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의 방역 현장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자택 대기령 해제’ 시위 현장. 사진 AFP·AP연합
중국 우한의 방역 현장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자택 대기령 해제’ 시위 현장. 사진 AFP·AP연합

“유럽인이 ‘이동과 여행의 자유’ ‘독립적인 결정권’ ‘여론을 의식하는 정부’를 누리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4월 19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에 올라온 ‘바이러스가 중국보다 유럽을 더욱 치명적으로 강타했다. 개방된 사회의 대가인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 중 일부분이다. 유럽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중국을 넘어서면서 원인 규명에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중진국을 막 벗어난 바이러스 전파지 중국과 선진국으로서 후진국 구호 역할을 일임했던 모범 국가 유럽. 후자가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이변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변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체제(體制)’의 차이. 중국의 전체주의와 유럽의 개인주의가 국가 간 행정력의 격차로 귀결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인용된 역학 책임자 아서 L 라인 골드 박사는 “중국은 군대, 경찰을 동원하고 사람을 집에 가두고 드론 기술로 동선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조치를 할 수 있다”라면서 “유럽에서는 최근에서야 일부 조치가 내려졌고, 모두를 포괄하는 엄격한 조치는 이뤄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에선 ‘개인보다 공동체’…공감대 모인 범(汎)아시아

코로나19가 ‘확진자’ ‘사망자’라는 명확한 성적표가 있는 동서양 체제의 시험대가 됐다. 현재까지 점수는 중국이 높다. 4월 22일 기준 확진자 수는 1~7위를 미국과 유럽 국가가 차지했다. 특히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의 사망자는 각각 2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9위 중국은 사망자가 4000여 명에 그친다.

이 때문에 중국의 전체주의적인 정부 체제가 방역의 성공 모델이었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중국은 초기부터 우한을 전면 봉쇄하고 스마트폰과 얼굴 인식 같은 각종 감시 기술을 동원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오직 중국에서만, 오직 시진핑의 리더십 아래서만, 갑작스럽고 빠르게 확산하는 질병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조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범아시아 국가에서도 강도는 약했지만, 마찬가지의 조치가 이뤄졌다. 중국의 인접국임에도 초기 방역에 성공한 싱가포르(4월 22일 기준 사망자 11명), 홍콩(4명), 대만(6명)이 대표 사례다.

아시아 방역 모델의 공통된 특징은 ‘격리(isolation)’와 ‘추적 가능성(traceability)’. 확진자뿐만 아니라 잠재적 감염자까지 이동 경로를 낱낱이 공개하고 이동을 제한하는 조치는 사생활 등 기본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 위기 상황에선 공동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한다는 합의가 전제돼 있다.

싱가포르는 CCTV 영상을 토대로 감염 의심자를 찾아내고 자가격리시키고 있다. 격리 기간 사진을 찍어서 위치를 보고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징역형을 포함한 형사 처벌이 이뤄진다. 영주권이 박탈된 사례도 있었다. 3월 20일 주변에 확진자가 있으면 블루투스 기능으로 알려주는 ‘트레이스투게더’ 앱을 세계 최초로 출시하기도 했다.

홍콩과 대만에서도 해외 입국자의 이동 경로를 면밀히 조사했다. 홍콩에서는 위치 추적이 가능한 전자팔찌를 도입했고, 대만은 QR코드를 이용한 모바일 보고 시스템을 갖췄다. 대만도 전자팔찌 도입을 고려하고 있고, 격리 조치를 어겼을 경우 4000만원에 이르는 벌금을 물도록 한다.

한국도 방역 초기부터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이 상세하게 대중에게 공개됐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보건 당국이 감염 차단에 필요한 경우 본인 동의 없이 위치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확진자가 사생활과 관련해 대중의 공격을 받는 일도 생겼지만 ‘감염 예방’이라는 공익이 우선 가치로 여겨졌다. 최근 들어 자가격리 조치 위반자를 구속 수사하고, 외국인의 경우 강제 추방하기도 했다.


발등에 불 떨어지자 ‘아시아 방역 모델’ 도입한 유럽·미국

반면 개인주의가 우선인 서구권 국가에선 ‘아시아 방역 모델’을 도입하기 어렵다. 그간 서구권 민주주의 국가가 국제 사회에 전파했던 ‘자유·평등·인권’과 배치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의 연구기관과 프랑스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을 파악하는 스마트폰 앱 개발에 나섰지만, 내부 반발이 거세다.

프랑스의 비르지니 프라델 조세전문 변호사는 4월 6일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에 실린 ‘코로나19와 확진자 동선 추적: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지 말라’라는 기고문에서 “한국과 대만이 다른 국가에 비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적이었다”면서도 “이 두 국가는 개인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모범적인 모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디지털 감시와 시민 억압 기술을 개발했으며, 한국도 이를 따라 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미국에서도 자가격리 조치가 개인의 자유 억압이라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4월 19일(현지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콜로라도주, 몬태나주, 워싱턴주 등에서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자택 대기령 해제’ 시위를 했다. 이들은 “자유가 공포보다 우선한다” “사회주의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낫다”라는 플래카드를 들었다고 ABC 방송 등 외신은 전했다.

하지만 ‘아시아 방역 모델’ 이외에 성과가 없는 것도 서구 사회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집단 면역’ 실험으로 이동의 자유를 선택했던 스웨덴과 영국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스웨덴에서는 한 달 만에 감염자가 120배 늘었고, 영국은 수장인 보리스 존슨 총리마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위기의 서구식 개인주의…중국에 패권 뺏길라

전문가들은 서구식 개인주의의 성적 부진이 자칫하면 개인의 희생을 담보하는 중국 전체주의의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야성 황(黃亞生) 매사추세츠공대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는 “참사 수준의 미국 대응으로 ‘이러한 사태를 다루는 데 중국 체제가 최고’라는 중국 당국의 논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기감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의 연장선이다. 군트람 볼프 브뤼겔연구소장은 과거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은 단순한 무역전쟁을 넘어 지정학적 주도권 싸움”이라면서 “미국에서는 중국 경제 성장에 대한 거부감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나와 같은 서구 학자들은 중국의 경제·정치 모델이 민주주의 국가에 믿을 만한 대안으로 비칠까 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는 중국의 정치 모델을 대세로 부각하는 결과를 낳았다. 중국 편향으로 논란을 겪는 세계보건기구(WHO)마저 중국의 조치를 칭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중국 정부가 심각한 사회·경제적 영향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해 취한 이례적인 조치들에 대해 축하받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새로운 위기 상황을 경험한 만큼 코로나19 사태 이후 동서양 체제의 적정선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전적인 개인주의나 전체주의 모두 위기에 대응하는 최적의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피엔스’ 작가 유발 하라리는 3월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 ‘코로나19 바이러스 이후의 세계’에서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인류는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며 “전체주의적 감시 체제로 갈지, 시민사회 권한 강화와 연대의 길로 갈지, 선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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