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윤페리지항공우주 대표, 워털루대 수학과 중퇴, 카이스트(KAIST) 항공우주공학과 재학
신동윤
페리지항공우주 대표, 워털루대 수학과 중퇴, 카이스트(KAIST) 항공우주공학과 재학

“세상에서 가장 큰 로켓 앞에서 우리는 가장 작은 로켓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지난해 10월 신동윤(23) 페리지항공우주(이하 페리지) 대표가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이다. 17학번 카이스트 재학생인 그는 2016년 로켓 개발 업체 페리지를 설립했다. 사진 속 신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미국 케네디 우주 센터에 있는 아폴로 발사선 ‘새턴 5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새턴 5호는 세상에서 가장 큰 로켓이다.

페리지의 목표는 이와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상업용 발사체(위성을 특정 궤도에 진입시키는 로켓)를 개발하는 것.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의뢰한 인공위성을 지상에서 우주 궤도로 운반하는 ‘우주 모빌리티’를 만들겠다는 게 신 대표의 꿈이다.

페리지는 연내 호주 남부 해안에서 첫 시험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본격적인 궤도 발사 이전에 엔진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로켓을 일정 고도까지 쏘아 올리고 바다로 떨어뜨리는 탄도 비행이다. 국내에서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제외하면, 실제 로켓 발사에 나서는 단체는 페리지가 처음이다. 민간 기업으로서는 최초다.

삼성벤처투자와 LB인베스트먼트(범LG가 벤처캐피털)도 페리지의 진가를 알아보고 지난해 투자자로 나섰다. 세계적 우주 전문 매체 스페이스뉴스도 지난해 10월 페리지를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스타트업’으로 칭하면서 페리지의 발사 계획을 전했다.

‘23세의 로켓 개발 업체 사장님’ 신 대표가 궁금해 1월 14일 대전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로켓 설계 작업이 이뤄지는 페리지의 디자인랩을 찾아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 화이트보드 앞에 청년 무리가 눈에 띄었다. 20대 또래로 보이는 남성 셋이 화이트보드에 숫자와 모형을 그리면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자 토론을 주도하던 남성이 뒤돌아봤다. 신 대표였다. 그의 옷차림은 남색 후드와 청바지. 실리콘밸리 공과대 출신 경영자들의 모습이 여럿 스쳐 지나갔다.


지난해 10월 신동윤 페리지항공우주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지난해 10월 신동윤 페리지항공우주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올해 7월 발사를 앞둔 것으로 알고 있다. 막바지 작업으로 바쁘겠다.
“7월 발사는 확정되지 않았고 조금 늦어질 수도 있다. 연내 시험 발사가 목표다. 로켓 기술은 엔진 개발이 제일 어렵다.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엔진의 세세한 설계를 조금씩 변경하고 있다. 조금 전에도 직원들과 로켓 엔진 성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2021년 말이나 2022년 초쯤 본발사체를 궤도에 진입시키는 것이 목표다.”

페리지 창업까지의 여정이 궁금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간단한 로켓을 처음 만들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12년 아마추어 로켓 단체 ‘마루’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내가 활동하던 별 관측 동호회나 공학 동호회에서 ‘로켓’이라는 단어에 눈을 반짝이던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을 하나하나 섭외해서 의기투합했다. 이후 캐나다로 유학을 가서도 이들과 계속 서로의 연구결과를 공유했다. 중간에 마루를 현재 법인 이름인 ‘페리지’로 바꿨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취미 활동에 불과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창업을 결심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처음엔 로켓으로 밥벌이할 줄 몰랐으니 공과대도 아닌 이과대를 갔다. 워털루대 수학과에 진학했고 로켓 동아리에 들어갔다. 우주항공과도 없는 대학인데, 대학 동아리가 굉장히 수준 높은 연구를 진행하더라. 예산은 적었는데 미국항공우주학회(AIAA)에 나가서 성과도 발표하던 곳이었다. 이용 가능한 연소시험장도 있었다. 우리나라엔 마땅한 시험장 부지가 없으니까 너무 좋은 기회였다. 한국에 있는 페리지 멤버들과 화상 회의를 하면서 로켓을 개발했다. 한국에서 로켓 엔진을 설계하면, 내가 캐나다에서 직접 시험해보는 방식이었다. 2016년 3월 취미에서 사업으로 방향을 바꾸고 한국에 법인을 설립했다.”

어쩌다가 한국에 돌아왔나.
“아무래도 맘에 맞는 사람과 한국에서 작업하고 싶었다. 워털루대를 자퇴하고 2017년 카이스트에 학부생으로 입학했다. 마침 학교가 로켓 개발 의지가 있었다. 시기가 잘 맞물려서 카이스트가 문지캠퍼스 내부에 연소시험장을 지었다. 지난해 착공했고 올해 인가가 났다. 로켓을 개발하기에 더 좋은 환경이 됐다.”


페리지항공우주 직원들이 블루웨일 1호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 페리지항공우주
페리지항공우주 직원들이 블루웨일 1호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 페리지항공우주

로켓 소형화…국가보다 기업이 유리

페리지가 현재 개발하고 있는 로켓은 ‘블루웨일’. 흰수염고래를 좋아하는 개발자 한 명이 붙인 이름이다. 흰수염고래는 길이 27m, 무게 150t 상당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물체인데, 블루웨일은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로켓 지위를 노린다. 블루웨일의 길이는 8.5m에 무게는 1.8t. 소형 로켓 발사에 최초로 성공한 뉴질랜드 스타트업 ‘로켓랩’의 ‘일렉트론’은 길이 17m, 무게 10.5t이다. 일렉트론과 비교해도 블루웨일은 소형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초소형(超小型)’이다.

올해 블루웨일 1호 시험 발사의 의미는.
“2008년 스페이스X는 민간 기업이 발사체를 궤도에 올릴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후 2018년 로켓랩이 그보다 작은 발사체를 쏴서 사업적 운영 가능성을 검증했다. 블루웨일 1호는 소형 로켓 사업 모델의 국내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여태 한국이 해외 우주 산업을 관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가적 우주 사업이 제대로 태동하기 전인데 민간 기업이 할 수 있겠느냐’라는 생각의 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정관념을 깨려고 한다.”

그간 한국에서 로켓 개발은 국책 사업으로 인식됐다. 기업의 강점은 무엇인가.
“국책 사업의 장점이자 단점은 하나의 인공위성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대변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최상급 성능의 인공위성 개발에 수천억원이 투입된다. 민간 기업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에 그렇게 큰 무게를 두지 않는다. 인공위성을 소형화하고 대량생산해서 수익 모델을 찾는다. 이를 운반하는 발사체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블루웨일이 목표로 하는 시장은.
“50㎏ 이하의 소형 인공위성을 공략한다. 블루웨일은 500㎞ 태양동기궤도에 총 50㎏ 무게를 운반할 수 있다. 10㎏ 위성 5개나 50㎏ 위성 1개를 올리는 식이다.”

페리지가 공략하는 소형 인공위성 시장은 전망이 밝다. 소형 인공위성 개발 업체와 맞춤형 서비스를 고안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현재 구글, 아마존, 애플 등 전 세계 ICT 기업이 인공위성을 통한 자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소형 인공위성을 다량 쏘아 올려 전 세계 인터넷망을 구축하거나 지구 영상을 실시간으로 지도에 구현하는 사업이 대표적 예다. 인공위성을 궤도까지 운반하는 발사체 시장도 함께 커질 전망이다.

소형 인공위성 시장이 유망한 이유는.
“기존에는 몇 t급 위성으로 고품질 데이터를 내려받았다면, 이젠 품질을 양보하더라도 ‘실시간성’이 중요해졌다. 실시간 데이터를 넓은 권역에서 내려받으려면 수십~수백㎏의 위성을 다량으로 발사해야 한다.”

소형 인공위성을 올리더라도 발사체가 크면 좋지 않나. 한 번에 다량을 올리면 되는데 왜 초소형 발사체에 집중하나.
“대형 발사체가 ‘지하철’이라면 소형 발사체는 ‘택시’와도 같다. 지하철의 경우 여러 사람이 정해진 정거장에서만 내린다. 마찬가지로 대형 발사체의 경우 여러 고객사의 인공위성이 한 발사체에 탑재된다. 반면 소형 발사체는 프리미엄 서비스다. 소량을 고객사가 원하는 곳에 ‘핀포인트(pinpoint·위치를 정확히 짚다)’식으로 운반한다.”

비용이 부담되지 않나.
“스타트업으로서 수익을 내려면 대형 발사체보다 소형 발사체가 제격이다. 무게당 가격으로 따지면, 소형 발사체가 대형 발사체보다 단가가 높다. 하지만 대형 발사체의 경우 단기간에 많은 고객을 모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 소형 발사체는 발사 총비용이 적어 고객사를 모으기 쉽고 더 자주 쏠 수 있다. 1회 발사 비용은 25억원으로, 수백억원대 대형 발사체보다 저렴하다.”

현재까지 페리지가 확보한 고객은.
“호주 인공위성 업체 ‘미리오타’와 계약을 맺었다. 컨테이너나 선박을 수송할 때 칩을 부착하고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사물인터넷(IoT) 기반 위치 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이 서비스를 위해선 실시간 인터넷이 필수 조건인데, 인공위성을 자체적으로 쏘아 올려서 원하는 지역에 인터넷을 보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인공위성 업체 ‘이노보 테크놀로지스’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스’ ‘쎄트렉아이’ 등과 계약을 맺었거나 진행할 계획이다.”


로켓은 융합 산업…제조업 강국 한국 ‘충분히 가능’

현재 페리지 직원은 총 30명으로 이뤄져 있다. 창립 멤버는 신 대표와 청소년기에 함께 로켓을 개발한 동료들이 주를 이룬다. 카이스트 동문도 회사에 합류했다. 다른 산업군 개발자도 이직해오면서 평균 연령대는 20대에서 30대로 높아졌다고 한다. 나이 불문 신 대표에게 그들은 우주 산업을 개척하는 동료다. 신 대표에게 페리지의 경쟁력을 물었다. 신 대표는 “우리는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기보다 ‘되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한다”면서 “실패를 빠르게 인정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사람만 모였다”고 했다.

힘들었던 순간은. 어떻게 추진력을 얻었나.
“2016~2018년 엔진 시험만 20차례 진행했다. 시험하는 엔진마다 터지는 시기가 있었다. 하나의 오류를 해결하면, 두 개의 또 다른 오류가 생겼다. 오류가 다섯 개까지 늘어나서 전부 해결했더니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맨땅에 헤딩’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잘 풀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턴 추진력을 얻었다. 2016~2017년 슬럼프기를 끝내고, 사업 모델을 재정립한 이후부턴 구성원 모두 자신감이 생겼다. ”

삼성과 LB의 투자를 받은 비결은. 어떻게 이들을 설득했나.
“하나의 수직선을 그려 설명했다. 소형 발사체는 대형 발사체 사업과 다르다. 제조업의 기술적 정밀도를 고려했을 때, 제트스트림 볼펜과 같은 현대적 대량생산 제조업이 좌측 끝에 있다면, 대형 발사체와 같은 첨단 가내수공업이 우측 끝에 위치할 것이다. 소형 발사체는 수직선 중간에 위치한다. 슈퍼카를 만드는 수준의 정밀도면 충분하다. 현재 스마트폰 메인보드, 슈퍼카 탄소섬유 차체, 자동차 전장 등 업계 전문가가 페리지에 모였다. 각자가 분야별 최적의 기술을 가져와서 로켓 설계에 적용하고 있다. 각 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사람이 모여서 어떤 파격적인 변화를 만들어낼지 상상해보라고 했다.”

로켓 기술은 기존 제조업과는 완전히 다른 첨단 기술 영역 아닌가.
“아니다. 국내 제조업 기술 정밀도가 높아졌고, 로켓 제조업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로켓 산업에서 ‘최고’라고 내세울 만한 기술이 오히려 부족하다. 예컨대 과거에는 로켓에 탑재되던 컴퓨터가 성능이 가장 좋았지만 이젠 아니다. 스마트폰을 생각해보자. 컴퓨팅 성능도 좋은데 크기도 작다. 개발 주기도 짧아서 빠르게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자동차는? 불량률이 0%에 가까운 완전한 내구성을 보인다. 이런 여러 분야의 기술력을 합쳐야 고성능 로켓을 만들 수 있다. 실제 우리 로켓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 들어가는 중앙처리장치(CPU)를 쓴다.”

우주 산업에 모든 제조업이 융합돼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맞다. 사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우주 산업에 필요한 기본기는 모두 갖췄다. 그걸 누군가 결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그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1년쯤 이곳에서 한국형 발사체(누리호)를 쏘아 올리는데 매우 기대된다. 국내 우주 산업의 원년이 될 것 같다.”

국내 우주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예전에 러시아 개발자가 방한해서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인이 “한국도 로켓을 개발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러시아 개발자가 “현대·기아차와 같이 세계적 수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가 러시아에서 망치로 ‘뚱땅’거리며 만드는 로켓 하나 못 만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이 로켓을 첨단 기술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1960년대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숱한 첨단 산업 분야에서 로켓을 상회하는 기술 수준에 도달했다. 결국 기술이 아닌 인식의 문제다. 휴대전화와 반도체가 그랬듯 로켓도 빨리 성공 사례가 나왔으면 좋겠다. 페리지도 수익을 내서 민간 기업 나름의 방식으로 국내 우주 산업을 발전시킨다면 매우 영광일 것 같다.”


Plus Point

치열해지는 소형 발사체 경쟁

김문관 기자

발사를 기다리고 있는 ‘로켓랩’의 발사체. 사진 로켓랩
발사를 기다리고 있는 ‘로켓랩’의 발사체. 사진 로켓랩

전 세계적으로 페리지처럼 소형 우주 발사체를 개발하는 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뉴질랜드 스타트업 ‘로켓랩’과 미국 스타트업 ‘벡터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로켓랩은 2018년 11월 11일 뉴질랜드 북섬 마히아 반도에 있는 자체 발사장에서 ‘일렉트론’ 로켓을 발사해 소형 위성 6대를 지구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2020년까지 매주 로켓을 발사해 우주의 ‘페덱스(FedEx)’처럼 우주 발사의 장벽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소형 위성을 정기적으로 실어나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벡터런치는 저렴한 비용의 초소형 발사체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벡터런치는 약 13.7m 크기의 소형 발사체를 통해 대형 발사체보다 더 빠르고 저렴하게 우주에 원하는 물건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회 발사 비용(전망치)은 200만~300만달러(약 23억~34억원) 수준이다. 2018년 7000만달러(약 81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소형 발사체 경쟁이 치열해지는 이유는 인공위성 상용화에 따른 것이다. 구글, 아마존, 애플 등 전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은 인공위성을 통한 자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인도의 시장조사 전문업체 ‘모더인텔리전스’가 2017년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소형 위성 시장 규모는 2017년 3조324억원에서 2023년 7조7889억원으로 15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