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앙카 항공 비행기. 사진 아비앙카 홀딩스
아비앙카 항공 비행기. 사진 아비앙카 홀딩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항공 그룹이 파산 위기를 맞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월 10일(이하 현지시각) 콜롬비아의 아비앙카 홀딩스(이하 아비앙카)가 미국 뉴욕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1919년 설립된 아비앙카는 네덜란드 KLM 항공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항공사다. 칠레의 라탐 항공, 브라질의 골 항공에 이어 중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회사다.

위기의 결정적 요인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 3월 말부터 항공편 결항으로 운항 수입이 지난해보다 80% 급감하면서 5월 10일 만기였던 부채 6500만달러(약 800억원)를 갚지 못한 것이다. 아비앙카의 총부채는 2019년 말 기준 73억달러(약 9조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굴지의 기업이 무너지는 이유를 코로나19 하나만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모든 위기는 겹겹이 쌓인 악재의 결과물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버티는 항공사도 있는 만큼, 그러지 못한 항공사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항공 업계에서 코로나19로 가장 먼저 위기에 맞닥뜨린 아비앙카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원인 1│무리한 사업 확장 탓 위기 대응할 유동성 부족

아비앙카 산하에는 주요 시장과 기능별로 10개의 개별 항공사가 있다. 콜롬비아의 국적기 아비앙카 항공을 비롯해, 화물 전용 항공사 아비앙카 카고, 지역 항공사 아비앙카 에콰도르, 아비앙카 엘 살바도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창립 초기부터 이렇게 그룹의 규모가 컸던 것은 아니다.

아비앙카는 2000년대 이후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위기와 구제의 연속을 경험했다. 아비앙카의 모태인 아비앙카 항공(당시SCADTA)은 2002년 에이스 콜롬비아를 인수했지만 이듬해 파산 위기에 빠졌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전 세계 항공 산업이 얼어붙으면서 오랜 기간 실적이 저조했던 탓이었다. 당시 아비앙카 항공은 현재처럼 미국 뉴욕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다행히 브라질 대기업 시너지그룹의 창업자 게르만 에프로모비치가 해결사로 등장했다. 에프로모비치는 2002년 브라질 항공사 오세안에어(현 아비앙카 브라질)를 출범하면서 항공 사업에 욕심을 가졌다. 국내에서 저비용항공사(LCC) 보유 기업이 사업 확장을 위해 아시아나항공 매물을 눈여겨봤듯, 에프로모비치도 마찬가지 심정으로 아비앙카 항공을 탐냈다. 마침내 시너지그룹이 2004년 아비앙카 항공을 인수하면서, 에프로모비치는 중남미 항공 산업의 대부(代父)로 발돋움했다.

에프로모비치는 중남미에서 아비앙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했다. 2005년 화물 전용 항공사 탐파 카고(현 아비앙카 카고)를 인수했고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엘 살바도르 항공사 타카그룹을 합병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타카그룹에 소속된 타카 엘 살바도르(현 아비앙카 엘 살바도르), 타카 페루(현 아비앙카 페루), 락사(현 아비앙카 코스타리카) 등 7개 지역 항공사가 모두 최대주주 에프로모비치 소유가 됐다.

하지만 사업 환경은 녹록하지 않았다. 최근 5년 동안 달러화 가치 상승으로 콜롬비아 페소화는 33%, 브라질 헤알화는 46% 하락했다. 아비앙카는 영업비용(연료, 공항 이용료, 항공기 대여·구입)의 65%를 달러로 지출하는데, 화폐 가치가 낮은 중남미 화폐로 지급하기엔 환전 비용이 막대했다. 유가도 올해 초까지 70달러 선을 넘어서면서 비용 부담이 커졌다.

규모가 작은 지역 항공사들은 적자를 기록했다. 아비앙카의 자회사들은 아비앙카 항공을 빼곤 모두 비주류 항공사로 각국 대형사와 경쟁에서 밀렸다. 2018년 아비앙카는 뒤늦게 타카그룹의 항공사들을 매물로 내놓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비앙카가 이번 파산보호 신청 이후 아비앙카 페루의 영업 중지를 결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부채 규모는 급증한 상태다. 시너지그룹이 단기간에 사업을 확장하면서 추가로 자금을 투입하지 못하고 빚을 늘린 결과다. 아비앙카의 부채비율은 합병 초기였던 2013년 186.5%에서 2018년 403.8%까지 올랐다. 유동비율은 2013년 78%에서 2018년 51.2%까지 떨어졌다. 통상 유동비율은 기업의 단기 채무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100%가 넘어야 정상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원인 2│부채 돌려막다 오너는 쿠데타까지 당해

에프로모비치의 욕심은 항공 사업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2014년 브라질 경제 위기 당시 시너지그룹 산하 조선 업체 ‘에스타레이로 일야’를 구제하기 위해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서 대규모 자금을 빌렸다. 이런 노력에도 에스타레이로 일야는 2015년 파산했다.

에프로모비치는 아비앙카를 담보로 그룹의 회생을 모색했다. 시너지그룹은 2018년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이하 유나이티드), 파나마 코파 항공과 3자 합작투자(JV)를 진행했다. 당시 아비앙카의 주주이자 시너지그룹의 자회사 BRW 애비에이션은 아비앙카 주식 5억1600만 주(51%)를 담보로 유나이티드에서 4억5600만달러를 빌렸다. 에프로모비치는 이 금액을 시너지그룹의 대출 상환에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너지그룹은 또 다른 자회사가 파산 위기에 놓이면서 유나이티드에 기간 내에 대출을 갚지 못했다. 합작투자 소식을 발표한 지 한 달 만에 항공사 아비앙카 브라질이 브라질 상파울루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이다. 아비앙카 브라질은 아비앙카와 모회사(시너지그룹)만 같을 뿐 직접적 관련은 없다.

하지만 아비앙카에도 불똥은 튀었다. 아비앙카의 자금줄을 쥐고 있는 유나이티드는 2019년 말 타카그룹의 창업주 로베르토 크리에테와 손잡고 에프로모비치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켰다. 에프로모비치가 주식 보유분을 유지하는 대신,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모두 크리에테에게 넘기라고 요구한 것이다. 외국 항공사가 국내 항공사를 통제할 수 없다는 콜롬비아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방법이었다.


원인 3│신뢰도 추락으로 정부도 외국계 애물단지 외면

미국 항공사에 사실상 경영권이 넘어간 아비앙카는 과거 콜롬비아의 대표적 기간산업으로 국적기 대접을 받았다. 2005년 알바로 유리베 전 콜롬비아 대통령이 볼리비아 태생인 에프로모비치의 공적을 인정하고 콜롬비아 시민권을 부여할 정도였다.

지금의 아비앙카는 콜롬비아 정부의 신뢰를 잃었다. 에프로모비치가 벌여놓은 시너지그룹의 브라질 사업으로 아비앙카가 여러 번 고비를 맞은 결과였다. 아비앙카에 구제 금융 자금을 지원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국회에서 힘을 얻었다.

4월 말 반 데어 베르프(Van der Werff) 아비앙카 최고경영자(CEO)는 콜롬비아 정부에 구제 금융을 공개 요청했다. 그러나 파산보호 신청 직전까지 아비앙카는 정부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김소희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