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에 인수·합병(M&A)을 제안했다. 거래가 성사될 경우 글로벌 제약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M&A로 기록될 전망이다. 사진 블룸버그·EPA연합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에 인수·합병(M&A)을 제안했다. 거래가 성사될 경우 글로벌 제약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M&A로 기록될 전망이다. 사진 블룸버그·EPA연합

영국의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 사이언스(이하 길리어드)에 인수·합병(M&A)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빅딜 성사 여부에 글로벌 제약 업계의 시선이 쏠린다. 두 회사가 합쳐질 경우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M&A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모두 갖춘 제약사가 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이번 소식을 예의주시하게끔 하는 배경이다.

6월 7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아스트라제네카가 지난 5월 길리어드에 M&A 의사를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거래 조건은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길리어드의 입장을 확인하려는 접촉 정도로 보인다.

세부적인 진행 상황이 드러난 게 아닌데도 화제를 모은 건 두 회사가 글로벌 제약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다. 1987년 당시 29세이던 의사 마이클 리오던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스터시티에 연구·개발(R&D) 중심 제약·바이오 스타트업으로 문을 연 게 길리어드다. 소수 정예 연구 인력 구조를 토대로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 집중해, 현재는 전 세계 제약사 가운데 1인당 매출 1위를 고수할 만큼 경쟁력 있는 회사로 성장했다.

에이즈 치료제(빅타비·트루바다), B형간염 치료제(비리어드), C형간염 치료제(소발디·하보니), 신종플루 치료제(타미플루) 등 25종에 이르는 혁신 치료제가 길리어드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올해 5월 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 사용을 승인한 제품 1호가 길리어드의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인 배경에는 이런 막강한 기술력이 있다.

이번에는 제안받는 입장이 됐지만, 길리어드도 지금까지 총 17번의 M&A를 성사시키며 몸집을 불려왔다. 2012년에는 전년도 매출액(83억달러)보다 많은 자본(112억달러)을 투자해 제약사 파마셋을 인수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무리한 투자라는 비판에 직면했으나 이 인수가 C형간염 치료제 ‘소발디’ 개발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창업 27년 만인 2014년을 기점으로 길리어드는 매출 규모를 248억9000만달러(약 29조8600억원)까지 키우고 글로벌 10대 제약사에 진입했다.

모더나, 존슨앤드존슨, 머크, 화이자 등과 함께 세계 5대 제약사로 꼽히는 아스트라제네카는 1999년 스웨덴 아스트라와 영국 제네카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이 회사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영국 옥스퍼드대와 ‘차드옥스 1’이라 불리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백신 개발사 중 처음으로 9월부터 미국 보건부에 백신을 납품하기로 계약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기업 가치(부채 포함)는 1400억달러(약 168조원), 길리어드는 960억달러(약 115조2000억원)로 추정된다. 이 두 기업의 합병이 성사된다면 제약 업계 사상 최대 규모 거래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최대 규모의 M&A 사례는 2019년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세엘진 코퍼레이션을 740억달러(약 88조8000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이 거래로 BMS는 세엘진의 블록버스터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를 품에 안았다. 두 회사는 합병 후 기업 가치가 876억달러(약 105조1200억원)로 상승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이번 합병 제안 소식에 대해 영국 제약 컨설팅 업체 노바섹타의 존 룬트리 전무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최근 코로나19 비극을 겪으면서 항바이러스제 영역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며 “이 분야의 확실한 리더를 확보해야 (아스트라제네카의)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길리어드가 거대 제약사와 M&A에는 관심이 없고 파트너십이나 소규모 인수를 더 선호한다는 이유에서다.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블룸버그 보도에 대해 “소문이나 추측에는 대답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길리어드 사이언스 연구원이 코로나19 치료제로 쓰이는 ‘렘데시비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길리어드
길리어드 사이언스 연구원이 코로나19 치료제로 쓰이는 ‘렘데시비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길리어드

덩치 키우기 활발한 외국 제약사들

거래 성사 여부와는 별개로 해외 제약 업계의 활발한 M&A 문화는 눈여겨볼 만하다. 인수하려는 아스트라제네카도, 제안받은 길리어드도, 모두 M&A로 몸집을 불려온 기업이다.

지난해 다국적 제약사 애브비가 보툴리눔 톡신 개발 업체 엘러간을 인수한 것도 시장에서는 큰 화제를 모은 사건이었다. 애브비는 글로벌 매출액 1위 의약품 ‘휴미라’의 뒤를 이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보톡스’로 명성을 쌓은 엘러간을 점찍었다. 두 회사는 합병 후 기업 가치가 839억달러(약 100조6800억원)로 불어났다.

올해 5월에는 다수의 희귀질환 치료제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제약사 알렉시온이 약 14억달러(약 1조6800억원)에 포톨라 파마슈티컬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포톨라는 과다 출혈 시 신속히 지혈을 돕는 ‘안덱스자’를 개발한 업체다. 안덱스자 특허가 2030년까지 유효해 알렉시온으로선 시장 독점성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또 로슈는 2019년 유전자 질환 치료 전문 업체 스파크 테라퓨틱스를 인수했고,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소재의 종양학 전문 바이오 업체 테사로를 사들였다. 릴리도 항암제 개발 기업인 록소 온콜로지를 인수했다. 고혈압 치료제, 조루증 치료제 등을 만드는 메나리니는 희귀 혈액암 치료제 ‘엘존리스’로 유명한 스템라인 테라퓨틱스를 식구로 맞았다.

해외와 비교하면 한국 제약 업계의 M&A 분위기는 잠잠하다. 신약보다는 제네릭(복제약) 위주로 성장해온 탓에 기업끼리 힘을 합쳐도 시너지를 낼 여력이 적다. 제품 라인업이 비슷해서다. 그래도 서서히 의미 있는 합병 소식이 전해지고 있긴 하다. SK㈜가 2018년 미국 앰팩을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앰팩은 항암제와 중추신경계·심혈관 질환 치료제 등에 쓰이는 원료 의약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한국콜마는 CJ헬스케어를 1조3100억원에 인수했다.

장윤서 조선비즈 기자,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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