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범 미국 일리노이공대 항공기계공학 박사, 항법시스템학회 부회장 / 허문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법기술연구실장은 6월 29일 ‘이코노미조선’과 만나 “한국형 위성항법 시스템을 구축하면 내비게이션에서 차로까지 구분하는 게 가능해진다”라고 했다. 사진 전준범 기자
허문범
미국 일리노이공대 항공기계공학 박사, 항법시스템학회 부회장 / 허문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법기술연구실장은 6월 29일 ‘이코노미조선’과 만나 “한국형 위성항법 시스템을 구축하면 내비게이션에서 차로까지 구분하는 게 가능해진다”라고 했다. 사진 전준범 기자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우리가 위성항법 시스템을 부르는 말.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사실 GPS가 모든 위성항법 시스템을 통칭하는 건 아니다. 정확히는 ‘미국에서 만든’ 위성항법 체계가 GPS다. 미국이 가장 먼저 개발했고 가장 강력한 지위를 갖고 있다 보니 일반 명사화했을 뿐이다. 스카치테이프와 대일밴드처럼. 러시아(글로나스)도 유럽연합(갈릴레오)도 독자적으로 개발한 위성항법 장치를 갖고 있다. 우리가 잘 모를 뿐이다. 최근에는 중국이 GPS에 대항하는 자체 위성항법 시스템 ‘베이더우(北斗)’ 구축을 완료했다.

이 나라들은 왜 위성항법 분야에서 미국과 다른 노선을 타기 위해 애쓰는 걸까. GPS에서 벗어났을 때 경제적으로 또는 국방·안보적으로 해당 국가가 얻는 건 무엇일까. 여러 궁금증을 품은 채 6월 29일 오전 대전 어은동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한국형 위성항법 시스템(KPS·Korea Positioning System)’ 개발을 지휘하는 허문범 항우연 항법기술연구실 실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정부는 2035년쯤을 목표로 개발 중인 KPS 도입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를 약 12조6920억원으로 예상한다. 허 실장은 KPS를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걸 ‘도로만 구분하던 내비게이션이 차선까지 체크하면서 길 안내하는 세상이 오는 것’에 비유했다. 주문한 물건을 드론이 배달하고 무인택시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태워다주는 미래를 현재로 만들어주는 것도 더 정밀한 자체 위성항법 체계라고 그는 강조했다.


최근 이슈가 된 중국의 베이더우 시스템 완성이 지닌 의미부터 짚고 가자.
“중국 정부는 1994년부터 자체 위성항법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도는 이야기(군사적 목적)가 있는데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다. 아무튼 중국은 2000년 첫 위성 발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50개 이상의 위성을 쏘아 올렸다. 현재 베이더우 가동에 쓰이는 위성은 총 44개인데 이는 미국 GPS 위성(31개)보다 13개 많은 숫자다. 수적 우위만 확보한 게 아니라 정교함 측면에서도 GPS에 버금가는 기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중국은 GPS의 도움 없이도 위성항법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 모든 서비스를 스스로 제공할 수 있고 더 과감한 혁신을 시도할 수 있다.”

많은 서비스가 GPS 환경에서 이미 잘 움직이지 않나. 굳이 수조원을 써서 자체 위성항법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까.
“화가가 그림을 그릴 종이의 크기·재질 등에 대해 결정권이 없다고 치자. 화가는 2절지를 원하는데 종이는 4절지일 수 있고 닥종이를 원하는데 화선지가 올 수 있다. 종이 제공 업체에 불이 나 종이 자체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GPS 등 한국이 전적으로 의존하는 해외 시스템이 신호 장애나 어떤 정치적 이유로 중단되는 상황이 온다면? 국내 정보기술(IT) 기업이 아무리 멋진 서비스를 개발해도 GPS가 작동하지 않으면 그 서비스는 무용지물이 된다. 또 서비스는 ㎝ 단위까지 구별할 수 있는 초정밀 PNT(Positioning·Navigation·Timing, 위치·항법·시각) 정보를 요구하는데 위성항법 시스템이 그 수요에 호응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산업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중국이 베이더우를 기반으로 더 과감한 혁신을 시도할 수 있다고 한 게 이 맥락이다. 정부와 산업계가 긴밀하게 협조해 PNT 품질이 완벽히 보장된 고정밀 IT 서비스를 내놓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다.”

GPS의 위치 오차를 줄여주는 ‘위성항법 보강 시스템’도 있지 않나.
“그렇다. 한국도 지난 2014년부터 ‘한국형 위성항법 보강 시스템(KASS)’ 개발에 착수했다. 앞으로 2~3년 내에 상용화된다. 현재 GPS의 오차 범위가 17~37m 정도인데 KASS가 구현되면 오차 범위가 1m 수준으로 정밀해진다. 그런데 보강 시스템은 말 그대로 기존 위성항법 시스템을 돕는 보조 수단이다. 치료제가 아니라 진통제다. 앞서 말했듯 GPS가 작동을 멈추면 보강 시스템도 멈춘다. 유럽이 ‘에그노스’ 같은 보강시스템을 갖고 있으면서 ‘갈릴레오’라는 자체 위성항법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자체 위성항법 체계를 갖춘 기존 국가들이 후발국의 진입을 견제하는 일은 없나.
“진입장벽이 높다. 현재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유럽·중국·인도·일본 등 6개국이 자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선발주자들은 항법용 주파수나 위성 궤도를 선점하는 방식으로 후발주자를 방해한다. 그래서 한국은 일인자인 미국과 동행한다. 위성항법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구축한다는 게 ‘GPS로부터 무조건 탈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GPS 보강시스템인 KASS를 이용하면서 KPS를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는 게 한·미 공조나 국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KPS가 우리 경제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PNT 정보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완성하는 핵심 인프라다. 교통, 통신, 금융, 국방, 농업, 재난 대응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꼭 필요한 기반 기술이 PNT 정보다. 당장 지금 우리의 하루 일상을 떠올려 보자. 우리가 수시로 여는 거의 모든 스마트폰 앱이 위치기반 서비스(LBS) 바탕 위에서 서비스된다. 글로벌 LBS 시장 규모는 2017년 28조3000억원에서 2021년 113조5000억원으로 4년 새 4배가량 커질 전망이다. KPS가 더 정교한 위치기반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주면, 그 위에서 뛰노는 각종 서비스 품질도 개선된다. 현재는 도로만 구분하는 수준이라면 KPS 환경에서는 차선까지 구분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 드론, 무인선, 전자상거래 등 위성항법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모든 서비스가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 무인택시 타고 퇴근해서 드론이 던져주는 택배 상자 받는 미래 일상의 핵심은 정확도다. 그 정확도를 누가 제공해줄지 떠올려보라.”

현재 가장 큰 애로사항이 있다면.
“정부와 정치권 모두 KPS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나 4조원가량 필요한 대형 사업이다 보니 추진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정부 예산을 급히 써야 하는 이슈도 있어서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대전=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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