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오후 기업은행 대전중앙로 지점에서 소상공인들이 대출 상담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4월 7일 오후 기업은행 대전중앙로 지점에서 소상공인들이 대출 상담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면 내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로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가 5월 17일(현지시각)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올해 한국의 GDP는 1.4% 줄고 추가 부양책의 영향으로 재정적자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19년 37%에서 2020년 46%, 2021년 50%로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BI는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 말까지 성장 모멘텀을 지키기 위해 완만한 재정 확장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도 이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현재 연 0.75%에서 몇 달 내에 0.5%로 내릴 것으로 점쳤다.

BI의 예상치는 한국 정부의 예상치를 크게 웃돈다. 정부는 앞서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2020년 39.8%, 2021년 42.1%, 2022년 44.2%로 전망했다. 실제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23조9000억원 규모로 편성된 1·2차 추가경정예산을 반영하면 국가채무는 본예산(805조2000억원)보다 13조8000억원 많은 819조원으로 늘어난다. 이에 더해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점쳐지는 3차 추가경정예산을 반영하고 올해 GDP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정하면 올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4%대까지 오를 것으로 추산된다.

민간부문(가계와 기업) 부채도 빠르게 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내놓은 2019년 말 기준 조사 대상 주요 43개국 민간부문 신용갭(credit-to-GDP gap)을 보면 한국은 7.0%포인트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11.2%포인트를 기록했던 200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신용갭은 1991년부터 현재까지 GDP 대비 민간신용, 즉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이 장기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보여주는 부채위험 평가지표다. 과거 추세보다 빠르게 늘수록 갭이 커진다. BIS는 국가별 민간신용 위험 누적 정도와 금융위기 전조를 파악하기 위해 신용갭을 활용한다.

그동안 각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 가운데 3분의 2는 신용갭이 10%포인트를 초과했을 때 터졌다. 신용갭이 10%포인트를 초과하면 ‘경보’, 2~10%포인트는 ‘주의’ 단계, 2%포인트 미만은 ‘보통’ 단계로 분류된다. 한국은 민간부문 부채 증가세가 꺾이면서 줄곧 1%포인트 아래에 머물며 감소세가 이어져 왔지만, 7년 만인 지난해 ‘주의’ 단계로 다시 들어섰다. 문제는 빚이 늘어나는 속도다. 가계와 기업 모두 GDP 대비 부채 비율 증가 폭이 조사 대상 주요 43개국 중 4위를 기록했다.


가계 빚도 기업대출도 ‘역대 최고’

가계와 기업은 올해 들어 더 깊은 ‘빚의 늪’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가 대출, 카드 사용 등으로 진 빚은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한국은행이 5월 20일 발표한 ‘2020년 1분기 말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611조3000억원으로 2002년 4분기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가계신용은 은행, 보험사, 대부업체, 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과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 빚’을 말한다.

가계신용 중 가계대출은 1분기 말 기준 1521조7000억원으로 한 분기 만에 17조2000억원 불었다. 가계대출 증가폭은 2019년 4분기(23조1000억원)보다는 줄었지만, 2019년 1분기(5조1000억원)와 비교해 빠른 편이다.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2019년 4분기 말보다 15조3000억원 늘어난 858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분기 증가액은 2017년 3분기(15조9247억원) 이후 가장 큰 규모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난 것은 2019년 말 부동산 규제 발표와 공시가격 인상 등의 영향으로 다주택자 등이 집을 내놓으면서 2020년 1분기 주택 거래가 활발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가계대출 증가 추세와는 대조적으로, 1분기 판매신용 잔액(89조6000억원)은 여신전문회사를 중심으로 6조1000억원이나 줄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소비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그만큼 갚아야 할 카드 대금 부담도 감소했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돈줄이 마른 기업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으로 몰려가면서 기업대출 금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5월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4월 은행의 기업대출은 929조2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27조9000억원 증가했다. 기업대출 증가 폭은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9년 6월 이후 사상 최대치다. 지난 3월(18조7000억원)에 이어 두 달 연속 사상 최대 증가 기록을 경신했다.

4월 대기업은 11조2000억원, 중소기업은 16조6000억원을 대출받았다. 중소기업 중 자영업자를 포함한 개인사업자 대출도 10조8000억원 급증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기업의 운전자금 수요가 늘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부와 은행의 초저금리 대출 등 금융 지원으로 증가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상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대기업들의 자금 수요도 대출 증가에 영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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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 국제통화기금(IMF)의 기준에 따른 국가채무란 ‘정부가 민간 또는 해외 투자자에게 빌린 돈의 원금 또는 원리금을 직접적으로 상환할 의무를 지고 있는 확정채무’를 말한다. 일반정부에 포함되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채무는 국가채무에 해당하지만 정부와 독립적인 경영활동을 하는 공기업의 채무나 중앙은행의 채무는 국가채무가 아니다.

신용갭 국제결제은행(BIS)이 분기별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장기추세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측정해 발표하는 부채평가 지표다. 민간신용 비율 상승 속도가 과거 추세보다 빠를수록 갭이 벌어진다. BIS는 국가별 신용 리스크 누적 정도를 평가하는 데 이 지표를 활용한다.

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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