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산업이 서울 성수동1가에 짓는 ‘아크로서울포레스트’. 공급 물량은 단 3가구지만 무순위 청약에는 26만여 명이 몰렸다. 사진 대림산업
대림산업이 서울 성수동1가에 짓는 ‘아크로서울포레스트’. 공급 물량은 단 3가구지만 무순위 청약에는 26만여 명이 몰렸다. 사진 대림산업

대림산업이 서울 성수동1가에 짓는 ‘아크로서울포레스트’ 무순위 청약이 진행된 5월 20일. 마감까지 3시간이 남은 오후 2시쯤에 이미 15만 명이 청약을 했고 오후 5시에는 26만4625명이 몰렸다. 무순위 청약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에 공급된 가구는 단 3가구. 가장 분양가가 낮은 주택 유형인 전용면적 97㎡B도 17억4100만원에 달해 대출이 불가능하다.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청약에 뛰어든 26만 명은 대출 없이도 17억원을 마련할 수 있는 자산가일까, 아니면 ‘일확천금’을 기대한 가수요일까.

무순위 청약이란 입주자 모집 공고 이후에도 미분양, 미계약이 발생한 경우 추첨을 통해 공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사전 예약 접수와 사후 추가 접수, 계약 취소 주택 재공급 등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근 수만 명의 청약자가 몰린 곳은 주로 계약 취소 주택 재공급이었다. 계약 포기나 청약 조건을 맞추지 못한 부적격 물량의 주인을 다시 찾기 위해 건설사가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것이다. ‘줍줍’은 무순위 청약을 통해 청약 당첨을 노리는 것으로, ‘줍고 또 줍는다’는 뜻이다. 청약 통장이나 거주 기간 등 1·2순위 청약과 비교해 별다른 조건이 없어 붙은 이름이다.

청약 시장에 ‘줍줍’ 열풍이 분 건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2018년 5월 서울 당산동에 들어서는 ‘당산센트럴아이파크’ 미계약분 청약에도 2만2400여 명이 몰린 사례가 있다. 온라인으로 무순위 청약을 진행하기 전에는 밤샘 줄 서기가 이뤄졌다. 대우건설이 2015년 경기도 성남시 성남동에서 분양한 ‘성남센트럴푸르지오시티’의 경우 잔여 물량 계약을 위해 밤을 새우는 대기자만 100여 명이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 우려가 커지던 때였다.

요즘 진행되는 무순위 청약에는 웬만하면 수만 명이 몰린다. 지난해 5월 서울 공덕동 ‘공덕SK리더스뷰’ 1가구 모집에는 4만6931명이 몰렸다. 올해 5월 대구 남산4동 ‘청라힐스자이’는 2가구 모집에 4만3645명, 인천 송도동 ‘힐스테이트송도더스카이’는 50가구 모집에 5만8763명이 신청했다.


HUG 분양가 통제로 시세 수준 새 집 공급

수요자들이 줍줍에 몰리는 건 ‘돈’ 때문이다. 그런데 무순위 청약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을 만들어내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주택 시장을 죄는 정부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해당 사업장의 평균 분양가와 최고 분양가가 각각 1년 이내 분양한 비교 사업장의 평균 분양가, 최고 분양가를 초과하는 경우 고분양가 사업장이라고 보고, 분양 보증을 거절한다. 1년 이내 분양한 곳이 없을 경우 1년 초과 아파트를 비교 사업장으로 두고, 이마저 없으면 준공 10년 이내 아파트 중 입지·단지규모·브랜드 등이 유사한 곳을 비교지로 둔다.

분양가를 높이고 싶어도 시행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HUG 정책에 분양가를 맞출 수밖에 없다. 분양 보증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사업 진행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새 집이라는 이점을 갖고 있음에도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비슷하면 당연히 웃돈(프리미엄)이 붙을 수밖에 없다. 1·2순위 청약뿐 아니라 무순위 청약에서도 이를 기대하는 수요자들이 몰리는 배경이다.

특히 이번에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아크로서울포레스트는 2017년 8월 최초 분양 때와 똑같은 가격으로 공급됐기 때문에 말 그대로 ‘로또’였다. 인근 성수동1가 ‘트리마제’는 올해 2월 전용 85㎡가 29억원에 거래됐다.


특별한 조건 없이 누구나 신청 가능

무순위 청약에 뛰어드는 걸 막는 ‘허들’도 없다.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청약 통장도 필요 없고 유주택자도 신청할 수 있다. 단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의 경우 아예 대출이 금지됐고 집값의 10%에 해당하는 계약금도 수억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금 계획을 갖춘 수요자만 넘볼 수 있다. 하지만 ‘남이 하니 나도 한다’는 생각으로 뛰어든 수요자도 꽤 많다. 무순위 청약에서 설령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아무 불이익이 없어서다.

정부도 무순위 청약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고 대책도 내놨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5월부터 투기과열지구 예비 당첨자를 최대 500%까지 받는 청약 개편안을 도입했다. 또 올해 업무 보고를 통해 수도권·광역시 아파트 청약 예비 당첨자를 전체 물량의 300%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예비 당첨자를 처음부터 많이 뽑아 잔여 물량이 무순위 청약으로까지 흘러가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하지만 청약 제도가 복잡해지고 수요자가 몰리는 이상 부적격 물량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무시무시한 양도소득세(이하 양도세)도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를 통해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전용 97㎡를 입주 1년 안에 29억원에 팔아 약 12억원의 시세차익을 내는 경우를 가정해 양도세를 계산해본 결과, 약 5억8700만원에 달했다. 시세차익의 절반이 세금으로 날아가는 셈이다. 2년 안에 팔아도 양도세는 4억6900만원에 이르렀다. 단 몇개월 만에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렸으니 결코 적은 금액이라고 얘기할 순 없지만, 취득세와 중개수수료 등의 비용까지 포함하면 꽤 큰 비용이 나간다. 다만 2년을 실거주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과세 요건을 충족해 9억원 초과분에 대해서만 과세하기 때문에 양도세는 3억원으로 줄어든다. 직접 살면서 버텨야 더 많은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는 셈이다.

아크로서울포레스트의 경우 분양가의 10%인 계약금만 1억7000만원에 달한다. 게다가 9월에 중도금 10%, 12월에 잔금을 치를 때 나머지 80%를 내야 한다. 전세금으로 잔금을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9월까지 집값의 20%에 해당하는 3억4000만원이 있어야 한다. 웬만한 현금 부자가 아니면 이 정도 자금을 갖고 있기 어렵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버티면 더 많은 자기 자본이 들어간다. 17억4100만원을 모두 자기 돈으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금 부자가 아니면 청약에 당첨돼도 시세차익을 보기 쉽지 않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마치 부동산판 ‘로또’로 무순위 청약이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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