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 사옥. 사진 한전
전남 나주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 사옥. 사진 한전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11년 만에 최악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여파로 발전 단가가 가장 싼 발전원인 원자력 발전 이용률이 저조했던 데다 경기 침체로 전력 수요마저 줄어든 탓이다.

이에 따라 한전의 제품 가격에 해당하는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지만, 4·15 총선을 앞둔 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로 정부가 이를 용인할지는 불투명하다. 전기는 사실상 모든 국민이 사용하는 일종의 공공재로 요금 인상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따라 더욱 안전한 전기를 사용하는 데는 반드시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친 후 전기요금 인상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전은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1조3566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고 2월 28일 공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았던 2008년의 2조7981억원 영업적자 후 11년 만에 가장 저조한 실적이다. 한전은 2018년 2080억원 영업적자에 이어 2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전 매출액은 전년의 60조6276억원보다 2.5% 감소한 59조928억원이었다. 영업적자가 커진 한전은 2년 연속 주주 배당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한전은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과 정부가 총 5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외국인 24%, 기타 25%의 지분 구조로 돼 있다. 한전 주가는 3월 3일 종가 기준 2만1200원으로 3년 새 반 토막 났다.

한전은 실적 설명 보도자료에서 대규모 적자 원인에 대해 “냉난방 전력 수요 감소 등에 따른 전기 판매 수익 하락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력 판매량은 5억2049만㎿h로, 전년보다 1.1% 감소했다. 이는 경기 침체 탓이 크다. 전체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력 수요는 1.3% 줄었다. 전력 수요가 줄어든 건 20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권 비용이 2018년 530억원에서 작년 7095억원으로 급증한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한전은 덧붙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시각은 이와 다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한전 실적을 급격히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한전은 탈원전 정책 시행 이전인 2016년만 해도 영업이익이 무려 12조원에 달했던 초우량 기업이었다. 그런데 탈원전 시행 후 영업이익이 급격히 적자로 돌아섰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한전이 원전 이용률만 예년 수준을 유지했다면 2년 연속 적자는 피할 수 있었다”며 “정부는 원전 이용률을 높이면 한전을 적자에서 탈피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력산업 전문가는 “탈원전과 한전 적자가 연관이 없다는 설명은 한마디로 정부의 ‘견강부회(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함)’에 불과하다”라고 질타했다. 발전 업계에서도 원전 이용률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한전이 최악의 적자를 피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전 전력통계에 따르면 한전이 지난해 구입한 원자력 발전 단가는 1㎾h당 58.50원이었다. 원전의 대체 발전원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단가(119.13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실제 지난해 한전의 원전 이용률은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2016년 이전 80~90%에 달하던 원전 이용률은 2017년 71.2%, 2018년 65.9%, 지난해 70.6%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한전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한전의 연결재무제표 기준 부채는 128조8000억원으로 1898년 회사 설립 후 역대 최대 규모다.

2016년 143.4%였던 부채 비율은 지난해 186.8%로 치솟았다. 이는 상환해야 할 부채 금액이 자기 자본보다 약 1.8배 많다는 뜻이다. 한국거래소와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636곳의 부채 비율은 108.75% 수준이었다.


한전의 대규모 영업적자로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다.
한전의 대규모 영업적자로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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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전기요금 인상 당위성 설명해야

한전이 위기상황으로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탈원전으로 발전 단가는 급증했는데 전기요금을 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면서도 “임기 내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기를 생산하는 비용이 탈원전 탓에 증했는데 정부는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하게 막고 있다”라며 “이런 구조는 절대로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한전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전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크게 두 가지다. 전기요금을 올리거나 최대 주주인 정부에 세금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다. 11년 전 대규모 적자를 냈던 2008년에는 정부가 추가경정예산 6680억원을 긴급 투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산을 쓰기엔 명분이 약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가적 위기를 겪은 2008년과 달리 지난해에는 탈원전 등에 따른 정책 비용 외엔 특별한 변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전은 일단 상반기 중 전기요금 산정체계 개편안을 마련해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문제는 가뜩이나 침체한 경기에 국민 부담을 더하는 전기요금 인상을 4·15 총선을 앞둔 여당과 정부가 용인할 수 있을지 여부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심대한 타격을 받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탈원전 정책에 따른 피할 수 없는 비용을 정부가 국민에게 명확히 알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손 교수는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고집하려면 ‘안전한 전기를 쓰기 위해서는 국민이 비싼 전기요금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회적인 합의를 이뤄야 한다”며 “현실을 감추기에만 급급해서는 한전의 위기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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