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의 야경. 2018년 말 기준으로 1309개 회사가 이곳에 입주했다. 사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경기도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의 야경. 2018년 말 기준으로 1309개 회사가 이곳에 입주했다. 사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판교신도시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경기 침체로 전통 제조업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판교에 입주한 정보기술(IT) 기업은 오히려 실적 개선을 기대하며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기업과 일자리가 넘치다 보니 대규모 개발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제2·3테크노밸리 조성 기대감으로 산업·주거수요는 더욱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택지 개발사업이 마무리된 지 10여 년 만에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데 이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거점이 되기 위한 도약을 시작한 것이다.

판교신도시는 수도권 2기 신도시로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과 백현동, 삼평동, 운중동 일대에 조성됐다. 면적은 892만4613㎡에 이르며 수용 인구는 8만8000명(2만9300가구)이다. 경부고속도로를 기준으로 동판교와 서판교로 나뉜다. 동판교에는 판교테크노밸리와 현대백화점 판교점 등의 업무·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이 있고, 서판교에는 아파트 단지와 단독주택 등이 몰려 있다.

판교가 성공적인 신도시로 자리 잡은 핵심은 기업과 일자리다. 이를 위해 도시 계획 단계에서부터 치밀한 설계가 이뤄졌다. 지자체는 IT와 바이오기술(BT) 등 첨단 업종만을 모아 이들 간의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목표 아래 사업을 주도했고, 판교 테크노밸리만의 확고한 콘셉트를 잡았다. 10년간 전매를 제한하고 20년간 단지 내 시설의 업종·용도변경을 제한해 장기간 사업을 영위할 업체를 골랐고, 조성 원가 수준으로 연구용지 등을 공급하며 기업의 부담을 덜어줬다. 미래 변화를 정확히 전망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 것이 제대로 먹혀든 셈이다.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이 2018년 말 기준으로 판교 테크노밸리 입주 기업 현황을 조사한 ‘2019년도 판교테크노밸리 실태조사’를 보면 입주 기업 수는 1309개 회사로, 전년보다 3.07% 증가했다. IT 회사가 863개사이고 문화기술(CT) 회사가 175개사인데,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만 전체 기업의 79.3%에 이른다. 바이오기술(BT·165개사) 업종이 12.60%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판교테크노밸리 입주 기업의 임직원 6만3050명의 연령대를 살펴보면 30대가 46.52%에 달했다. 그 뒤를 40대(26.23%), 20대(19.52%)가 차지했다. 젊은 임직원들이 창출해내는 가치도 엄청나다. 입주 기업의 매출액을 합치면 총 87조5000억원에 이른다. 입주 기업 중 77%가 판교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본사 기준 매출액만 52조9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기업의 86.17%에 해당하는 1128개사가 중소기업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지방 산업단지의 빈자리가 늘어나는 것과 대조적으로 판교는 기업의 최선호 지역이 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삼평동 641 일대 2만5718㎡에 이르는 판교구청 예정부지를 사들이기 위해 나섰다. 감정평가액만 8094억원에 달하는 곳이다. 현재는 성남시가 임시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카카오는 4월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알파돔시티’ 6-1블록 임대차 계약을 했다. 건물 전체를 임차하는 방식이고 계약 기간은 10년이다. 내년 10월 준공 예정이다. 알파돔시티는 5조300억원을 들여 13만7497㎡ 대지에 오피스, 아파트, 백화점, 호텔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확장하는 판교, 3기 신도시 모범 사례로

판교신도시는 계속 확장하고 있다. 현재 판교에는 제2·제3테크노밸리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제2테크노밸리는 성남시 시흥동과 금토동 일대에 43만㎡로 조성 중이며 공공이 주도하는 1구역은 올해, 민간이 주도하는 2구역은 내년에 준공될 예정이다.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일원 58만3581㎡ 부지에 조성되는 제3테크노밸리도 올해 착공에 들어가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 중이다. 판교테크노밸리와 연계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산업단지로 조성된다.

일자리 수요가 늘면서 배후 주거지도 개발되고 있다. 시행사 성남의뜰이 성남시 대장동 210번지 일원을 개발하는 판교대장도시개발사업의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해 12월 공공주택용지인 A9·A10블록을 사들이면서 모든 공동주택용지가 판매됐다. 이곳에는 대우건설 ‘판교퍼스트힐푸르지오’와 포스코건설 ‘판교더샵포레스트’가 내년 5월 입주를 시작해 ‘힐스테이트판교엘포레’ ‘판교풍경채’ 등 5903가구가 내년까지 들어설 예정이다. 고등동과 시흥동 일대 고등공공주택지구에도 ‘호반써밋판교밸리’가 지난해 8월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이미 판교 아파트 집값은 서울 강남권과 견줄 만하다. 백현동 ‘판교푸르지오그랑블’ 전용 118㎡(19층)는 5월 15일 24억500만원에 매매됐다. 이 아파트의 경우 2011년에 입주가 이뤄졌는데, 2006년 지어진 서울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119.89㎡(6층)가 지난 5월 26억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가격 차가 크지 않다. 특히 백현동이 속한 분당구는 투기과열지구라 시가 15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이 불가능한데, 이런 상황에서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 자체가 수요가 풍부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최근 들어 판교가 주목받는 건 수도권 3기 신도시 개발과도 맞물려 있다. 2기 신도시의 경우 판교를 제외하면 대부분 서울의 베드타운(bed town)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은데, 전문가들은 판교의 성공 사례를 3기 신도시에도 참고할 만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도 3기 신도시에 기업·교통 등의 자족 대책을 마련하며 신도시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시도하고 있다. 남양주 왕숙지구는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산업 중심의 경제중심도시로, 하남 교산지구는 바이오헬스 산업과 스마트 모빌리티 산업 특화도시로 조성하는 식이다.

정부는 이르면 연내 3기 신도시에 대한 지구계획을 마련해 내년 말부터 입주자 모집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가령 수도권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경기도 부천 대장과 인천 계양의 경우 행정구역이 달라 주변 서울 마곡지구와 시너지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판교가 개발되면서 분당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 것처럼 지역 중심성이라는 부분을 고려한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