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 전경. 사진 조선일보 DB
정부세종청사 전경. 사진 조선일보 DB

2019년 63개국 중 28위에 머물렀던 한국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국가 경쟁력 평가 순위가 올해 23위로 다섯 계단 상승했다. 2013년(22위) 이후 가장 높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성공적인 방역 성과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가 재정과 고용 관련 순위는 지난해보다 하락했다. 기업 규제 순위는 46위에 머물렀고, 기업 생산성은 38위에 그쳤다. 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재벌 개혁을 추진하고, 기본소득 등 대규모 재정이 필요한 사업을 검토하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이번 결과를 새겨 들여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6월 16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2020년 IMD 국가 경쟁력 평가 결과, 한국의 순위가 평가 대상 63개국 중 23위로 지난해보다 5계단 상승했다고 밝혔다. 인구 2000만 명 이상인 28개국 중에서는 8위를 차지하며 지난해(11위)보다 3계단 상승했다. 8위 기록은 2002년 순위 발표 이래 역대 최고 수준이다. IMD는 경제 성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 인프라 등 4대 분야 20개 부문, 235개 세부 항목 순위를 기초로 각국의 종합 순위를 산정해 매년 1회 ‘세계 경쟁력 연감’을 통해 발표한다. 앞서 한국의 순위는 2016∼2017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31위) 이후 최저인 29위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에는 28위에 머물렀다. 한국의 역대 최저 순위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의 41위였고, 최고 순위는 2011∼2013년의 22위였다.

올해 종합순위 상승은 4대 평가 분야 중 지난해와 순위가 같은 경제 성과(27위)를 제외하고, 정부 효율성(31→28위), 인프라(20→16위), 기업 효율성(34→28위) 등 3개 분야에서 순위가 올라간 영향에 따른 것이다. 기업 효율성 분야를 들여다보면, 11계단 상승한 경영 활동(47→36위) 부문은 경영자에 대한 신뢰 제고와 기업의 위기 대응력이 크게 개선됐으며 경영 과정에서 정보기술(IT) 활용이 확대된 점이 상승을 이끌었다. 행태·가치(25→15위) 부문은 코로나19에 대한 위기 대응 능력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 세계적으로 싱가포르와 덴마크, 스위스가 각각 1, 2, 3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20위를 기록하며 지난해보다 6계단 하락했고, 일본은 4계단 떨어진 34위에 머물렀다.

이번 조사에서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이 적지 않게 드러났다. 기업 규제 부문은 개선(50→46위)됐지만,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렀다. 기업 생산성 부문도 지난해와 같은 38위에 그쳤다. 기업 규제가 생산성 향상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을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재벌 개혁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와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 공정거래위원회는 6월 10일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을 6월 11일부터 7월 21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속고발제는 공정위의 고발 없이는 검찰이 기소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검찰 자체 판단으로도 고발이 가능해진다. 기업으로선 부담이 크게 느는 것이다. 행정 집행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과징금 상한도 두 배로 상향된다. 담합의 경우 거래 금액의 10%에서 20%로, 시장 지배력 남용은 3%에서 6%, 불공정 거래 행위는 2%에서 4%로 과징금 상한이 조정된다. 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막기 위해 규제 대상 총수 일가 지분 기준을 20%로 일원화하고, 이들이 50% 초과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강화된 사익 편취 규제를 적용하면 5월 1일 지정 기준 210개사인 규제 대상은 향후 381개사가 추가돼 591개사로 늘어난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대기업마저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라며 “이 시점에 기업을 옥죄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는 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찬물을 붓는 격”이라고 했다.

아울러 이번 조사에서 경제 성과 분야 중 고용 부문은 지난해 10위에서 12위로 두 계단 하락했다. 최근 2년 새 고용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통계청이 6월 10일 발표한 고용 동향에 따르면 5월 취업자 수는 2693만 명이었다. 지난해 5월보다 39만2000만 명 줄었는데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9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5월 실업률도 4.5%로 역대 5월 중 최고치를 찍었다. 청년 실업률은 두 자릿수로 뛰어올랐다. 10년 만에 3개월 연속 취업자 수가 감소했고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층의 고용률이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고용 시장이 여전히 단기 일자리 중심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고용 시장 안정은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하반기에 ‘한국판 뉴딜’이 본궤도에 오르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가능성도 있다. 정동욱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와 장기 일자리 창출에 중요한 제조업 업황이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하반기 취업자 수 증감의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고 했다.


나랏빚 증가세로 재정 부문 순위도 3계단 하락

정부 효율성 분야 중 재정과 조세 정책 부문의 순위도 하락했다. 재정은 지난해 24위에서 올해 27위로, 조세 정책은 18위에서 19위로 각각 낮아졌다. IMD는 “한국의 재정 수지와 정부 부채 증가율을 반영해 순위가 낮아졌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관련 논란이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 및 전 국민 고용보험 등 대규모 재정이 필요한 정책 논의가 불붙고 있다. 이미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112조원 규모의 재정 적자가 예상되고 복지비 등 지출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미 급증한 나랏빚이 훨씬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뜻한다. 한 국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 복지제도를 완전히 바꿀 게 아니라면, 기본소득 도입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이번 결과는 코로나19 방역 성과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라며 “앞으로 일자리와 기업 보전, 포스트 코로나 시대 혁신적 경제 성장 견인, 외부 충격에 대한 경제 회복력 강화, 세계 무역 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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