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약속된 날짜가 되면 수십만원의 현금이 통장에 꽂힌다. 이미 넉넉한 재산을 갖고 있어도, 빈털터리여도, 직장인이어도, 실업자여도 정부는 상관하지 않는다.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그저 꼬박꼬박 돈을 나눠줄 뿐이다.

정치권 최대 관심사로 급부상한 ‘기본소득’ 제도. 이름부터 괜히 든든한 이 복지 정책의 달콤한 매력을 아는 정치인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주요 정치인들은 기본소득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낙수효과의 시대는 갔다. 기본소득으로 직수효과를 노려야 한다”라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라며 논의에 뛰어들었다.

우리 사회는 정말로 기본소득을 받아들여야 할 때를 맞이한 걸까. ‘이코노미조선’은 기본소득을 바라보는 각계 전문가의 시선을 좀 더 확인하고 싶었다. 금민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 이사,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등 4명에게 의견을 구했다. 기본소득 관련 조직 소속인 금민 이사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전문가는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왼쪽부터) 금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괴팅겐게오르크아우구스트대 박사 수료, 전국노동자회 수석자문위원, 한국사회당 대표, 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회 위원장 /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 한국보건 사회연구원 원장, 한국사회보장학회 회장
(왼쪽부터)
금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괴팅겐게오르크아우구스트대 박사 수료, 전국노동자회 수석자문위원, 한국사회당 대표, 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회 위원장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 한국보건 사회연구원 원장, 한국사회보장학회 회장

기본소득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유는.

금민 “‘경제 성장 = 일자리 증가’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자동화가 확산하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바람이 불며 일자리는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과거처럼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고용이 많이 창출되고 국민 소득이 높아지는 시대가 아니다. 이렇듯 고용 없는 미래에 대한 대비책으로 기본소득이 주목받는 것이다.”

오건호 “우리 노동 시장 구조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가 많아졌다. 불안정한 일자리 형태가 많아 취업에 성공해도 마냥 기쁘지 않다. 일자리 간 퀄리티 격차도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시행된 긴급재난지원금이 국민 다수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니까 정치권은 ‘이참에 기본소득도 시행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석진 “국민과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한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지, 증세는 가능할지 등에 대해 누구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단순히 기본소득을 도입하겠다는 무책임한 주장만 난무한다.”

김용하 “여당이 지난 총선 때 압승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긴급재난지원금이다. 당시 야권도 어느 정도는 패배를 예상했지만, 그토록 처참하게 깨질 줄 몰랐다. 총선을 치른 후 야당은 ‘그간 복지 제도에 대해 우리가 너무 인색했다. 이 부분을 강화하지 않으면 내후년 대선도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현재 기본소득은 대선을 향한 레이스에서 복지정책 경쟁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를 이유로 든다.”


(왼쪽부터)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부장, 국민연금기금실무평가위원회 위원,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위스콘신주립대 경제학 박사, 한국조세연구원 전문연구위원, 한국재정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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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부장, 국민연금기금실무평가위원회 위원,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위스콘신주립대 경제학 박사, 한국조세연구원 전문연구위원, 한국재정학회 이사

기본소득 제도는 도입하는 게 맞을까.

금민 “의료, 공교육 등 기존 공공 서비스를 유지한다는 가정하에 기본소득 제공에 찬성한다. 다만 기존의 현금성 복지는 기본소득의 액수에 따라 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1인 가구에 현금으로 지급되는 한 달 생활비 52만원보다 기본소득이 높다면 기존의 현금성 복지를 없애야 한다. 이보다 낮다면 52만원에서 기본소득 금액만큼을 제외한 값을 그대로 현금성 복지로 제공해 비용을 보전해줘야 한다.”

김용하 “현재 시행 중인 기초연금 제도 도입을 주장했던 사람으로서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노력에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복지국가에도 단계가 있다고 본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가 강하려면 국가 구성원이 공공을 신뢰하는 정도, 공동체를 존중하는 정도도 강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공동체 의식의 정점에서나 가능한 시도다. 한국이 그런 나라인가? 국민 합의로 국내총생산(GDP)의 30%를 복지에 쏟아붓는 스웨덴조차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는 게 기본소득이다.”

우석진 “어떠한 모델이든 상관없이 기본소득 자체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기본소득은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예산을 필연적으로 빼앗아가는, 폭력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위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정치인들은 정치적으로 힘이 약한 소수자를 위한 복지 예산을 줄여 기본소득에 활용할 확률이 높다. 투표권이 없어 정치에서 쉽게 소외되는 가출 청소년이나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미혼모가 대표적인 예다.”

오건호 “지금 정치권에서 부르짖는 ‘기본소득’이란 구호는 모호하고 착시도 껴있다. 기본소득 모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모든 이에게 주는 걸, 어떤 이는 노인에게 주는 걸 기본소득의 개념으로 말한다. 북유럽 성공 사례라며 등장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실업자 2000명을 무작위로 뽑아 매달 돈을 주고 다른 실업자 집단과 고용 효과를 비교한 것이다. 이걸 우리의 기본소득 도입 근거로 쓸 순 없다.”


기초연금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현금성 복지제도다. 사진은 기초연금을 처음 지급한 2014년 7월 25일 서울 강북의 한 주민센터에서 노인 부부가 수령액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 사진 조선일보 DB
기초연금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현금성 복지제도다. 사진은 기초연금을 처음 지급한 2014년 7월 25일 서울 강북의 한 주민센터에서 노인 부부가 수령액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 사진 조선일보 DB

리얼미터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하는 국민이 약간 더 많았다.

오건호 “기본소득의 개념과 재원 마련 방법 등을 면밀히 살핀 후 나온 응답이라고 보지 않는다. 지금 상당히 불안하니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는 제도적 장치를 뭐든 마련해달라는, 일종의 ‘열망 표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김용하 “공짜로 돈을 준다는데 누가 반대하겠나. 기본소득 받는 대신 세금을 얼마나 더 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면 도입 반대 의견이 더 많았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일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에 기본소득 같은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금민 “동의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다가올수록 기업이 아무리 이익을 내도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과 달리, 미래 산업의 중심으로 평가받는 데이터 기반의 IT 기업은 많은 돈을 벌지만 소수의 고연봉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그친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일은 하지만 소득이 적어 생활이 어려운 근로자를 위한 복지 제도인 ‘근로장려금’ 등 지원책은 일자리가 없는 미래에 기본소득을 대체할 수 없다.”

오건호 “지금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한복판이고 인간 다수가 실업자 신세라면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아직 아니다. 성인의 3분의 2가 소득을 얻고 가계를 꾸린다. 어떤 이는 국민 다수가 노동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빨리 올 것이라 하고 어떤 이는 늦게 온다고 한다. 아무튼 현재는 안 왔다. 엄청난 재원 부담을 국민이 떠안아야 하는 이슈인데, 진짜 그런 미래가 다가오면 그때 대응하면 된다.”


기본소득은 국가 재정 건전성에 어떤 영향을 줄까.

금민 “기본소득은 국가의 재정 건전성과 무관하다. 기본소득 재원은 국채 발행이 아닌 조세를 통해 마련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약 40%로, 60%대인 유럽과 비교한다면 아직 여력이 많다. 또한 국민의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것보단 국가부채가 증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우석진 “기본소득은 국가 재정 건전성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철도,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을 적자 국채를 발행해 만드는 경우,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이를 팔아서 부채를 탕감할 수 있다. 반면 현금성 복지인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쓰면 남는 게 없어, 그대로 오롯이 부채로 남을 것이다. 일단 법이 제정된다면, 세금 재원이 없을 때 결국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기본소득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는 빚으로 이어질 것이다.”

김용하 “전 국민에게 매달 30만원씩 주려면 연간 180조원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 사회보장 제도와 세금감면 제도 등을 조정하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던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현재 나오는 재원 마련 방안 대부분은 선언적일 뿐 구체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정부는 1~3차 추경을 통해 약 60조원의 재정을 추가 지출하기로 했다. 재정적자는 1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런 일회성 이벤트에도 재정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는데 매년 180조원을 만든다? 불가능하다.”


기본소득의 전제는 증세다.

금민 “증세가 필수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다른 세금과 증세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저항이 강하지 않을 것이다. 기본소득의 경우, 내가 세금을 내면 얼마를 기본소득으로 돌려받을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순 수혜자를 국민의 70% 이상으로 유지하면 조세저항이 적을 것이다. 더불어 미래를 위한 보험 성격도 띠기 때문에 국민이 이를 세금이 아닌 기여금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우석진 “대폭적인 증세가 불가피하며 거센 조세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상품을 소비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세금을 내는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것이 가장 쉽다. 그러나 현재 최종 상품 가격의 10%인 부가가치세를 제정 당시 세율인 13%까지 올려도 20조원이 추가될 뿐이다. 300조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개인의 소득에 직접 부과하는 소득세를 늘린다면 월급 받는 국민의 반발이 클 것이다.”


기본소득 도입에 반대한다면,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나.

오건호 “불안정한 취업자의 소득 안정화를 위해서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가 더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다. 기본소득은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급여가 맞춤형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의 기본생활 보장이 국가의 진정한 목표라면, 각 집단에 맞는 여러 프로그램을 가동하면 된다. 아동수당, 청년수당, 노인수당 등 다양한 울타리를 유기적으로 운영하고 사각지대를 찾아 보완해 나가면 된다. 반드시 하나의 프로그램(기본소득)으로 구현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줄 때는 ‘속도’가 생명인 상황이었다. 받을 만한 사람과 견딜 만한 사람을 추릴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아니다.”

김용하 “기본소득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전 국민 고용보험은 2% 부족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간 수준의 복지 대책을 논의해보면 어떨까 한다. 여전히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현 사회보장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공허한 기본소득 토론이 아닌, 당장 실현 가능한 논의에 나서야 한다.”

전준범·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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