주택 구매자의 대출액은 1조5500억원에 그친다.

일각에선 이번 대출 규제가 자금력이 떨어지는 서민에게 강남 문턱을 높이고, 현금을 보유한 부유층만 강남 부동산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KB국민은행의 종합부동산플랫폼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894만 가구의 ‘일반가’를 기준으로 15억원 초과 대상 아파트 비중은 조사 대상의 2.5%인 22만2000여 가구다. 이 가운데 96.2%인 21만3000가구가 규제 지역인 서울에 몰려있고 대부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집중돼 있다. 강남 3구 아파트 28만2000여 가구 중 60.1%인 17만1000여 가구가 15억원 초과에 해당한다.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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