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연소로 GE 회장에 올라 20년간 회사를 이끌며 GE 성공 신화를 쓴 잭 웰치 전 GE 회장이 3월 1일(현지시각) 별세했다. 사진 블룸버그
역대 최연소로 GE 회장에 올라 20년간 회사를 이끌며 GE 성공 신화를 쓴 잭 웰치 전 GE 회장이 3월 1일(현지시각) 별세했다. 사진 블룸버그

‘경영의 신(神)’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 3월 1일(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84세. 웰치 전 회장은 평소 신부전증을 앓았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한다. 웰치 전 회장은 1935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철도기관사였던 부친과 가정주부였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매사추세츠대학 애머스트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1960년 일리노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해 GE에 화학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웰치 전 회장에게 GE는 ‘평생직장’이었다. 웰치 전 회장은 GE 입사 이후 퇴임까지 무려 41년이나 일했다. 회장으로서 회사를 이끈 기간만 20년에 이른다. 웰치 전 회장은 GE 회장으로 선임된 1981년 45세로 GE 역대 최연소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따냈다.

“1, 2위를 다투는 기업만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업은 고치거나, 팔거나, 폐업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던 웰치 전 회장. ‘일등주의’를 내세운 그가 GE를 진두지휘하면서 GE는 실제로 황금기를 누렸다. 웰치 전 회장 시절 GE 매출은 270억달러에서 1300억달러로 5배 증가했다. 시가총액은 120억달러에서 4100억달러로 40배 증가, 세계 최고 수준을 찍었다.

눈부신 실적을 보여준 웰치 전 회장은 ‘최고의 경영자’로 칭송받았다. 뉴욕타임스는 2001년 웰치 전 회장에 대해 “화이트칼라 혁명가였다”며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고 기존 질서에 안주하지 않는 데 열중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1999년 미국 ‘포천’ 선정 ‘20세기의 경영자’, 2001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GE의 모태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만든 백열전구 제조업체이지만 ‘현대 GE’를 키운 인물은 반박의 여지 없이 웰치 전 회장이다. 그는 GE 수장에 오른 뒤 회사를 수술대에 올려놨다. 회장 취임 이후 15년 동안 400여 개 사업부와 생산라인을 매각하거나 폐쇄했는데, 한때 GE의 대표 상품이었던 에어컨과 전기다리미 사업부 역시 정리 대상에 포함했다. GE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과잉 인력 문제에도 칼을 빼 들었다. 웰치 전 회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회장 취임 5년 만에 인력을 41만1000명에서 29만9000명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웰치 전 회장 재임 기간에 GE 인력은 절반 수준인 22만 명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대규모 감원 탓에 웰치 전 회장은 ‘중성자 잭’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얻기도 했다. 중성자 폭탄이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듯 가차 없이 정리해고를 단행한 탓이다. 1980~90년대 미국 정리해고 열풍의 진원지가 웰치 전 회장이라는 평가도 있다. 웰치 전 회장은 구조조정의 원칙으로 ‘활력 곡선(vitality curve)’을 고안했다. 활력 곡선은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의 ‘20 대 80 법칙’에서 나온 개념이다. 웰치 전 회장은 임직원을 상위 20%, 중위 70%, 하위 10%, 세 범주로 나눴다. 실적이 탁월한 상위 20%에게는 임금 인상, 스톡옵션, 승진으로 보상하고, 중위 70%는 상위 등급으로 올라가도록 격려하고, 하위 10%는 내쫓았다. 문제는 문제 직원이 거의 사라진 뒤에도 하위 10% 퇴출이 계속됐다는 것이다.


“그는 최고의 경영자였다…한때는”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GE 수익성 악화의 불씨를 남겼다는 평가도 있다. 웰치 전 회장은 GE의 최고결정권자로서 무려 2000여 건에 이르는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퇴임을 코앞에 둔 2000년 말 웰치 전 회장은 ‘마지막 업적’으로 항공우주 산업체 하니웰인터내셔널 인수를 추진했고, 이를 위해 퇴임일을 미룰 정도로 M&A에 욕심을 내비쳤다. 재임 기간에는 금융 서비스 회사 ‘GE 캐피털 뱅크’를 세웠고, NBC가 보유하고 있던 전자 회사 ‘RCA’를 비롯해 증권 회사 ‘키더 피보이’를 인수했다. GE의 소형가전 사업부를 톰슨의 의료 기기 사업과 맞바꾸기도 했다. 웰치 전 회장은 GE의 금융 부문을 확대해 제조 기업에서 금융 복합 기업으로의 변신에 주력했다. 일각에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해 ‘머니게임(금융)’에 치중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웰치 전 회장 퇴임 이후 버블닷컴 붕괴, 9·11 테러, 글로벌 금융위기 등 잇단 악재가 터지면서 웰치 전 회장의 전략은 GE에 독이 됐다. GE는 실적 내리막길을 걸었고, 2018년 시가총액 감소로 다우지수 구성 종목에서도 빠지는 수모를 겪었다. 이처럼 웰치 전 회장에 대한 평가는 퇴임 전후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때 웰치 전 회장을 ‘세기의 경영자’로 추켜세웠던 ‘포천’은 2006년 ‘웰치의 경영 지침서를 찢어버려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고 인재가 아니라 열정적인 사람을 고용하라” “능력보다 영혼을 소중히 여기라”며 웰치 전 회장에 반하는 조언을 했다. 웰치 전 회장의 부고 소식을 전하며 ‘포천’은 “그는 한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최고경영자(CEO)였다”며 절충적 평가를 남겼다.

웰치 전 회장은 2001년 GE 회장직을 제프리 이멜트 전 회장에게 물려주고 사모펀드 회사 고문 등을 맡았고, 자신의 경영 핵심 비법을 담은 ‘승자의 조건’이라는 책을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또 자신의 이름을 딴 온라인 CEO 과정 ‘잭 웰치 매니지먼트 인스티튜트’를 개설해 후학 양성에 힘썼다.

웰치 전 회장과 그의 아내 수지 웰치가 2003년 워싱턴에서 열린 ‘포천 글로벌 포럼’에 참석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웰치 전 회장과 그의 아내 수지 웰치가 2003년 워싱턴에서 열린 ‘포천 글로벌 포럼’에 참석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웰치 전 회장이 2001년 뉴욕에서 당시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제프리 이멜트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웰치 전 회장이 2001년 뉴욕에서 당시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제프리 이멜트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1987년 웰치 전 회장과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만났다. 사진 삼성
1987년 웰치 전 회장과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만났다. 사진 삼성

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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